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56)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56화(556/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56화
“어서 오십시오.”
도경과 한다현은 독일의 베를린 국제공항의 입국장을 통과했는데, 문을 나서자마자 한 사람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특유의 독일어 악센트가 있는 영어를 구사했는데, 도경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유성인베스트먼츠의 윤도경입니다.”
“파미르 유럽 지사의 막시밀리안 슈미트입니다. 맥스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제시카예요.”
일행은 맥스와 인사를 나누고는 그를 따라나섰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경의 인사에 맥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광입니다. 유성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 유럽에도 알려졌습니다. 특히 PIF를 고객으로 맞이하셨다는 이야기는 한 사람의 투자가로 부럽습니다.”
도경은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하하하, 아무래도 이 바닥은 소문이 빠르니까요.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가 택한 헤지펀드의 이름은 널리 알려질 수밖에요.”
맥스의 설명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네요.”
“오늘 일정이 있으십니까?”
“아뇨. 일단 호텔로 가서 자료 정리를 우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한다현과 헨리 모건에서 받은 자료들이 워낙 방대했기 때문에 기업을 추리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바로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경과 한다현은 맥스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고, 그의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자 도경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베를린은 처음이십니까?”
룸미러를 통해 도경의 모습을 바라본 맥스가 물었다.
“네, 저는 처음이고…… 제시카는.”
“저는 두 번째예요.”
“느낌을 여쭈어봐도 될까요?”
맥스의 물음에 도경은 창밖을 바라보며 입술을 뗐다.
“따뜻하네요.”
“네?”
“도시의 풍경이 말입니다. 도시 건물의 벽이며, 파라솔. 다니는 트램, 택시까지 전부 노란색이네요.”
도경은 솔직하게 느끼는 바를 이야기했다.
도시의 풍경은 온통 노란색이 가득했다.
“베를린의 상징 색깔입니다. 이유는 저희도 알지 못합니다.”
맥스의 말에 도경은 의아함을 느꼈다.
“상징색인데, 이유를 알 수가 없다는 게 흥미롭네요.”
“아마도 베를린 대중교통, 그러니까 시내버스와 지하철, 트램, 택시 등이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대중교통의 상징적인 색깔이었습니다만. 그것이 워낙 인기를 끌다 보니 도시 곳곳에서 노란색을 차용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맥스의 설명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노란색뿐만 아니더라도, 현대적인 도시 디자인과 아르누보 건축양식이 눈에 띄는 도시였다.
“재미있네요.”
도경은 새로운 도시에 올 때마다 이곳의 분위기를 머릿속에 담으려 노력했다.
도시의 분위기는 이곳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차는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고 도경과 한다현이 차에서 내리자 맥스는 트렁크에서 가방을 내려주었다.
“감사합니다.”
“편하게 쉬시고,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해 주십시오.”
도경은 맥스가 건넨 명함을 받고, 자신의 명함을 주었다.
“저녁을 함께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도경의 물음에 맥스는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제가 소개해 드리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함께 봬도 되겠습니까?”
“소개해 주고 싶은 인물요?”
“네. 기업의 CFO를 맡고 있는데, 이번 유럽 일정 중에 소개를 꼭 시켜드리고 싶었습니다.”
“투자와 관련된 것이겠죠?”
“그렇습니다.”
맥스의 답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시간을 정해서 메시지를 주시면 시간 맞춰 나오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맥스가 그리 인사하고 떠나자 도경은 한다현을 바라보았다.
“들어갈까요?”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양손에 가방을 들고는 숙소로 향했다.
* * *
“이런 위기가 오면, 가장 달갑지 않은 것들이 기업을 엉망으로 경영한 결과물을 봐야 한다는 거예요.”
몇 시간 후, 도경과 한다현은 숙소에서 짐 정리를 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방의 거실에 앉아 자료를 검토 중이었다.
도경이 그리 말을 시작하자, 한다현은 집중했다.
“스타트업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유의 자유분방한 경영방식이 늘 이때면 도드라지기 시작해요.”
벤처 붐이 일 때부터 그랬다.
기존의 경영방식은 낡은 것으로 치부하며 새롭게 등장한 세력은 특유의 자유분방한 경영방식을 택했다.
도경은 눈앞에 펼쳐진 자료들을 보며 열변을 토했다.
자료에 적힌 경영방식에 대한 비판에 꽂혔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업들의 특징은 기존 기업들에서 나쁜 것만 차용한다는 게 문제예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회에 자신의 사람을 꽂는 패거리화, 정직하지 못한 경영진, 부패한 회계담당자 등 말이에요.”
그들은 기존의 사업방식은 부정하면서도, 기존의 기업에서 가장 질이 나쁜 것들을 시스템으로 받아들였다.
기업가치가 1조 원이 넘는 평가를 받은 스타트업들도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세계였다.
무너지는 기업들은 하나같이 도경이 지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기업은 애초에 제외하겠습니다.”
도경은 그리 말하며 서류를 옆으로 치웠다.
분명 사업구조는 훌륭했지만, 경영방식이 불명확한 얼간이들과는 일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은 크로니 뱅크예요.”
한다현은 다음 서류를 도경의 앞에 내놓았다.
“은행이네요?”
도경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한다현을 바라보았다.
“역사도 놀라울걸요?”
한다현은 그리 말하며 서류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는데, 가장 서두에 적힌 설립 연도를 보고 도경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1777년 설립이요?”
“네.”
“스타트업 명단에 있기에는…… 너무 빠르게 시작한 것 같은데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기준에서는 오래되긴 했죠. 1777년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설립되었어요. 설립 당시부터 작년까지 프라이빗 뱅크였거든요.”
유럽의 프라이빗뱅크Private bank는 국내의 자산관리사와 비슷했다.
은행이면서도 소수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고 투자은행업무, 세금 업무 상담, 변호사, 회계사가 속한 종합 서비스 은행이었다.
“크로니 뱅크는 독일 함부르크 지역에 있는 부유층의 금융 수요를 담당해 왔었어요. 투자나 세무, 변호사, 회계뿐만 아니라 부유층들의 기업에 사업 방향을 컨설팅해 주면서 지금까지 존속해 왔죠.”
“그런데 작년까지 프라이빗 뱅크였다는 건…….”
“올해부터 사업을 늘렸어요. 상업은행으로 변신을 선택한 거죠.”
“이유가 있을까요?”
“자산가들이 더 이상 크로니 뱅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 은행들의 침공 때문이군요.”
“정확해요. 이제는 크로니 뱅크와 같은 작은 은행들은 경쟁력이 떨어졌어요. UBS나 HSBC 같은 거대 은행이 더 훌륭한 인재들과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거든요.”
자산관리 시장은 자산관리사의 몸집이 클수록 유리한 면이 많았다.
아무래도 가용할 수 있는 인원과 네트워크가 필수적으로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상업은행으로 변화했겠네요.”
“네. 작년에 일반적인 은행으로의 변화를 선언하고, 4천만 달러의 고객 예금을 유치했어요.”
어찌 보면 적은 금액이었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소규모 은행치고는 만족스러울 규모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제 막 상업은행으로 변모를 했다는 점이었다.
“꽤 많은 돈을 유치했네요?”
“제가 그 이유로 이곳을 추천하는 거예요. 은행은 지금 자신의 지분을 인수해 사업의 규모를 키워줄 파트너를 찾고 있거든요.”
한다현은 그리 말하며 서류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보시면 알겠지만, 이들은 단순한 은행이 아니에요.”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군요.”
자신이 가리킨 부분을 바라보던 도경이 그리 말하자 한다현은 신이 난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맞아요. 독일에서만 13만 개에 달하는 기업 거래처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어요.”
도경은 인제야 그들이 어떻게 1년 만에 4천만 달러의 예금을 유치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업 대다수는 거대한 기업들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 금융서비스를 받고 싶을 때, 지역 신용 금고나 저축 은행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요.”
맡길 수 있는 자산이 크지 않다면, 거대 은행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을 테니까.
“틈새시장의 오픈이네요.”
그들은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많은 고객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독일에서만 13만 개의 중소 규모 기업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언제든 그들을 고객으로 맞이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봐야 했다.
도경은 이제야 한다현이 왜 이런 오래된 중고 신인을 추천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데이터베이스는 곧 돈이니까.
“흥미롭네요. 독일 일정에서는 이곳을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습니다.”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경은 손에 찬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맥스와 약속한 시각이 되었네요. 옷 갈아입고 나가죠.”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같이 오길 잘했네.”
여러모로 한다현을 이번 출장의 파트너로 고른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며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 * *
“저는 파미르 캐피털 유럽 지사에서 투자처를 결정하고, 시애틀에 보고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날 저녁, 도경과 한다현은 맥스가 안내한 베를린 중심부에 있는 한 고급 레스토랑에 나와 있었다.
맥스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덤덤하게 설명했는데, 도경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유럽 지사의 최고 책임자라는 말씀이시네요.”
“그런 직책은 없지만, 굳이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더더욱 리우에게 감사해지고, 맥스에겐 미안해지는걸요.”
“제게 왜 미안하시죠? 혹시 제가 불편하게…….”
“아!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유럽 지사의 최고 책임자가 미국에서 온 쇼핑객들을 안내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서요.”
도경의 말에 맥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윤을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소중합니다. 이 자리에 있어보면 압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이루고 성공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 어떠한 것을 줘도 놓치면 안 되는 기회라는 것을요.”
“영광이네요.”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맥스는 그런 도경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최근 독일은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제조업 기반인 나라에서 제조산업들이 죽고 있기 때문이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한국과 독일은 맞닿아 있는 것이 많았다.
제조업 기반의 수출국이라는 것.
“고물가가 계속되다 보니, 중국의 값싼 물품들이 계속해서 국내로 유입되었습니다. 이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중국이 파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니까요.”
도경이 그리 받아치자 맥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가가 한창 고공 행진 하는 와중에 중국에서 값싼 물건이 들어와 소비가 늘어난다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좋았다.
고물가 시대에 값싼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혹자는 알리와 테무로 대변되는 중국 상거래 업체들이 파는 것은 디플레이션(저물가)이라는 말을 했다.
그로 인한 혜택을 보는 국가는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한국도 같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국내 제조업체들은 죽고 있습니다. 값싼 물건을 찾다 보니 물건이 팔리지 않는 거죠.”
해외에서도 외면당하는 중인데, 국내에서마저 외면당한다면 설 곳이 없어지는 상황이었다.
“최근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공장이 문을 닫을 거고요.”
도경은 남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국내도 지금 진행 중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의 방문이 아주 반갑습니다. 어려운 때, 굳이 유럽에 투자하겠다고 하시니 유럽의 플레이어로서는 반가울 수밖에요.”
“하하하, 오늘 저를 너무 띄워주십니다.”
“아닙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늘 만나보실 기업도 아주 훌륭한 기업입니다만…… 근래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맥스가 그리 이야기를 이어나가려 할 때, 한 남자가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알프젠 테라퓨틱스의 케빈 슈스터입니다.”
“아, 왔네요. 제가 오늘 소개해 드릴 그 친구입니다.”
맥스의 말이 이어지자 도경과 한다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알프젠이라면…… 그 알프젠 말씀이신 거죠? 스위스의…….”
한다현이 놀란 얼굴로 물었고, 케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 알프젠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케빈은 다시 한번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었고, 도경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