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69)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69화(569/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69화
“알렉스, 오랜만입니다.”
홍콩 금융가에 있는 한 레스토랑.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배경을 채우고,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풍기는 이 레스토랑은 돈깨나 만지는 사람의 전유물처럼 보였다.
“조이, 얼마 만이죠?”
“글쎄요. 이스트 드래곤이 우리 HSB를 버리고 JPM으로 갈아탄 게…….”
“하하하, 서운한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건 조이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알렉스의 말에 조이라는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맞은편에 자리했다.
잠시 후 나온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으며 알렉스는 입을 열었다.
“HSB 한국 지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부연 설명 없이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해 오자 상대는 냅킨으로 입을 훔치며 알렉스에게 답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이라면, JPM도 지점이 있지 않습니까?”
이스트 드래곤 펀드의 브로커는 JPM이었는데,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HSB가 담당하던 일이었다.
조이는 그 담당자였고.
“제 개인적인 부탁입니다.”
“개인적인 부탁이요?”
“네, 회사 일이긴 합니다만…….”
알렉스가 말끝을 흐리자 조이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헤지펀드에 속한 여러 부류의 인간을 만나본 조이였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말아야 할 비밀스러운 작전을 할 때가 많았다.
“그렇다는 건 알렉스의 독자적인 판단이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우리야 그런 걸 따지지 않습니다. 결국 수수료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이의 말에 알렉스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속한 헤지펀드 업계가 이런 위험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브로커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면, 뭐든 해주는 훌륭한 동반자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알렉스가 하려는 일이 무엇입니까? 들어봐야 견적이 나올 것 같은데.”
“미래전자에 공매도를 조금 칠까 합니다.”
“공매도요? 아니, 그보다 미래전자라면…….”
알렉스의 이야기에 잠시 생각을 하던 조이는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설마, 이번에 블록딜 건…….”
“역시 HSB입니다. 모르는 게 없군요.”
정확히는 조이가 한국 시장 담당 브로커였기 때문에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였다.
아직은 루머 수준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렉스의 입에서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무언가가 있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굳이 알렉스에게 그걸 내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조이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그 블록딜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블록딜에 참여할 건데, 굳이 그쪽에 공매도하려는 이유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가격을 깎고 싶군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격을 깎을까 합니다.”
“재미있네요. 최근에 미래전자에 공매도를 하는 세력이 하나 더 있거든요.”
“네?”
조이의 말에 알렉스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 그쪽은 블록딜에 참여하려는 세력이 아닙니다.”
“그럼…….”
“블록딜이 일어나면, 주가가 약간 하락할 테고, 그 순간에 이익을 보고 빠져나오려는 세력이지요.”
조이는 인제야 그 세력이 왜 공매도를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알렉스에게 말했다.
“알렉스가 그쪽과 접촉을 해보면 둘의 의견이 아주 잘 통할 것 같은데요.”
조이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던 알렉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세력이 있다면, 굳이 내가 접촉할 필요가 없겠죠.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면 될 일이지.”
어쨌거나 각자가 거둬들일 전리품이 달랐지만, 목표는 같았다.
굳이 접촉해서 전리품을 나눌 필요가 없었다.
“하하하, 그렇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주어야 할 일은요?”
“TRS(총수익교환약정)를 좀 열어주십시오.”
“매도스왑을 쓰시겠다는 이야기군요.”
다시 말해, 공매도를 주문한 곳은 이스트 드래곤 펀드였지만, 실행하는 주체는 HSB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이스트 드래곤이 공매도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숨길 수 있는 방식으로, HSB는 이에 따른 수수료만 받으면 될 일이었다.
“수수료는 최종 공매도 이익에 1.4% 드리겠습니다.”
“너무 적습니다.”
“업계 평균이 1%입니다. 우리로서는 좀 더 드린 것…….”
“그것은 정상적인 TRS일 경우겠지요.”
조이의 말에 알렉스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의 말마따나 지금은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알렉스에게 약점이 있는 거래였다.
“2.5%.”
조이의 입에서 수수료 요구치가 나오자 알렉스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어쨌거나 알렉스의 일로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 HSB도 위험한 일입니다. 리스크가 있으니 당연히 수수료도 높아야겠죠.”
“1.5%로 해주시지요.”
“…….”
“HSB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어쨌거나 회사 내부의 반대를 뒤집기 위해 하는 일이니, 성과는 무조건 좋을 테니까요.”
“곤란한데요…….”
“조이, 손목에 있는 시계가 꽤 낡아 보이는데요.”
알렉스는 이미 모든 것을 예상한 듯, 준비한 선물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어제 알고 지낸 리처드 밀 매장 매니저가 제품이 하나 들어왔다길래 조이 생각이 나서 구매했습니다.”
알렉스의 입에서 나온 말에 조이는 환하게 웃으며 테이블 위의 선물을 바라보았다.
“1.7%에 맞춰 드리겠습니다.”
조이는 선물을 가방에 넣으며 그리 말했고,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역시 조이와 거래하면 늘 마음이 편합니다.”
두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 * *
“우리 말고도 공매도를 치는 세력이 있는 것 같은데?”
싱가포르에 위치한 헤지펀드 사무실.
최초로 미래전자의 블록딜 거래에 대한 정보를 취득한 이들은 열심히 미래전자 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실행하고 있었다.
“그래?”
한 팀원의 말에 이번 일을 주도한 남자는 그의 자리로 가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우리 말고 다른 세력이 붙은 것 같지?”
공매도 물량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보다 더 많은 물량을 던지네.”
“같은 정보를 가진 걸까?”
“그럴 가능성이 크지. 그런데 같은 정보를 가졌더라도 이런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곳이 적을 텐데.”
미래전자 주식이 시장에 아무리 많더라도, 지금 가격은 고점을 뚫어가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공매도 풀에 제공되는 대여 물량이 많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대규모 물량을 끌어와 공매도를 실행할 수 있는 곳은…….
“대형 IB는 가능하겠지.”
한 팀원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규모가 아주 큰 글로벌 투자은행이라면 가능할 물량이었다.
남자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어디론가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머라이언의 그레이엄입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최근 한국 시장에 있는 미래전자에 공매도하고 있는 IB가 있습니까? 규모가 꽤 커서 IB가 아니면 소화가 안 될 것 같은데.”
남자가 전화를 건 상대는 싱가포르 내에서 정보를 다루는 정보상이었다.
가끔 돈이 필요한 직원들이 그에게 가 정보를 돈을 받고 팔았고, 그는 이렇게 다른 인물에게 정보를 되파는.
헤지펀드 업계에선 늘 있는 부수입 업자들이었다.
“네, HSB가요? 이유는? 그렇군요. 아닙니다. 힌트 충분했습니다. 늘 입금하던 곳으로 입금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남자는 모두를 바라보았다.
“공매도 주체가 HSB라는데.”
“HSB에서 왜 이 판에 들어온 거지?”
“두 가지 가정이 가능하지. 우리처럼 정보를 알거나. 혹은.”
“HSB가 블록딜 거래에 관심이 있거나.”
남자의 말에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하다 이내 한 팀원이 입을 열었다.
“후자일 것 같은데? 전자는 우리같이 규모가 작은 곳이 단타로 수익을 보러 들어가는 거고.”
“내 생각도 똑같아. HSB가 블록딜로 나온 미래전자의 지분에 관심이 있나 본데? 그러니 지금 가격을 깎기 위해 선제적인 작업을 하는 거고.”
모두의 의견이 그리 통일되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생각도 팀원들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건 하나겠지?”
남자가 그리 말하자 팀원들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거물이 이 판에 뛰어들었으면, 확실하게 주가는 하락할 테고…… 그 판에서 우리는 빠르게 먹고 나오면 될 일 아니겠어?”
“상대도 우리를 반길 테고 말이야.”
목적지는 달랐지만, 가는 길이 같다면.
훌륭한 동지가 될 수 있었다.
“규모를 좀 더 늘려서 시작하자고. 한국의 수탁 증권사에서는 말이 없지?”
“없어. 시스템적으로 우리 행동을 못 걸러낼 테니까.”
이들은 교묘하게 불법행위인 무차입 공매도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이들의 업무를 수탁받은 증권사에서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말이다.
“자, 그럼 시간이 없어. 빠르게 가보자고.”
남자의 말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이거 물량이 계속 느는데.”
그날 저녁, 도경은 오랜만에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혼자 야근을 하고 있었다.
한국과 마이애미의 시차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시장 근황을 확인하려면 늦은 시간에 확인을 해야 했다.
“그리고 던지는 물량이 생각보다 많아.”
공매도뿐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현물도 나오고 있었다.
매도 현황을 확인해 보면 거의 다 기관과 외국인이 던지는 물량이었다.
“슬슬 수익 실현할 타이밍이 오긴 왔는데…….”
미래전자의 주가가 폭발적으로 오르다가 갑자기 쉬어가고 있었다.
다들 오를 만큼 올랐으니 한번 수익 실현을 하는 타이밍일 수도 있었다.
“공매도 세력한테는 도움이 되는 흐름이지.”
한참 그리 혼잣말을 내뱉으며 시장의 분위기를 살피던 찰나.
지이잉-
휴대전화에서 힘차게 진동이 울렸고, 화면을 확인한 도경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윤도경입니다.”
-윤 지사장, 강성호입니다. 마이애미 시간이 늦은 것 같아 고민했는데, 윤 지사장은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 연락했습니다.
“네, 이 시간도 저는 괜찮습니다. 언제든 편하게 연락해 주십시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편함은 감수해야 했다.
-다행입니다. 어쨌든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자면, 외국계 IB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외국계 IB요?”
-네. HSB나 UB 같은 유럽계들이 지금 공매도 폭탄을 던지고 있어요. 특히 UB 같은 경우는 실물도 함께 던지고 있고요. 지금 미래전자 주가 확인했죠?
“네. 어제 종가 대비 -3%나 내렸네요.”
-그게 다 외국계 기관들이 던지고 있어요. 그리고 조금 특이한 이야기를 한 가지 들었는데.
도경은 숨을 죽여 강성호의 말에 집중했다.
-HSB가 공매도를 하고 있지만, 주체는 아니라는 소문입니다.
“매도스왑인가요?”
-정확합니다. 그런데 저들의 물량이 좀 많아서. 시장에서는 무차입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요. 어디까지나 몇몇이 하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이후로도 시장에 있는 정보들을 강성호는 이야기해 주었다.
-아직까지 루머 수준인 것들도 있지만, 필터링하지 않고 말해준 겁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어떤 방향을 취해야 할지 느낌이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타이밍이 되면 우리에게도 말해주세요. 동시에 포지션 잡기 시작할 테니.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마친 도경은 잠시 고민을 했다.
“정황들이 하나씩 쌓여 나가는데…… HSB 뒤에 숨은 쥐새끼가 누군지 알아야겠는걸.”
매도스왑이라는 옵션까지 사용하면서, 굳이 수수료를 지급하면서까지 자신을 숨겨야 하는 인물이 누군지 궁금했다.
도경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