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50)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50화(550/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50화
“계속해서 물량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플랜토 본사.
최근 들어 아서 보이드는 귀찮은 일이 생겼다. 평소엔 자주 내려와 보지도 않은 선물 시장 트레이더들이 있는 사무실로 거의 출근하다시피 했다.
귀찮게 하는 헤지펀드 세력이 붙었기 때문이다.
“우리 물량은 얼마나 남았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다만…….”
“다만?”
“만기가 닷새 남았습니다. 여기서 더 던지면 우리가 다시 물량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겁니다.”
트레이더의 말은 사실이었다.
보통 코코아는 전년도에 올해 쓸 물량을 모두 확보하고, 올해 확보하는 것은 내년 물량이었다.
주요 코코아 생산국들이 그런 스케줄로 움직이기 때문에 업체들도 그 스케줄에 맞췄기 때문이다.
지난 일주일간 시장에 던진 물량이 4만 톤이 넘었다.
지금이라도 매수를 해야 내년 물량에 차질이 없게 맞출 수 있었다.
“이번 달만 우리가 선물 시장에 있을 거 아니잖아.”
3개월 단위로 돌아가는 선물 시장에서 플랜토는 내년 물량을 계속해서 확보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백기를 들고 나가면 다음 달엔 또 어떤 파리들이 꼬일 줄 몰라.”
아서의 말에 모두가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엔 불안함이 있었다.
하지만, 책임자는 아서였고 그렇다면 따르면 될 일이었다.
“저쪽도 이만하면 실탄 다 소진됐을 거야. 하루 이틀 안에 떨어져 나가니 물량 좀 조절해.”
“네, 알겠습니다.”
아서가 그렇게 지시하고 사무실을 나서려고 하던 그때.
띵띵-
띵띵-
띵띵-
사무실 내에 알 수 없는 경고음이 울려왔고, 아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자리에 앉아 있는 트레이더들이 당황한 얼굴로 허둥지둥하고 있었는데, 아서는 무언가 일이 터졌다는 걸을 직감하고는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어디선가 매수세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뭐?”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 * *
“괜찮을까요?”
한편, 유성인베스트먼츠.
도경은 제이크와 함께 서서 벽면에 걸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경의 지시로 그 화면에는 코코아 선물 가격의 차트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래프는 조금 전부터 내리면 오르고, 내리면 오르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뭐가 아직도 겁나나?”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제이크를 향해 물었다.
“선물 투자를 하는 친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코코아는 아니었고, 오렌지 주스를 거래했어요.”
일반인들은 살면서 오렌지 주스가 선물 시장에서 거래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금이나 원유뿐만 아니라 오렌지 주스도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선물 시장이 있었다.
“그런데 늘 투자 형식으로 접근했지, 단 한 번도 물량을 실제로 인도받지는 않았거든요.”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헤지펀드들이나 원자재 선물 트레이더들은 시장에서 물량을 확보하고 만기 전에 파는 것을 주로 했지, 그것을 실물로 인도받지는 않았다.
“실물로 인도를 받으려면 이게…… 창고도 있어야 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온다면 배도 빌려야 하고, 항구까지 이동할 운송료도 내야 하고요.”
기타 부대 비용이 아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보스께서는 이 코코아를 실물로 인도하겠다고 하시니…….”
“실물로 인도하겠다고는 했지, 내가 받겠다고 한 적은 없는데?”
“네?”
“일단 시장을 조금 지켜보자고. 미끼를 던졌는데, 그 사람이 똑똑하다면 우리의 우군으로 참전할 거고.”
“만에 하나 참전을 하지 않는다면요?”
“뭐 그래도 손해 볼 일은 없을 것 같네. 모든 게 우리 편이거든 지금은.”
제이크는 도경의 여유가 신기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도경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언젠가 스테판이 해준 충고가 기억이 났다.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다 알게 되더라. 보스는 뭐라고 할까…… 세 단계 앞을 보는 사람이야. 그걸 지금 우리에게 설명해 줘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아시는 거지.’
스테판의 말대로 기다려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차트를 바라보던 그때.
“어?”
제이크는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놀라움이 튀어나왔다.
“튀는데요?”
제이크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그래프가 위로 튀기 시작했다.
“똑똑한 사람이라 그런지 내 말뜻을 잘 알아먹은 것 같네.”
띵띵-
띵띵-
“보스, 코코아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사무실에는 알림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도경은 입을 열었다.
“매수 중단하고, 이제 지켜보자고. 게임 끝난 것 같네.”
* * *
“어디야?”
“모르겠습니다. 이전과 다른 매수 물량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한편, 그날 오후.
플랜토 본사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코코아 가격 상승에 놀라고 있었다.
“지금 가격은?”
“톤당 4,400달러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투기 세력을 견제하고 있는 와중에 어디선가 대량으로 매수세가 들어왔고, 선물 가격이 폭등해 버렸다.
“이번에는 투기 세력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유는?”
“계약 단위 자체가 다릅니다. 투기 세력이라면 가격을 보고 들어올 텐데, 이번에 들어온 계약 건은…….”
“어디선가 실물이 필요해서 들어왔다 이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골치가 아파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저희가 던진 4만 톤을 회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트레이더의 말에 아서는 고민에 빠졌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투기 세력만 털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트레이더의 말처럼 실패를 인정하고 손해를 감수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좋아. 지금 가서 바로 확보하도록 해.”
아서가 그리 지시하자 트레이더의 얼굴은 밝아졌다.
아서가 지금이라도 실패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네, 알겠습니다.”
트레이더가 사무실을 나가자 아서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누굴까…….”
지이잉-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고 화면을 확인한 아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발신 번호를 보며 고민하던 아서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데이브, 당신입니까?”
-하하하, 무엇이 말입니까?
“데이브가 나에게 전화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수화기 너머 전화의 주인공은 초콜릿 가공업체 우즈의 데이비드 켈리였다.
-맞습니다. 지금 시장에 뛰어든 건 우리입니다.
“이전은…….”
-그건 나도 모릅니다. 헤지펀드 세력이겠죠.
“그렇다면 그들이 물량을 던지고 나갔을 때 우즈도 들어왔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들은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이던걸요.
“그게 무슨…….”
뜻을 알 수 없는 데이브의 말에 아서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서, 그동안 플랜토는 현물시장에서 지독히도 우리들을 괴롭혔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선물 시장에서도 다르지 않았죠.
플랜토는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늘리기 위해 다른 업체들을 선물 시장으로 내몰다시피 했다.
그들이 현물시장의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업체들을 현물 시장에 접근 자체를 못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상황이 현재 선물시장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플랜토가 있기 때문에 카카오 생산 국가들이 횡포를 부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조언을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데이브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플랜토는 지금 그 헤지펀드가 어디인지 찾아야 할 겁니다. 그게 플랜토가, 아니, 아서 당신이 한 실수를 만회할 기회니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가 끊겼고, 아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무게 잡기는…….”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사색이 된 얼굴을 한 트레이더가 들어왔다.
“아서, 지금 차트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야?”
아서는 그리 되물으며 고개를 돌렸는데, 이내 멍하니 화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코코아 선물 4,804.00 +9.18%]조금 전까지만 해도 4천 달러 근방에서 있던 코코아 선물 가격이 갑자기 400달러 이상 올랐다.
“지금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습니다.”
트레이더의 말에 아서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트레이더를 바라보았다.
“빨리, 우리 물량을 받은 헤지펀드가 어딘지 찾아!”
조금 전 데이브가 했던 충고가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아차린 아서는 그리 소리쳤고, 트레이더가 방을 나가자 멍하니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내일이 만기입니다.”
며칠 후, 도경은 방에 앉아 제이크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오늘 가격은?”
“5,300달러 넘는 걸 보고 왔습니다. 정말 두 배가 갈까요?”
“갈 거야. 이제부터 콘탱고의 시작이니까.”
보통 선물 시장에 투자를 한다면, 현재와 만기가 가까운 선물을 팔고, 만기가 아직 남은 선물로 새로 사는 ‘롤오버’를 한다.
롤오버 과정에서 만기가 가까운 선물과 만기가 한참 남은 선물 가격 차이에서 이득이 발생했다.
예를 들어 6월에 만기되는 코코아를 1천 원에 10계약을 했는데, 9월물 코코아가 500원이라면 같은 자본금으로 20계약을 할 수 있었다.
20계약을 하지 않고, 그대로 10계약을 하면 5천 원이란 돈이 남았는데, 이때 남은 돈은 온전한 수익이었다.
“앞으로 코코아 가격이 더 오를 거라 보십니까?”
콘탱고는 그 반대의 상황을 뜻했다.
6월에 만기 되는 코코아가 1천 원인데, 9월에 만기 되는 코코아가 2천 원이 되어버린 상황을 얘기했다.
다시 말해, 앞으로 코코아 선물 가격은 더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맞아.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현물 시장에서 누가 사겠어?”
현물 시장에서 거래를 할 때는 선물 시장의 가격에서 톤당 400달러를 더 치러야 했다.
즉, 선물 시장에서 코코아를 5,000달러에 산다면, 현물 시장에선 5,400달러를 지급해야 했다.
“모두가 선물 시장으로 올 거야.”
“놀랍네요. 그렇다면 한 가지 더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뭐? 실물을 받는 거?”
도경은 제이크가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말해왔고,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받긴 받으실 건데, 운송료와 창고료는 낼 생각이 없으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아. 코코아가 진짜 필요한 곳이 그걸 내야겠지.”
“설마…….”
제이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도경을 바라보았다.
도경은 만기 되는 실물을 다른 곳에 떠넘기고, 선물 투자 수익과 똑같은 효과를 내려 했다.
“그렇다면 플랜토에 내어주실 겁니까? 거기가 제일 급한 것 같은데.”
“아니. 플랜토는 내가 아니더라도 어디선가는 구하겠지.”
“그럼…….”
“내 고국에도 코코아가 필요한 곳이 많아. 애국이란 걸 좀 해볼까 해.”
도경은 피식 웃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는 익숙한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현 씨, 말씀드렸던 광윤제과 준비됐을까요? 네. 협상 테이블 열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