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25)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25화(525/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25화
“생각보다 심각했네요.”
다음 날, 출근한 도경은 스테판과 함께, 전날 다녀온 출장에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옥수수나 밀 같은 곡물 가격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런 속사정까지는 알지 못하니까요.”
금융가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매일 아침 으레 선물시장의 흐름을 체크한다.
선물Futures시장은 주식 같은 현물 시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인데, 특히 원유나 곡물 같은 원자재 가격은 매크로(거시경제)에서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체크해야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래프로만 보던 것보다 확실히 한번 다녀오니 상황을 알 수 있더군.”
“콘 벨트가 그 상황이라면 다른 곳은 말해서 뭐 하겠습니까?”
어느 나라는 안 그렇겠느냐만서도 근래 미국인들은 전에 없었던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한겨울에는 영하 30도가 넘는 강추위에 눈 폭풍이 불어 전기차가 길 한가운데 서고, 어느 날은 엄청난 폭염에 댐이 말라붙어 가뭄이 일어나고.
“그래서 나는 이번 서밋에서의 발표 주제를 이쪽으로 잡았어.”
“농산업 말입니까?”
스테판이 흥미롭다는 듯 되묻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인류는 농업의 발전과 함께 성장한 종이야.”
도경은 심오한 목소리로 스테판을 향해 말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땅을 경작하고, 작물을 재배하면서 수많은 발전을 이루어냈어. 농업은 단순히 식량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스테판은 도경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어. 지난 수천 년이란 시간 동안 1년도 빠지지 않고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씨앗을 뿌리고, 수확을 하던 것이 위협받고 있다는 말이지.”
인간들은 미리 정해진 일정대로 농사했다.
현대의 농업은 어떻게 더 많은 결과물을 얻느냐의 문제로 발전했지, 단 한 번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농사를 해야 하느냐는 고려되지 않았다.
왜냐? 수천 년 동안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위협받고 있었다.
“기후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스테판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앞으로 어떤 기후변화가 우리를 덮쳐오든 그걸 예측하지도 못하고 맞을 수밖에 없지.”
당장 올해 여름이 더울 거라고 모두가 예상할 때 어마어마한 장마와 태풍이 몰려올 수도 있었다.
과장을 좀 더 보태자면 그 반대로 한여름에 눈이 내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것이 지금의 기후 위기였다.
“네 말대로 우리가 기후를 바꿀 수는 없어도, 우리 대응 방식은 바꿀 수 있어.”
도경이 이번 발표에서 다룰 주요 골자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는 도전을 해야 하고, 작년과 올해 같은 풍년일 때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기후변화에 강한 작물 개발 같은 것들 말이야.”
스테판은 도경의 말에 공감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에게 농업 데이터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곳들의 리스트를 뽑아 오라고 하셨군요.”
“맞아. 있었어?”
“네, 서울에 있는 제시카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시카는 정말…….”
스테판의 입에서 한다현의 이야기가 나오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트업이나 우리가 모르는 산업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지.”
“맞아요. 어쨌거나, 여기 리스트입니다.”
스테판이 그리 말하며 태블릿 PC를 하나 건네자 도경은 자료를 읽어 내려갔다.
“대부분 스마트팜을 기반으로 했더라고요.”
스마트팜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최적의 기술이었다.
온도와 습도를 인간이 컨트롤해 농작물이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물을 세워 그 안에서 농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정복하지 못한 게 기후뿐이니까.”
농산업의 역사는 화학 비료의 도입 이후 작황은 걱정이 없었다. 더불어 농기계의 발전은 사람이 없어도 농산물의 생산성에 비약적인 증가를 불러왔다.
사람이 정복하지 못한 것은 기후뿐이었고, 스마트팜은 그것을 정복하려 나서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스마트팜은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해.”
도경은 단호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미국의 농업을 조사하다 보니 농장 하나당 규모가 440에이커더라고.”
다시 말해 미국에 있는 농장의 평균 크기는 1개당 약 54만 평이라는 말이었다.
“스마트팜의 평균 크기는 2에이커.”
물론 스마트팜은 빌딩 형식으로 건물을 위로 쌓을 수 있었지만, 그런 건물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농장 1개 규모에는 미치지 못했다.
“설령 440에이커 규모의 스마트팜을 만들었다고 치자. 그럼, 거기에 들어가는 장비들이나, 전기, 물 등…….”
“옥수수 하나에 천 달러나 하겠는걸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맞아. 스마트팜은 지금 수준에서는 철저하게 농업의 보조 형식으로밖에 크지 못할 것 같아. 무엇보다 여기 있는 스마트팜 기업 중에 돈을 벌고 있는 기업이 있나?”
도경의 말에 스테판은 고개를 저었다.
매출을 내는 곳은 있었지만, 이득을 내는 곳은 없었다.
그건 돈을 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이 있을까요?”
스테판의 물음에 도경은 집중해서 자료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한다현이 넘겨준 자료에서 찾은 기업 하나를 손으로 찍었다.
“여기 있네.”
도경의 말에 기업의 이름을 확인한 스테판은 선택이 놀랍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고, 도경은 어깨를 으쓱였다.
* * *
“리우, 빌.”
“윤!”
한 달 후, 마이애미에 있는 대형 컨벤션 센터에는 전 세계에서 온 거부들과 명사들의 행렬로 붐볐다.
도경도 행사장 한편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는데, 파미르 캐피털의 리우 샤오와 윌리엄 마셜이 그 주인공이었다.
“리우, 잘 지내셨죠.”
“물론입니다. 윤도 잘 지낸 것 같군요.”
“아니죠, 리우. 우리의 예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되었어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빌이 그렇게 거들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빌, 잘 지냈지?”
“물론이야. 대단하네.”
“뭐가?”
“오늘 이 서밋에서 발표를 한다는 게 말이야. 그렇지 않아요, 리우?”
빌의 물음에 리우 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빌의 말대로입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윤이 잘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줄은 몰랐거든요.”
FII 인스티튜트는 금융가에 있는 인물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이들이 찾아다니는 돈이 떠다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 서밋은 가장 많은 부를 가지고 세계 여러 곳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투자기금 PIF에서 여는 행사라는 것이 중요했다.
“이 행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 봤을 때, 윤은 벌써 이곳에서 연사로 설 능력이 되었으니 놀랍습니다.”
PIF는 산하단체를 통해 이 서밋을 플랫폼화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이 행사는 하나의 투자 플랫폼화가 되어 있었다.
명사들이 와서 이곳에서 발표하고, 거대 담론에 대해 논의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어떤 분야에 투자할 것이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실제로 사우디는 산업에 돈을 투자하며 돈을 몰고 다녔기 때문에, 투자가들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회의였다.
“작은 회의일 뿐인걸요.”
도경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물론 규모는 메인 이벤트에 비해 작은 회의이긴 하지만, 오늘 참석하는 사람을 봤을 때는 결코 작은 회의 같지 않은데요.”
리우의 말에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봐, 웰스 파고의 CIO와 시티의 CIO가 앉아 있어.”
빌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돌렸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상업은행들의 수석투자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기는 퀀텀, 로튼, 블랙 세일즈…….”
그리고 헤지펀드들의 투자전략가들도 자리하고 있었는데,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저한테는 저들보다 리우와 빌이 이곳에 와주었다는 게 감격스러운걸요.”
“하하하, 당연히 미스터 윤이 발표를 하는데 와야지요.”
“그럼, 우리 파미르도 돈을 버는 곳이라고.”
빌은 도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이 업계에서 가장 인정하는 펀드 매니저가 다음 어떤 산업에 시선을 두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야. 우리도 늦기 전에 따라나서야 하니까.”
“가장 인정하는 펀드 매니저?”
빌의 말에 리우는 되물었고, 빌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아, 두 번째입니다. 물론 리우를 가장…….”
“하하하.”
이들은 도경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농담을 던졌고, 도경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행사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슬슬 행사가 시작되려 했는데, 입구의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귀빈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 특유의 케피예라고 불리는 스카프를 머리에 쓴 사람이 안내를 받으며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아 발표를 준비하던 도경도 들려오는 웅성거림에 고개를 들었는데, 도경을 이곳에 연사로 설 수 있도록 해준 PIF의 대리인 파흐드가 보였다.
파흐드는 누군가를 안내하고 있었는데, 그 얼굴을 본 도경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언론을 통해 몇 번 본 익숙한 얼굴이 파흐드의 안내를 받아 행사장으로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
눈이 마주친 파흐드는 도경을 불렀는데, 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갔다.
“여기는 유성 인베스트먼츠의 윤도경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전통적인 아랍 복장을 한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어오자 도경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윤도경입니다.”
“나는 하심 알 나시르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도경과 남자가 주고받는 인사를 보며 행사장에 있는 사람들은 부러움이 섞인 눈길을 보냈다.
“나야말로, 윤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 이곳에서 발표를 한다는 파흐드의 말을 듣고 한번 와보고 싶었습니다.”
하심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투자기금 PIF의 총재였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움직이는 남자이자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금고지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좋은 발표를 기대하겠습니다.”
도경은 하심과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는데, 멍한 얼굴이었다.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세계 투자 시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남자가 자신의 발표를 듣기 위해 자리했다.
“오늘 발표를 해주실 유성 인베스트먼츠의 윤도경 CIO를 모시겠습니다.”
한참 멍하니 앉아 있던 도경은 들려오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연단에 섰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 헤지펀드 그리고 PIF의 총재 등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발표를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회를 부여받은 기분이었다.
‘후회 없이 해보자.’
조금 전의 멍한 얼굴은 오간 데 없이 도경은 청중을 향해 당당히 시선을 고정했고 결연한 눈빛으로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