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3)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53화(53/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3화
“도경 씨!”
이틀 후,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한 도경은 여의도 유성투자증권 앞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도경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약속 상대가 손을 흔들어왔고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연지 대리님.”
약속 상대는 유성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이연지였는데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옆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성남지점 PB 윤도경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도경은 정중하게 상대를 향해 인사를 하고는 명함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현종입니다. 저도 윤도경 씨가 낯설지는 않네요. 사내 모의투자대회 봤거든요.”
상대도 인사를 하며 도경을 향해 명함을 건넸다.
[유성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이현종, CFA]명함을 건네받은 도경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명함을 바라보았다.
CFA(Chartered Financial Analyst, 재무분석사)는 한때 도경의 꿈이기도 한 국제 자격증이었다.
응시 자격 자체가 까다롭고, 시험 또한 매우 어려워 합격자 수가 적었다. 오직 합격자만이 이름 뒤에 CFA를 붙일 수 있었고, 증권사 취업의 프리패스나 다름없는 자격증이다.
“왜 그렇게 감동했다는 표정이에요?”
이연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도경은 고개를 들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제가 개인투자자이던 시절부터 이현종…….”
“직급은 팀장입니다.”
“아, 팀장님의 보고서는 꼭 챙겨봤거든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네! 특히, 제약업계 쪽은 공부가 많이 필요한데 이현종 팀장님께서는 보고서를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셔서요.”
“고맙습니다. 칭찬받으려고 온 자리는 아닌데…….”
이현종은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식사부터 주문할까요?”
도경이 그리 말하자 이연지는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팀장님 식사부터 하실까요?”
“일단 윤도경 씨가 나를 보자고 한 이유부터 들었으면 좋겠는데. 연지가 내 부사수라 부탁받고 나오긴 했는데 궁금합니다.”
이현종은 눈앞에 앉은 PB를 바라보았다.
요즘 회사 내에서 그의 이름이 종종 들려왔다. 더 나아가 다른 증권사 직원들을 만나면 성남지점의 윤도경을 묻는 말들이 많아졌다.
“소문이 빠른 이 여의도에서 모두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름의 주인공이 왜 나를 보자고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누군지 한번 살펴보았는데 이력이 대단했다.
업무팀 직원이 쟁쟁한 트레이딩 부서들의 직원들을 이기고 사내 모의투자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은 별것이 아닌 이력이라고 생각될 만큼, 팻핑거 사건에서 큰 이득을 본 일, 기업 사냥꾼들이 DU를 노릴 때 탈출 타이밍을 고점으로 잡았다는 얘기.
더 나아가 시장의 골칫거리였던 조현석과 싸움 아닌 싸움에서 그를 이긴 얘기까지.
이제 1년 차 딱지를 뗀 PB치고는 소문들이 화려했다.
“팀장님께서 물으시니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엠바이오젠이 발표한 당뇨병 차세대 신약이 궁금합니다.”
이현종은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제약주 전문 애널리스트였다.
제약업종 같은 경우는 워낙 기술 자체들이 어렵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 기술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했다.
이현종은 그런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도경은 생각했다.
“궁금하다면…… 어느 쪽으로?”
“저는 이 신약후보가 그저 말뿐인 발표라고 보고 있거든요.”
도경의 말에 이현종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유는?”
“이번에 엠바이오젠이 학회에서 발표한 보고서 전문을 읽었습니다. 알맹이가 몇몇 부분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현종은 계속해 보라는 듯 도경의 말에 집중했다.
“제가 아는 신약 개발은 신약후보물질을 동물에게 투여해 안전성과 효능을 테스트하는 비임상시험이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테스트 결과로 인간의 몸에 투여할 범위를 추정하고요.”
“맞습니다.”
도경이 말한 바대로 신약후보물질은 흔히 알듯 실험용 쥐에 투약하는 비임상시험을 먼저 한다. 부작용과 독성 등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번 보고서를 보면 동물실험은 진행했고, 비만한 쥐에 약을 투약했을 때 체중 감량의 효과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했지만, 당화혈색소 경과에 관한 보고가 아주 짧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혈중 포도당 수치가 높을수록 당화혈색소는 더 많이 생성되었다. 다시 말해 당뇨병 환자는 당화혈색소를 일반인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었다.
엠바이오젠은 당뇨병 치료 신약을 발표하며 가장 중요한 부분을 뭉개듯 넘어갔다.
“한 가지 더, 신약후보물질이 비교군과 데이터가 비슷합니다.”
“…….”
“비교군은 이미 시중에 널리 쓰이는 당뇨병 치료제를 사용했는데 체중 감소 효과가 극적인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도경은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저는 이번 엠바이오젠의 학회발표가 마치 필요한 부분만 부각해 발표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가 꼭 봤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도경은 혹시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을까. 메시지가 보내준 힌트가 잘못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지난 이틀 엠바이오젠이 발표했다는 보고서를 공부했다.
궁금한 것은 인터넷에 검색해 가며 관련 전문 서적을 찾아 공부했는데 자신의 짧은 식견으로는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이연지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이연지는 자신의 사수가 이현종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연지 대리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저의 이런 느낌이 잘못되었다면 잘못됐다고 말해줄 수 있는 분은 이현종 팀장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도경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던 이현종은 천천히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내 의견이라는 점, 어디 가서 내 이름을 말하지 않겠다는 것. 확실하게 하죠.”
“네, 알겠습니다.”
“윤도경 씨의 의견에 나도 찬성하는 쪽입니다.”
이현종의 말에 도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체중 감소는 일반적인 체중 감량 약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드라마틱한 감소도 아니었고요. 확실한 건 윤도경 씨가 말한 혈당화색소가 얼마나 감소하였는지에 대한 부분을 뭉개고 넘어갔다는 것이지.”
“제가 궁금한 것은 그 학회에서는 왜 발표를 허락…….”
“윤도경 씨.”
이현종은 굳은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이번 학회에서 발표된 보고서의 숫자를 봤나?”
“……보지 못했습니다.”
“어림잡아 100개야. 단 사흘간의 학회에서 발표된 보고서만 100개고, 학회에 보고된 보고서는 더 많다는 말이야.”
도경은 국내 학회의 경우만을 생각했다. 미국의 학회는 전 세계 대학의 연구진과 제약회사 연구진의 발표회였다.
규모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도경 씨가 말한 대로 그 학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문제점을 알 겁니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으니까요. 한데 국내 언론은 다르죠. 기사화하려면 헤드라인이 필요할 테니까요.”
이현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봐주길 원하는 보고서라는 표현에 동의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생각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놀랐습니다. 발표가 나간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만큼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혹시…… 화학과 출신이거나…….”
“문과 출신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잘 알죠?”
“제가 개인투자자인 시절에 ‘제약주 바로 알기’라는 20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건…….”
“그리고 이번 엠바이오젠의 보고서를 파악할 때 다른 기업의 신약 발표 보고서를 쉽게 요약해 준 증권사 보고서를 보며 비교했습니다.”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보고서를 쓰신 분이 지금 제 앞에 앉아 계시고요.”
“와, 팀장님. 도경 씨가 진짜 팀장님 팬인가 봐요.”
옆에 앉아 있던 이현지가 입을 벌리고는 이현종을 향해 말했다.
“제약주 바로 알기라는 보고서 쓰신 적 있어요?”
“어? 어…… 8년 전쯤에.”
“도경 씨, 오늘 밥 진짜 사야겠다.”
이연지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비싼 수업료를 언제 지불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오늘이 그날 같네요. 식사 주문할게요.”
도경은 그리 말하며 메뉴판을 들고 이연지와 메뉴를 상의하기 시작했는데 이현종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고객에게 이번 보고서를 잘 봤다고 듣는 칭찬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장님.”
한참 멍한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던 이현종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팀장님!”
“어, 어?”
“뭐 드실 거냐구요.”
“글쎄, 연지랑 도경 씨는 뭐 시켰어?”
“저희는 팀장님께서 드시는 걸로 통일하려구요.”
“그럼 나는 도경 씨에게 비싼 수업료를 받아야겠는걸.”
이종현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과 함께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 * *
“나이스 샷.”
짝짝짝-
서울 외곽에 있는 유성그룹 소유의 컨트리클럽.
골프장은 요즘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단 두 사람을 위해 고객을 받지 않고 있었다.
“와, 형님. 요즘 뭘 드시길래 비거리가 그렇게 늘어나셨습니까?”
광진그룹의 회장 서기환은 능글맞은 표정과 말투로 유성그룹의 회장을 향해 다가왔다.
“요즘 없던 힘이 생겨.”
“하하하.”
서기환은 이유를 알겠다는 듯 크게 웃었다.
“형님, 원래 주식에 빠지면 약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게나 말이야. 늦은 나이에 주식에 참맛을 알아버린 것 같아. 주식을 산 지 며칠 지났다고 36%나 오르는 게 말이 되나?”
“잘 있는 기회는 아니에요. 그런데 이게 제약주들 사이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요.”
서기환의 말에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세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주식시장이 좋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보고받기로는 유성그룹의 주가도 최근 20%나 내렸다는 보고를 받았었다.
계열사들도 내리는 주가 때문에 투자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는 보고를 받았고.
“형님. 이제 사업은 밑에 사람들이 알아서 하게 두십시오. 우리가 뭐 하러 큰돈 줘가며 CEO들을 고용하겠습니까?”
“내가 회장 자리에 앉은 지 몇 년이나 됐다고. 경영에서 손을 놓나?”
전대 회장은 오랫동안 그룹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아들들에게 무한 경쟁을 요구했다.
수십 년간 그런 아버지의 밑에서 경쟁하며 승자가 되어 회장 자리를 물려받은 지는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았다.
요즘 그룹 회장들은 3, 40대들이 많았지만, 자신은 50대 후반의 나이에 그룹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아직 경영에서 손을 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나저나 두 배 확실하지?”
“우리 형님 또 이러시네.”
“내가 요즘 주식 때문에 좋다가도 돈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파.”
누가 들으면 재벌그룹 회장이 돈 걱정을 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떠들어대겠지만, 회장은 최근 들어 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지난 5년간 이런저런 방법으로 상속세를 내왔는데 올해가 마지막 해야. 마지막 해라 그런지 현금이 너무 쪼들려.”
상속세 연부연납은 5년간 상속세를 나누어 낼 수 있게 해주는 제도였다. 유성그룹의 회장은 1조 원이 넘는 상속세를 쪼개어 납부하고 있었다.
“사실 이 골프장 팔려고 했었어.”
“이 골프장을요?”
서기환은 놀란 표정으로 골프장을 둘러보았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코스가 있는 골프장이었다.
만약 살 수 있다면 자신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리나 자연환경 모든 것이 좋은 곳이었다.
“그래. 이걸 팔아도 나한테 떨어지는 돈은 얼마 안 되니 그룹 지분까지 내다 팔아야 올해 상속세를 겨우 맞출 수 있었어.”
“아이고…….”
“그래서 두 배 확실하지?”
회장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는 서기환에게 물었다. 서기환은 자신의 말을 믿어 큰돈으로 주식을 사놓고도 가끔 믿지 못하겠다는 모습의 회장을 보며 오싹함을 느꼈다.
“그, 그럼요. 제가 언제 장담하는 거 보셨습니까?”
“……그래. 그렇지.”
“형님의 마음을 흔드는 놈들이 있나 봅니다.”
“얼굴에서 보이나?”
“예, 형님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다는 게 얼굴에 티가 납니다.”
회장은 놀란 듯 서기환을 바라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저 엠바이오젠에 관한 안 좋은 얘기를 들었더니 그게 계속 속에 남는군.”
“안 좋은 얘기요?”
서기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앞에 있는 유성그룹의 회장은 역시나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고 아랫사람에게 알아보라고 지시한 것 같았다.
“형님이 또 저를 못 믿으셨나 봅니다.”
“어허, 자네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내 돈 500억 원이 투자되어 있으니 걱정돼서 그런 거야.”
“형님, 주식을 할 때는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믿음?”
회장은 계속 말해보라는 듯 서기환을 바라보았다.
“예. 내가 기대하는 가격까지 올라갈 거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주변 소음을 제거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실제로 주식을 사놓고 외부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여행을 간다거나 주식거래 앱을 지우고 버티는 사람들도 있었다.
“굳이 소음을 듣고 있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서기환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사업을 오래 하다 보니 가끔은 내 머릿속을 헤집는 소음이 정답인 경우도 있더군. 귀를 막기보다는 그것을 백색소음 취급하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어.”
“그래도 지금은 듣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잠시 소음을 멀리해 두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않겠나? 없애기보다는 말이야.”
“그러면 좀 믿으십시오! 좋은 것만 보시고.”
“좋은 게 뭐가 있다고?”
“왜 없습니까?”
서기환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엠바이오젠의 수익률을 보여주며 껄껄 웃었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2-10-28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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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