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614)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14화(614/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14화
런던 피커딜리의 화려한 거리 한복판, 리츠 호텔의 지하에는 은밀하고도 매혹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그곳은 리츠 클럽 카지노,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의 결정체였다.
붉은 카펫과 금빛 장식이 어우러진 메인 게임 홀은 마치 귀족의 대저택을 연상케 했다.
조명 아래에서 빛나는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공간을 은은하게 비추고, 은은한 재즈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카지노의 활기가 감돌고 있었다.
챠르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룰렛 휠 위를 공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 룰렛 테이블 앞에 한 동양인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눈은 날카롭고 신중했으며, 손끝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는 조용히 칩을 테이블에 올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룰렛 휠을 지켜보았다.
“No More Bet.”
딜러가 더 이상 베팅을 할 수 없음을 알리는 말을 외치자 모두의 시선이 휠 테이블 위를 열심히 돌고 있는 작은 공으로 향했다.
띵띵띵-
휠 위를 빠르게 돌던 공이 한 곳에 멈춰 서자 종이 울리며 딜러는 당첨 번호를 외쳤다.
남자가 베팅한 번호에 정확히 멈춰 선 공에 딜러와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손뼉을 쳤다.
남자는 자신의 앞에 많은 칩이 놓였음에도 기뻐하지 않고 그저 무표정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서 그만큼의 돈을 따놓고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네가 유일할 거야.”
그때, 다른 동양인 남자가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이곳이 아무리 부자들만 올 수 있는 클럽제 카지노라고 하더라도, 돈을 땄는데 그런 표정으로 있으면 다들 의아해한다고.”
“시끄럽고, 어떻게 됐어.”
“여기.”
남자의 말에 다른 남자는 서류 봉투를 건넸다.
“좀 걸을까? 네가 돈을 따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향했는데.”
그 말에 남자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먼저 떠나자, 다른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칩을 보관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뒤를 따라나섰다.
“성현이 너 뭐 기분 안 좋은 일 있었냐? 아버지 보러 간다더니.”
뒤늦게 따라붙은 남자는 상대를 향해 말했는데, 조금 전 무표정하게 룰렛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는 유성네트웍스의 대표이자 유성그룹의 후계자 한성현이었다.
“재민아.”
“데이비드.”
“뭐?”
“내 이름 이제 박재민이 아니고, 데이비드 팍이라고. 한국 떠난 지가 언젠데.”
상대가 그리 답하자 한성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든 어쨌든, 그런 거까지 궁금해하고, 내가 답해야 할 사이가 아니잖아. 우리가.”
“그래도 동업자인데 조금 섭섭한데.”
“일 얘기나 하자고.”
한성현은 라운지에 있는 바에 앉아 위스키를 두 잔 주문하고는 서류 봉투를 열었다.
“룩셈부르크에 쉘 하나 만들어서, 양조장 인수했다.”
Shell corporation.
데이비드가 말한 쉘은 일명 페이퍼 컴퍼니라 부르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였다.
서류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회사와는 달랐다. 분명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존재 자체는 불법이 아니었다.
“저번에 네가 말한 거기 말이야.”
하지만, 사용 방식에 따라 불법적인 일을 할 수도 있는 종류의 법인이었다.
“또, 룩셈부르크야?”
현재 MOU를 체결한 샤또 데 브륌이라는 꼬냑 양조장도 룩셈부르크에 만든 쉘 코퍼레이션을 통해 인수한 것이다.
데이비드가 이번에도 자신이 요청한 다른 국가가 아닌, 룩셈부르크를 이용했는지 궁금한 한성현은 입을 열었다.
“왜, 케이맨이나 버진 아일랜드가 아니고?”
한성현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두 국가 모두 페이퍼 컴퍼니와 조세회피처로 유명했다.
“아무래도 유럽 내의 국가가 좋을 것 같아서. 유럽 내에서는 오히려 그 두 곳보다 안전할 수 있어.”
룩셈부크르는 유럽에 있는 아주 작은 대공국이었다.
경제적, 법적 안정성과 더불어 금융 비밀 유지로 유명한 국가였고, 앞서 한성현이 말한 두 국가와 더불어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국가였다.
“그래, 그건 재민…… 아니, 데이비드 네가 전문이니까.”
한성현은 한결 누그러진 듯한 말투로 말했다.
“어쨌거나, 300만 유로에 인수했는데, 이번엔 얼마로 할 생각이야?”
“얼마까지 해야 안전하겠어?”
한성현의 물음에 데이비드는 잠시 고민하다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하고 싶은 만큼 해. 그걸 수습하는 게 내 일이니까.”
“천만 유로도 가능한가?”
그 말에 데이비드는 휘파람을 불었다.
“세 배나 넘는 금액을 이야기할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나 돈이 급해? 그럴 위치는 아니잖아.”
“그럴 위치야.”
한성현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데이비드의 시선을 느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노인네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더라고. 요즘은 출근하는 날도 적고.”
“그래?”
“요즘 들어 자꾸 자신 이후의 일을 준비하는 것 같은 일들을 많이 해. 이번에 회사 부회장들 다 나가리 됐다.”
“어, 뉴스로 봤어. 부회장들 단체로 사표를 냈다며?”
“그런데 아직 후계 구도는 정하지 않았어.”
“너랑 동생?”
데이비드의 물음에 한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요즘 헛바람이 들었는지, 자꾸 증권에 관심을 가지시네.”
“증권에 관심을 가진다고? 지분 때문인가?”
데이비드가 의문 섞인 목소리로 말해오자 한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 동생이 거기 있다고 했지?”
“누가 동생이야?”
한성현은 금방이라도 쏘아붙일 듯한 눈빛으로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한 대표, 어차피 이 바닥에서 재벌계랑 한 발 걸치고 있으면 다 들어.”
물론 유성그룹에서는 쉬쉬하고 있었지만, 재벌가와 한 발 걸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떠도는 이야기였다.
한태오의 혼외 자녀가 있다고.
“거긴 딸이라며? 그냥 유성투자증권이 요즘 잘나가잖아. 남들 말로는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증권사가 탄생할 거라던데.”
국내에서 유성투자증권의 평가는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매출과 실력을 보여주니 가능한 것이었다.
“윤도경인가? 그 인간이 잘하고 있다며?”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경이 있다는 게 중론이었다.
“윤도경 밑에 네가 말한 아버지 딸이 있어.”
“저런, 네가 왜 심란해하는 줄 알겠네. 그룹에서 제일 잘하는 놈 밑에다가 혼외자식을 보내놓은 걸 보면.”
“그 얘긴 그만하고, 어쨌거나 돈이 필요해. 앞으로를 준비해야 할 것 같으니까.”
기실 한성현이 접점이 없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양조장들을 인수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과정에서 비자금을 만들어 앞으로 있을 후계 구도 싸움에서 실탄으로 쓸 예정이었다.
“천만 유로라…… 뭐, 해볼게.”
데이비드의 말에 한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 바닥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소문난 브로커다운 자신감이었다.
“대신 위험도가 올라가니까, 수수료도 올라가는 거 알지?”
“알아. 차질 없도록만 준비해.”
“역시, 그렇게 시원해서 내가 같이 일하는 거야. 알지?”
데이비드의 말에 한성현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한 대표, 칩은! 그렇게 따놓고 칩은 안 가져가냐?”
“너 해.”
한성현은 그리 말하고는 걸음을 옮기며 가버렸고, 데이비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잔돈은 관심 없다는 건가? 뭐, 나야 그런 잔돈까지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고맙게 받을게.”
데이비드는 미소를 지으며 카지노로 향했다.
* * *
“브랜디는 위스키와 다릅니다.”
한편, 도경과 한다현은 한태오의 지시를 받고 도착한 양조장을 견학하고 있었다.
“브랜디는 와인을 만들어 증류를 한 술이지요. 대표적으로 꼬냑과 아르마냑이 그에 속하고, 위스키는 보리나 밀, 옥수수 같은 곡물을 발효시켜 증류한 술이고요.”
도경과 한다현은 이곳을 견학하는 신혼부부가 되어 양조장을 견학하고 있었는데, 다른 관광객들과 한 팀이 되어 직원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신분을 밝히고 견학을 하다가 보면 숨겨진 것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곳 그랑 상파뉴 지역은 꼬냑의 주요 생산지 중 하나로서, 샤랑트 강을 따라 펼쳐진 포도밭의 포도는 꼬냑으로 만들기 아주 좋은 품질입니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에 집중했다.
“유니블랑이라는 품종의 포도인데, 한번 드셔보시겠습니까?”
안내하는 직원의 말에 따라 도경과 한다현은 포도를 먹어보았는데, 두 사람 다 한쪽 눈을 찡그렸다.
“하하하, 여기 계신 모든 분 표정이 재미있네요. 맞습니다. 이 품종은 높은 산미와 낮은 당도를 가진 포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꼬냑을 생산하는 데 아주 적합한 포도입니다.”
도경은 피식 웃으며 한다현을 바라보았다.
“많이 시죠?”
“네. 순간 너무 놀랐어요. 그나저나, 이곳에서 생산하는 꼬냑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 중저가형 브랜드더라구요.”
도경과 한다현은 무리에서 조금 뒤로 떨어져 대화를 나누며 걸었다.
“도경 씨도 아시겠지만, 유명 브랜드인 헤네시나 레미 마르탱 같은 고품질의 꼬냑과는 다른 라인이었어요.”
“품질 차이겠죠?”
“맞아요. 브랜드의 내러티브나 비교적 최근에 생긴 양조장이기 때문에 차이가 조금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여러 노하우와 더불어 오랜 기간 숙성시킨 술과 비교적 최근에 생신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짧은 숙성 기간의 제품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1년 매출은 약 5백만 유로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조금 전 안내인이 말한 1년 출하 병 수를 추산해 보면 그렇게 나와요.”
“1년 매출이 5백만 유로라…… 인수가가 너무 비싼 것 같은데요.”
5백만 유로는 우리 돈으로 약 74억 원가량 되는 돈이었다.
한태오가 건넨 서류에 적혀 있는 인수가는 6천만 유로였고.
“밸류에 멀티플을 얼마나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너무 비싸요.”
한다현이 그리 말하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저가 브랜드의 꼬냑을 생산했고, 출하량도 꽤 되는 좋은 양조장임에는 분명했지만, 인수가가 말도 안 되게 비쌌다.
헤지펀드를 이끌어가는 펀드매니저의 입장에서 이런 거래는…….
“솔직히 사는 쪽에서 가격을 뻥튀기시킨 게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금액이고요.”
들려온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저도 똑같은 생각을 했거든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지만.
“그래서 이해가 안 가요. 아버지가 이 금액에 이것을 인수하라고 지시하신 거라니…….”
한다현이 아는 아버지 한태오는 이재에 밝았고, 기업의 가치를 귀신같이 알아보는 사람이었다.
“뭔가 확실히 의도가 궁금한 인수긴 하네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한참 동안 진행되었던 견학이 끝나자 양조장 안에서 시음회와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도경은 한다현과 함께 양조장을 거닐며, 서로의 의견을 공유했다.
“멀티플 자체는 말도 안 되게 매겨진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수를 하려면 다른 이유가 있다, 이거죠?”
한다현이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읊어오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솔직히 회장님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쓸모 있다고 생각하시니 그만큼의 멀티플을 매기셨을 텐데요.”
멀티플은 기업의 현재 가치에 더해지는 프리미엄을 이야기했다.
가령 1억 원짜리 가치를 가진 기업을 사기 위해 10억 원을 쓴다면, 이는 10배의 멀티플을 줘 가치를 산정한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곳에는 스토리도 없고, 앞으로 더 성장할 그 무엇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위스키와 브랜디 시장은 2조 원짜리 시장이 될 거라는 평가가 있지만, 이 양조장으로는 그 파이를 먹기엔…….”
“어림도 없죠.”
두 사람은 숨겨진 뜻을 알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었다.
지이잉-
그렇게 한창 걷고 있을 때, 한다현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다.
“아! 제가 프랑스에 있는 세쿼이아 캐피털 직원한테 도움을 좀 요청해 뒀었거든요.”
“도움요?”
“네, 미국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가 프랑스 지사에 있길래 이곳 오너에 대해 좀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
“어서 받아보세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한참을 통화하더니, 전화를 끊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최근 이곳을 인수하기 위해서 유성네트웍스가 MOU를 체결했다고 해요.”
“그룹 내에서 양조장을 소화할 곳은 종합상사인 네트웍스밖에 없긴 하죠.”
“그런데, 이 양조장이 4개월 전에 주인이 바뀌었었다고 하네요.”
“4개월 전에요? 그럼 4개월 만에 또 주인이 바뀐다는 건가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대 이 양조장의 오너는 룩셈부르크에 있는 한 투자회사라고 하는데…… 공개된 게 없어서 더 알아보진 못했다고 해요.”
한다현의 입에서 나온 룩셈부르크라는 말에 도경의 표정은 굳어갔다.
“충분히 힌트가 된 것 같습니다. 뭔가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경은 말끝을 흐리고는 한다현을 바라보았다.
“숙소로 돌아가죠. 이곳에서 더 얻을 건 없습니다. 가서 제대로 조사해야 할 곳이 생겼어요.”
도경이 그리 말하고 먼저 걸음을 옮기자 한다현은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도경을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