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94)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94화(594/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94화
“보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흘 후, 휴식을 마치고 유성인베스트먼츠로 복귀한 도경은 김우혁과 독대를 나누고 있었다.
이지훈과 한다현 그리고 마크 토마스는 출장 이후 여전히 휴가를 받아 쉬고 있었다.
“우혁 이사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떻던가요?”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직책이 바뀌자마자 제 위에 상사 두 명이 모두 자리를 비우시니 제대로 일에 대해 습득했습니다.”
김우혁은 최근 최고운영책임자인 COO로 승진을 한 상황이었다.
회사의 삼인자나 다름없는 직책이었는데, 도경과 이지훈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니 할 일이 많았다.
“여기 보고서입니다.”
김우혁은 도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페이지 수가 많아 보이는 보고서를 건넸다.
“가장 먼저 팜트로피카 직원들을 고용승계 했습니다. 이미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 직원들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을 구하지 못한 친구들은 그대로 고용을 승계하고, 이미 세컨드 오피스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마크 토마스가 이끌던 팜트로피카가 경영이 악화되고 핵심 부서를 제외한 직원들은 해고를 통보받고 출근을 하지 않고 있었다.
몇몇은 그사이 이직을 해 어쩔 수 없었지만, 대기하는 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직원들은 그대로 고용을 승계하고, 이제는 세컨드 오피스가 된 사무실로 출근시켰다.
“좋네요. 연봉은 우리 사원급으로 맞춰주었죠?”
“네, 기본급이 20% 정도 올라 다들 좋아하더군요.”
“마이애미 집값이 좀 비싸야죠. 좋습니다. 다음은…… 서울에서 직원들이 합류했네요.”
도경은 보고서를 보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한 달쯤 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서울 유성투자증권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쟁이 엄청 났었답니다.”
“그래요?”
“최우진 이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저희가 여섯 명 정도 받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투자증권 측과 협의해 유성인베스트먼츠에서 연수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는 유성인베스트먼츠에서도 따로 고용하지 않아도 인원을 늘릴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좋은 협약이었다.
“그런데 프런트 오피스에서만 40명 정도가 지원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6.67:1의 경쟁률이었다.
“최우진 이사가 이끄는 사업부에서도 직원들이 지원하려고 해서 말리느라 혼났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유성에서 가장 뛰어난 친구들이 모이는 사업부에서도 그럴진대…… 다른 팀 직원들은 어떻겠습니까? 잘하면 눌러앉을 수도 있고, 서울로 복귀하더라도 최우진 이사의 사업부에 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나 봅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저도 사원일 때가 있어서 잘 알지만, 4~5년 차쯤 되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니까요.”
도경이 그리 말하자 김우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직원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네, 세컨드 오피스로 출근시켰고, 그곳에 직원 몇 명 파견해 적응을 돕고 있습니다.”
“날 잡아서 세컨드 오피스로 가봐야겠네요.”
도경은 보고서를 덮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믿고 맡겨주셨으니 더더욱 열심히 해야죠. 보스, 주말에 시간 되십니까?”
“주말에요?”
김우혁의 물음에 도경은 캘린더를 확인했다.
“없네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한인교회에서 행사가 있는데, 함께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우혁의 물음에 도경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크게 웃었다.
“지금 저한테 전도하시는 거예요?”
“아휴, 전도라니요. 저도 교인이 아닌걸요.”
“그런데 왜 교회 행사에…….”
“이게, 해외에 나오면 한인 교회가 일종의 사교 모임 장소입니다.”
도경은 가만히 김우혁의 말에 집중했다.
“저도 잘 몰랐는데, 옆집에 사는 한인이 말해주더라고요. 그래서 반신반의하며 나갔는데 일종의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딱히 전도도 심하게 하지 않고요.”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종교가 없었지만, 언젠가 국내 시골 지역의 복지 사각지대 기획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국내 복지 사각지대의 사회 복지 대부분을 교회뿐만 아니라, 사찰과 성당 등 종교 단체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그곳에서 종교시설은 일종의 커뮤니티나 다름없다고.
해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해외에 사는 한인들 같은 경우에는 어디 민원을 넣을 곳도 없고 하니, 교회를 통해 의견을 모아서 민원을 넣더라고요.”
“그렇습니까?”
“네. 지역 정치인 입장에서도 한인들의 표가 필요하니 한인 교회에 대표성을 주는 거고요.”
도경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바자회를 하는데, 마이애미 한인 사회에도 저소득층은 있거든요. 바자회 수익을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쓴다고 하더라고요.”
“나와서 돈 쓰라 이거네요.”
“예, 뭐…….”
김우혁이 뒤통수를 긁적이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이게 참, 보스가 너무 일만 하시니 가끔 리프레시도 필요하신 것 같고…….”
“좋습니다. 갈게요.”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고, 김우혁은 환하게 웃었다.
“그럼 시간과 장소는 메시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네, 오늘 하루도 수고하세요.”
김우혁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도경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동안 미국에 와서 한인 커뮤니티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는데, 김우혁의 말마따나 리프레시 겸 나가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은근히 저런 걸 잘 챙겨주시네.”
도경은 그런 김우혁의 배려에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을 하기 시작했다.
* * *
“저도 처음 나가봐요.”
주말, 도경은 한다현과 함께 직접 운전을 하며 마이애미 교외로 향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꽤 오래 지내지 않았어요?”
옆자리에 앉아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앉아 있는 한다현을 향해 물었다.
“보자…… 우리나라 나이로 중3 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했었으니까요. 그리고 세쿼이아에서 일할 때까지 포함하면 한 12년 정도? 있었네요.”
“그런데 한인 교회를 한 번도 안 나가봤어요?”
“사실 가고는 싶었죠.”
도경은 운전에 집중하며 귀로는 한다현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엄마가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안 된다고 했거든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어머니의 말뜻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도경 씨는 잘 모르겠지만, 해외 나오면 한인 사회가 가장 도움이 되면서도 가장 무서운 존재거든요.”
“어디를 가나 좁은 사회는 다 그렇죠.”
“맞아요. 그래서 무서웠어요. 그 누구도 내가 유성그룹 회장의 혼외자식인 걸 모르는데도, 몇 마디 섞다 보면 알게 될 것만 같았거든요.”
도경은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위로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오늘이 기대되네요.”
“그래요?”
“네, 비싸기만 하고 한식 같지 않은 한식들만 보고 있으면 답답한데, 한인교회 바자회를 가면 진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어릴 때부터 엄청나게 들었거든요.”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한다현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보기 나쁘지 않았다.
“오늘 김우혁 이사한테 여러 번 고마워해야겠네요. 내 정신 건강도 신경 써주고, 다현 씨의 꿈도 이루어주고요.”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차는 어느새 교외에 있는 한 교회 앞에 멈추어 섰다.
이미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인 것인지 여러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경과 한다현은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이사님.”
“앗! 보스.”
바로 이곳에 두 사람을 불러준 김우혁이었다.
반갑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맞이해 준 김우혁은 자신의 가족들을 불렀다.
“사모님, 오랜만이네요.”
“대표님, 잘 지내셨죠?”
도경은 이미 김우혁의 집에서 몇 번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그럼요. 우혁 이사님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도경의 말에 김우혁의 아내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웃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이이가 대표님의 덕을 크게 보고 있죠. 한다현 이사님도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두 사람이 인사를 하자 도경은 자세를 숙여 김우혁의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안녕? 잘 지냈지?”
“네, 삼촌.”
“보자, 삼촌이 오랜만에 봐서 준비한 게 없네.”
도경은 지갑을 꺼내 아이들에게 용돈을 건넸다.
“바자회에서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조르지 말고 꼭 사.”
“와, 감사해요.”
아이들이 신이 난 듯 돈을 흔들며 뛰어가자 김우혁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보면 아빠가 용돈 안 주는 자식들처럼 보이네요.”
“하하하,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래 불로소득은 누구나 저리 좋아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놀기 좋네요. 이곳 분위기 말입니다.”
도경의 말에 김우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가 한인교회를 나오는 이유도 그겁니다. 이곳이 아니면 아이들이 한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아예 없거든요.”
“그런가요?”
“네. 저 아이들이 평생 미국에서 살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언젠간 한국에 돌아갈 수도 있는 거니까요.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억지로 데리고 나옵니다. 여기 다른 한인 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한국말로 하니까요.”
도경은 신기하다는 듯 교회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이곳은 한인들에게 종교시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도경은 김우혁의 소개를 받아 교회의 목사와 주요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도경 씨! 저기 잔치국수 있어요. 먹으러 가요.”
김우혁과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들뜬 한다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도경은 피식 웃으며 그곳으로 다가갔다.
“캘리 같은 경우에는 한식당이 워낙 잘되어 있어서 진짜 한식들이 많았거든요. 근데 마이애미로 넘어오고 나서는 이런, 그니까…… 때깔의 한식을 본 적이 없어요.”
한다현의 두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감동의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도경이 봐도 저 빨갛고 꾸덕꾸덕한 텍스쳐의 떡볶이는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그것이었다.
바자회의 성격답게 가격도 저렴했다. 오랜만에 팁 문화에서 해방된 일행들은 여러 가지 음식을 사서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 한번 다녀오면 한동안 음식들이 너무 그립더라고요.”
“맞아요. 늘 손 닿으면 먹던 거라 그런 건지 더욱더 그립고요.”
도경은 일행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식을 즐겼다. 인도와 마이애미를 오가며 먹은 것들은 입에 잘 맞지 않는 것들뿐이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한식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김우혁의 말대로 리프레시가 되는 느낌이었다.
“한인교회 대부분이 최근 마이애미로 온 사람들이에요.”
“그렇습니까?”
“네, 캘리에서 살다가 그곳의 미칠 듯한 세금에 질려서 온 분들도 있고요.”
“선 벨트에서 세금이 제일 비싼 곳이 캘리포니아니까요.”
선 벨트Sun Belt는 서부 캘리포니아부터 텍사스를 걸쳐 동부의 남쪽 끝 마이애미를 일컫는 따뜻한 지역을 말했다.
그중에서도 텍사스와 마이애미는 아예 제로에 수렴하는 소득세와 법인세 때문에 최근 인구 유입이 폭발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 세대도 많고요. 그래서 말이 잘 통합니다. 보스와 한다현 이사도 자주 나오세요.”
“그래야겠어요.”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종교시설이라기보다는 정말 그냥 사랑방 같은 느낌이네요.”
“맞아요! 그러니 앞으로 나와서 같이 이야기도 나누시고 그러세요.”
“네. 그래야겠어요.”
이후로도 도경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하다 어느 곳을 바라보았는데, 한 사람이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자신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일행은 도경이 식사를 멈추고 있자,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 아닙니다. 누군가가 자꾸 이쪽을 보는 것 같아서요.”
“어디요?”
“아닙니다. 그냥 기분이 그랬나 봐요.”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다시 식사를 시작했고, 이윽고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금 전, 자신과 눈이 마주쳤던 남자가 다가왔다.
“혹시, 유성인베스트먼츠의 윤도경 대표님 되시나요?”
“아, 네. 아까 저를 바라보신 게 맞군요.”
“아…… 네. 죄송합니다. 식사하시는데 방해되고 싶지 않아서 기다렸습니다.”
상대의 말에 도경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배려해 주신 덕분에 식사 맛있게 했네요.”
도경은 그리 인사하고는 상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신가요?”
“아, 제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다운타운에 있는…….”
상대는 주머니를 뒤져 자신의 명함을 찾아 건넸다.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 교사를 하고 있는 유동한이라고 합니다.”
“아, 네.”
도경도 명함을 고이 보관하고는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유성인베스트먼츠의 윤도경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기사로 자주 뵈었거든요. 한국에 계실 때는 유튜브로도 자주 뵈었고요.”
유동한은 잠시 망설이다 이내 결심이 선 듯 도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정말 오늘 처음 뵙는 분께 드리고 싶은 부탁은 아니지만……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네?”
“제가 투자하는 상품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자산운용사에서는 자꾸 괜찮다고 말하면서 보여주질 않습니다.”
이어지는 유동한의 말에 도경의 얼굴은 굳어갔다.
“투자 성과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저도 매일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제 상품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혹시, 그곳의 이름을 좀 알 수 있을까요?”
도경의 말에 유동한은 다시 주머니를 뒤져 꾸깃꾸깃 구겨져 있는 명함을 하나 건넸다.
[케이스타 자산운용]“여기입니다. 뉴욕에 있는 곳인데, 대표가 한국인이고 한인 사회에 영향력이 커서…… 많이들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그동안 정리한 자료이고요.”
유동한은 조금 전부터 옆구리에 끼고 있는 서류철도 도경에게 건넸다.
“제가 좀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유동한은 연신 고개를 숙였고, 도경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몰랐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알아버린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인 것 같네요.”
해당 자산운용사의 명함을 바라보는 도경의 얼굴에는 한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