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654)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54화(654/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54화
“이야, 이게 몇 년 만입니까?”
“선임님, 아니,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다음 날, 도경은 강남에 있는 군인공제회관에 와 있었다.
방으로 들어서자 이동혁은 아주 반가운 얼굴로 도경을 맞이해 주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윤 대표, 이제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달라졌네요.”
이동혁은 도경의 손을 맞잡으며 이야기했다.
“예전엔 정말 같은 세계에서 서로 자극이 되는 존재였는데, 이제는 윤 대표를 따라가지도 못하겠어요.”
이동혁과는 서로 경쟁업에 VIP 센터의 PB로서 선의의 경쟁 사이였다.
“선배님, 다시 같은 세계로 오지 않았습니까? 무엇보다 저와 같은 GP들에게는 가장 무섭다는 LP, 그것도 큰손으로요.”
“하하하.”
군인공제회는 대한민국 군인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공제조합이다. 군인들의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하는 방식으로 운영 자금을 마련했다.
이 운영자금은 투자를 통해 불려 나갔고, 그렇게 불린 돈은 회원들에게 복지 기금으로 지급되었다.
“우리는 그래도 다른 곳들보다는 꽤 친절한 LP입니다.”
업계에선 조 단위의 자금을 운용하면서 투자금을 출자하는 군인공제회,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을 Limited Partner, LP라 칭했고, 이들에게 돈을 투자받아 펀드를 굴리는 곳을 General Partner, GP라 불렀다.
“앉으실까요?”
이동혁의 손짓에 도경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진심으로 중책에 앉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다들 놀라곤 합니다. 나는 평생 PB로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자리에 오를지는 몰랐다고요.”
파격적인 취임이라면 취임이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LP들의 총책임자 자리에는 해당 업무를 오랜 기간 경험한 사람들이 자리했으니까.
하지만, 이동혁이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맡아 굴리는 돈이 1조 원이 넘는다고 알려질 만큼 스타 프라이빗 뱅커였으니까.
“이곳에 오기 3년 전부터 선진보험으로 옮겨 부채 연계 투자를 하고 있었습니다.”
“LDI 말씀이시죠?”
도경의 물음에 이동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LDI(Liability-Driven Investment)는 연금기금이나 보험사와 같은 기관 투자자들이 자산을 관리하는 전략 중 하나였다.
투자 포트폴리오를 설계할 때 미래에 고객에게 지급해야 하는 돈(부채)을 충족시키기 위해 구간마다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네, 저도 나름대로 준비는 하고 있었지요.”
이동혁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내 천직이 PB라고 생각했고, 연봉도 그 자리가 지금 자리보다는 열 배 이상은 더 벌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힘들더군요.”
아무래도 PB는 영업직이었기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동혁의 말처럼 PB가 저런 중책으로 직책을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해당 직책으로 수십 년을 구른 이들을 이기고 그 자리로 갔다는 것은 이동혁도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역시, 윤 대표는 나와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에 내 고생을 알아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동혁은 미소를 지으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사실, 윤 대표의 모습에 자극받은 것도 있고요.”
“아이고, 선배님. 과찬이십니다. 저는 PB일 때도 선배님을 따라가지도 못했는데요.”
“진심입니다. 윤 대표의 활약이 내 마음에 불을 지핀 거죠.”
그의 말에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나저나 한국에 들어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래서 그제 행사에서 최우진 이사를 만났을 때 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직접 연락하셔도 되는데요.”
“어디 그럴 수 있습니까? 윤 대표가 바쁜 건 우리나라 업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다 알 일인데.”
“하하하, 선배님께서 연락해 주시면 언제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지금이 그때인 것 같은데.”
조금 전까지 웃으며 대화를 하던 이동혁이 자못 진지한 얼굴로 말해오자 도경도 웃음기를 지우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낸 서류를 봤다면 알겠지만, 지금 이곳이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어제 서류를 받자마자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PF 익스포저 규모가 3조 정도 된다고요.”
“3조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2조 원이 넘는 규모이기는 합니다.”
최근 국내 시장의 PF 위기가 가실 줄을 모르며, 부동산 PF 시장의 큰손으로 군림해 왔던 군인공제회도 위기에 빠져 있었다.
“특히 우리 회사의 경우는 100억 원 이상의 거액 투자 비중이 다른 LP들에 비해 높습니다.”
국민연금은 주식이나 채권에 직접 투자를 하는 비율이 높았지만, 군인공제회는 달랐다.
GP들에게 돈을 맡기는 ‘대체투자’ 비율이 포트폴리오 비중의 70%가 넘을 정도였다.
그래서 도경과 같은 GP들에겐 국민연금보다 군인공제회가 더더욱 큰손이었다.
“그중 5백억 원 이상 투자한 사업장이 4개 정도고요.”
“그렇지만 제가 알기론 대부분 본 PF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죠.”
다시 말해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 땅을 구매하기 위해 대출을 내는 브릿지론이 아닌, 땅을 가지고 그곳에 건물을 짓기 위해 시행하는 본 PF에 투자한 비중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사업이 부러지더라도, 땅이라는 담보가 있었기 때문에 투자금 전액 손실 위기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것은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고, 이와 관련해 부동산 대체투자 비중을 줄이고자 합니다.”
“대체투자 비중을 줄이시는 겁니까?”
도경의 물음에 이동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체투자 비중은 그대로 가져가고, 이 중에서 건설과 관련된 비중을 줄이고자 하는 겁니다. 현재 우리 건설, 부동산 투자 비중이 45%인데 이를 25%로 낮추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금융 투자 비중은 75%까지 늘리실 예정이고요.”
“그렇습니다.”
도경은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우리는 유성에서 우리를 위한 운용 상품을 만들어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동혁의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우리의 운용 자산이 13조 원쯤 됩니다. 이 중 6조가량이 부동산 투자였는데, 이번에 비중을 줄이면 3조 원을 금융상품으로 옮겨야 하고요. 3조 원 모두를 투자할 수는 없겠지만…….”
이동혁의 말에 도경은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달러로는 22억 달러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유성인베스트먼츠뿐만 아니라, 여러 큰 사모펀드, 헤지펀드와 같은 PEF들이 눈독 들일 만한 커다란 규모였다.
“저희에게 수의계약으로 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나와 윤 대표가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니까요.”
“경쟁에서 이기라는 말씀이시군요.”
“네, 윤 대표의 유성이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동혁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있습니다만, 규모가 크다 보니 여러 PEF에서 뛰어들겠네요.”
도경은 오랜만에 가슴속에서 무언가 불꽃이 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조건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총규모는 2조 원가량이고, 우리 자금 단독 운용이어야 합니다.”
“운용 방식은…….”
“운용사의 재량이죠.”
주식이든 채권이든 더 나아가 경영권이든 수익만 가져오라는 말이었다.
“우리가 요구하는 연간 수익률은 8%입니다.”
연간 8%의 수익률은 매우 어려운 수치였다. 적어도 한국 시장 수익률보다 더 높게 가져오라는 말이었으니까.
“2년 계약이고, 향후 수익률에 따라 2년 더 연장이 가능한 계약이고요.”
이동혁은 그리 말하며 서류를 도경에게 건넸다.
“주요 GP들엔 이미 보낸 서류입니다. 두 달 후 공식적인 선정이 진행될 예정이니 준비해 줄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희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한국에서 가장 성과가 좋은 유성인베스트먼츠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면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잘 부탁합니다.”
이동혁은 그리 말하며 손을 내밀었고, 도경은 그의 손을 맞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형, 밥 안 먹어?”
그날 밤, 도경은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 박혀 일을 하고 있었다.
서재의 문이 열리며 동생의 얼굴이 보이자 미소를 지었다.
“일부터 좀 하고 먹을게.”
“엄마 걱정하는데, 라면이라도 끓여줄까?”
동생의 말에 도경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가 끓이려고?”
“그럼.”
“웬일이냐.”
도경은 미소를 지었다. 동생이 먼저 라면을 끓여줄까라고 물어오는 게 인생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웬일이야?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야?”
“하나 끓여와 봐.”
“정중하게 말해도 끓여줄까 말깐데, 어휴. 기다려.”
방문이 닫히고 동생이 나가자 도경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어머니도 이젠 편하게 자신이 하고 싶다던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며 지내고 계셨고, 동생 또한 변호사로서 일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가족 모두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축복이라 생각했다.
“아휴, 문제는 난데.”
도경은 앞에 놓인 서류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큰 기회긴 해. 2조 원이면, 앞으로 우리 회사의 대소사를 결정지을 투자금이니까.”
이동혁에게서 받아온 서류를 검토 중이었다.
“문제는 8% 수익률을 낼 만한 게…….”
지이잉-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고 도경은 반사적으로 화면을 확인했다.
“언제쯤 찾아오시나 했네요.”
화면에는 고양이가 떠 있었고, 도경은 반가움에 환하게 웃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윤도경 씨는 어쩌면, 저주를 받은 게 아닐까 합니다.
“저주요?”
생뚱맞은 말을 해오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도경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휴가 중에도 일이 꼬이는 것은 그것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하하, 열심히 산다고 해주세요.”
그러고 보니 매년 자신의 휴식을 챙겨주던 메시지는 어느 순간부터 휴가를 챙겨주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모습에 학을 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도경이었다.
“그래서 요즘 휴가의 중요성에 대해 말을 안 하시는군요?”
-말을 해도 윤도경 씨에게는 일이 들러붙을 것이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 생각했습니다.
고양이의 말에 도경은 머쓱한 듯 코를 훔치다 이내 주제를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 말을 하려고 저를 찾으신 건 아닐 테고요.”
-윤도경 씨는 옛 인연으로 인해 앞으로 유성인베스트먼츠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큰 투자 기회를 받았습니다.
메시지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했다.
-상대는 높은 수익률을 제안해 왔지만, 우리는 높은 수익률은 결국 투자 대상을 고를 수 있는 안목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극히도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도경이 수익률에 눈이 멀 수도 있는 상황에서 메시지는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해오는 것이었다.
-수익률을 낼 기업을 찾을 것이 아니라, 좋은 기업을 찾으세요. 우리는 윤도경 씨와 윤도경 씨의 팀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이 마무리되면 우리는 윤도경 씨의 업적에 따라 보상을 지급하겠습니다.
“제 팀이요…….”
-윤도경 씨의 곁에서 늘 함께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팟’ 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전화 화면은 꺼졌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겐 팀이 있었네요.”
도경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마침 적당한 시간인 것을 확인하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보스, 한국에서의 휴가는 어떻습니까? 한국에 가신 김에 그, 커피믹스를 좀 사다 주시는 게…….
“스테판.”
수화기 너머 주인공은 스테판이었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인사는 하지 않고 제 할 말만 떠들어왔다.
“그거 커피믹스 네가 직접 사가.”
-네?”
“한국에 들어오라고. 네 팀 전부 데리고.”
-보스 설마…… 또, 휴가 가서 일을 하십니까?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아휴, 보스는 못 말리겠지만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간다니 너무 좋은데요?
“그래, 일이다. 빨리 들어와.”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크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