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600)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00화(600/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00화
“괜찮겠습니까?”
도경과 JPM의 수석투자전략가 랜스는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조금 전 앉아 있었던 자리로 향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조상훈이 한인회장을 상대로 진땀을 흘리며 해명 중인 장면이 보였다.
“네?”
“마이클 조와 같은 인간을 건드리면 귀찮아질 텐데요. 특히 윤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요.”
랜스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물론 랜스의 걱정처럼 귀찮은 일은 생길 수 있겠지만, 그래도 같은 국적의 동포를 등쳐먹는 인간은 언젠가 혼쭐이 나봐야겠죠.”
도경은 진심이라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국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거든 한국인부터 조심하라고요.”
“하하하, 그건 모든 나라가 똑같은 말인가 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우리 같은 금융인들은 어디를 가나 브로커의 탈을 쓴 미국인 사기꾼들을 만나야 하죠.”
랜스가 공감한다는 듯 말하자 도경은 피식 웃었다.
“언젠가 혼이 나봐야 하는 인간의 가면을 벗기는 게 저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랜스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은 조상훈의 저런 막무가내 행동에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경 자신은 증인이 되어줄 수 있는 랜스 존스턴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런 소음에도 흔들릴 위치는 아니었다.
“대단한걸요.”
“그나저나, 제 무례한 초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랜스.”
도경이 그리 말하고 고개를 숙이자 랜스는 손사래를 쳤다.
“말씀드렸듯 나도 신발에 붙은 껌을 떼러 온 겁니다. 내 이름을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사람을 지켜볼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윤의 초대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랜스는 그리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윤의 놀이에 어울려 주었으니, 나도 얻어가는 게 있어야겠죠. 요즘 유성은 어디에 투자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하하하.”
도경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의 물음이라면 답을 해줄 수 있었다.
“제가 구성한 펀드는 현상 유지 중입니다. 현금을 조금 확보하고 있다고 할까요?”
도경의 말에 랜스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다 입술을 뗐다.
“시장의 폭락이 올 거라고 봅니까?”
“아! 그런 게 아닙니다.”
도경의 말에 순간 랜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전망과 도경의 전망이 다르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가셨기 때문이다.
“그냥 살 게 없어서 현금을 쥐고 있는 겁니다.”
“시장이 너무 좋아도 문제군요. 워런도 똑같은 말을 했었습니다.”
워런 버핏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시장이 너무 좋으니 옥석을 가려내기 힘들다고요.”
“네, 저도 그분과 생각이 같습니다. 워낙 많은 주식이 오르다 보니…… 솔직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주식시장에 강세가 올 것 같긴 한데, 무엇에 투자를 해야 할지 약간 헷갈리는 시기라고 할까요.”
랜스 존스턴은 그리 말하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유성은 이미 유틸리티 섹터에 큰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부럽습니다. 2년 전부터 투자했던데.”
유틸리티 섹터는 전기, 가스, 수도와 같은 인프라 사업과 관련된 산업들로 구성된 섹터였다.
“리소스 파워 말입니다. 모두가 그 당시 변압기가 혜택을 보겠다고 말은 했지만, 투자는 하지 않았으니까요. 사실 산불로 인한 변압기 주의 상승은 일시적이라고 우리도 봤거든요.”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랜스의 말에 집중했다.
최근 AI 산업보다 더 주가 상승이 도드라지는 섹터를 꼽으라면, 유틸리티였다.
특히 전기와 관련된 기업들의 주가 상승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니 눈에 차는 게 없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아닙니다. 정말 지금과 같은 시장에서는 무엇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 중일 뿐입니다.”
“모두가 그럴 시기죠. 윤과 이야기하니 뭔가 좀 안심되는 기분이긴 합니다.”
“미스터 랜스 존스턴.”
한창 랜스와 시장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한인회장과 조상훈이 다가와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랜스는 자신을 호명한 조상훈을 보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혹시, 저희 케이스타가 투자한 자금을 회수할 수 있겠습니까?”
조상훈은 최대한 조심스레 물어왔다. 아무래도 한인회장으로부터 무언가 채근을 당한 것 같았다.
“회수라니요? 처음 투자할 때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습니까? 2년간 투자금은 회수할 수 없다고.”
“그게…….”
조상훈은 자신의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옆에서 한인회장이 지켜보고 있으니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컨대, 자신이 투자자들에게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JPM의 상품에 재투자했다는 것이었다.
도경의 예상이 맞았다.
“……그래서 JPM에서 조금 제 사정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곤란합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이건 형평성의 문제니까요.”
랜스의 말에 조상훈뿐만 아니라, 한인회장의 표정도 죽상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JPM은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니 수익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케이스타에 직접 운용하는 것보다 더요.”
랜스가 그리 말했음에도 한인회장의 표정은 여전히 펴질 줄을 모르고 구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때, 랜스가 도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도경은 입을 열었다.
“랜스.”
도경이 랜스를 부르자 모두의 시선이 도경에게로 향했다.
“케이스타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고소하거나 법적 분쟁을 건다면, JPM도 꽤 곤란한 일에 빠질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윤. 우리 JPM의 법정대리인들은 꽤 유능하거든요.”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물론 말씀대로 JPM의 변호사들은 유능하겠지만, 꽤 귀찮아질 텐데요.”
도경의 말에 한인회장은 기대하는 얼굴로 랜스를 바라보았다.
“JPM의 약관에 이를 처리할 방법이 따로 없겠습니까?”
도경이 그리 묻자 랜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도에 해지하면, 수익금의 수수료율이 좀 더 올라갑니다. 기존엔 30%지만 33%로요.”
랜스가 그리 말하자 도경은 조상훈과 한인회장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수익에 수수료를 더 떼는 것은 괜찮습니다. 내 돈이 어디로 투자되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원금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한인회장이 그리 말하자 도경은 랜스를 바라보다 이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랜스, 저를 봐서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도경의 정중한 부탁에 한인회장은 놀란 표정이었다.
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리 나서주니 미안함과 고마움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이것 참…… 내 친구 윤이 그렇게 부탁하니 어쩔 수 없군요. 직원들에게 정리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랜스가 승낙하자 한인회장과 조상훈은 랜스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고, 랜스는 도경을 향해 살짝 윙크했다.
도경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 * *
“JPM에게서 받은 돈들을 모두 고객들에게 반환했습니다.”
한편, 케이스타자산운용.
“잘했어.”
“그런데 자산운용 계약서상…… 저희의 실책으로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투자금을 반환할 때는 위약금을 10% 지급해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조상훈은 부하 직원의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문제는 앤 캐리 트레이드 상품이 물려 있는 상황이라…… 정리를 할 수도 없습니다.”
부하 직원의 말인즉슨, 위약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회사에 현금이 없다는 소리였다.
앤 캐리 트레이드에 투자된 돈들을 빼서 지급할 수도 없다는 말이었다.
“일단 내가 해결해 볼 테니 대기해.”
“네, 알겠습니다.”
부하 직원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조상훈은 긴한숨을 내쉬었다.
“하…….”
마이클 조, 조상훈은 지난 며칠이 지옥과도 같았다.
십수 년간 한인사회에서 구축해 온 자신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나락을 가버렸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손해만 있으면 괜찮은데, 자금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다 보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윤도경 이 자식이…… 조금만 기다리라고.”
어떻게든 상황을 돌려야 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을 이 상황까지 내몬 복수를 해야 했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번 기회를 구걸하는 게 낫겠지.”
조상훈이 지금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한인회장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고민을 멈춘 조상훈이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려던 찰나.
똑똑똑-
다급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부하 직원이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대표님, SEC에서 우리 펀드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뭐?”
“규정을 어긴 게 발견되었다고…… 일련의 자료를 요청해 왔습니다.”
부하 직원은 그리 말하며 공문을 건넸다.
“제공되는 자료가 미흡할 시 압수수색까지 할 수 있다고 경고를 해 왔습니다.”
이어지는 부하 직원의 말에 서류를 확인하던 조상훈은 뒷골을 만지며 쓰러지듯 의자에 기대었다.
* * *
-윤의 부탁대로 케이스타에 투자금을 반환했습니다.
며칠 후, 마이애미로 돌아온 도경은 걸려온 랜스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랜스, 고맙습니다. 분명 제가 곤란한 부탁을 드린 것 같은데 흔쾌히 들어주셔서요.”
아무래도 사모펀드의 경우는 공모펀드와 다르게 환매일이 정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투자한 자금을 빼기 쉽지 않은 성격 때문에 중도 해지가 어려웠지만, 아예 방법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수익에서 수수료를 좀 더 떼는 페널티를 부과하며 여러 곳에서 환매를 해주었다.
-하하하, 내 의도를 잘 알아차린 것 같던데요?
랜스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기실, 그날 랜스는 도경 자신에게 기회를 준 것이었다. 내어줄 방도가 있긴 했지만, 도경의 부탁을 받고 마지못해 내어주는 그런 그림으로 말이다.
“그것도 감사드립니다.”
-천만에요. 우리 사업 파트너가 한인사회에서 영향력이 올라간다면 분명 우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랜스의 말에 도경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JPM에 돌아갈 이득은 한정적일 텐데요.”
-알고 있습니다. 그냥 내가 이렇게 도와줬으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뜻입니다.
도경은 이 세계가 가끔은 신기했다. 밖에서는 한없이 냉정해 보이는 사람들이 한 번의 도움을 잊지 않고 이렇게 도와주는 일들이 있는 세계.
어쩌면 자신은 이런 방식으로 돌아가는 이 세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입니다. 회사를 떠나 저는 랜스의 친구로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돕겠습니다.”
-하하하, 그 말이 필요했습니다. 참, 케이스타는 곧 문을 닫는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작은 소문도 크게 나는 월가라 제 귀에까지 들어오더군요. 한인 언론사에서 이 문제를 파기 시작했다고요.
일이 꽤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도경은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투자자들이 자신의 돈이 어디로 투자되는지 투명하게 알지 못하고, 이중으로 투자되는 방식은 옳지 않았고, 그런 자산운용사는 사라져야 했다.
그건 케이스타뿐만 아니라 어디든 통하는 진리였다.
-그리고,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꽤 큰 규모로 돈을 투자한 것 같은데 여러모로 성적이 좋지 않나 봅니다. 다른 펀드의 돈을 그리로 투입해 손실을 메꾸는 방식을 조금 썼나 보더군요.
“그건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겠는데요.”
-SEC(미국증권거래위원회)에서 조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최소 거액의 벌금, 최대는 마이클 조의 감옥행이겠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서 증권 범죄는 어마어마한 중범죄였으니까.
“잘됐습니다. 당분간은 한인들을 상대로 혹은 고객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는 곳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겠네요.”
-하지만, 그런 곳은 늘 다시 나옵니다.
“네, 그들이 다시 나와도 자리 잡지 못하도록 이번 기회에 우리 유성이 그 빈틈을 파고들까 합니다.”
-하하하, 역시.
수화기 너머 랜스는 크게 웃었다.
-윤을 응원하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시고요.
“네, 랜스. 이번 일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친 도경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랜스가 전한 소식을 들어보니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고는 다시 일을 시작하려던 찰나.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이지훈이 방으로 들어섰다.
“보스, 뉴욕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뉴욕한인회장님이신가요?”
도경의 물음에 이지훈은 놀란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말에 도경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겨 입었다.
“사무실로 내려가서 뵙겠습니다. 바로 가시죠. 꽤 큰 규모의 투자금을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도경이 그리 말하며 걸음을 옮기자, 이지훈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도경을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