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99)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99화(599/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99화
“오늘이 한인이 미국에 온 지 120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며칠 후, 도경은 뉴욕 교외에 있는 작은 비즈니스 전용 공항에 내려 맨해튼 중심지에 있는 호텔로 이동 중이었다.
도경은 앞에서 차를 운전하는 차선태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네, 그래서 규모를 키운 것 같네요. 물론 나를 초대하자고 한 건 조상훈이겠지만, 그래도 나한테까지 초대장이 온 것은 규모를 키웠기 때문이겠죠.”
도경은 손에 쥔 초대장을 바라보았다.
1903년 한인 102명이 미국 하와이에 도착하며 한인들의 미국 이민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때를 기념하여 매년 초에 하와이에서 행사가 열렸고, 연말에는 뉴욕에서 한인들을 대표하는 회의가 열렸다.
“더불어 미국 의회 상·하원 의원부터 시작해서, 뉴욕 시장도 참석한다는 소리도 있고요.”
초대받은 경위가 어찌 되었건, 도경에게는 뜻깊은 자리였다.
한인 사회 커뮤니티에 들어간다는 것도 그랬지만, 더 나아가 여러 귀빈에게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같이 올라가시죠.”
“제가 가도 되겠습니까?”
“안 될 일은 뭐겠습니까? 밑에서 지루하게 기다리는 것보다 함께 가서 맛있는 거라도 드시죠.”
도경의 말에 룸미러를 통해 비치는 차선태의 얼굴에는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잠시 후, 차는 맨해튼 중심에 있는 고급 호텔 로비에 멈추어 섰고, 두 사람은 발렛파킹을 해주는 직원에게 차를 맡기고는 행사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초대장을 제시하고 들어선 행사장의 모습에 두 사람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와, 엄청나네요.”
차선태는 자신의 인생에서 이런 풍경은 처음 본다는 듯 말해왔다.
마치 중세의 성에 들어선 것 같은 연회장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높은 천장을 받치고 있는 대리석으로 된 기둥들은 하나하나가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저도 연회장은 많이 다녀봤지만, 이런 풍경은 또 처음이네요.”
100여 년이 넘는 호텔의 역사를 증명해 주는 연회장의 모습이었다.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었겠는데요.”
차선태의 물음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그럼요. 한인회 회원이 몇 명인데요. 실질적으로 회비를 내는 회원 숫자도 꽤 될 겁니다. 120주년 행사에 걸맞은 이런 홀을 빌릴 정도는 되겠죠.”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고, 차선태는 도경의 옆에 따라붙었다.
“그래서 회장직을 두고 알력 다툼들이 있나 봅니다.”
차선태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이곳뿐만 아니라, 어디든 이권이 걸린 단체장직은 다 그러니까요. 오늘같이 좋은 날에 그런 헤지펀드사의 직원 같은 말은 삼가는 게 좋겠네요.”
도경은 재미있지만, 자리에 맞는 말을 하자고 웃으며 말했고, 차선태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너무 들떴던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재밌고 좋은데요.”
도경은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웰컴 드링크를 손에 쥐고는 연회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직 행사가 시작되려면 삼십 분 정도 남았었는데,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윤도경 대표님?”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 도경을 향해 인사를 했고, 도경은 처음 보는 얼굴에 의아한 눈빛으로 상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와우, 맞네요. 멀리서 보고 긴가민가하는 마음에 다가왔는데, 참!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상대는 안주머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 도경에게 정중하게 명함을 건넸다.
“뉴욕 총영사관에서 일하는 재경관 최인성이라고 합니다.”
대사관에는 보통 외교부 외에도 여러 소속 부처에서 파견되는 공무원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국방부의 무관과 산업부의 상무관, 기획재정부의 재경관이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도경은 그리 말하며 자신의 명함도 정중하게 상대에게 건넸다.
“이야, 이런 곳에 나오시는 분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건너 들었는데. 오늘 행사에서 가장 귀한 분을 만난 기분입니다.”
보통 해외로 파견 나오는 주재관의 경우는 승진을 앞두고 파견 나오는 경우가 상당했다.
더군다나 뉴욕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곳에 파견 나올 정도면, 기획재정부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사람일 것이다.
“재경관님을 뵙게 되어 제가 더 영광입니다.”
이후로도 도경은 최인성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최인성은 자신의 직업에 맞게 앞으로의 경제 흐름에 관해서 도경에게 질문을 던졌고, 도경은 답변을 하는 식이었다.
“아이고,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행사가 곧 시작될 것 같네요. 자주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언제든 연락해 주십시오.”
최인성과 인사를 나눈 도경은 차선태를 바라보았다.
“귀빈들이야 지정석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아니니 아무 곳이나 앉을까요?”
두 사람은 바로 앞에 있는 원형 테이블에 자리했다.
“조금 전 재경관의 제안을 왜 받아들이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뭔가를 얻어가려는 듯 질문만 계속하셨는데, 대표님께서 원래 친절하신 분이지만…… 너무 시간을 빼앗기시는 것 같아서요. 다른 분들도 대표님을 보고 다가오려 하다가 다가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랬나요?”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차선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재경관이라는 직업에는 얻을 게 없죠. 하지만, 최인성이란 사람 머릿속에 제가 각인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기획재정부가 금융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는 부처는 맞았지만, 금융위의 상무관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도경에게 도움 되는 직위는 아니었다.
“후에 저 최인성이란 사람이 어디로 갈지는 모르니까요. 그리고 저는 저분뿐만 아니라 누가 오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해서요. 아시지 않습니까?”
도경의 말에 차선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아는 도경은 누구와도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행사가 시작하려나 봅니다.”
잠시 후,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고, 한인회장부터 뉴욕 총영사, 뉴욕주의 상·하원 의원이 차례로 나와 축하사를 전달했다.
그렇게 연사들의 축하사가 끝나자 식사와 함께 작은 공연들이 시작되었다.
“윤도경 대표님이시죠?”
어느 정도 행사의 분위기가 디너쇼로 바뀌자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도경을 향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 네.”
“역시. 행사만 아니었으면 진작 물어보고 싶었거든요. 저는 퀸스에서 작게 무역 회사를 운영 중인…….”
같은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찰나.
“아이고, 윤 대표님! 오셨습니까?”
도경을 이 자리에 초대한 조상훈이 누군가와 함께 다가왔다. 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조 대표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사에 초대받아 여러 분들과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다 한인들끼리 함께 이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자고 모이는 것이니까요. 참, 이쪽은 뉴욕한인회장님이십니다.”
조상훈의 소개에 도경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윤도경입니다.”
“아이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한인들이 윤도경 대표님의 활약에 모두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한인회장의 인사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러지 마시고, 저쪽으로 자리를 옮기셔서 간단하게 이야기하시죠.”
조상훈이 그리 말하자 한인회장 또한 도경에게 권유했고, 도경은 차선태에게 다녀온다는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옮겼다.
한인회장이 앉아 있는 자리인지, 여러 귀빈이 함께하고 있었다.
조상훈도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우리 한인들은 이곳에서 많은 차별을 받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미국 땅이 열린 사회이긴 하지만, 네트워크가 없으면 힘든 땅이 아니겠습니까?”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인회장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한인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한인이 네트워크가 없어 차별당하지 않도록 꽤 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인뿐만 아니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같은 인종끼리 혹은 같은 국적끼리 모여 이익단체를 만들고, 혹여라도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았을 때 안전망이 되어주고 있었다.
도경은 그런 의미에서 한인회의 커뮤니티 기능에 대해서는 대환영이었다.
“우리, 윤 대표님께서도 한인회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당당하게 요청하시고, 또 우리 한인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마이애미에 돌아가 한인회에 가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도경이 그리 답하자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하하하, 우리 한인회에 유명한 투자가 두 분이 계시니 앞으로 든든해지겠습니다.”
한인회장은 그리 말하며 조상훈을 바라보았다.
“우리 조 대표가 한인 사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돈이 부족하지 않도록, 자산을 불려주고 계시지요.”
“그렇습니까?”
“네, 우리 조 대표는 JPM의 수석투자가도 찾는 아주 유능한 사람입니다.”
한인회장의 말에 조상훈은 순간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윤 대표, 나와 함께 우리 한인들을 위해서 열심히 해봅시다. 서로 도움을 줄 게 있으면 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조상훈의 말에 도경이 피식 웃음을 짓던 찰나, 차선태가 도경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잘되었습니다. 제가 마이애미 한인회에 요청해서 귀빈을 한 분 초청했는데, 이제 도착했다고 하시네요.”
도경의 말에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한 남자를 바라보며 조상훈의 표정만이 점점 굳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윤! 늦어서 미안합니다.”
“랜스, 어서 오세요.”
도경은 랜스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사람들을 향해 랜스를 소개했다.
“조금 전,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던 JPM의 수석투자전략가 랜스 존스턴 이사님이십니다.”
도경의 소개에 한인회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랜스와 인사를 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마치고, 조상훈의 차례가 되자 조상훈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랜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래, 랜스! 하하하, 이런 자리에서 뵙는군요. 오랜만입니다.”
“평소에 우리 조 대표가 랜스의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두 분이 친한 관계시라고.”
한인회장이 옆에서 거들자 랜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글쎄요. 우리가 그렇게 친한 관계였던가요. 하하하, 어쨌거나 마이클 조의 케이스타는 우리 JPM의 상품에 투자하신 고객이니까요.”
랜스가 그리 말하자 회장의 이맛살이 잔뜩 찌푸려져 갔다.
“저도 오늘 이곳에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케이스타가 한인 자금을 모아 우리의 상품에 투자를 해주셨으니, 한인회에 인사를 드려야지요.”
“그, 그게 무슨 말씀…….”
한인회장은 당황한 듯 말을 절었고, 조상훈 또한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우리 랜스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투자한 그 상품은 회삿돈으로 투자를 한 겁니다.”
“아! 그렇군요. 어쨌거나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본의 엔화가 영 말썽이라…… 처리하느라 늦었습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그 말을 놓칠세라 도경은 물었고, 랜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소규모 팀에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예측하고 투자한 것 같은데, 잔뜩 물려 있더군요. 그래서 정리를 지시하느라 늦었습니다.”
“이, 이게…….”
그 말을 곁에서 듣던 한인회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조상훈을 노려보았다.
도경은 그 모습을 보고는 슬슬 빠져야 할 타이밍이라 생각하고는 회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랜스와 비즈니스 성격으로 할 이야기가 있어,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랜스, 가시죠.”
도경이 그리 말하고는 랜스 존스턴을 데리고 자리를 벗어났는데, 뒤에서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묻는 한인회장의 말소리와 변명하는 조상훈의 당황스러운 목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