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24)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24화(524/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24화
“진짜 엄청 단조롭네요.”
며칠 후, 도경은 마이애미를 떠나 미국 중부 지역인 아이오와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혼자 시간을 내 마이애미에서 비행기로 4시간 떨어진 시카고에 내려, 그곳에서 차를 빌려 여정을 떠나고 있었다.
마이애미에서부터 운전해서 이곳까지 왔다면 꼬박 24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였다.
도경의 말대로 창밖 풍경은 온통 농지와 더불어 가끔 보이는 곡물을 저장하는 사일로나 풍력발전 터빈만 보일 뿐이었다.
“이곳이 엄청 살기가 좋은 동네라고 하던데요.”
도경은 혼자 운전을 하면서도 누가 듣고 있는 것처럼 혼잣말을 내뱉었는데, 여전히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운전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버는 돈에 비해 생활비가 저렴한 동네 아시죠? 그래서 실질소득이 높을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이애미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도경은 들려오는 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여행의 파트너는 AI 비서라고 자칭하는 고양이였는데, 도경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다가 한마디씩 거들고 있었다.
“맞아요. 마이애미는 연봉은 높을지 몰라도 집 임대료나 물가가 비싸거든요. 그래서 고액의 연봉을 받아도 남는 게 없는 그런 곳이지만, 여기 아이오와는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곡창지대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네, 맞아요. 여기 아이오와가 바로 콘 벨트의 중심지라 그런 거예요.”
콘 벨트Corn belt는 미국의 중서부에 위치한 옥수수 재배가 활발한 지역들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아이오와, 일리노이, 인디애나, 미주리, 네브래스카, 오하이오 주 등 13개 주에 걸친 대규모 농업지역이었는데, 옥수수의 생산량이 어마어마했다.
이 콘 벨트의 크기는 한반도 중에서도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 영토의 11배 크기에 가까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이즈였다.
-콘 벨트에서 생산되는 옥수수는 전 세계 옥수수 생산량 중 약 40%나 된다고 하죠.
“어마어마하네요.”
고양이의 말에 도경은 창밖에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을 바라보았다.
-옥수수가 이만큼 생산이 되면 자연스레 지역의 물가는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곡물은 가축의 사료로도 쓰이고, 바이오 에탄올의 재료기도 하니까요.”
-그렇습니다. 이곳의 소고기 가격은 다른 지역 대비 저렴하고, 기름값 또한 바이오 에탄올의 대규모 생산지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옥수수라는 작물을 그저 음식으로 소비한다면 그것을 체감할 수 없었지만, 하나의 산업에서 생산되는 상품으로 본다면 여러 가지 산업에 영향을 끼치는 곡물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는 밀의 작황도 어마어마합니다. 밀과 옥수수의 가격이 싸면, 소나 돼지의 사육 비용도 낮아지고, 이는 전체적인 식료품 가격의 하락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실질소득이 높고요.”
-그렇습니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 대비 주택 보유율도 높습니다. 실질소득이 높으니 집을 살 여력도 있는 것이죠.
이 지역의 모든 것은 옥수수와 밀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도경은 생각했다.
“지역 경제가 옥수수로 인해 돌아간다면, 이들에게 있어서 옥수수 농사는 목숨과 직결되는 이야기겠어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번 투자에 대한 실마리를 지금 방향으로 잡은 윤도경 씨의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하하, 낯 뜨겁게 무슨……. 어쨌거나 다 왔네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목적지에 도착한 도경은 차에서 내렸는데, 드넓게 펼쳐진 옥수수밭 한가운데에 있는 농가였다.
마치 옥수수로 된 바다 한가운데 있는 무인도와 같은 집이었다.
차가 오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집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나왔는데 도경은 고개를 숙였다.
“연락드렸던 윤도경입니다.”
“아! 어서 오십시오. 잭입니다. 잭 해링턴이요.”
오늘 도경이 이곳에 온 이유는 새로운 투자와 관련해 여러 가지 현직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레딧에서 연재하시는 글 재밌게 봤습니다.”
잭 해링턴을 알게 된 것은 북미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인 레딧에서 자신의 농사 이야기를 연재하는 글을 봤기 때문이다.
물론 게시판 자체가 인기가 없었지만, 그가 쓴 글은 알음알음 알려지며 여러 곳에서 재생산되는 등 많은 사람의 흥미를 끌고 있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덕분에 윤과 같은 월스트리트 투자가도 만나보고, 글쓰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도경은 잭에게 메시지를 보내 잠시 시간을 내주셨으면 했고, 잭은 흔쾌히 수락했다.
“자, 그럼 가실까요?”
잭은 마당 한편에 세워진 픽업트럭을 손으로 가리키며 그곳으로 다가가 차에 올라탔고, 도경 또한 조수석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자 도경은 창밖의 풍경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이곳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이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밭은 작은 편에 속합니다.”
“어느 정도…….”
“60에이커쯤 됩니다.”
1에이커는 약 1,224평이었는데 잭의 농지는 73,440평이라는 말이었다.
“어마어마한데 이게 작은 편이라니 더 놀랍네요.”
“하하하, 워낙 부자들이 많은 동네라서요. 저는 그저 할아버지 대부터 하던 농사일을 물려받았고요.”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올해는 풍년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작년과 올해는 옥수수 작황이 너무 좋습니다. 물론 그만큼 가격이 내려가서 섭섭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작황이 엉망일 때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잭의 옥수수밭에서 나오는 옥수수들은 어디서 사용됩니까?”
“저는 이미 코카콜라와 계약을 하고 농사를 합니다.”
“코카콜라요?”
“네. 정확히는 코카콜라의 자회사 중에 옥수수 시럽을 만드는 곳과 계약을 한 상황이라서요.”
도경이 놀랍다는 표정을 짓자 잭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코카콜라에는 고과당 옥수수 시럽 HFCS가 들어가거든요.”
“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탕수수에서 나오는 설탕보다 저렴하다고요.”
“네. 옥수수 작황이 좋을 때는 적어도 7~8배 정도 저렴할 겁니다. 저는 그쪽과 계약을 맺었지만, 주변 농부들을 보면 식용유 업체와 계약을 맺은 곳도 있고, 소농가, 바이오 에탄올 업체와 계약을 맺은 곳도 있을 겁니다.”
확실히 이곳에서 나는 옥수수는 많은 산업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작년이나 올해같이 옥수수 작황이 좋으면 저희는 행복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가격은 내려가지만, 오히려 더 많은 양이 나오니 수익이 좀 더 좋아지거든요.”
“보니까 이제 막 농사를 시작하는 땅도 있더군요.”
“아! 네. 농사를 모르는 분들은 그게 신기하겠네요. 저희는 구획별로 나눠서 파종 시기를 따로 잡습니다.”
잭은 한쪽에 차를 세우고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한 구획은 사람이 먹는 옥수수, 한 구획은 소의 사료용, 한 구획은 바이오 에탄올용……. 계약이 어떻게 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나눠서 구획을 정하다 보니 계약 시기에 맞춰서 파종합니다.”
“그게 되는 땅인가요?”
“그럼요. 이곳이 괜히 콘 벨트겠습니까? 날씨도 일정하고 또 이곳의 토양이 매우 좋습니다.”
잭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 신이 난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예로부터 이곳에는 무엇이든 심기만 하면 작황이 매우 좋았거든요.”
“들었습니다. 1등급 토양이라고요.”
미국의 농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축복받은 토지였다.
전 세계 토지의 토양 중 3~4%가량만이 1등급 토양이었는데, 그중 절반에 가까운 45~48% 정도가 미국에 있었다.
나머지는 우크라이나 정도가 그런 토양을 가졌는데 우크라이나를 ‘유럽의 빵 바구니’라고 부를 정도니 그 토양이 가지는 힘은 어마어마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시작되자 전 세계의 곡물가가 오르고, 유럽 등지의 밀가루 가격이 오르며 주식인 빵의 가격이 올랐다.
이는 여러 나라의 경제침체에 영향을 주기까지 했다.
“네. 여기서 농사가 실패하는 게 더 어려울 지경이니까요. 그런데 최근 들어 그렇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잭은 표정을 바꾸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고, 도경은 가만히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곳에 오시다가, 밀 농장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아, 네. 놀라웠습니다. 옥수수뿐만 아니라 밀도…….”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며 일어난 모습입니다.”
잭은 도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희 농부들은 크게 앞으로 3년 후까지를 한 스케줄로 잡고 농사를 짓습니다. 지난날의 기후를 바탕으로 스케줄을 잡죠.”
어찌 보면 농업은 농부의 감에 의해 돌아가는 산업이나 다름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한 지역의 기후는 일정했고, 그곳에서 가장 많이 나는 농작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철저하게 농부들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으니까.
수백 년, 아니, 수천 년간 반복해 온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해는 40도에 육박한 고온의 날씨가, 어떤 해는 엄청난 눈 폭풍이 몰아치는 영하의 날씨가 펼쳐지니까요.”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기후변화의 모습이었다.
“그러니 스케줄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 전 구획을 나눠서 농사를 짓는다고 말씀드렸죠?”
“그렇습니다.”
“이제는 그것마저도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농부들은 상대적으로 고온의 날씨에 유리한 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조금 전, 도경이 이곳에 오며 본 모습이 오히려 기후 문제로 인한 변화였다니…….
“물론 밀도 마찬가지로 힘들긴 한 상황이지만, 오히려 옥수수보다는 고온에서 작황이 어느 정도 보장되니까요.”
“그렇군요…….”
“문제는 옥수수의 작황이 좋지 않으면 우리의 수익도 수익이지만, 지출도 많이 늘어납니다. 미국에서 농사의 수확은 전부 트랙터가 담당합니다.”
도경은 이곳에 오며 어마어마한 크기와 양의 농기구들을 보았다.
제각각의 생긴 모습이 달랐는데, 그들은 저마다 쓰이는 곳이 있어 보였다.
“식량으로 쓰일 옥수수가 줄어드니 사료로 쓰이는 옥수수도 줄어들고, 바이오 에탄올로 만들 옥수수는 아예 없는 지경에 달하면, 기름값이 오릅니다.”
“트랙터는 대부분…….”
“네. 디젤로 돌리니까요. 디젤 가격이 오르면 또다시 생산비용이 오르고 옥수수의 가격이 올라가고…….”
사슬처럼 엮여 있어 문제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결국 날씨가 이전 100년과 같아야 우리의 작황도 좋을 텐데, 기후는 매년 예측할 수 없을 지경으로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인류가 예측 불가능하고 컨트롤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이야기였다.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손을 놓아야 하는 상황인가요?”
도경의 물음에 잭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이내 입을 열었다.
“농부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이미 화학 비료의 도움이나 농업 기계 등의 도움은 받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걸 보는 것이 있으면 모르겠습니다만…….”
“잠시만요. 보지 못하는 것이요?”
잭의 말에 도경은 무언가 캐치한 듯 물었고, 잭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가 아직 고려하지 못한 새로운 기술이나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죠. 예를 들어, 정밀 농업 기술이나, 기후 변화에 더 강한 작물 품종 개발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변화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현재로서는 그런 자원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잭은 그리 말하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그런 자원은 제 몫이 아니라 윤과 같은 돈을 움직이는 사람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잭, 감사했습니다. 오늘 정말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얻어가는 게 있네요.”
“아닙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오히려 다행이네요.”
잭은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고, 차에서 내린 도경은 잭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돈을 움직이는 제 몫이라는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윤은 저와의 만남이 도움 되셨다고 했으니, 저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잭과 인사를 마친 도경은 차에 올라탔다.
-힌트를 얻었나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고양이는 물음을 던져왔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잭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도움이 되었네요.”
도경은 그렇게 말하고는 익숙한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스테판, 내일 아침에 농업 데이터와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는 업체들의 리스트를 뽑아줘. 그래. 고마워. 그럼 내일 보자고.”
통화를 마친 도경은 무언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