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609)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09화(609/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09화
“걸을 수 있겠어?”
Q&A 세션이 끝이 나고, 도경은 스테판과 함께 행사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스테판은 온몸이 후들거리는 것인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저기 좀 앉자.”
도경은 스테판을 부축해 벤치에 앉혔다.
“잠시만 기다려.”
그러고는 어디론가 뛰어갔다 온 도경의 두 손에는 물 한 병이 들려 있었다.
뚜껑을 딴 도경은 스테판에게 물병을 건넸다.
“좀 마셔.”
“감사합니다. 보스.”
스테판은 떨리는 손으로 물을 받아서 들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휴, 이제 좀 살겠네요.”
단숨에 물 반 통을 들이켠 스테판은 길게 심호흡을 하며 그리 말했다.
“하하하, 워렌 버핏에게 두 번 질문했다가는 사람이 죽겠네.”
“말도 마세요. 진짜 저는 제 심장이 그렇게 빨리 뛸 수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하하하.”
도경은 크게 웃으며 옆자리에 앉았다.
“네가 그런 기회를 얻게 되어서 기쁘네.”
도경은 진심이라는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누군 평생을 이 바닥에서 활동해도 워렌과 인사도 나누어보지 못하는데, 스테판 너는 좋은 기회를 얻었어.”
“모두 보스 덕분입니다. 보스가 아니었다면, 제 평생 이런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스테판의 말에 도경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말해주니 뿌듯한걸, 널 데려오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야.”
“그럼 그동안은 아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하하하, 그건 네 생각의 자유에 맡길게.”
스테판은 피식 웃다가 이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지금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워렌의 입에서 우리가 투자한 상품이 나와서입니다.”
스테판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전, 행사장에서 워렌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조금 전, 내게 13F 공시를 확인하냐고 물었죠? 제가 관심을 가지는 투자가의 포트폴리오에도 처브가 있더군요. 아마 그 친구도 이 자리 어딘가에서 행사에 참여 중일 겁니다. 내가 초대를 했거든요.’
“우리를 이야기한 걸까요?”
스테판은 설마 워렌 버핏 같은 모두의 스승이 유성인베스트먼츠의 포트폴리오를 파악하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쩌면 워렌이 말한 이들이 자신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스는 저보다 많은 13F 공시를 확인하셨으니 아실 것 같은데요. 그리고 보스를 이곳으로 초대한 초대장은…….”
스테판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거물들의 13F 공시를 확인했지만, 처브가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곳은 없었어.”
물론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처브를 포트폴리오에 포함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막 떨리기 시작하더라고요.”
“하하하, 꿈 깨. 물론 우리일 수도 있지만, 기대를 하면 실망이 큰 법이니까. 자, 이제 일어날 수 있으면 숙소로 가자고. 오후에 돌아가야지.”
“네, 알겠습니다.”
도경의 말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미스터 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도경과 스테판은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한 백인 남자가 뛰어오고 있었다.
“미스터 윤.”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도경을 불렀고, 도경은 남자가 숨을 고를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하, 죄송합니다. 한참 찾아다녔습니다.”
“저를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도경의 물음에 남자는 아차 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버크셔 해서웨이의 홍보팀 팀장 션 카터라고 합니다.”
상대가 건넨 명함을 받은 도경은 놀란 얼굴로 션을 바라보았다.
“저를 다급하게 찾으셨다고요?”
“네, 워렌이 모셔 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요?”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 워렌, 워렌 버핏입니다.”
션의 입에서 다시 한번 확인 사살을 하는 듯한 말이 나오자 도경과 스테판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 *
불과 몇 년 전, 도경은 날 때부터 자기 손에는 행운의 네잎클로버가 쥐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행운이란 것은 자신의 편이었던 적이 없으니까.
냉소적이거나 염세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자신의 운을 그렇게 평가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풀밭에서 뛰어놀 때도, 친구들의 손에는 네잎클로버가 들려 있었지만, 자신의 눈에는 그렇게 흔한 네잎클로버가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소풍 때도 보물 한 번 찾아본 적이 없지.”
“네?”
“아, 아니야.”
“보스도 많이 긴장하셨나 보네요. 갑자기 한국말을 하시길래 놀랐습니다. 꿈은 아니겠죠?”
옆에서 들려온 스테판의 목소리에 도경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우리에게 커다란 행운이 찾아온 것 같네.”
그래서 도경은 자신의 길을 택했다.
행운 같은 걸 바라기보다는 그저 묵묵히 자신이 할 일만 하자고.
행운을 믿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노력을 믿었다.
하지만, 메시지가 자신의 휴대전화에 찾아온 그날부터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어린 시절 친구들의 손에 들려 있던 네잎클로버보다 더 커다란 네잎클로버가 쥐어졌으니까.
그리고 오늘, 다시 한번 그 기분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후, 긴장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미스터 윤, 오랜만입니다.”
“워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스테판!”
워렌은 크게 웃으며 스테판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미스터 윤의 팀원인 것은 몰랐네요.”
“혹시 제가 한 질문이 무례했다면…… 용서하십시오.”
“하하하, 아닙니다. 덕분에 많은 주주도 기뻐하지 않았습니까? 앉을까요?”
버크셔 해서웨이의 홍보팀 팀장이라던 션을 따라 두 사람은 버크셔 본사 빌딩의 회장실로 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워렌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주어졌다.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15분 후에 이곳을 떠나야 해서요. 일정이 있거든요.”
워렌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15분은 자신의 15분과 달랐으니까.
그의 15분을 자신에게 투자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13F 공시에서 윤이 이끄는 유성의 공시를 보았습니다.”
워렌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스테판은 놀란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았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년 저를 돕는 팀에서 눈여겨볼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보고하거든요. 그 사이에 있더군요. 처음에는 익숙한 이름이다 싶었는데, 기억해 냈습니다. 찰리의 장례식장에서 본 적이 있죠.”
“그렇습니다. 리우와 함께 갔었습니다.”
“리우는 잘 지내나요? 찰리가 참 좋아하던 친구였는데.”
“물론 잘 지내고 계십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워렌의 얼굴에는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인자함은 오간 데 없이 마치 맹수와 같은 굳은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처브를 왜 포트폴리오에 편입한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 물음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질문은 제게 하실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제 옆에 앉은 친구가 처브를 추천했거든요.”
도경이 자신을 지목하자 스테판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펀드에 편입을 추천한 것은 자신이 맞았다. 하지만, 모든 결정은 도경이 내렸다.
그리고 무려 워렌 버핏의 앞이었다.
자신의 공으로 해도 될 일인데, 도경은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테판에게 물어봐야겠군요.”
“그, 그게…….”
스테판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 길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것인지 입을 열었다.
“당시에 제가 처브를 추천했을 때,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가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스테판이 설명을 시작하자 워렌은 집중했다.
“해상무역이 위협받던 시기였고, 저는 보험사가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처브가 해상보험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었고요.”
“그 이유가 다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안만 드렸을 뿐 승인은 보스가 하셨습니다.”
스테판이 그리 말하자 워렌은 고개를 돌려 도경을 바라보았다.
“포트폴리오 매니저로서 왜 승인을 한 것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워렌의 질문이 자신을 향하자 잠시 고민을 하던 도경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주식이라는 큰 틀의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회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워렌은 계속 이야기해 보라는 듯 도경의 말에 집중했다.
“주식이 다른 자산과 다른 것은 배당금이 있다는 것입니다.”
채권의 경우는 돈을 빌려주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매년 이자를 지급받았고, 원금도 보장받았지만, 미국의 국채 가격이 잘 팔려도, 미국의 재정이 상대적으로 좋아지더라도 그에 따른 이득은 없었다.
하지만, 주식은 달랐다.
“처브는 매년 순이익이 상승 중이었습니다. 물가가 오르니 당연히 기업의 순이익도 상승하는 좋은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또 한 가지. 늘어나는 순이익만큼 배당율도 늘리고 있었죠. 그래서 좋은 자산이라 생각했습니다.”
배당금은 기업의 이익 일부를 주주에게 현금으로 분배하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게 다입니다.”
도경의 말에 워렌은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다 이내 크게 웃었다.
“눈빛을 보니 사실이군요. 좋습니다. 믿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처브를 산다는 소문을 주워들은 세력일 수도 있다고 잠시 윤을 의심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다만, 이번에 버크셔 해서웨이가 처브의 주식을 매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놀랐습니다.”
“훌륭한 회사지요. 윤이 말했던 대로 말입니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윤과 생각이 같습니다. 벌어들이는 돈만큼 주주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기업이야말로 공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이지요.”
워렌은 그가 늘 말해왔던 그대로의 투자 철학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재미있네요.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말입니다.”
“과찬이십니다.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다.”
도경의 말에 워렌은 말을 여러 번 곱씹더니 크게 웃었다.
“그저 행운이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자신을 너무 낮출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워렌은 그리 말하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리고 요즘같이 밈 스톡(Meme Stock)과 기술주가 대세가 되는 세상에서 그런 생각을 가진 투자자를 만났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고요.”
밈 스톡은 온라인상에서 유행을 타는 주식을 이야기했다.
“윤, 내년에 이 자리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저를 다시 초대해 주시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그저 초대가 아니라, 연사로 나와주었으면 합니다.”
워렌의 제안에 스테판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도경을 바라보았고,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기회를 주신다면,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하, 아주 좋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서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워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도경과 스테판도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 앞으로도 당신의 소식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 오마하까지 제 이름이 들리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것은 내 전화번호입니다. 언제든 연락해도 좋습니다.”
도경은 워렌이 건네온 명함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명함도 정중히 건넸다.
“내년에 이곳에서 윤이 하게 될 연설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스테판!”
워렌은 여전히 잔뜩 긴장한 스테판을 바라보았다.
“스테판에게도 내 명함을 주겠습니다. 언제든 연락해도 좋습니다.”
워렌은 스테판에게 명함을 건넸는데, 스테판은 여전히 꿈이라고 생각하는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명함들 받아 들었다.
“그럼 두 사람 모두 남은 시간 오마하의 정취를 즐기세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렇게 워렌이 떠나고, 도경은 옆에 선 스테판을 바라보았다.
워렌이 건넨 명함을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 두 손으로 들고 그대로 얼어버린 스테판이 있었다.
“정신 차려.”
“네, 네?”
스테판은 혹시라도 누가 뺏을까 재빠르게 명함을 지갑에 넣었다.
“갈까?”
“네, 가야죠. 그런데 보스.”
“왜?”
“방금 워렌이 보스를 내년에 연사로 초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내년에 저도 또 데려오실 거죠?”
스테판의 물음에 도경은 크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때 네가 일이 없다면.”
도경이 그리 말하자 스테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보스, 빨리 마이애미로 돌아가죠. 일 안 밀리게 빠르게 처리해야겠습니다.”
스테판이 그리 말하며 먼저 앞서가자 도경은 못 말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