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29)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29화(529/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29화
JPM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크며, 가장 잘 알려진 투자은행이었다.
이들은 수 세기에 걸쳐 다양한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한때는 ‘신보다 돈이 더 많다.’라는 말을 들으며, 미국이 금융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오랫동안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던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들이 하루아침에 망해 버리던 2008년, JPM은 모두가 반대하는 부실 금융사들을 인수했다.
그때는 모두가 그들의 결정을 비웃었지만, 1년이 지나지 않아 그들의 선택은 왜 JPM이 오랫동안 월스트리트의 황제로 군림할 수 있었는지 알려주었다.
‘JPM. 월가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은행이 되다.’
영국의 더 뱅커 The Banker라는 매거진은 매년 ‘세계 1,000대 은행’이라는 순위를 발표하는데, 매년 4~5위를 왔다 갔다 하던 JPM은 2009년 호에서 1위를 차지했다.
JPM은 하나의 제국이 되었고, 회장인 제롬 테일러는 화려하게 ‘월가의 황제’로서 대관식을 진행했다.
“PIF는 현재 다섯 개 정도의 헤지펀드와 협업 중입니다.”
뉴욕 맨해튼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JPM 제국의 성Castle에는 CIO 랜스 존스턴의 소집에 따라 그의 팀원들이 모여 있었다.
“다섯 개나 되나?”
팀원의 보고에 랜스는 놀란 듯 되물었다. 여러 곳에 투자하기는 하지만, ‘왕가의 지갑’이라는 오명이 뒤따르는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 PIF는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물론 그들이 가진 자산이 많았기 때문에 워낙 유능한 플레이어들도 보유하고 있었지만, 왕의 한마디에 의해 투자가 된다거나, 왕의 집사라 불리는 PIF의 총재 하심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투자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 나눠 드린 보고서에 적어뒀습니다만 캐서린의 퀀텀펀드, 브릿지워터, 맨그룹 등과 일하고 있습니다.”
“……유성?”
리스트를 바라보던 랜스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는데, 모두의 시선이 랜스에게로 꽂혔다.
“유성이면 한국의 증권사가 아닌가? 아니지. 윤도경이라는 그 친구가 있는 곳인가?”
“그렇습니다. 최근 유성인베스트먼츠는 한국에서 영위하던 증권사업은 뒤로하고 미국에 자신들만의 헤지펀드를 만들었습니다.”
“그걸 윤도경이란 사람이 이끄는 거고?”
랜스는 최근 들어 간간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처음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예상했니 어쩌니, 하는 가십성 뉴스가 나와 그저 스쳐 지나갈 여러 펀드매니저 중 하나와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자신만의 세계관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유성인베스트먼츠에서 구성한 22억 달러 규모의 매크로 펀드 ‘윤도경 펀드’가 있습니다.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만, 그곳의 가장 큰 투자자가 PIF가 아닐까 합니다. 기억하실는지 모르겠지만, 한때 9억 달러의 돈을 들고…….”
“아, 그래. 기억나는군. 헤지펀드에 9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그게 유성이었지.”
워낙 많은 정보를 취득하는 랜스의 입장에서는 그것 또한 지나가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자신은 투자은행의 CIO였지, 헤지펀드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그 이후로도 사이를 계속 유지한 것인지 최근 마이애미에서 열린 FII 인스티튜트에서 윤도경이 연사로 올랐습니다. 자료 첨부해 두었습니다.”
팀원의 말에 랜스는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확실히 사우디가 좋아할 만한 주제를 골랐군.”
“의도했다고 보십니까? 그 자리에 다녀온 회사 간부의 말로는 그 자리에 PIF의 총재 하심이 올 거라곤 아무도 몰랐다고 합니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가 고른 주제는 사우디에겐 왕가를 이어가는 데 필요한 거니까.”
식량은 모두에게 중요했지만, 특히나 중동과 같은 곳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하는 중동 국가 입장에서는 식료품의 가격 컨트롤에 실패하게 된다면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랍의 봄 때 모두가 지켜보며 경험했던 것이니까.
“어쨌거나 가장 확률이 높은 건…….”
“유성입니다. 가장 최근에 하심을 만났으니까요.”
“마이애미엔 퀀텀도 있고, 브릿지…… 그렇겠군.”
헤지펀드들의 이름을 말하던 랜스는 무언가 느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퀀텀이나 브릿지 워터가 지분을 대리해서 거래하지는 않을 테니까.”
“네. 그들은 철저한 롱텀펀드입니다. 지분을 들고 있으면 들고 있었지, 그걸 중개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유성이 맞겠군.”
랜스는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두고 모두를 바라보았다.
“이 지분 0.2%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누군가에겐 고작 0.2%의 지분이었지만, JPM에겐 앞으로 몇십 년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사업이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우디아라비아는 그동안 자신의 손에만 쥐고 있었던 알짜 공기업들을 기업공개 하고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있다.”
물론 미국으로 상장을 한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자국의 주식시장인 타다울에 상장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권이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동안 GS가 대부분의 사업을 따가며, 우리는 손가락만 빨고 있었지만, 기회가 찾아왔다.”
혹자는 타다울이라는 사우디 주식시장에서 아람코의 지분을 확보하면 되지 않냐고 말할 테지만, 사우디는 주식시장의 규제가 강력했다.
2015년 한 차례 강력했던 규제를 푼 사례가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들 국가에 있는 기업들을 외국인들이 쥐고 흔드는 걸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여러 규제가 있었다.
그래서 주식시장에 외국인들이 잘 진출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외부로 나와 있는 지분이 있다면 누구든 군침을 흘릴 것이다.
특히나 자신들과 같은 투자은행이라면 목적이 있는 접근을 할 것이다.
“특히나 올해 안에 아람코의 지분을 추가상장 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인데, 이 주관사를 우리가 맡기 위해선 그들과의 접점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장 가치가 얼마지?”
“지난 상장 때를 생각하면 0.2%의 가치는 40억 달러가량 될 것 같습니다.”
40억 달러는 한화로 약 5조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큰 금액이지만, 동시에 우리에겐 적은 금액이기도 하지.”
하지만, JPM의 입장에서는 그 지분을 확보했을 때, 벌 돈이 더더욱 많았다.
“그런데 최근 아람코의 매출이 대거 줄었습니다. 40억 달러보다…….”
“글쎄, 내 생각은 달라. 유가의 하락으로 인한 단기적인 매출 부진으로 보는데,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 유가가 상승한다면?”
다음 분기 아람코의 매출은 대거 늘어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석유 기업이었다.
“그리고 상대는 우리보다 작은 규모의 헤지펀드를 이끄는 사람이긴 해도, 금융가의 유망주로 대우받는 사람이야. 우리가 먼저 접근을 하면 뭐 때문에 지분을 필요로 하는지 알 텐데?”
애초에 협상에서 잃을 것이 많은 것은 JPM이라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줄 수 있고, 저들에겐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가져와. 여러분들은 그걸 생각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랜스의 말에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JPM이라는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팀이었으니까.
그렇게 회의가 끝이 나고 팀원들이 방을 나가자 랜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빌, 이번엔 내가 먼저 당해주지.”
윤도경이란 펀드매니저가 리우 샤오의 서부 월스트리트 마피아 중 하나라는 것은 랜스도 잘 알고 있었다.
파미르의 윌리엄 마샬도 윤도경을 위해 자신에게 정보를 흘리는 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랜스와 JPM에게 매우 필요한 정보였고 이번엔 자신이 빌에게 큰 혜택을 받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니라 GS에 먼저 전화를 했다면, 이 기회를 잡을 수 없었을 테니까.
잠시 망설이던 랜스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윌리엄 마셜입니다.
“빌, 랜스일세. 유성과 자리를 좀 마련해 줬으면 하는데.”
* * *
“정말 신기하네요.”
“뭐가?”
보름 후, 도경은 자신의 방을 나서 밑에 층에 있는 회의실로 이동 중이었다. 옆에 따라붙은 스테판의 말에 도경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콧대가 높은 JPM에서 이곳 마이애미까지 올 거라는 상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거든요. 그것도 JPM의 CIO 랜스 존스턴이 말이에요.”
“대단한 사람들이긴 하지. 그런데 앞으로는 자주 볼 것 같은데.”
“네?”
“우리가 저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앞으로 자주 볼 것 같다고. 나는 그럴 것 같은데, 스테판 너는 아닌가 봐?”
도경의 물음에 스테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보스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렇게 될 것 같네요.”
도경은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회의실 앞으로 가자 팀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도경은 고개를 끄덕여 주고 문을 열어젖혔다.
문을 열자 여유가 넘치는 표정으로 앉아 있던 JPM의 CIO 랜스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JPM의 수석투자전략가 랜스 존스턴입니다.”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성인베스트먼츠의 윤도경입니다.”
도경과 랜스는 악수를 나누고는 각자의 팀원들을 소개하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 저희가 이렇게 유성을 찾아온 이유는 미리 이야기를 드렸던 바대로, 유성에서 중개하는 아람코의 지분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랜스는 감출 것은 없다는 듯 연락 초기부터 자신들의 목적을 이야기해 왔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서로의 의중을 떠볼 필요가 없어 매우 생산적인 대화가 진행될 거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희는 고객의 지분 매각을 대리하고 있습니다. 어떤 조건이든 들어볼 생각이 있지만, 고객의 이득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도경이 그리 말하자 랜스는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곳 미국 금융가에서 살아남을 만큼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 지분의 매각 이후 대금이 유성의 다른 투자를 위해 사용할 것이라는 걸 JPM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다는 걸 유성도 알고 있을 테고, 그런데도 저리 말해온다는 것은 유성이 확실한 갑의 위치에 있다는 걸 주지시키려는 것 같았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우리 JPM의 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랜스는 더 이상 간 볼 것이 없다는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분 0.2%의 가치를 42억 달러로 잡았습니다. 이는 현재 아람코의 매출 대비해 높은 멀티플을 제시했다는 걸 유성도 알고 있을 겁니다. 미래의 가치를 더 높게 잡았고, 또 우리가 그 지분을 가졌을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이득을 유성과 유성의 고객에게 나눠주는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도경은 오랜만에 잔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는 거래를 진행한다고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의 의도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니, 괜한 기 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저희의 조건을 들으셨으니, 유성의 조건을 말씀해 주시면 이 자리에서 조율하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랜스의 말에 도경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천천히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우리 유성은 0.2%의 지분을 41.5억 달러에 매각할 것이고, 앞으로 우리 유성이 할 주식 거래의 브로커를 JPM에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수수료의 감면도 원합니다.”
도경의 말에 랜스는 진심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았고, 도경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얼굴이었다.
도경이 이끄는 유성투자증권의 현재 주식 브로커는 웰스 파고였다. 그들과도 거래를 오래 하며 여러 가지 혜택을 받고 있었지만, 다른 헤지펀드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도경은 애초에 JPM이 거래 상대로 정해졌을 때부터 이 제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제안이군요.”
랜스는 그렇게 말했다. 상대의 제안은 받기 쉬우면서도 받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42억의 가치를 제안했는데, 그것보다 낮은 금액으로 지분을 인수할 수 있도록 역제안을 해왔다.
당장에라도 좋다고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께름칙했다.
앞으로 어떤 이득을 포기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저희는 앞으로 미국에서 여러 가지 펀드 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지금 파트너인 웰스 파고도 분명 훌륭한 파트너입니다만, 우리의 이득을 위해서는 더 나은 대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40억 달러의 가치로 매겨진 지분의 매각 대금을 41.5억 달러로 끌어올렸다.
이는 PIF 입장에서는 대만족할 만할 건이었고, 남은 것은 유성투자증권이 미국에서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달려 있었다.
“거래 수수료 대우와 더불어 대차거래와 공매도 시 수수료 감면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도경은 숨길 것 없이 자신의 제안을 이야기했고, 잠시 고민을 하던 랜스는 옆자리에 앉은 팀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팀원도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랜스는 지그시 도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만난 사람 중 그렇게 협상을 잘하는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상대는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좋습니다. 자세한 수수료 혜택은 돌아가서 생각해 봐야겠지만, 큰 틀에서 유성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랜스의 입에서 조건을 승낙하겠다는 말이 나오자 도경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JPM과 파트너가 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윤도경이란 사람을 알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해야겠군요.”
랜스는 자신의 말이 진심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도경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