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5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57화(557/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57화
“제 몸에도 알프젠의 제품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약속 장소로 나온 케빈 슈스터와 마주 앉은 도경은 식사를 하며 그리 말했다.
알프젠 테라퓨틱스는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였다.
“저희 제품이 말입니까?”
도경의 말에 케빈은 재미있다는 듯 물어왔다.
“정형외과 제품의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이 아닙니까?”
도경의 물음에 케빈은 미소를 지었다.
케빈은 정형외과 수술에 필요한 나사와 못을 생산해 내는 기업 알프젠의 CFO였다.
최고 재무 책임자이자, 부사장인 그를 만나게 되어 큰 행운이라 생각했다.
“어릴 때 워낙 위험하게 놀아서요. 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습니다.”
“하하하.”
도경의 농담에 모두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맞습니다. 저희 알프젠은 윤의 고국인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정형외과 수술 장비인 못과 나사를 납품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상장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경의 물음에 케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스위스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고, 주당 98 스위스 프랑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우리 돈으로 주당 14만 원이나 하는 주식이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시장에 풀린 주식이 적은 기업이었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있었지만, 확실히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었다.
“물론 한때 최고 고점인 218 스위스 프랑에 비해 주가가 아주 많이 내려와 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알프젠 측에서 생각하는 주가 하락 이유를 들어봐도 될까요?”
도경의 물음에 한다현과 맥스의 시선이 케빈에게로 향했다.
그들도 궁금한 문제였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사고를 당하는 한 회사 제품에 대한 수요는 존재할 것인데, 지금 주가가 하락했다는 것은 결국 PER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도경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도경의 물음에 케빈은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플랫폼화의 실패입니다.”
“플랫폼화의 실패라…….”
어찌 보면, 알프젠과 같은 기업들에게 굉장히 불가항력적인 위기였다.
“불과 2~3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같은 정밀 제품 생산기업들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틈을 파고들어 시장의 강자가 될 수 있었고요.”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사람의 몸에 뼈와 함께 이식되어야 할 임플란트 장비였다.
안정성 면에서나 정밀성 면에서 스위스 같은 정밀 제조업으로 유명한 국가 출신 기업이 인정받기 쉬운 산업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런 기조가 변했습니다.”
정밀 제조업의 상향평준화 때문이었다.
“정밀한 제조는 중국 기업들도 가능해진 상황이었고, 중국이란 국가 제품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면,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제조업 강국에서 만들어진 임플란트를 찾는 병원들이 많아졌습니다.”
아무래도 후발주자들은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시장에 물품을 공급했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건 어느 정도 영향력이 적었습니다. 의사들은 한번 손에 익은 제품을 잘 바꾸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문제는 플랫폼들의 침공이었습니다.”
도경도 저 문제가 뜻하는 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거대 바이오 테크 업체들이 각자 자신들만의 기기에 호환되는 제품들을 만들며, 점점 시장에서 저희 제품이 소외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정형외과 수술에 필요한 드릴을 만드는 업체에서, 자신들의 제품에만 호환되는 나사와 못을 만들어서 판다면?
알프젠의 제품은 전혀 사용될 수 없었다.
의사들은 아무리 손에 맞는 나사라고 하더라도, 드릴 같은 수술용 공구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에 호환되는 제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최근 바이오 테크 업계에서 일어나는 플랫폼화였다.
“실례되는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도경이 케빈을 바라보며 묻자, 케빈은 긴장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알프젠 측에서도 플랫폼화의 시도를 해봐도 되었을 것 같은데요.”
“시도를 해보려 했습니다.”
케빈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희도 저희 제품에 호환되는 수술용 전동공구를 만드는 회사와 합작을 하려 했습니다만…….”
말끝을 흐렸지만, 도경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예전에야 임플란트 제품의 정밀성과 기술력에서 알프젠 제품을 따라오는 업체가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으니까.
“매출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지옥과도 같은 코로나 시기를 빼면, 여전히 저희 제품을 찾는 곳이 많습니다.”
다행히 아직은 플랫폼화의 침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엔 수술장이 열리지 않았으니, 제품의 매출이 당연히 떨어진 시기였고.
“다만, 앞서 말씀하셨듯 PER이 낮아지며, 주가도 하락하였습니다.”
PER은 주가 수익률이라고 했는데, PER이 높다면 기업이 고평가를 받고 있다는 말이었다.
반대로 PER이 낮아졌다는 것은, 기업이 투자자들에게 어떠한 기대감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버틸 수 있지만, 앞으로가 어렵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케빈이 이 자리에 저를 만나러 나온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도경의 물음에 케빈은 맥스를 바라보았고, 맥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플랫폼화에 다시 도전해 보려 합니다. 유성에서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움이란 건 돈이겠군요.”
“그렇습니다. 매물로 나온 독일의 바이오 테크 기업이 있습니다.”
케빈은 그리 말하며 서류를 도경에게 건넸다.
“해당 기업에 대해 저희가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기업의 매각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까?”
도경은 서류를 건네받으며 넌지시 물었다.
어찌 보면, 지금 상황에서 알프젠의 오너가 생각할 다른 하나의 선택지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너가에서는 기업의 매각도 타진해 보았습니다만…… 현 상황에서는 마땅한 기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돌아가서 생각해 보고 정식으로 자리를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데, 어떠실까요?”
도경의 물음에 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소중한 식사 시간이었으니까.
* * *
“엉망인데.”
그날 밤, 사무실로 돌아온 도경은 케빈이 건넨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심각한 표정의 도경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애플리케이션을 틀었다.
고양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쯤, 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비서가 아니라 무당이라 해도 되겠어요.”
도경은 그리 농담을 던지고는 다시 표정을 굳혔다.
“제가 본 서류를 보셨겠죠?”
-물론입니다.
“비서의 평가가 필요해요.”
도경은 지난 며칠간 아주 많은 기업의 평가 서류를 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줄 수 있는 메시지의 도움이 필요했다.
-윤도경 씨가 내린 평가가 정확합니다.
하지만, 그 기대를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메시지의 말이 들려왔다.
-확실히, 알프젠의 마음이 아주 급한 것 같습니다.
도경이 보던 서류는 조금 전 식사 자리에서 케빈에게 건네받은 서류였다.
그들이 인수 대상으로 올려둔 독일의 바이오 테크 기업에 관해 적힌 것이었는데, 외과나 정형외과 수술에 필요한 전동기구를 만드는 업체였다.
“마음이 급해도, 우리의 돈을 빌려서 이런 기업을 인수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들은 오직 전동기구만을 만들 수 있었지, 시장의 수요에서 어떠한 부분도 담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만드는 임플란트에 호환되는 전동기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알겠는데, 그래도 플랫폼화를 하려면 못이나 나사가 아닌 수술용 기구에 저 특화를 둬야죠.”
알프젠이 만드는 임플란트들은 환자의 몸에 이식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했지만, 그것을 플랫폼화하려면 수술용 기구가 더 중요했다.
“이미 시장에서 수술용 기구를 만들어서 플랫폼화에 성공한 기업들은 거대 기업들이에요.”
1년에 매출이 수십조 원이 넘는 거인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그런 곳에 아무런 특화 기술도 없는 기업을 인수해 대응하겠다는 순진한 알프젠의 생각에 도경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화가 날 지경이었다.
“얼마나 우리 유성을 우습게 봤으면 이 서류를 내밀까요?”
도경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고양이도 순간 흠칫하는 모습이었다.
-생각을 조금 바꿔보면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을 바꿔보라고요?”
-그렇습니다. 플랫폼화라는 주제로 생각을 좀 더 해보면, 알프젠은 매우 좋은 기업일 수 있습니다.
알 듯 모를 듯 한 고양이의 말에 도경은 고민에 잠겼다.
“플랫폼화라는 주제…….”
도경은 가만히 앉아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올려둔 손가락이 점점 빠르게 책상을 두들길 때쯤.
도경은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맞아요. 지금은 오히려 앞뒤가 바뀐 거네요.”
도경이 그렇게 입을 열자 화면 속 고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프젠의 제품은 정점에 올라설 수가 없어요. 알프젠의 제품을 위해서 전용 공구를 만들어줄 기업이 아니라…….”
-알프젠의 기술력이 필요한 기업을 찾아야 합니다.
고양이가 자신의 생각에 쐐기를 박듯 이야기해 오자 도경은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확실히 생각이 정리되었네요.”
도경은 메시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맥스,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케빈과 다시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 * *
`
“이렇게 빠르게 연락해 올 줄은 몰랐어.”
다음 날, 알프젠의 케빈은 맥스와 호텔 한편에 있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맥스, 고마워. 유성을 연결해 줘서 말이야.”
“글쎄, 결정은 모두 유성에서 한 거야. 그들이 투자를 결정한 것도 아니고…… 아직 감사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맥스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나는 지금이라도 알프젠이 방향을 달리해야 한다고 믿고 있어.”
맥스는 케빈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기업의 인수를 위한 투자가 아닌 기업 매각으로 방향을 잡아야 해.”
“우리도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를 누가 인수하겠어? 지금 상황에서. 가치가 더 희석되고, 손도 써볼 수 없을 지경까지 가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하니까…… 기업의 인수를…….”
“늦었습니다.”
그렇게 입을 떼려 할 때, 도경과 한다현이 다가왔고,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려야 할 제안을 최종으로 검토하느라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도 방금 나왔습니다.”
도경이 사과하자 케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럼 앉으실까요?”
도경의 말에 모두 자리에 앉았고, 도경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저희 유성의 제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케빈이 기대하는 것은 유성의 제안 내용일 것이다.
도경은 빙빙 돌릴 생각이 없다는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희 유성은 오늘 주가의 마감 가격에서 +8%의 프리미엄을 붙여, 오너진이 보유한 지분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네?”
투자를 말해올 줄 알았더니, 기업의 인수를 이야기해 오고 있었다.
케빈은 놀란 듯 도경을 바라보았다.
“우리 유성은 알프젠 테라퓨틱스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쐐기를 박는 도경의 말에 케빈은 다시 한번 놀란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