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605)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06화(605/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06화
“스포츠에라의 주가는 횡보 중인데, 매집이 조금씩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며칠 후, 도경은 제이크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스포츠에라에 자금을 투입한 이후, 거의 매일 주가 동향에 대한 보고가 다였는데, 오늘은 특이점을 찾은 듯한 제이크의 말이었다.
“그래? 한번 볼까.”
도경은 PC 화면에 떠 있는 트레이딩 시스템을 통해 스포츠에라의 동향을 확인했다.
“주가가 지지되고 있네.”
“네, 22달러 선에서 지지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가 차트를 볼 때는 지지선과 저항선이 있었다.
지지선은 주가가 일정 수준으로 내려오면 더 이상 내려가지 않으려고 하는 저점을 선으로 그은 것이다.
다시 말해, 22달러 밑으로 내려가려고 하면 누군가가 주식을 사들이며 주가를 지지해 준다는 이야기였다.
저항선은 반대로 주가가 고점을 뚫지 못하고 저항을 받는 걸 이야기했다.
“매집도 들어오고 있고.”
차트상에는 거래량이 이전보다 더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들 슬슬 움직이는 것 같은데.”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우리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것 같고.”
물론 도경은 지금 스포츠에라를 매집하는 세력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빌이 펀드에서 펑크가 난 부분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 중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 세력이라고 하기엔 많지 않나?”
도경의 물음에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래량이 평소의 서너 배입니다. 아무리 큰 헤지펀드라도 단기간에 저 물량을 그대로 받을 순 없으니 여러 세력에서 들어온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
도경이 그리 말하자 제이크는 말뜻을 알고 싶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하하,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니까 부담스러운데.”
“아!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냥 말 그대로 다행이지. 스포츠에라에 확신을 가진 게 우리뿐만 아니라는 게 말이야.”
“확신이 없으셨습니까?”
“아니. 스포츠에라에 대해 나보다 더 확신을 가진 사람은 없을 거야. 내가 다행이라고 말한 이유는 하나야.”
도경은 제이크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저 좋은 회사니까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저도 이번에 보스의 말씀을 듣고 스포츠에라에 대해 알아보니 좋은 회사더군요.”
“맞아. 기존 경영진들이 너무 조심스러움을 택한 것이 지금의 위기를 불렀지만, 결국 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은 잘 이겨내고 있어.”
스포츠에라는 자신들의 매출의 40%를 차지하던 거대 회사가 빠져나갔음에도 새로운 브랜드들을 대거 입점시켰다.
“시장에서는 스포츠에라가 차기 유행 브랜드를 정한다는 말까지 돌더라고요.”
“그래?”
“네. 신생 브랜드들이 스포츠에라에 입점하면서,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 같은 곳에 바이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제이크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시장은 그 릴스 시장을 잡아야 해.”
릴스Reels는 인스타그램의 숏폼 플랫폼이었는데, 하나의 대명사처럼 되고 있었다.
유튜브 쇼츠와 틱톡과 더불어 3대 숏폼 플랫폼은 최대 90초 미만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숏폼 플랫폼에서 잠깐 바이럴Viral 된 노래가 빌보드 차트에 올라가는 세상이니까.”
“맞습니다. 한때 룰루레몬이 레깅스 시장을 잡았었는데 요즘은 또 알로를 입더라고요.”
제이크가 말한 브랜드도 숏폼에서 인기를 끌며 시장을 장악한 브랜드를 무섭게 노리고 있는 브랜드였다.
“글쎄. 요즘은 다시 룰루레몬으로 넘어가는 추세던걸.”
“그렇습니까? 제가 업데이트가 늦었네요.”
도경은 피식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이번에 온러닝 어닝서프라이즈 나온 것 봤지?”
“네. 봤습니다.”
스위스의 신성 러닝화 회사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아성을 위협하며 실적 발표에서 어마어마한 실적을 발표했다.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훌륭한 실적에 주식은 20% 넘게 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시장이 그런 시장이 되어버렸어. 스포츠에라 같은 도소매 업체들은 그 속에서 이득을 보면 되는 거고.”
“스포츠에라의 입장에서는 뺨 한 대만 때려줬으면 하고 있었는데, 상대가 때려줬네요. 그래서 정신을 차렸고요.”
제이크의 비유에 도경은 크게 웃었다.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는 비유였으니까.
“올림픽과 유로 같은 대회 시즌이 오면 스포츠에라의 매출은 더더욱 오를 거야. 어느 한 브랜드에 갇히지 않았으니 더 많은 제품이 고객에게 소개될 테고.”
“그때가 기대되는데요.”
“자, 그럼 우리도 포지션을 조금 늘렸으면 좋겠는데, 네 생각은?”
“현재 비중이 5%가량입니다만, 10%까지 늘려봤으면 싶습니다.”
“규모가 어느 정도지?”
“1억 4천만 달러(한화 약 1,900억 원) 규모입니다.”
“좋아. 1억 5천만 달러 선으로 맞춰보자.”
“네, 알겠습니다.”
도경의 지시에 제이크가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서자 도경은 차트를 바라보았다.
“이번 보상 기대해도 될까요?”
도경은 누가 듣고 있다는 걸 아는 듯 혼잣말을 내뱉으며 환하게 웃었다.
* * *
“총 2억 달러가량을 투입했습니다.”
워싱턴주 시애틀.
파미르 캐피털의 수석투자전략가 윌리엄 마셜은 부하 직원인 필립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필립은 원래 리테일 펀드를 관리하던, 포트폴리오 매니저였지만 빌의 지시로 강등되어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비중은?”
“포트폴리오에서 비중이 14% 정도가 되었습니다.”
“고생했어. 이상은 없었지?”
빌의 물음에 필립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이상은 없습니다만, 우리가 던져오는 물량을 다 받은 꼴이 되었습니다.”
빌은 굳은 표정으로 필립을 바라보았다.
“22달러에 거의 모든 지분을 확보했습니다만, 이게 시장에서 던져오는 물량을 다 받은 거라…….”
“그게 문제가 되나?”
“억지로 지지선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필립.”
빌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뻑뻑해진 눈을 비볐다.
그러고는 필립을 응시했다.
“뭐가 불만이야?”
“불만은 없습니다.”
“그럼?”
“납득이 가지 않을 뿐입니다.”
“거기 좀 앉아.”
빌의 손짓에 필립이 자리에 앉았다.
“그래, 미안하다. 그래도 이 펀드는 네가 운용 중이었던 건데, 너에게 설명을 하는 게 먼저였던 것 같네.”
빌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필립의 입장에서는 그간 이해 못 할 일투성이였을 것이다.
적어도 그에게는 어떤 방향으로 자신이 그리 지시한 것인지 설명해 줄 의무가 있었다.
“다만, 변명하자면 다음 달 환매 일에 맞춰서 수습하느라 바빴기 때문인 거고, 너를 무시한 건 아니야. 그러면 내가 왜 스포츠에라를 편입시키라고 했는지 설명해야겠네.”
빌은 도경에게 들은, 또 지난 며칠간 자신이 파악한 스포츠에라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제 알겠어? 내가 왜 너에게 그런 지시를 한 건지?”
필립을 바라보며 빌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는 다음 달이 펀드의 환매일이야. 어떻게든 지금은 펀드의 실적을 좋게 만들어야 해. 그래야 적어도 환매 요청이 줄어들 테니까.”
물론 손실을 모두 복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습을 하지 않으면 펀드의 미래는 없었다.
“이젠 유통업은 그런 방향으로 변했어.”
“…….”
“당장 전 분기에 어마어마한 매출을 기록한 업체도, 다음 분기에는 말도 안 되는 매출의 폭락을 겪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지금 시장은 그런 방향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불가능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처음 듣는 브랜드들이 모두의 입에서 회자되고, 또 당장 사러 달려가고, 누군가는 사지 못해서 분한 마음에 울면서 동영상을 올리는 시대야.”
“그래서 스포츠에라 같은 도소매 업체를…….”
필립은 이제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맞아. 우리가 투자한 카페브루어리 또한, 이제는 지위를 위협받고 있어. 나는 리테일 펀드에서 카페브루어리의 비중을 점점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한 브랜드의 가치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오늘은 카페브루어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내일은 원커피에 가고, 그다음 날은 던킨에서 커피를 마셔. 왜?”
빌은 필립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나도 경험해 보고 싶으니까.”
그저 짧게는 30초, 길게는 90초짜리의 동영상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넘나들며 내 경험을 공유하고,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직접 경험해 보길 권유하는 시대가 되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 당장 프라프치노를 팔려고 혈안이 된 카페보다, 휴대폰 안에서 누군가가 칭찬하는 가게에 가보고 싶어 한다고. 고객이 최상의 경험을 하도록 만들던, 우리가 알던 카페브루어리는 더 이상 없어.”
필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스포츠에라는 그런 면에서 최적이겠네요. 여러 브랜드가 입점해 있으니까요.”
“정확해.”
빌은 자신의 설명을 모두 알아들은 필립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소셜미디어 아무것도 안 하지?”
“그렇습니다.”
“뭐라도 해봐, 앞으로 네가 리테일 펀드를 운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 세계는 트렌드에 민감하잖아.”
빌의 말에 필립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에게 다시 펀드 운용을 맡기겠다는 듯 말해오는 빌이었다.
기실, 포트폴리오 매니저에서 끌어내려졌을 때는, 다시는 이 일을 맡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장의 누구도 이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그렇다면 수습에 모든 것이 달렸겠지.”
“열심히 수습하겠습니다.”
“그래, 그게 네가 너에게 주는 징계야.”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만큼 치욕은 없을 테니까.
이 바닥에서 포트폴리오 매니저까지 오른 사람은 이고(Ego, 자아)가 강한 사람들이었다.
자부심과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그들에게 강등은 그런 의미였다.
지이잉-
두 사람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할 때, 필립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다.
“급한 일인 것 같은데 확인해 봐.”
빌의 말에 필립은 양해를 구하고는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다.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던 필립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빌을 바라보았다.
“보스.”
“왜?”
“나이키에서 스포츠에라를 포함한 도소매 업체들을 초대한다고 합니다.”
빌은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시간이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재고를 털기 위해 다시 그들과 손을 잡으려나 보네. D2C 전략의 축소일 테고.”
도소매 업체들을 초대했다는 것은 결국 자신들이 직접 온라인숍을 통해 유통하는 정책을 축소하겠다는 뜻이었다.
“스포츠에라에게는 큰 이득이겠고요. 주가도 2% 이상 반등하고 있습니다.”
방금 나온 짧은 소식에도 주가는 강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보스는 정말 어디까지 보신 겁니까?”
“내가?”
빌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까 내가 시장의 누구도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거 수정해야겠어. 알아차린 사람이 한 명 있었어.”
“그게 누구…….”
“유성인베스트먼츠의 CEO이자 내 친구, 윤도경.”
빌의 말에 필립은 벙찐 표정을 지었고, 빌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우리를 위기에서 구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