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611)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11화(611/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11화
“저도 밀린 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같이 출장을 가게 되었네요.”
유럽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
노트북을 펼쳐놓고 자료를 살피던 도경은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다현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일이 밀려 있어요? 내가 아는 다현 씨는 일을 미룰 사람이 아닌데.”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한다현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도경에게 답답함을 느끼고는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다른 팀원들에게는 일이 밀리는 일이 없다면 오마하에 데려가겠다고 하셨다면서요?”
“하하하.”
도경은 이제야 한다현이 왜 저리 뾰로통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번에는 일이 많았잖아요.”
한다현은 유럽에 투자한 은행과 인도 출장 이후 유성배터리 측과 인도 현지에 공장을 짓는 투자 건 때문에 협의를 진행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오마하에 가서도 일할 수 있었어요.”
“글쎄요. 늘 누구나 마음은 그렇겠지만, 다현 씨가 갔다면 제대로 즐길 수 없었을 거예요.”
“…….”
“할 일을 남겨두고 다른 것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저는 다현 씨가 그런 불편한 상황에 놓이는 걸 원하지 않았어요.”
“예전부터 생각했는데요.”
한다현은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았다.
“보스는 말을 너무 잘하세요. 그래서 가끔 화가 나다가도 누그러져요…….”
도경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당연히 다현 씨를 제일 먼저 생각했지만, 사심이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이해해 주세요.”
“이해는 하죠! 그냥…… 푸념하고 싶었어요.”
“하하하, 그래도 이렇게 같이 출장을 가니 좋네요. 요즘은 집에서도 서로 얼굴을 못 보는 일이 많으니까요.”
한다현은 한국과 유럽에 있는 사업부와 일을 진행하다 보니 시차가 완전 정반대였다.
그래서 도경이 잠자리에 들면 퇴근하거나 혹은 집에서도 일했고, 도경이 일어나 출근할 때 그녀는 한밤중이었다.
“사실 저도 그래서 화가 누그러졌어요. 함께 출장을 가자고 하셨을 때요.”
한다현은 그리 말하며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어 건넸다.
“이게 뭐예요?”
도경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간 유성그룹 CEO 세미나에서 나온 의제들이나 TO의 발언을 종합해서 요약해 본 거예요.”
도경은 놀란 표정으로 한다현을 바라보았다.
“이걸 다 정리하셨어요?”
“그럼요. 보스를 보좌하는데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죠.”
도경은 서류를 받아 들고는 노트북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는 처음부터 다 보고 있었거든요.”
도경의 노트북에는 지난 유성그룹 CEO 세미나의 회의록이 떠 있었다.
몇십 년의 분량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는데, 한다현이 요약본을 주니 훨씬 시간이 요약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마워요. 일도 바쁠 텐데 이걸 또 정리했네요.”
“이것도 제 일이에요. 그나저나, CEO 세미나라니 꿈만 같네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CEO로 참석하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보좌로라도 참석할 거라고는 상상해 보지 않았거든요.”
특히 투자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랬다.
나는 그저 자산에 투자하는 걸 업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했지, 경영에 참여하고 더 나아가서 그룹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나간 일이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계열사의 CEO가 되니 별일이 다 있네요. VIP의 순방에도 초청받더니…….”
도경은 지난 시간이 꿈만 같았다.
“제가요.”
도경은 조심스레 한다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분명 어릴 때 그러니까……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저는 참 운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도경이 속마음을 이야기하자 한다현은 가만히 도경의 말에 집중했다.
“내가 가진 운은 남들보다 못하구나. 그래, 그럼 나는 더 열심히 해야겠네. 이렇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다 보니 운이라는 것이 갑자기 생기더라고요.”
한다현은 흐뭇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느꼈어요. 운이라는 건 결국 늘 내 곁에 있었다는 걸요.”
도경은 최근 들어 워렌 버핏과 만나고 여러 사건을 겪으며 확실하게 느꼈다.
“결과요?”
“네, 언제든 나를 향한 기회는 늘 있었어요. 그런데 어린 시절 저는 운을 탓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거죠.”
“…….”
“그런데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모든 것들이 따라오더라고요. 기회는 늘 나를 위해 있었던 거죠.”
도경은 허황된 시간을 보냈던 어린시절이 참 야속하다고 생각했다.
“그걸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나에게도 여러 운이 더 많이 있었을 텐데요.”
도경이 그리 말하자 한다현은 조심스레 입술을 뗐다.
“제가 VC에서 일할 때 정말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만났어요.”
한다현은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도경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회사 가치를 1조 원 이상으로 키운 CEO들도 하나같이 운이 좋았다고 말하거든요. 보스처럼요.”
“…….”
“재미있는 건 그렇게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을 초청해서 새롭게 회사를 차리는 CEO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면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해요.”
한다현의 말이 도경은 무엇일지 알고 있었다.
“되도록 창업하지 말라.”
도경이 그리 받아치자 한다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분들은 너무 그 길이 고되고 힘들고, 또 행운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현 씨의 생각은 다른가요?”
“네, 저는 VC에 있으면서, 엄청 성공하는 CEO들도 보았고, 빠르게 실패하는 CEO들도 보았어요. 둘 사이엔 가장 큰 차이가 있었어요.”
도경은 흥미롭다는 듯 한다현의 말에 집중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 모두 정말 자기 자리에서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었어요. 반대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너무 일 외적인 것에 많이 신경 쓴 것 같아요.”
한다현은 굉장히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누군가의 실패와 성공을 함부로 평가한다는 건 그런 일이었으니까.
“물론 그들에게도 다른 이유는 있었겠지만, 제가 본 사람들은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보스와 다른 생각을 해요.”
한다현은 진지한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기회를 잡을 수 있고, 그건 100% 행운의 결과가 아니라고요.”
도경은 자신이 행운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고 말했지만, 한다현은 다르게 생각했다.
“실력이에요. 적절할 때 그 행운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말이에요.”
“와우, 큰 위로가 되는 말인데요.”
어쩌면 도경이 가장 바라던 말이었다.
한 번도 누구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자신에 대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알아봐 준 것이 한다현이라는 게 너무 기분 좋았다.
“안 되겠는데요. 오늘 도착하면 쉬려고 했더니, 다현 씨와 갈 맛집이나 좀 찾아봐야겠어요.”
도경은 느린 기내 와이파이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한다현은 그런 도경의 모습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 * *
“대표님.”
이틀 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성그룹 CEO 세미나의 첫날이 밝았다.
행사장으로 온 도경은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윤 대표.”
상대도 환하게 웃으며 도경을 맞이해 주었는데, 유성투자증권의 대표 류태화가 그 주인공이었다.
“호텔에 안 계시길래 한참 찾았습니다. 오늘 오셨다고요.”
도경은 이틀 전 도착해 회사에서 잡아준 숙소에서 묵었는데, 이곳에는 유성그룹의 모든 계열사 CEO들이 묵고 있었다.
하지만, 도경이 찾던 류태화는 보기 힘들었는데, 다른 곳의 일정을 거치고 프랑스로 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네, 입국하자마자 온 겁니다.”
“피곤하시겠습니다.”
“하하하, 윤 대표보다는 덜 바쁘죠. 소식은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자주 연락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런 뜻에서 말한 것은 아닌데, 조금 자주 연락은 해야겠다 싶네요.”
류태화는 그리 농담하고는 도경의 옆에 선 한다현을 바라보았다.
“한 이사,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죠?”
“그럼요. 다현 씨는 어떻습니까? 우리 회사에 있을 때보다 더 재미있나요?”
류태화의 물음에 한다현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유성투자증권에서 일이 조금 더 즐거웠던 것 같네요.”
“어허, 그렇게 말하면 우리 윤 대표가 섭섭해할 건데.”
“인사고과에 반영할 예정입니다. 대표를 보좌하는 자리에서, 회사를 험담하다니요.”
두 사람의 주고받는 농담에 도경은 장단을 맞춰주기 시작했다.
“대표님도 참.”
“그나저나 일정이 많이 바쁘셨나 봅니다.”
도경은 일 얘기를 시작했고, 류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벨기에에 있는 증권사 다녀왔습니다. 우리와도 제휴를 하고 있는 곳이라 그곳 상황을 보고 우리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고민을 했고요.”
유성투자증권은 세계 각지의 주식투자 중개를 했다.
특히 유럽 주식 투자에 대한 중개도 했는데, 벨기에도 그 시장 중 하나였다.
“벨기에 사정이 매우 좋지 않더군요.”
“들었습니다. 현재 부채가 위험 상황에까지 치달았다고요.”
벨기에는 유럽연합의 수도 브뤼셀이 있는 국가였다.
지정학적으로 유럽연합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도시이자 나라였는데, 최근 들어 그곳의 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벨기에는 잘사는 나라였기 때문에 신용평가사들에 의해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받는 국가였지만, 최근 들어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벨기에는 상당히 잘사는 나라에 속했다.
특히 민간 소비가 상당히 견고한 나라였고, 유럽연합 내에서도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을 하는 국가로서 GDP(국내총생산)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국가였다.
“부채 문제 때문이군요.”
도경의 말에 류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벨기에의 GDP 대비 부채율은 100%입니다.”
다시 말해, 국내 총생산량과 부채가 동일하다는 이야기였다.
“지구상에 이런 국가가 한 곳 더 있죠.”
“미국.”
“그렇습니다. 미국도 부채비율이 GDP의 100%죠. 그런데 두 나라는 다른 게 있어요. 미국은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다는 거죠.”
다시 말해, 벨기에는 미국처럼 달러를 마음껏 찍어낼 수 없는 순수 부채국이라는 나라였다.
“1인당 높은 소득 수준과 국채 발행이 전부 아주 오래 지나고 나서 만기 되는 구조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버텨왔었는데, 이제는 그게 힘들어졌습니다.”
전 지구를 덮친 인구 고령화 문제 때문이었다.
“만성재정적자를 그동안 높은 소득 수준으로 유지해 왔는데, 이제는 일을 하는 세대가 줄어버려 그것도 힘들어졌고 또 정치적인 문제가 가장 크고요.”
류태화의 설명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유럽을 덮친 경제위기는 경제 강국인 벨기에까지 위험에 놓이게 만들고 있었다.
“어쨌거나, 유럽에 한다현 이사가 같이 온 것을 보니 투자를 하려나 보죠?”
“그럴 생각도 있었습니다만, 조금은 보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도경도 처음에는 이 기회에 유럽에서 투자 거리를 찾겠다고 마음먹고 왔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들에 생각을 달리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지금은 보류하고, 침체가 전환될 요소가 보이면 투자에 나서는 게 좋아 보이고요.”
“조언 감사드립니다. 대표님께는 늘 얻어만 가네요.”
“하하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 주름잡은 기분인데.”
류태화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갈 때.
“이게 누구야.”
도경과 일행을 향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도경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류 대표, 반가워.”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도경도 낯이 익은 얼굴이 다가오며 류태화와 인사를 나누었고, 잠시 후 그 사람은 도경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우리 그룹에서 가장 핫한 대표님이네. 반갑습니다. 유성네트웍스 대표 한성현입니다.”
상대는 유성그룹에서 한태오 다음으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성인베스트먼츠의 대표 윤도경입니다.”
“잘 알지. 나도 듣는 귀가 있거든요.”
한성현은 너스레를 떨며 그리 말하고는 도경의 옆에 선 한다현을 바라보았다.
한다현은 잔뜩 긴장한 듯한 얼굴로 서 있었다.
“다현이, 오랜만에 보네.”
“네, 네. 안녕하세요.”
“이런 자리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젠 공개적인 석상에도 자리하나 봐.”
“…….”
“그 염치라는 게 있으면 말이야…….”
한성현이 비아냥대듯 말하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을 제지했다.
“유성인베스트먼츠의 대표를 보좌하는 자격으로, 또 이사의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런 말씀은 삼가주시는 게 어떨까요?”
도경이 그리 말하자 한성현은 잠시 굳은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그러고는 행사장이 떠나가랴 크게 웃었는데, 모두의 시선이 이곳으로 향했다.
“하하하, 쏘리쏘리. 미안합니다. 내가 잠시 개인감정에 치우쳤네. 회장님의 총애를 받는 윤 대표를 화나게 하면 안 되지. 그래요. 좋은 시간들 보내고, 다현이도 나중에 보자.”
한성현이 그리 말하고 자리를 옮기자 류태화는 입을 열었다.
“SH는 여전하군요.”
류태화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룹에서 유난히 한다현을 챙긴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또 회장이 직접 자신에게 윤도경이 아닌 사람에 대한 질문을 던진 건 한다현이 처음이었으니까.
직접적으로 듣거나 묻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있었다.
그런 류태화의 입에서 사람의 이름이 이니셜로 나왔다는 것은 단 하나.
한성현이 오너가의 사람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한성현은 유성그룹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한태오의 첫째 아들이기도 했다.
도경은 고개를 돌려 바르르 떨고 있는 한다현을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한다현은 도경과 눈을 마주치자 사과부터 해왔는데, 도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과할 일 없습니다.”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굳은 얼굴로 한성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과할 사람은 따로 있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