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23)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23화(523/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23화
“상황이 꽤 심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
며칠 후, 도경은 굳은 얼굴로 자신을 향해 보고하는 스테판과 독대를 나누고 있었다.
“네. 여전히 시장은 중소 은행 위기를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강세장이 지속되고 있는데, 문제는 중소 은행으로 돈이 돌지 않고 있습니다.”
“신기하네, 지금 은행에 어마어마하게 돈이 돌 시기인데.”
현재 미국의 경제 강세는 예금이 증가하는 상황을 불러오고 있었다.
즉, 개개인이 가진 돈이 많거나 혹은 돈을 저축하고 소비를 줄여야 하는 타이밍이라 생각하고 은행에 돈을 맡기고 있었다.
“실제로 시티나, JPM, BofA 같은 경우는 예금이 전년동기 대비 1.8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거대 은행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는 거네.”
“네. 중소 은행의 위기가 뱅크런까지는 아니지만, 돈을 빼서 거대 은행으로 옮기게 만들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메가뱅크들도 대출을 늘리지 않고 있고…….”
은행들은 전통적으로 예금이 많이 들어오면 그 돈을 다시 대출을 내주어 수익을 추구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대 은행들이 대출을 내주는 것을 선호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안전자산에 들어온 예금을 분배하고 있습니다. 저들도 지금 대출을 함부로 내주었다가는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결국 부동산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기분인데…….”
증권가의 플레이어로서는 이런 상황이 제일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스테판이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온 것도 이해가 갔다.
“최근 들어 파월 연준 의장이나 루트닉과 같은 시장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더 거들면서, 중소 은행들은 유동성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수년간 문제가 될 거라는 그 말 때문이지?”
“그렇습니다.”
“그러니 시장은 지금 무시하는 거야.”
도경은 아주 간단하게 답을 내렸다.
“시장을 죽이고 살릴 힘이 있는 연준 의장 같은 사람들이 이미 그 문제를 캐치하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스테판의 말대로 이미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드는 상황이라는 것은, 역으로 그들도 그것이 끼칠 영향에 관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둘째는, 수년간 문제가 계속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거야.”
부동산 문제는 서로 대출 시기도 다르고 이미 임대를 해준 곳의 계약이 끝나는 시점도 다르기 때문에 수년간 문제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여진들이 수년간 이어질 건데 시장을 떠날 수가 있을까?”
“없겠죠.”
“그래. 그거야. 지금은 또 한창 AI 버블이 피어나고 있잖아. 우리도 그런 마인드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스테판, 네 생각은 어때?”
도경의 이름을 달고 구성된 ‘윤도경 펀드’는 매크로(Macro, 거시경제) 펀드다.
그러다 보니 거시경제 흐름에서 작은 노이즈도 살펴봐야 하는 것이 일이었지만, 도경은 이럴 때일수록 펀드를 운용하는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갈린다고 생각했다.
짐짓 겁을 잔뜩 집어먹고 모든 자산을 철수했다가는 수년간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한창 AI로 인한 시장의 성수기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아. 그럼 우리는 좀 더 알짜들을 찾아서 리스트업하고, 어떻게 포트폴리오에 편입시켜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타이밍으로 생각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스테판이 그리 답해오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우리도 상업용 창고에 투자를 한 게 있는데 그거는 괜찮지?”
도경이 미국으로 와 처음 만난 고객이 있었다.
찰스 머피라는 고객이었는데, 그의 동료들과 그의 개인자산을 묶어서 샌프란시스코 만에 있는 ‘하버로지스틱스’라는 물류 창고 임대 기업에 투자를 한 바가 있었고, 여전히 그 자산을 관리 중이었다.
“네, 하버로지스틱스 같은 경우는 임대를 10년 단위로 하기 때문에, 현재 만기가 되려면 6년 정도 남았습니다. 또 대부분이 임대해 간 곳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는 마스터 리스master lease 방식이라 매달 배당이 잘 나오고 있습니다.”
“다행이네. 그 부분은 찰스 머피나 다른 고객분들께 잘 설명해 드리고. 불안해하실 거야.”
“네, 알겠습니다.”
이야기가 끝이 나자 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향했는데, 스테판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제가 뭐 도와드릴 건 없죠?”
“도와줄 거?”
“네. 두 달 후에 발표하시는 것 말입니다.”
도경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게, 지금은 누구의 손이라도 좀 빌리고 싶은데, 뭔가 나온 게 없으니 더 빌리기도 뭐하네.”
도경은 지난 며칠간, 업무 시간을 제외하고는 두 달 후 있을 포럼에서 발표할 자료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큰 주제는 메시지 덕분에 정했다고 하더라도, 세부적인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정확히는…….
“뭔가 엄청 많은 것들이 떠오르긴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빡 하고 꽂히는 게 없네.”
도경이 그리 말하자 스테판은 무슨 뜻인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말에 뭐 하십니까?”
“글쎄, 서재에 틀어박혀서 자료 찾겠지?”
“하하하, 보스. 세상엔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도경은 그게 무엇인지 말해보라는 얼굴로 스테판을 바라보았다.
“떠오르지 않을 때는 책상 앞을 떠나라.”
스테판은 웃으며 천천히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앨리게이터즈의 인수를 떠올려 보십시오. 보스를 괴롭히던 고민이 잠시 숨을 돌리던 곳에서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그런가?”
“네. 좀 쉬엄쉬엄하세요. 물론 보스의 입장이 아니라 속 편하게 말하는 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생각을 한번 비워야 새로운 것들이 보이지 않을까요?”
스테판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아.”
“리틀 아바나에 한번 가보세요. 지난 주말에 다녀왔더니 좋더라고요. 혼자 놀기 제격입니다.”
스테판은 그리 말하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리틀 아바나라…….”
스테판이 말한 지역을 읊조리며 생각하던 도경은 피식 웃고는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 * *
며칠 후,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서재의 책상에 앉아 고민하던 도경은 여전히 자료에 적힌 숫자들과 전쟁을 했었는데, 메시지가 준 능력 덕분인지 신체적인 피곤함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이 엄청났다.
그렇게 몸부림치던 그때 스테판이 해준 말이 떠올라 정처 없이 밖으로 나와 떠돌다 도착한 곳의 풍경에 흥미로움이 생겼다.
“여긴 정말 다른 나라 같네.”
리틀 아바나Little Havana는 마이애미 다운타운 근처에 위치한 지역이었는데, 쿠바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을 코리안 타운 혹은 리틀 서울이라고 부르듯, 이곳도 쿠바의 수도 이름을 따 리틀 아바나로 불렸다.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리틀 아바나의 중심 지역인 칼레 오초를 걷던 도경은 노점의 상인들이 부르는 것을 뒤로하고 지역을 구경했다.
마이애미는 미국에서도 수많은 중남미 지역의 라틴 아메리칸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이곳은 더더욱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길을 걸으면 보이는 수탉 조형물들부터, 벽면에 그려진 중남미풍 그림들 그리고 귀에 들려오는 라틴 음악들까지.
“스테판이 왜 이곳에 가 보라는지 알 것 같네.”
확실히 분위기 자체가 도경이 일하는 금융지구와 180도 다른 모습이다 보니, 머리가 환기되는 기분이었다.
길가의 식당에서는 갓 구운 쿠바 샌드위치 냄새가 골목길을 가득 메웠는데, 도경은 그 냄새에 이끌리듯 카페로 가 쿠바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큐반 샌드위치 하나만 주세요.”
“음료는요?”
“보통 뭐랑 함께 먹나요?”
“술을 좋아하시면 모히토, 그게 아니라면 레모네이드나 탄산음료로 많이 먹죠.”
“그럼 저는 레모네이드로 주세요.”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리자 음식이 나왔고, 도경은 음식을 들고는 밖으로 나와 노상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샌드위치를 한입 물어 베어 먹으니 기분 좋은 짭짤함이 입안을 가득 메웠는데, 기대한 것보다 상당히 맛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한 포대에 27달러.”
“그래? 왜 이렇게 가격이 내렸어?”
한참 음식을 먹던 도경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는데, 조금 전 음식을 산 식당의 주인과 무언가 식자재를 납품하는 사람들 간의 대화가 들려왔다.
“올해 옥수수가 풍년이라잖아.”
“그래도 30% 이상 내릴 줄은 몰랐는데.”
도경은 샌드위치를 다시 한입 베어 물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미국의 옥수수 농사가 풍년이라는 소식을 여러 번 들었다.
아무래도 옥수수는 여러 가지 산업에 영향을 주는 상품이었는데, 소와 같은 축산물의 사료로도 쓰였고 음식의 재료로도 쓰였다.
더 나아가 옥수수는 바이오 에탄올이라는 친환경 석유 대체 연료로도 쓰였는데, 재미있게도 옥수수의 작황이 풍년이면 석유의 가격이 크게 오르지 못했다.
대체품이 있었기 때문에 수요가 바이오 에탄올로 향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가게 입장에선 좋은 거 아냐?”
“좋지. 그렇지 않아도 가격을 올려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옥수수 구이 하나에 10달러 내라고 하면 누가 먹겠어?”
쿠바식 옥수수 구이는 이 집의 다른 명물이었다.
“다행이야. 날씨가 올해만 같아서 매년 옥수수가 풍년이었으면 좋겠구먼.”
푸념하듯 들려오는 식당 주인의 말에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베어 물던 도경은 순간 입을 벌린 채로 멈췄다.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기존의 산업이 새로운 방향으로 눈을 뜰 수 있게…….”
메시지가 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우리의 생활과는 뗄 수 없는 곳에서의 변화.”
그렇게 읊조리던 도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왜 어렵게 생각했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인류는 단 한 번도 매년 시기가 되면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었다. 그러고는 시기가 되면 수확을 해 식량으로 쓰거나, 동물의 사료로 주었다.
이 모든 것들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행위였다.
음식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최근 들어 급격하게 변화하는 날씨 때문에, 그것이 방해받고 있는 거고.”
우리가 기후 위기에 대해 떠들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다.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니까.
“매년 올해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식당 사장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린 도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 그와 관련된 자료를 보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시.”
길가로 간 도경은 택시를 불러 세우고는 올라탔다.
“금융지구로 가주세요.”
도경의 얼굴에는 무언가 실마리를 잡은 듯 환하게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