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76)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76화(576/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76화
“피터, 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날 저녁, 도경은 자신을 위해 오늘 행사에 연사로 서서 강연을 해준 피터 브라운을 만나고 있었다.
“글쎄, 자네가 나에게 아주 큰 금액의 강연료를 주지 않았나?”
“피터 주머니로 들어가는 건가요? 저는 재단에 기부되는 줄 알고 크게 책정했는데요.”
피터 브라운은 은퇴 이후 전 세계를 돌며 낙후된 제3세계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었다.
돈을 버는 투자가 아닌 인류를 위한 투자를 말이다.
강연을 도는 이유도 투자금을 벌기 위해서였고, 도경은 이번에 큰돈을 그의 재단에 기부하며 연사로 모셨다.
“하하하, 이제는 농담을 잘 받아주는 여유까지 생겼네.”
피터 브라운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다들 보니 분위기가 매우 좋더군.”
“축제로 만들고 싶었는데, 실패한 것 같습니다.”
도경은 투자자들의 축제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할 수 있는 게 적었다.
공간이 한정적인 것도 있었고.
“매년 오마하에서 열리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처럼요.”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는 투자자들의 축제나 다름없었다.
소규모 도시에 주주총회 사나흘 전부터 전 세계에서 투자자들이 모여 도시를 즐기고, 소비를 촉진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수많은 투자 계약들이 오간다.
도경은 그런 그림을 꿈꿨다.
“처음 하는 행산데 잘될 수 있나? 더군다나 장소가 너무 협소해.”
“대도시에서 열렸다는 점도 있고요.”
오마하는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한정적인 곳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서울은 너무 크고 붐비는 도시였다.
“맞아. 그리고 개인적으론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피터 브라운은 확신한다는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애프터 파티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보지 못했겠지만, 나는 똑똑히 봤어.”
투자자 설명회와 더불어 피터 브라운의 강연이 끝난 이후, 행사장 바로 옆에 있는 호텔 연회장에서 주류와 음식을 곁들인 애프터 파티가 열렸다.
도경은 투자자와 더불어, 투자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비즈니스를 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여러 기관과 기업 관계자들이 만나 명함을 교류하더군. 나와 함께 이야기하던 두 사람은 아예 서로 투자 의사까지 확정 지었었어.”
“그렇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윤, 자네가 깔아둔 판에서 오간 돈이 어마어마할 거야.”
도경은 이제야 왜 피터 브라운이 성공적인 행사였다고 평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네가 그걸 의도했다면 나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도 생각을 좀 달리해야겠습니다.”
도경이 그리 말하자 피터는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그래,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건가?”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어떤 의도의 물음인지 알 것 같은 도경은 천천히 입술을 뗐다.
“시장을 좀 넓힐 생각입니다.”
“시장을 넓힌다?”
“네. 지금은 PIF나 마이애미 과학연구기금 같은 기관이나 개인의 돈을 받았지만, 이렇게 해서는 클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그렇지.”
“1호 펀드는 이제 슬슬 안정적이니 제가 결정하는 선으로 하고, 실무는 아마 제 밑에 있는 유능한 친구들이 담당할 겁니다.”
도경의 말에 피터 브라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펀드매니저는 그저 포트폴리오의 큰 틀에서 투자 방식만 결정만 해주면 되었다. 실무나 관리는 당연히 밑에 있는 유능한 직원들이 하는 것이다.
“조금 오픈된 펀드를 하나 만들까 싶습니다.”
“오픈된 펀드라……. 설마? 401k 시장을 노리나?”
401(k)는 미국의 사적연금 플랜이었다.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퇴직연금 제도였는데, 직장에서 은퇴 계좌를 개설해 주고, 급여의 일부를 그리로 자동이체 시키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은퇴 계좌로 입금된 돈은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이제는 사적 연금이 커질 시기가 다가왔지.”
401(k) 플랜의 경우는 59.5세까지 돈을 적립해, 62세 이후 연금으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전에도 돈을 찾을 수 있었지만, 어마어마한 수수료와 세금을 내야 했기 때문에 보통은 62세 이후 연금으로 받거나, 70세까지 모아서 받는 형식이었다.
70세까지 모은다면 더 큰 금액을 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 은퇴 세대가 더 늘어날 테니까 말이야.”
“한국도 그렇습니다.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이 있습니다만, 다들 내가 받을 때는 돌려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구 구조가 깨져서 고령층이 많아지면 그런 걱정을 하게 되지.”
“네, 사적연금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 시장을 노릴까 합니다.”
가령, 1경 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 세일즈는 자산의 절반이 은퇴 자금과 관련되어 있었다.
시장 규모가 아주 컸다.
“시작은 미국에서 하겠지?”
피터의 물음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사적연금의 시장은 미국이 훨씬 크니까요.”
“그럼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겠는데.”
피터의 말에 도경은 눈을 크게 떴다.
“사적연금이 401k만 있는 게 아니니까. 403b나 457b도 있어.”
403(b)는 비영리 공기업과 NGO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적연금이었고, 457(b)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사적연금이었다.
“펜 있나?”
피터 브라운의 말에 도경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피터는 앞에 놓인 냅킨에 연락처를 하나 적더니 도경에게 주었다.
“미국에 가거든 연락해 봐. 내 소개로 연락했다고 하면 될 거야. 내가 현업에 있을 때, 함께 일했던 친구니까.”
“어딘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D.C의 인적자원부 디렉터의 연락처야.”
피터의 말에 도경은 연락처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는데, 피터 브라운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자네 덕분에 이번에 배터리에 큰 투자가 들어올 것 같아.”
며칠 후, 출국을 앞둔 날.
도경은 운월당을 찾아 한태오에게 출국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멕시코나 미국 쪽에 생산기지를 만들까 했는데, 이번에 애프터 파티에서 함께해 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어.”
“그렇습니까?”
“그래, 미국에서 자금을 투자할 세력이 있다면 도전해 봄 직하지. 바로 실무진에게 검토하라고 했어.”
“축하드립니다.”
“배터리 산업이 너무 좋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약간 걱정을 덜었어.”
“사이클 산업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도경의 말에 한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자네를 다시 봤어.”
한태오는 연단 위에서 자신감 있게 자신의 계획과 투자 성과를 이야기하던 도경의 모습을 떠올렸다.
“청중 연설은 잘하는 줄 알고 있었지만, 영어로도 자네의 그 의지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가지는 게 아니니까.”
“과찬이십니다.”
“전혀! 과찬이 아닐세.”
한태오는 단호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네가 만든 세계관 안에서 여러 사람이 서로 부대끼며 투자도 끌어내고, 한 산업의 부흥을 위한 이야기들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행동이야.”
도경은 미소를 지었다. 한태오의 극찬에 뿌듯한 감정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서 자네의 세계관을 더 넓히고, 자네의 회사를 더 키워. 그리고 돌아오거든…….”
한태오는 끝말을 흐리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네의 몫을 내가 준비해 둠세.”
“회장님께 받아야 할 제 몫은 없는 것 같습니다.”
도경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한태오에게서 받을 자신의 몫이란 건 없었다.
“다현이와 결혼 안 할 건가?”
한태오는 어느새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는 도경을 바라보았다.
“할 겁니다.”
“그럼 자네 몫이 있을 거야.”
“혹시 가족이라 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그건 제 몫이 아니라 다현 씨의 몫이어야 합니다.”
도경은 단호하게 말했다.
“진심인가?”
“그렇습니다. 저는 회장님께 받을 것이 없습니다.”
“…….”
“다만.”
도경은 굳은 얼굴을 짓고 있는 한태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허락받아야 할 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허락?”
“이번에 미국으로 돌아가면 다현 씨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이미 다현 씨의 의견은 물었고, 회장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 오늘 찾아뵌 겁니다.”
도경의 말에 한태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함께 산다고? 그렇다면 결혼하기 전에 함께 산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
한태오는 고민이 깊은 것 같았다. 아무리 세상이 이전보다는 덜 보수적으로 변했다지만,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현이 그 아이가 좋다고 했으면 나도 허락하겠네.”
한태오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다만.”
그리고 이어지는 한태오의 말에 고개를 들었는데, 그의 얼굴은 조금 전 당황스러움은 조금 누그러든 듯한 표정이었다.
“한국에 정말 들어오거든 내가 주는 걸 받는다고 약속하게. 그럼 나도 홀가분하게 허락하지.”
하나를 양보했으니, 너도 양보하라는 듯, 기업가다운 한태오의 협상 방식에 도경은 졌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도경의 답에 한태오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들 푹 쉬어. 플로리다로 돌아가거든 이젠 정말 한 단계 점프해야 하니까.”
며칠 후, 도경은 플로리다로 향하는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직원들의 자리를 돌아다니며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의 두세 배의 일을 해야 할 거야.”
“보스, 팀원은 더 안 늘리나요?”
“당분간은 우리가 해야 해. 사무실에 공간이 없잖아. 빌딩이 지어지고 옮기면 그때 생각해 보자고.”
도경의 말에 다들 잔뜩 긴장하는 얼굴이었고,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만, 늘어난 일만큼 여러분의 연봉도 성과급도 늘어날 거야. 그러니, 최고의 성과를 인정받도록 열심히 하길 바란다.”
도경의 말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미 지금도 충분히 업무는 힘들었다. 그 성과를 충분히 보상해 준다면, 싫어할 직원은 없었다.
“자, 그럼 푹 쉬고. 마이애미에 도착해서 다시 보자고.”
도경은 직원들을 챙기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잠시 후,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려 힘차게 이륙했고, 유성인베스트먼츠의 모두는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부푼 기대를 안고서 서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