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40)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40화(540/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40화
“보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날 점심, 사무실로 내려온 도경은 휴게실에서 혹은 각자의 자리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있는 팀원들을 향해 다가갔다.
도경이 오는 걸 본 스테판 그린은 식사를 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고, 식사를 하던 모두의 시선은 도경에게로 향했다.
“일어나지 말고, 밥 먹어. 같이 먹으려고 왔어.”
도경은 손에 든 샌드위치를 흔들며 다가갔다.
“반가워. 윤도경이야.”
외부 일정을 다니는 동안 스테판이 영입한 팀원들을 바라보며 인사했는데, 다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었다.
프로필을 봤을 때는 JPM이나 스테판이 이전에 일했던 곳에서 온 유능한 팀원들이었다.
“헬렌 보웬입니다.”
“더스틴…….”
도경은 새로 합류한 직원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니치 건은 축하드립니다.”
식사를 하며 팀원들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는데, 어느새 주제가 자신을 향하자 도경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언론들이 꽤 시끄럽습니다. 보셨습니까?”
이어지는 스테판의 물음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봤어. 아무래도 트러스트 브로커스의 새 CEO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다들 신기한 거지.”
미국의 여러 경제지는 당연하고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미국의 3대 유력지에서도 황성현에 대한 기사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
“시장에서도 놀라는 반응이었습니다.”
래리 무어가 은퇴하는 충격이 가시지 않은 TB의 주주들에게 래리의 후임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국인이라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이해해.”
도경은 시장의 분위기에 실망하기는 했지만, 이해했다.
만약 자신이 어딘가에 투자를 하고 있는데, 수십 년 동안 훌륭하게 기업을 경영해 온 전설적인 CEO가 은퇴하고, 후임으로 오는 사람이 미국에서 어떤 커리어도 없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래리가 고르고 임명한 사람인데 다들 너무하는 것 같습니다.”
스테판이 자신을 위로해 주려는 듯 말해오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지금은 다들 화가 나고 허탈하겠지만, 1년 안에 그들의 생각이 바뀔 거라 생각해.”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요?”
도경과 스테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팀원이 묻자 도경은 주저 없이 답했다.
“내가 제일 먼저 끌어내릴 거야.”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경과 황성현이 친구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러스트 브로커스에 우리를 믿고 맡겨둔 고객의 돈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데 그냥 참겠어.”
도경은 이미 황성현을 추천할 때부터 마음먹었다.
황성현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자, 가장 비판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그나저나 미국 외의 국가에서 투자하려 한다며?”
도경은 주제를 돌려 스테판의 팀이 만들 펀드의 테마를 이야기했다.
스테판의 팀이 만들 펀드에는 도경이 만든 ‘윤도경 펀드’에서 2억 달러를 투자하는 형식으로 자본금을 만들어줄 예정이었다.
“네, 미국 말고는 상황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이야말로 나가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서요.”
도경은 식사를 하며 스테판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보려고 합니다.”
“좋은 생각이야. 유성투자증권의 유럽 지사도 있고, 아시아는 유성의 본진이니까.”
“그렇지 않아도 첫 투자는 동아시아에서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
도경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얼굴로 스테판을 바라보았다.
“네, 일본은 최근 분위기가 상당히 좋고요.”
일본 증시는 버블 경제 시절인 89년 이후 34년 만에 고점을 넘어 신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한국도 증시에 훈풍이 불고 있더라고요.”
“한국 시장은 어려워. 그 말 알지?”
도경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코스피, 코스닥은 펀드 매니저의 무덤이다.”
실제로 외국계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의 펀드 매니저들이 한국 증시를 우습게 보았다가 호되게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많은 돈을 가진 해외 투자은행들은 한국 증시를 들었다 놨다 하지만, 그만큼 난도가 높은 시장이라는 거야.”
“알고 있습니다. 많은 공부도 하고 있고요. 그래서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봐.”
“서울에서 직원을 몇 명 파견받을 수 있을까요?”
스테판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동아시아 시장에 투자할 거라면 서울 직원을 부르라고 말하려고 했어. 서울에서 온 직원들은 여기서 배울 수 있고, 네 팀은 아시아 시장에 대해 알 수 있고.”
“감사합니다.”
“아니야. 내가 먼저 말하려 했는데, 오히려 먼저 말해줘서 좋네. 서울에 연락해 둘게.”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다른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여러분의 커리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성과가 나온다면 그 성과에 맞는 대우를 해줄 테니까.”
도경의 말에 팀원들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금융계의 살인적인 업무량을 견디는 이유가 돈과 커리어 때문이었으니까.
그것을 챙겨준다는 말은 정말 반가운 말이었다.
“다시 한번, 유성에 온 것을 환영한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 * *
“트러스트 브로커스?”
서울, 유성그룹 본사 회장실.
회장 한태오는 기획조정실장에게 아침 정례 보고를 받고 있었다.
나이가 여든이 가까워져 갔지만, 여전히 한태오는 열정적으로 그룹을 경영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책임경영의 기치에 맞게 핵심 계열사에 등기이사로 취임하며 여러 가지 결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한태오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를 보고 재계에서는 이런 평가도 나왔다.
“네, 미국에서 가장 큰 증권 거래 플랫폼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증권사 거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이런 곳의 CEO가 한국인이 됐고, 그걸 윤도경이가 주선했다?”
한태오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래리 무어가 직접 윤도경 지사장을 초대해 투자와 함께 CEO 추천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기획조정실장은 한태오에게 래리 무어가 어떤 인물인지 설명했다.
“그렇게 대단한 양반이 윤도경이를 불렀다?”
한태오는 호기심을 드러내다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아니지, 윤도경은 그럴 만한 사람이지.”
자신이 윤도경이란 인물에게 홀려 버렸듯,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반응은 어때?”
“미국에서는 흥미롭다는 반응과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반반입니다.”
기조실장의 말에 한태오는 껄껄 웃었다.
“그놈들 또 방심하다가 크게 한 방 먹겠구먼.”
“네?”
“윤도경이를 의심하던 인간들 전부 어디 갔는지 알아봐. 찾지도 못할 거야.”
한태오는 확신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국내는 어때?”
“직접 보시겠습니까?”
기조실장이 태블릿 PC를 건네려 하자 한태오는 책상 위에 있는 돋보기안경을 끼고 건네받았다.
「[단독] 美 1위 증권 거래 플랫폼의 한국인 CEO 선택 뒤에는 윤도경 유성투자증권 미국지사장이 있었다」
「황성현 CEO “윤도경 지사장 소개로 면접 봐, 래리 무어의 후계자가 될 수 있어 영광.”」
└역시 윤도경이다. 우리나라에 뛰어난 경영인들도 해외로 좀 나가야 하는데, 이걸 이끌어주네.
└황성현 대표님도 대단한 사람이던데, 역시 좋은 의미로 끼리끼리 노네요.
└요즘 대기업 뉴스들 보면 속이 답답한데 유성 기사는 나오면 기분이 좋음.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며 한태오는 무릎을 탁 치며 크게 웃었다.
“여기 봐, 우리 유성 기사만 나오면 기분이 좋다는군.”
“회장님 덕분입니다.”
“내 덕분일 리가 있나?”
“그렇지 않습니다. 회장님께서도 책임경영을 몸소 보여주시며 그룹의 이미지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래?”
한태오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듯 입술을 씰룩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다 윤도경이 덕분이야.”
자신이 책임경영을 선언하고 등기이사직에 오른 것도 도경의 조언 때문이었고, 유성투자증권이 아주 잘나가는 것도 도경 덕분이라 생각했다.
“지금 마이애미가 몇 시지?”
“밤 9시입니다.”
“한창이구먼, 나가봐. 본인에게 직접 어떻게 그런 거물을 구워삶았는지 물어봐야겠어.”
기획조정실장이 나가자, 한태오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뚜르르-
통화연결음 단 한 번 울리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윤도경입니다.
* * *
“회장님, 윤도경입니다.”
퇴근 후, 서재에서 남은 일들을 처리하던 도경은 걸려온 전화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주 요란하게 지내더군.
그리 말해오면서도 한태오의 목소리는 굉장히 들떠 있었다.
“보고를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어디, 내가 자네 상사인가? 류태화한테 보고했으면 됐어.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도경은 긴장되는 표정으로 한태오의 말을 기다렸다.
-래리 무어 같은 위인을 어떻게 구워삶았나?
“네?”
-내가 들어보니 그 양반이 참 대단한 양반이던데, 어떻게 구워삶았어?
한태오는 진심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고, 도경은 피식 웃음이 터져 버렸다.
-왜 웃어?
“아,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먼저 초대를 해주셔서 만났습니다.”
-그래?
“네. 그리고 황성현 대표가 뛰어난 사람이라 래리가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제가 한 것이라곤 후보 추천을 한 것밖에 없습니다.”
-다 했구먼.
수화기 너머 한태오는 무언가 콩깍지에 씐 사람처럼 말해왔다.
-사람을 추천하는 일이 제일 힘든 거야. 나의 평판까지 달려 있으니까.
“…….”
-그런데 상대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을 추천했다면, 그건 100% 자네가 다 한 거야.
“감사합니다.”
도경은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인사를 했다.
-힘들지?
“…….”
-자네는 최선을 다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는 언제든 있어. 하지만, 자신 있게 추천한 거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론이 달라질 거야.
도경은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황성현 선임과 관련한 냉담한 반응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한태오가 그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가 섞인 말을 해주었다.
-자네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자네에게 기대하면 성과를 보여주었고, 자네를 의심하면 상대의 코를 납작 눌러주었지.
“…….”
-고생했어.
덤덤하게 수고를 치하해 오는 한태오의 말에 도경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 * *
“확실히 문제가 많아 보이기는 하는데, 아시아란 시장이 우리가 익숙한 시장도 아니고 말이야.”
캘리포니아주.
책상 위에는 과자 부스러기와 다 마시고 구겨 버린 맥주 캔들이 널브러져 있는 사무실의 풍경은 이들이 얼마나 자유분방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중국이야 내가 핏줄을 가지고 있으니 워낙 그들의 풍습을 잘 알고 있는데, 다른 아시아 국가는 잘 모르잖아.”
이들은 무언가 프로젝트를 하려고 했는데,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는 중이었다.
“그래서 같이 일을 할 상대를 찾아봤는데.”
상대가 책상 위에 올려둔 태블릿 PC를 바라본 남자는 입을 열었다.
“유성에 윤도경? 어디서 많이 들어…… 라오후?”
“맞아. 우리가 라오후에 대한 보고서를 쓰기 전에 먼저 알아차리고 움직인 사람, 기억하지? 이 사람 요즘 미국에서 엄청 잘나가고 있어.”
“그래……?”
“아시아계 증권사 출신, 우리와 결이 같은 사람. 어때? 이번 일에 대한 파트너로 알맞은 것 같은데.”
상대의 말에 남자는 태블릿 PC에 뜬 도경의 사진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