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618)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18화(618/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18화
“어떻게 된 건가요?”
“한성현 대표와 독대 이후 쓰러지셨어요.”
이틀 후, 도경은 한다현의 연락을 받고, 바로 한국으로 들어와 한태오가 입원 중인 병원을 찾았다.
“회장님 의식은…….”
“의식은 있으세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어서 지병이 악화되셨다고 하네요.”
“회장님께서 지병이 있으셨습니까?”
도경은 놀란 듯 물었다.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협심증이 있다고 하시네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한다현을 바라보았다.
“다현 씨는요.”
“네?”
“다현 씨는 괜찮냐고요. 많이 놀랐을 텐데.”
“저는…… 괜찮아요.”
한다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쓰러지셔서 저렇게 계시는데, 제가 힘들면 안 되겠죠.”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다현 이외에 한태오의 자녀들은 보이지 않았다.
“윤 대표님.”
“아, 김 실장님.”
그때, 병실 안에서 김승구가 나왔다.
“미국에서 바로 오셨다는 보고 받았습니다.”
아마도 차선태가 그룹에 보고한 것 같았다.
“네, 와야죠. 제 직원이 여기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다른 가족분들은…….”
“회장님께서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현 아가씨가 계시니, 다른 가족은 필요 없으시다고…….”
김승구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께서 들어오시라고 하십니다.”
“이야기를 나눠도 되실 수준이신가요? 안정을 취하셔야 하거나…….”
“물론 안정을 취하셔야 하지만, 회장님은 저도 못 말립니다.”
김승구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갔다 올게요. 좀 쉬고 있어요.”
도경은 한다현에게 그리 말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병실 안에 들어서니 한태오는 서류를 보고 있었는데, 도경은 안도감과 함께 피식 웃음에 새어 나왔다.
“왜 웃어?”
“비싼 돈 쓰시면서 VIP 병상과 유능한 주치의들을 쓰시면 뭐 하겠습니까?”
“뭐?”
“안정을 취하라는 주치의의 말을 무시하시고 그렇게 서류를 검토하고 계시는데요.”
“하하하, 이 친구 참. 알았네, 알았어.”
한태오는 검토하던 서류를 협탁에 던져두고는 병상 옆에 있는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앉지.”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그의 곁에 앉았다.
“마이애미에서 바로 왔다며?”
“네, 회장님께서 사주신 전용기가 있으니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럴 때 쓰라고 사준 건 아닌데…… 고맙구먼.”
한태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는 자식 놈들도 얼굴 한 번을 안 비치는데, 자네는 그 먼 마이애미에서 바로 날아왔다는 게 말이야.”
“회장님 걱정도 걱정이지만, 제 직원이 걱정되어서 왔습니다.”
“자네 직원?”
“네, 다현 씨요.”
도경의 말이 얄미울 수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한태오는 만족스러운 답변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현이는 자네가 챙겨야지.”
한태오는 그리 답하고는 서류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거 자네가 조사한 거지?”
“네, 저와 다현 씨가 함께 조사했습니다.”
“자네 생각은 어때?”
한태오는 이미 서류를 닳고 닳을 만큼 읽었지만, 도경의 입으로 한 번 더 듣고 싶다는 듯 물었다.
“무리수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경영인이라면 누구도 하지 않을 판단이고요.”
“그렇다는 건, 네트웍스 한성현 대표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지 않았다는 말인가?”
한태오의 물음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건방져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숨길 것은 없었다.
“그렇습니다. 물론 저보다 더 경영 경험이 많으시고 똑똑하실 수 있겠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정상적인 사고는, 다른 것에 눈이 팔려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다른 것에 눈이 팔려 있다……. 가령, 후계 구도 싸움 같은 것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비자금을 조성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한태오는 도경의 입에서 비자금이란 단어가 직접적으로 나오자 한숨을 내쉬었다.
“재벌가의 후계자가 비자금을 구성할 만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불안정한 후계자 지위겠지.”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게 내 잘못이란 말이군…….”
한태오가 그리 푸념하며 한숨을 내쉬자 도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장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럼 뭔가? 내가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서 이런 일이 난 게 아닌가?”
“혹자는 그리 평가하겠지만, 저는 아닙니다. 가끔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
“욕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도경은 한태오보다는 한참 짧게 산 인생이었지만, 자신이 사는 세계는 욕망의 세계였다.
욕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책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네가 그리 말해주니, 마음이 한결 놓이는구먼.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한태오는 도경을 향해 물었다.
“성현이는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포기하게 만들어야겠죠.”
도경은 한태오를 바라보았다. 평소 그렇게 추진력이 좋던 한태오도 자기 자식과 관련된 일이니, 감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했다.
“회장님께서는 당연히 그럴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들이라는 점을 빼고 본다면 휘두르지 않으실 이유가 없으시겠죠.”
“…….”
“망설이시는 이유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재벌가라는 이유만으로 이 일과 관련이 없는 이들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걱정되시겠죠.”
도경의 말에 한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방법은 이것뿐인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이 일은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야.”
“그리고 교통정리를 확실하게 하시는 것도 뒤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교통정리를 확실하게 하라?”
“네, 후계 구도에 대한 확실한 답을 내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이들은 이와 같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게 필요한가? 어차피 성현이는 이번 일로 아웃이 될 텐데.”
“그건 회장님의 선택이시니 저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치의가 오래 대화를 나누지 말라고 하더군요. 며칠 한국에 머물겠습니다.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그래, 와줘서 고맙네. 나중에 봄세.”
도경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병실을 나섰다.
도경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태오는 고민에 잠겼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만이 병실을 가득 메울 정도로 한태오는 한참 생각을 하다 이내, 결심이 선 것인지 길게 심호흡을 했다.
“밖에 누구 있나?”
그 말에 병실 문이 열리며 비서실장 김승구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다현이는?”
“윤도경 대표가 데려갔습니다. 안 가신다고 버티시는 걸 겨우 설득해서 데리고 가셨습니다.”
김승구의 말에 한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트웍스 이사회 열어서 임시 주주총회 열라고 해.”
“……결심하신 겁니까?”
“그래, 더 큰 일 저지르고 검찰에 들락날락하며 언론에 오르는 것보다는 이렇게 막는 게 맞아.”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이사 놈들한테 똑똑하게 전해.”
한태오의 얼굴에는 조금 전의 망설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인지 성현이 놈인지 확실하게 줄 서라고. 어느 쪽에 서야 제 놈들이 살 수 있는 건지 잘 생각하라고.”
“네, 지시하신 대로 전하겠습니다.”
김승구가 인사를 하고 나가려고 할 때.
“김 실장.”
“네, 회장님.”
“다음 주에 이천 일정 있지?”
“예, 반도체 공장 신축 현장에 시찰 나가기로 하셨었습니다. 취소할까요? 아무래도 안정이 필요하시니…….”
“아니, 그대로 하고. 그날…….”
이어지는 한태오의 말에 김승구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한태오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 *
“저는요. 저렇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한편, 도경은 한다현을 숙소로 바래다주는 길이었다.
한다현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지 손을 바르르 떨었는데, 도경은 그녀의 손 위에 자기 손을 포개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불안하더라고요. 이제야 겨우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는데…….”
한다현은 뒷말을 더 이상 이어나가기 싫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죠. 회장님은 여전하시고, 다현 씨는 앞으로도 회장님을 뵐 수 있을 테니까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많이 떨었어요. 한국에 들어오면서도 내가 주먹을 내지를 수 있을까?”
도경은 자신이 파리에서 한다현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과연 내게 주어진 운명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내질렀네요.”
“네, 쉽더라고요.”
한다현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 가지만 생각하니 정말 쉬웠어요.”
“무엇을 생각했나요?”
“아버지가 이룬 것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거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 생각했어요. 그러니 쉽더라구요.”
“좋네요. 누군가를 위하는 생각으로, 내 망설임을 이길 수 있다는 건요.”
“잘되겠죠?”
“네, 잘될 겁니다. 회장님께서 결심하신 것 같거든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한시름 놓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현 씨도 준비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준비요? 제가요?”
“네. 기억 안 나요? 파리에서 제가 첫 단계라고 말했잖아요.”
도경은 파리에서 한다현에게 운명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첫 단계가 한태오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라 이야기했었다.
“회장님께서 제가 말씀드린 걸 이해하셨다면…….”
지이잉-
그때, 한다현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을 확인한 한다현은 도경을 바라보았는데, 도경은 받아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장님. 네, 네?”
한다현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의 뜻인가요?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한다현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길게 심호흡을 하고는 도경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께서…… 다음 주 반도체 공장 신축 현장 시찰 때 동행하자고 연락하셨어요.”
그 말에 도경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이란 운명을 뛰어넘었으니, 이젠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을 차례네요.”
도경이 생각하는 다음 단계였다.
수많은 호사가가 그녀의 신분을 입에 올릴 것이다.
그 속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부풀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혹은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오히려 당당히 맞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한다현에게 씌워진 운명이란 것을 바꾸는 일이었다.
“잔인한 말들을 해오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다현 씨. 그 사람들은 다현 씨가 짊어진 무게의 절반도 감당하지 못할 사람들이에요.”
도경은 그리 생각했다.
그들은 저마다 짊어진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타인이 짊어진 무게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는 것이라고.
“자신이 짊어진 무게를 감당하느라, 다현 씨가 남몰래 겪은 일들에 공감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신경 쓰지 말자고요.”
“…….”
“걱정하지 마세요. 다현 씨의 곁에는 제가, 또 회장님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누구보다 잘 버텨낼 사람이란 걸 나는 알고 있어요.”
도경이 그리 말하자 한다현은 결심이 선 듯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