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606)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05화(606/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05화
“어서 와.”
다음 날, 오후.
오전 비행기를 타고 동남쪽 끝인 마이애미에서 미국 대륙 서북쪽 끝에 있는 워싱턴주 시애틀로 날아온 도경은 파미르 캐피털의 본사로 향했다.
마중 나온 빌은 도경을 반갑다는 듯 맞이해 왔고,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잘 지냈지?”
“그럼, 덕분에 잘 지냈지.”
도경의 손을 맞잡은 빌은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들어갈까?”
두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서서 걸으며 빌의 사무실로 향했다.
“오늘은 숙소에서 쉬다가 내일 와도 되는데.”
도경은 장장 여섯 시간이 넘는 비행을 한 상태였다.
회사에서 제공한 전용기를 타고도 여섯 시간이 넘는 비행을 했는데, 공항에서 일반 여객기를 탔다면, 수속과 여러 절차 때문에 열 시간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목소리가 급해 보여서.”
도경이 그리 답하자 빌은 피식 웃었다.
“나름 인생 훌륭하게 살고 있는 것 같네. 도움을 청하는 전화 한 통에 마이애미에서 시애틀까지 달려와 줄 친구도 있고.”
빌의 말에 도경은 어깨를 으쓱이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병이 꽤 줄었는데.”
빌의 사무실로 들어서자 자리 뒤편에 있는 장식장을 바라보고는 한 소리 하는 도경이었다.
기실 이전에 방문한 빌의 사무실에는 장식장에 고급 위스키들이 즐비했었다.
“하하하, 몇 병은 집에 가져가서 마신 거고, 몇 병은.”
빌은 사무실 구석을 향해 고갯짓했는데, 빈 병이 몇 개 있었다.
이 업계는 이런 곳이었다.
자신의 판단 하나에 수십, 수백억 원 더 나아가 수천억, 수조 원을 움직이는 곳이었다.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일들이 많았고, 그럴 때는 그 순간 자신이 투자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술에 힘을 빌리거나 혹은, 만화책, 소설에 힘을 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마약과 같은 좋지 않은 것들에 힘을 빌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이것 참, 파미르 캐피털의 수석투자전략가가 술에 의존해서 투자한다고 소문이라도 날까 봐 무섭네.”
도경이 그리 말하며 자리에 앉자, 빌은 맞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니고, 알잖아. 저거 없으면 버티기 힘든 거.”
도경은 이해할 수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 있는 주식 차트들을 보며 정신병에 걸리지 않으면 다행이었으니까.
조금이라도 그곳에서 정신을 떼고, 잊기 위한 몸부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이해하지. 업계 사람이 이해를 해줘야지. 자, 그럼 이해심이 넓은 내가 파미르를 도와줄 것이 뭔지 말해봐.”
도경은 분위기를 풀려는 듯 그리 말했다. 기실, 빌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무언가 꽉 막힌 듯한 목소리로 도움을 청해왔기 때문에 다음 날 바로 시애틀로 날아온 것이다.
“이거 한번 볼래?”
빌은 테이블 위에 서류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내부 자료 아냐?”
“맞아. 우리가 운용 중인 펀드 중 리테일 펀드 현황이야.”
“내가 봐도 될까?”
“이미 어제 이사회와 리우에게 임시 승인을 받았어. 봐도 좋아. 네가 어디 가서 이걸 말할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빌은 이미 도경의 대외비 접근 인가를 받아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유성과 파미르는 공식적으로 협력사의 위치에 있었고, 파미르의 대표인 리우의 승인이 있었다면, 이사회의 임시 승인도 쉬웠을 것이다.
“그럼 봐도 되겠지.”
도경은 그리 말하며 서류를 들어 올려 읽어 내려갔다.
파미르 캐피털에서 운용 중인 펀드의 세부적인 지표를 들여다보기는 처음이었다.
“대단한걸, 운용 자금이 30억 달러나 되네.”
우리 돈으로 4조 740억 원이 넘는 규모였다. 그저 하나의 펀드가 이 정도의 자산을 운용 중이라면…… 메인 펀드의 규모는 알려진 것보다 더 큰 규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를 모두 살핀 도경은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빌을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인지는 알겠는데, 이걸 나에게 왜 보여준 거야?”
도경은 빌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최근 추세가 확실히 나쁘긴 한데, 파미르의 인재들은 이걸 벗어날 방법을 알고 있을 텐데.”
“알고 있지, 기다리는 게 답이라는 걸. 그런데 기다릴 수가 없는 상황이야.”
펀드의 월간 성적이 -8% 이상이나 된다는 것은 물론 커다란 파장이 있는 성적이었다.
아무리 사모펀드고, 리스크가 크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8%의 성적표를 받아서 든 고객들은 언제든 환매 요청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설마 환매일이 다가오고 있어?”
도경의 물음에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 후, 환매일이고 다음 달에는 마이너스가 찍힌 성적표를 고객에게 보내야 한다는 거지.”
사모펀드는 대개 유동성이 낮은 자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에도 수억 달러씩 거래가 되는 단타형 주식이 아닌, 장기적으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에 투자를 많이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환매 요청이 쏟아진다면, 펀드의 유동성이 급격하게 말라 버릴 수 있었다.
「부동산담보부증권 펀드사들 환매 요청에 몸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MBS라 불리는 부동산담보부증권 펀드를 운용 중이던 회사들은 베어스턴스의 파산 이후, 몰려드는 환매 요청을 처리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부동산들을 매각했다.
그러다 보니 워낙 좋지 않던 부동산 시장을 다시 폭락시키는 촉매가 되었고, 이후는 리먼 브러더스를 포함한 여러 금융기관이 파산했다.
“알다시피 리테일 펀드는 장기적인 매출 상승 흐름을 보고 투자해.”
유통업체에 투자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워런 버핏이 코카콜라를 장기적으로 들고 가는 이유도, 다른 유명 펀드 매니저들이 펩시나 맥도날드 혹은 코스트코와 월마트 같은 주식을 장기적으로 들고 가는 것도 그 이유였다.
워낙 변동성이 적고, 경기가 어려울 땐 제 몫을 해주는 기업들이었으니까.
“그런 리테일 펀드에서 단기간으로 주가를 상승시킬 만한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게 요지고?”
도경의 말에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윤, 네게도 얼마나 지금 내 말이 허황되게 들릴지 알고 있어. 그런 방법이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마침 주가가 단기간에 오를 수 있는 실적 시즌도 지난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 파미르의 리테일 펀드가 이 상황에 몰린 것도, 실적 시즌에서 가장 비중이 큰 주식들이 두들겨 맞다시피 했기 때문이었고.
“하지만, 내 생각엔 지금 이 위기를 벗어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윤 너뿐이야.”
빌의 말에 도경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려울 때 혹은 도움이 필요할 때 빌 네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당연히 도와야지.”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우리 유성, 정확히는 내가 운용 중인 메인 펀드에 편입을 한 기업도 마침 리테일 업체거든.”
도경의 말에 빌은 놀란 듯한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의 얼굴에는 흥미로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도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겠다 싶어서 들어간 거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제안을 하는 것이고 선택은 파미르의 몫인 거야.”
도경은 조심스레 스포츠에라에 관해 빌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스포츠에라?”
며칠 후, 파미르 캐피털의 윌리엄 마셜은 보고서를 들고 회사 최상층에 있는 리우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보고서를 읽은 리우는 의외라는 듯한 얼굴로 빌을 바라보았다.
“빌, 네가 좋아하는 종류의 종목은 아닌 것 같은데.”
리우의 말에 빌은 심호흡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언제나 리우의 앞에서 펀드에 대한 보고를 한다는 것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다방면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거대 스포츠웨어 업체들이 최근 재고 물량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두 기업 다 코스트코나 아마존 같은 홀세일 업체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으니까. 그 덕분에 스포츠에라의 주가도 하락했지.”
리우 샤오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답했다.
“그런데 스포츠에라의 매출은 약간은 줄어들었을지언정 회복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빌의 말에 리우는 계속해서 말을 해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집중했다.
“경영진들도 알고 있었던, 고질적인 나이키 의존증에서 벗어날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에라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매출에서 나이키와 같은 거대 스포츠웨어 업체들의 지분율이 너무 높다는 것을.
순항하고 있는 매출을 줄여가면서까지 그런 것들을 뜯어고치기에는 너무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거대 업체들이 먼저 자신들과의 거래를 끊다시피 했고, 그것은 스포츠에라에게는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처리할 기회가 되었다.
“스포츠에라는 최근 리복이나 호카오네오네, 퓨마와 같은 기업들과 거래를 늘렸고 또.”
빌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디다스가 돌아왔습니다.”
아디다스는 D2C 전략이 옳지 않다는 것을 꽤 빠르게 알아차리고, 전략을 변경 중이었다.
스포츠에라와 협약을 통해 많은 재고를 털어내고 있었다.
“더불어 온러닝, 올버즈와 같은 신생 업체들의 점유율이 오르고 있습니다. 이는.”
“스포츠에라에서 판매되는 물량이 늘어나고 있나?”
리우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고,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뉴발란스와 크록스 등과도 손을 잡았습니다. 오히려 매장까지 줄여가며 죽은 줄만 알았던, 스포츠에라에게는 또 다른 반전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스포츠에라는 나이키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었지.”
그도 그럴 것이 매출 비중의 40%가 나이키 제품에서 나왔으니까.
나이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경영을 해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들을 매장에 입점시켰다.
“이와 같은 변화를 가장 반기는 것은 고객들입니다.”
빌의 말에 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험적인 측면에서 나이키 일색이던 스포츠에라의 매장보다는 크록스, 리복, 퓨마, 뉴발란스 같은 기존 유명 브랜드부터 온러닝, 호카오네오네 등 새로운 브랜드들이 즐비한 매장으로 자리 잡으니, 흥미를 느끼며 방문하는 고객이 늘었습니다.”
경험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는 쇼핑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경험이었다.
“리서치팀의 예상으로는 2분기 실적이 당초 예상했던 전망치보다 더 높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더불어 나이키가 D2C 전략을 포기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고요.”
빌은 그리 말하고는 리우를 바라보았다. 리우의 얼굴에는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단기적으로 주가가 상승할 재료도 있고, 장기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추세로 접어드는 기업이다. 이거군.”
“그렇습니다.”
“아무리 봐도 빌, 너의 취향은 아닌 것 같은데.”
“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빌이 덤덤하게 이야기하자 리우는 놀란 표정으로 빌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게 윤에게 대외비 자료 접근 인가를 달라고 했던 거군.”
“네, 제가 아는 사람 중 우리가 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조언을 해줄 외부인은 윤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빌이 확신을 하듯 이야기하자 리우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빌, 정말 많이 변했구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와줄 친구도 생겼고 말이야.”
“리우 덕분입니다. 제게 윤도경이라는 친구를 소개해 주신 것도 리우니까요.”
“하하하, 글쎄. 사람의 우정이란 게 내가 이어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어쨌거나 앞으로 시장을 이끌어갈 두 사람이 친구가 된 것은 우리 파미르에게도 좋은 일이지.”
리우는 그리 말하며 보고서를 들어 올려 빌에게 건넸다.
“진행해도 좋아. 네게 맡긴 일이니, 네 방식으로 해결해 봐.”
리우가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자, 빌은 보고서를 건네받고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