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4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47화(547/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47화
“윤도경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틀 후, 도경은 뉴욕으로 출장을 와 있었다.
이곳에서 빌이 소개해 준 원자재 전문가. 특히 코코아 전문가를 만나기 위함이었는데 도경은 굉장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데이비드 켈리입니다. 데이브라고 불러주십시오.”
도경은 데이브가 내밀어온 손을 맞잡았다.
“영광입니다.”
“오히려 제가 더 영광입니다. 한창 금융가에서 이름을 알리시는 분과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어서요. 앉으실까요?”
데이브의 말에 도경은 자리에 앉았다.
빌에게 그저 코코아 전문가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을 뿐인데, 데이브라는 거물을 소개해 줬기 때문이다.
데이브는 우즈의 CFO였는데, 우즈는 전 세계 제과 부문 매출 1위 업체였다.
초코바와 초콜릿 쿠키, 스낵 등 이름만 대도 모두가 알 만한 초콜릿 상품을 팔고 있었다.
“빌에게 정말 감사 인사를 제대로 해야겠습니다.”
도경의 말에 데이브는 피식하고 웃었다.
“나야말로 마찬가지입니다. 리우의 파미르 캐피털은 내 개인 자산을 관리해 주는 곳이지요.”
“아, 그렇습니까?”
“예, 그러다 보니 빌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는데, 윤을 소개해 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에 도경은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데이브는 진심이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하하, 투자업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윤의 이름을 아주 많이 듣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마이애미 앨리게이터즈, 거기에 TB까지.”
데이브는 이미 도경이 걸어온 길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해 왔다.
도경의 이름은 미국 내에서도 크게 알려지고 있었다.
“당연히 자산을 불리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헤지펀드 매니저를 만나게 되는 건 큰 영광이죠.”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빌에게 들어보니 코코아에 관해 궁금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데이브가 본론을 물어오자 도경은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근래 코코아 가격이 많이 오르고 있습니다. 계절의 특수성이라기엔…….”
도경은 서울에서 전해왔던 대로, 또 팀원과 이야기 나누었던 것을 데이브에게 말했고, 데이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경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대단한데요. 업계에 있지 않으면 잘 모를 이야기인데.”
도경의 말을 끝까지 들은 데이브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해왔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데이브는 도경의 의문을 풀어주겠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첫째는 당연히 작황이 좋지 않습니다.”
역시 도경은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한 계절에만 유난히 코코아의 가격이 튀었는데, 이는 작황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일어나는 농산물의 특수성이었다.
“코코아의 원료가 되는 카카오 빈은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등 서아프리카에서 전 세계 수요의 70%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나는 서아프리카에 있는 국가였다.
“기후 변화로 인해 엘니뇨 현상이 서아프리카를 덮쳤고,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엘니뇨El Niño는 해상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이야기했다.
적도 근처에 있는 가나의 경우는 이 영향으로 인해 폭우와 홍수를 경험했다.
“폭우 때문에 카카오나무에 질병이 들었고요.”
“지난 2년간 카카오 가격이 오른 이유가…….”
“그렇습니다. 확실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지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요.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데이브는 지금이 진짜 본론이라는 듯 입을 열었다.
“플랜토가 나서고 있습니다.”
“플랜토요?”
플랜토는, 전 세계 4대 곡물 메이저 중 하나였다. 전 세계 곡물 시장의 30%가 플랜토에 의해 점유되고 있었는데, 코코아 또한 플랜토의 점유물 중 하나였다.
“네. 플랜토는 코코아 현물시장에서 독점 지배권을 가진 회사입니다.”
원자재 시장에는 두 가지 거래처가 있었다. 3개월 후에 인도받을 물건을 지금 가격으로 사는 선물 시장과 지금 가격에 당장 물건을 인도받는 현물 시장이었다.
코코아의 거래는 대부분 현물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 시장의 강자가 플랜토였다.
“그런데 최근 플랜토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코코아 선물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현물 시장의 독점적 강자가 갑자기 선물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니, 도경은 이해 가지 않았다.
현물 시장에 널린 것이 그들의 거래처일 것인데.
“ICCO라고, 국제 코코아기구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올해 코코아가 물량이 14만 톤 정도 공급이 부족할 것 같다는 예상을 했는데, 플랜토가 상반기에 인수한 물량과 똑같습니다.”
“인수한 물량이라는 건…….”
“선물시장에서 사들인 물량이죠.”
데이브의 짧은 말이었지만, 도경이 그걸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플랜토는 지금 코코아를 손에 쥐고 시장에 풀지 않고 있다는 말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의 인수한 수량이 시장의 부족분이 될 것이라는 건 모두가 플랜토를 손으로 가리키지만 않았지,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인 것이 있습니다. 플랜토는 코코아 현물 시장의 강자입니다. 선물 시장이 아니라 현물 시장을 쥐고 있기 때문에 독점적인 지배권자라고 불리고 있는데, 데이브는 플랜토가 선물시장에서 사들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도경의 물음에 데이브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거, 역시 대단하십니다. 행간에서 뜻을 찾아내셨군요. 맞습니다. 플랜토가 강자인 이유는 현물 시장을 꽉 쥐고 있기 때문이죠.”
앞서 말했듯 코코아 거래를 주도하는 것은 현물 시장이었다.
“윤이 답을 맞혔으니 힌트를 하나 줘야겠군요. 플랜토가 왜 현물 시장을 통하지 않고, 선물 시장에서 거래를 했느냐.”
데이브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길들이기입니다. 어디를 길들이냐는 윤이 찾아야 할 문제겠네요. 찾는 걸 성공한다면, 유성은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데이브는 자신이 해줄 말은 여기까지라는 듯 그리 말하고는 미소를 지었고, 도경은 여전히 의아한 얼굴이었다.
* * *
“오늘은 내 말 상대가 좀 되어주세요.”
그날 밤, 마이애미로 돌아온 도경은 서재에 틀어박혀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답이 나오지 않는지, 휴대전화를 들어 올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고양이가 자리에 앉아 도경을 맞이해 왔는데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오늘은 말 상대가 아니라 비서가 되어주세요. 그동안 AI 비서라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요.”
도경이 그리 말하자 고양이는 잠시 고민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전화 화면 밖으로 나가 버렸다.
도경은 자신이 말을 너무 심하게 했나 싶어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휴대전화 속에 있었던 고양이가 자리를 옮겨 모니터 화면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했어요?”
-그동안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여 드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말했으면 원했을걸요?”
도경과 고양이는 서로의 탓이라는 듯 말했다.
-윤도경 씨가 현재 필요한 자료들을 찾겠습니다.
고양이는 의도적으로 도경의 말을 무시하고는 모니터 화면 아래 자리 잡고 앉았다.
그러고는 무언가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화면에 여러 가지 기사들이 뜨기 시작했다.
도경이 찾기 힘든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등, 현지 언론의 기사들이었다.
「정부, 농부들의 생활 여건 개선하겠다」
「‘코코아 현물 가격 선물 가격보다 톤당 $400 더 받겠다.’」
「농부를 보호하겠다던 돈이 다 어디로 갔나?」
고양이는 생각은 도경이 하라는 듯 담백하게 자료만 띄워줬고, 도경의 눈은 고양이 비서가 준비해 주는 자료를 읽어 내려가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니까, 서아프리카 정부들이 농민 생활 여건을 개선하겠다고 말하면서 코코아 가격을 올려 버렸군요?”
도경의 말에 고양이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도경 또한 답을 원하고 한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선물 시장보다 톤당 400달러를 더 받아버리니 플랜토는 화가 난 거죠.”
데이브의 말마따나 플랜토가 왜 자신들이 독점적 지배를 하고 있는, 현물 시장이 아닌 선물 시장으로 나선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도경은 계속해서 말을 하며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그래서 굳이 현물 시장이 아닌 선물 시장에서 조달하는 거예요. 왜?”
도경은 생각을 정리하며 혼잣말을 이어나갔다.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자신들의 독점적인 지배력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요.”
-정답입니다.
“굳이 400달러를 더 줘가며 현물 시장에서 살 필요가 없는 거죠. 그걸 사봤자 농부들에게 돌아가지도 않고, 정부가 자기들 배만 불리는데 그 장단에 맞춰줄 필요가 없는 거죠.”
말이 되지 않았다. 보통 현물 시장 가격에 선물 가격이 영향을 받으면 받았지, 선물 시장의 가격보다 현물 가격을 톤당 400달러를 더 받으면 누가 현물을 하려 하겠는가?
현물 시장이 코코아 시장을 주도하다 보니 서아프리카 국가에서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플랜토 같은 독점적 지배자가 선물 시장에 뛰어들면…….”
도경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승자는 플랜토가 될 거예요. 현물 시장의 강자가 현물을 찾지 않게 되니까요.”
-맞습니다. 실제로 2020년에는 현물시장에 코코아 재고가 많이 남으니 거래가 되지 않았죠. 가격도 폭락했고요. 당시 서아프리카 국가들에 타격이 컸습니다. 플랜토는 그때의 그림을 또 그리려는 것 같습니다.
도경은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고양이는 그런 도경의 생각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두 국가가 손을 잡고 현물 시장에서 거래되는 코코아 가격에 프리미엄을 얹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가나 부통령은 ‘Copec’을 결성해 코코아 가격을 올리겠다고 발표했고요.
석유의 생산과 가격을 결정하는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에서 딴 COPEC이라는 기구까지 만들겠다고 했다.
플랜토의 입장에서는 여기서 물러나면 앞으로 더 비싼 가격에 현물시장에서 코코아를 사야 했다.
“플랜토도 질 수 없는 싸움이에요. 이러면 현물 시장에서 거래를 하지 않으면서 코코아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방법은.”
-선물시장뿐입니다.
“플랜토뿐만 아니라 모두가 선물시장에서 거래하겠네요.”
이전까지 플랜토는 현물시장에서 코코아를 수급했기 때문에 그들의 물량은 선물시장의 가격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거물이 선물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건.
“선물 시장에 가격 상승이 올 거예요.”
도경이 그리 답을 내리자 화면 속 고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비서님.”
도경은 고양이에게 인사를 하고는 전화를 꺼내 들었다.
“제이크, 밤늦게 미안해. 우리 지금 현금이 얼마지?”
통화 대상은 펀드의 실무를 담당하는 제이크였다.
-TMC와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마치면 약 3억 달러 정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돈으로 약 4천억 원이었다.
실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도경은 미소를 지었다.
“그거, 두 배로 불릴 수 있는 시장을 찾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