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2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27화(527/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27화
“아주 감명 깊던데요.”
다음 날, 출근을 한 도경은 이지훈 그리고 스테판 그린과 함께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업무에 대한 보고가 끝나자 스테판은 흐뭇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제 저는 그 자리에서 보스의 발표보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거든요.”
이지훈과 스테판 그린 그리고 지사 팀원들도 청중으로 참석해도 좋다고 도경은 초대장을 나눠주었고, 몇몇은 청중으로 참석해 도경의 발표를 들었다.
“내 발표를 들어야지.”
“아, 그거야 당연히 들으면서 이제 집중을 다른 사람 얼굴에 했다 이거죠.”
스테판 그린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그런데 다들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더라고요.”
“그래?”
“네. 처음엔 다들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우리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윤도경이라는 이름에 기대하고 있더라니까요. 리, 제 말 맞죠?”
스테판의 물음에 이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야 매일 보니까. 보스가 대단한지 알았지만, 외부에서도 윤도경이란 사람이 이 미국 금융가 유망주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알 것 같더군요.”
이지훈까지 그리 말하자 스테판은 신이 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게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발굴해 내야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보스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더라고요.”
미국에 온 지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
이전에는 서부의 월가라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만 알려져 있었다면, 메인스트림인 월가나 마이애미에서도 도경의 이름은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 되었다.
“어쨌거나, 이야기를 시작하시니까 재밌어하더라고요. 실제로 재미있었어요. 보스의 발표를 보면 특유의 내러티브가 있어요. 좀 종합적인 접근이라고 할까요?”
“인문학적인 접근이지.”
이지훈이 그렇게 거들자 스테판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인류의 발전사부터 이야기하시니 빠져들었어요. 그런데 이제 해결책으로 나온 게 트랙터니까 순간 표정이 싹 식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작은 아주 컸는데, 대안이 겨우 트랙터 한 대라니.
그리고 새로운 것을 알게 해주나 싶어 왔는데 모두가 아는 기업이라니.
“데어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다 보니 식어버린 거죠. 그런데 여기서 데어가 최근 한 기술의 발전들을 이야기하니 다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변하더라고요.”
“안타깝지 않아?”
“네?”
“데어에 관해서 모두가 잘 아는데, 그들이 지난 몇 년간 어떤 발전을 했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야.”
도경은 스테판과 이지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도 마찬가지야. 이번 발표를 위해서 조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데어에서 무엇을 했는지 몰랐어. 아니, 오히려 보려고 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3년 전쯤, 자율주행이 한창 시장의 테마로 자리 잡고 있을 때 데어의 주가는 크게 오른 적이 있었다.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도 트럭을 만드는 회사도 자율주행이라는 테마에 잡혀 엄청나게 주가가 올랐다.
미국 땅이 워낙 넓었고, 주마다 혹은 시마다 이동 거리가 길었기 때문에 자율주행은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저 트랙터를 자율주행으로 하면 인건비도 줄고, 다들 자율주행 트랙터를 사겠구나! 이런 생각만 막연하게 했지.”
“그때는 시장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다못해 라이다(LiDAR)를 만드는 중소기업의 주가도 미친 듯 올랐었으니까요.”
라이다는 레이저 신호를 이용해 주변의 사물을 인식하는 기술이었는데, 자율주행 자동차에는 눈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그런데 데어는 그때도 우리의 생각과는 달랐던 거야.”
도경은 그 당시에 데어가 억울했겠다 싶었다.
그저 자율주행의 테마에 엮여서 주가가 올랐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겪어서는 안 됐다.
“어쨌거나 그들은 꽤 절치부심하고 준비했지.”
“재미있어요. 트랙터에게 세상을 보는 방법을 가르치다니요.”
“누구는 로봇을 앞으로 인류의 노동을 도와줄 대안으로 생각했지만, 데어는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에다가 그걸 심었어.”
이제는 흔한 트랙터가 아니었다.
“밭의 환경과 기후, 그리고 작물의 상태까지. 모든 것을 트랙터 한 대가 파악하고, 사람이 운전하지 않아도 자율주행으로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시스템.”
도경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돈도 벌고 있지. 아주 많이. 데어는 매년 44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어.”
우리 돈으로 약 58조 원이 넘는 돈이었다.
“순이익은 60억 달러고, 영업이익은 75억 달러 규모로 영업이익률이 17% 수준이나 된다고.”
이미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기업이었다.
도경이 이번 발표를 위해 조사를 하며 가장 배제한 것은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이었다.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은 투자도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었다.
신기술이 있어도 그것을 매년 발전시킬 돈이 없다면, 기술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가가 폭발적으로 올랐죠. 그런데, 누군가는 주가가 너무 오른 거 아니냐고 말하겠는데요? 지난 5년간 123% 올랐어요.”
스테판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5년간 265% 상승했고, 엔비디아는 1,915% 상승했어. 그런데 누구도 그곳에 주가가 너무 올랐다며 돈을 안 넣지는 않지.”
“오히려 앞으로 더 갈 거라고 생각하죠.”
“데어도 내겐 그런 기업이야.”
도경은 확신을 가진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들은 그저 흔한 트랙터 제조업체가 아니라, 농사에 대한 전반을 다루는 기술주로 봐야 해.”
제조업에서 기술주로의 변환을 아주 멋지게 했다고 도경은 생각했다.
“거기에 시장을 이끌어가는 테마인 AI 기술은 데어도 가지고 있으니까.”
“좋네요. 어제 자리가 자리라 이런 이야기를 못 하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지훈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아무래도 어제는 기후 위기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말하고, 투자를 끌어낼 산업군을 말하는 자리였지, 기업에 대한 투자를 끌어내는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글쎄. 나는 내가 말한 바를 잘 이해한 사람이 있다면 연락해 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지이잉-
그때, 타이밍 좋게 도경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고 화면을 확인한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올 거라고 했지?”
도경이 화면을 보여주자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두 사람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 * *
“그날 발표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도경은 어디론가 이동하는 차 안에 타고 있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옆자리엔 PIF의 대리인인 파흐드가 앉아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아니에요. 처음엔 윤이 너무 안정적인 것을 택해왔나 싶기도 했거든요.”
모두가 아는 것을 준비한 도경이었으니까.
“그런데 모두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사실은 다 아는 게 아니었던 거죠.”
도경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고, 파흐드 또한 흡족한 얼굴이었다.
“데어를 준비하신 걸 보면 곧 투자에 나서시려나 보죠?”
파흐드의 물음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단순 주식을 사는 것에 그치지 않겠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식을 사는 것도 그들에게 투자를 하는 행위이긴 합니다만, 직접적인 기술 발전을 불러오지 못할 테니까요.”
“그래서 제가, 또 PIF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파흐드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자리에서 잘 말씀해 보십시오. 그분이 어떤 생각을 하는 건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파흐드는 말끝을 흐리고는 창밖을 바라보았고, 도경도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차는 미끄러지듯 목적지의 로비로 들어섰는데, 차에서 내린 도경은 길게 심호흡을 하며 위로 올려다보았다.
마이애미에서 가장 시설이 좋고 숙박료가 비싼 호텔이었다.
“가시죠.”
그때 파흐드가 다가와 그리 말하자 도경은 안내를 받으며 호텔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파흐드와 함께 VIP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해당 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입구에서부터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파흐드와 도경의 신분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삼엄하죠?”
“네. 그렇네요.”
“공식적으로는 외교관의 직위도 함께 가지신 분이라 그렇습니다.”
파흐드는 방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파흐드입니다.”
파흐드가 그리 전하자 문이 열렸고, 금색의 휘황찬란한 방의 모습이 보였다.
도경은 정말 이런 방에 누가 묵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제는 누가 묵는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앉아 계시면 나오실 겁니다.”
안내받아 도경과 파흐드는 방 중앙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잠시 후 아랍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가 방에서 나와 다가왔고 도경과 파흐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하, 미스터 윤! 또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군요.”
“하심,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도경이 만나러 온 사람은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 PIF의 총재, 하심 알 나시르였다.
“아닙니다. 나야말로 그런 발표를 듣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죠. 앉읍시다.”
하심의 말에 도경과 파흐드는 자리에 앉았다.
“언론이 뜨겁습니다. 이번 우리 서밋이 아주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요.”
실제로 도경이 참석한 서밋은 아주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세계 각지의 언론에서 이번 서밋에서 나온 의제들을 보도했는데, 도경의 발표도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곳곳에 보도되었다.
물론 발표의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지면을 차지하는 크기도 작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영광인 일이었다.
“특히, 메인 연사뿐만 아니라 서브 연사들이 발표한 의제들도 기사에 실렸습니다. 윤의 모습이 여기 보이는군요.”
미리 준비해 둔 것인지 테이블 위의 신문에는 도경의 사진이 떠 있었다.
미국의 농산업 전문지에서 나온 기사였다.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우리 PIF는 전 세계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숨길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현재 투자 시장에서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이었으니까.
“그런데 우리의 자산은 무한정하지 않습니다.”
도경도 알고 있었다. PIF의 현금이 마르고 있다는 것을.
그건 투자 때문이 아니라, 자국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토목사업에 돈을 대느라 그런 것이지만…….
어쨌거나, 현금이 줄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의 주요 돈줄인 석유 사업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펼치는 사업에는 윤이 발표한 것도 필요합니다.”
사우디는 식량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나라였다.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진 땅에 자리 잡은 나라였기 때문인데, 그들의 식량 수입률은 80%에 달했다.
“우리는 식량 자급자족을 늘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우리가 매년 수입하는 식량의 가격이 오르는 것도 막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우디의 입장에서는 식량은 안보나 다름없었다.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아랍 대부분의 나라가 겪은 혁명은 결국 과일 가격 상승에 절망한 한 노점상에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저들은 왕국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식량안보에 모든 것을 투입해야 했다.
“그래서 미스터 윤의 발표에 우리가 투자를 좀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돈은 없습니다.”
하심의 말에 도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돈이 없는데 투자를 한다니.
순간 도경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설마, 아람코의 지분을…….”
도경의 말에 하심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이곳 미국에서 유망주로 대우를 받는 아시아인답군요. 여러모로 대단합니다. 그렇습니다.”
도경이 알아차리자 더 이상 숨길 것이 없다고 생각한 하심은 크게 웃었다.
“아람코의 지분을 드리겠습니다. 이를 팔아 윤이 발표한 것에 알맞은 투자를 해주십시오.”
하심의 입에서 그와 같은 말이 나오자 도경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다시는 없을 커다란 기회가 자신에게 찾아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