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662)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62화(662/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62화
“어서 오십시오.”
며칠 후, 도경은 마이애미를 직접 찾아온 이동혁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동혁은 미소를 지으며 도경을 향해 손을 내밀어왔다.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대표님께는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하하하, 윤 대표가 내게 미안할 게 뭐가 있습니까? 앉아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도경은 이동혁을 자리로 안내하고는 방 한쪽에 있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와 그의 앞에 내려두었다.
“고마워요. 마이애미 공항에서 이곳으로 오다 보니 일할 맛이 나는 환경인 것 같습니다.”
이동혁은 음료수 뚜껑을 따며 그리 말했고, 도경은 한쪽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루 이틀 방문하는 분들은 늘 그렇게 이야기하시지만, 실제로 이곳에 있어보면 뭔가 괴리가 좀 있습니다.”
“괴리요?”
“네. 창밖으로 보이는 마이애미 해변을 보면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저나 우리 팀원들은 모니터 속의 그래프에 가슴을 철렁하고는 하니까요.”
도경의 말에 이동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렇겠네요. 밖의 느긋함은 이곳의 치열함을 가리기엔 아주 좋은 장식품이기도 하고요.”
이동혁은 그리 말하며 도경이 준 음료수를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윤 대표가 그렇게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서 굉장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우리 회사의 최고위층에서 나온 실언을 내가 대신 사과하고 싶었어요.”
이동혁은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우리의 실례를 용서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동혁의 말에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사과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조중만 회장의 말이 저는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 말에 이동혁은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LP와 늘 동업자의 마인드로 접근했습니다. 동업자라는 것은 많은 것을 뜻한다는 걸 대표님께서는 아실 겁니다.”
도경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이동혁을 향해 말을 이어나갔다.
“동업자라는 것은 그저 표현이 아니라, 서로 간에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하고 더불어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함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을 뜻하는 말이라는 걸 아실 겁니다.”
“그렇죠.”
“그런데, 조중만 회장의 인터뷰는 제게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동업자가 아니라, GP는 그저 LP가 선택하고, LP의 요구에 따라 돈을 불리는 수단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조중만 회장이 어떤 뜻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도경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임기가 끝난 이후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한 말이라고 하기에는,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은 많은 GP와 교류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 말 한마디로 저뿐만 아니라, 여러 PEF(사모투자회사)들이 불편한 감정을 가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회장님의 말씀은 GP들을 줄 세우는 발언이었죠.”
물론 LP들은 GP들을 줄 세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하는 것이다.
그것을 오픈된 장소, 그것도 인터뷰로 그리 말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저는 MMAA(군인공제회)가 GP의 국적에 따라 투자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런 경우도 보지 못했습니다.”
누가 더 많이 자산을 불려줄 것인가 줄 세우는 것은 GP의 포트폴리오와 매니저의 능력에 따라 결정해야 했다.
회사의 국적이 아니라.
“정말 그 부분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내부적으로 그런 일은 없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외부적으로 그런 말을 하면 안 됐습니다. 그것은 유성인베스트먼츠를 표적으로 한 말이니까요.”
“네, 노골적으로 저희를 따돌리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그 말에 이동혁은 도경을 바라보았다. 도경의 얼굴에는 일종의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어떤 GP의 이름도 거론하지 않으셨는데, 우리만을 표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건 노골적으로 저희를 배제하겠다는 말로 들렸고, 대표님과 얼굴을 붉히기 싫어 참여를 철회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 일을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 있지만, 윤 대표는 그러지 않았죠.”
도경은 그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국민연금에서 유성인베스트먼츠의 블라인드 펀드에 투자할 수도 있다는 기사가 나오자 여론은 나쁘지 않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점에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또 사과를 하는 게 순서라 생각했습니다. 회장님의 사과는 아니지만, 이번 일을 총괄하는 내 사과를 받아주십시오.”
“이미 대표님께서 와주신 것만으로도 제 마음은 풀렸습니다.”
도경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이동혁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회장님은 이번 프로젝트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합니다.”
MMAA의 정관상 자산운용은 CIO인 이동혁에게 많은 권한과 책임이 있었고, 투자하고 말고는 투자심의위원회의 의결 사항이었다.
회장은 어떠한 결정권도 없음에도 그런 경솔한 인터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유성과 우리가 새로운 테이블 위에서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표님, 확실하게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그 공고에 참여하지 않을 겁니다. 원래 공고에 참여하려고 했던 포트폴리오로 이번 블라인드 펀드를 구성했습니다.”
도경이 완곡하게 거절하자 이동혁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이곳으로 날아온 것이고요.”
이동혁은 그리 말하고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기존 공고 규모를 줄이고, 일정 금액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자금을 유성인베스트먼츠의 블라인드 펀드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이건 제안서입니다.”
도경은 앞에 놓인 서류를 바라보았다.
“읽어보아도 좋습니다.”
그 말에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서류를 펼쳤다.
그리고 첫 장에 쓰여 있는 투자 규모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이동혁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3억 달러를 펀드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우리 돈으론 4,100억 원쯤 되겠네요.”
* * *
“네? 얼마요?”
“3억 달러.”
이틀 후, 도경은 스테판과 더불어 새로 만들 특수목적법인을 이끌 해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도경의 입에서 나온 투자 규모에 두 사람은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가 뭘 하는지 알고 투자하는 건가요?”
해리는 그리 물었고, 도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블라인드 펀드니 그럴 리는 없지.”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을…….”
“해리, 네가 잘 모르나 본데. 우리 보스는 한국에서 거의…….”
“스테판, 거기까지 해.”
도경이 제지하자 스테판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한국에서 만든 블라인드 펀드에 MMAA가 투자했고, 현재 수익률이 50% 정도야. 그래서 나를 믿는 것 같고.”
도경의 말에 해리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이 모시던 사람이 헤지펀드의 제왕이라 불리는 스타델의 켄이었지만, 도경은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다.
해리가 켄을 만난 것은 켄이 이미 많은 명성을 쌓은 이후였다.
어쩌면, 해리는 지금 업계의 제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명성을 쌓아가는 과정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현재까지 확보된 금액이…….”
“8억 달러입니다.”
유성이 2억, 피터와 스타델 그리고 태산이 1억, MMAA가 3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하게 되면 총 8억 달러가 된다.
“그런데 MMAA의 자금은 언제 들어오는 거죠?”
“그쪽도 내부 프로세스를 따라야 해.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건 아니니까, 결정된 5억 달러를 기반으로 법인을 세우자고.”
“네, 알겠습니다.”
지이잉-
도경이 그리 말할 때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고 화면을 확인한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FSU(플로리다 주립대학교)의 알레한드로에게 연락이 왔어. FSU는 이번 투자를 받아들이겠다네.”
도경의 말에 스테판과 해리는 활짝 웃었다.
“그럼…….”
“맞아. 나머지 대학들도 소개를 해주겠다고 하니, 준비하자고.”
* * *
“유성인베스트먼츠는 우리 공제회와 인연이 있습니다.”
며칠 후, 서울.
서울로 돌아간 이동혁은 투자심의위원회에 참석하여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군인공제회나 여타 연기금들은 자본의 성격이 일반 국민이나 혹은 특정인들의 월급에서 공제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투자를 결정할 수 없었다.
외부 전문가들과 내부인들로 구성된 투자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고 결정이 나야 투자를 실행할 수 있었다.
“우리가 참여한 1호 블라인드 펀드는 2년이 지난 현재 수익률이 50%를 넘을 정도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 수익률은 우리 공제회사가 창립된 이후 실행했던 대체투자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입니다.”
이동혁의 발표를 들으며 심의위원들은 서류를 살폈다.
믿기지 않는 수치였기 때문인데, 서류에는 상세한 투자 수익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이런 높은 수익률을 달성한 유성인베스트먼츠와 윤도경이라는 포트폴리오 매니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이 새롭게 모집 중인 블라인드 펀드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규모는요?”
한 위원의 물음에 이동혁은 잠시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4,100억 원 규모입니다.”
그 말에 순간 회의장은 위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단일 투자 규모치고는 꽤 큰 규모 아닙니까? 내 생각에는 우리 공제회가 한 투자에서 가장 큰 규모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동혁은 바로잡아야 할 말이라는 듯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3년 전, 우리는 국내의 한 사모펀드의 사업에 100% 출자하는 방식으로 7천억 원을 투자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그 금액의 수익률은 -40%이고요.”
이동혁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위원들을 바라보았다.
“해당 투자는 유럽에 있는 한 오피스빌딩에 투자하는 것이었고, 100%를 출자한 덕분에 상당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번 투자가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반면교사를 삼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큰 규모를 투자하고 실패한 사례가 있는데, 다시 큰 규모를 투자한다는 것이 영 꺼림칙한 것은 사실입니다.”
한 위원의 말에 다른 위원들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란 것은 100% 성공할 수 없습니다. 손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요. 전에 했던 대규모의 투자가 현재 손실을 보고 있다고 해서 새로운 투자에 소극적이라면, 해당 손실을 메울 방법이 없습니다.”
이동혁의 말에 위원들은 입을 꾹 다물고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번 대체투자는 오히려 우리의 선택을 더 늘려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2조 원에 달하는 규모를 공고해 PEF에 맡길 생각이었지만, 이를 쪼개어 여러 PEF에 맡길 수 있다면 그만큼 실패할 확률이 내려가니까요.”
이동혁은 강력하게 위원들을 향해 브리핑을 이어나갔다.
“더군다나 윤도경 대표가 이끄는 유성인베스트먼츠는 우리에게 성공을 안겨주고 있는 곳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성과를 준 PEF에게 대체투자를 맡기는 것에 블라인드 투자 방식이라는 이유로 꺼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후로도 이동혁은 계속해서 이번 투자의 타당성을 위원들에게 설명했고,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자 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동혁 대표의 브리핑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위원분들의 이견이 없다면 늘 했던 방식으로 무기명 비밀투표로 찬반 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이견이 있으신 위원님?”
위원장의 물음에 어떤 위원도 이견을 표하지 않자 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회의를 돕던 직원들이 무기명 투표에 사용되는 작은 기기를 위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지금부터 1분간, 무기명 투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기기의 버튼을 눌러 찬반 의견을 표해주십시오. 기권은 어떤 의사도 표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위원장의 말과 동시에 투표가 시작되었고, 이동혁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위원들을 바라보았다.
위원들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의견도 읽을 수 없었다.
“1분이 지났군요. 결과 나왔습니까?”
위원장의 물음에 직원이 작은 종이에 투표 결과를 적어 건넸다.
이동혁은 침을 꼴깍 삼켰다. 위원장이 종이를 펼치는 순간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투자심의위원님들의 투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이번 자산 운용본부의 대체투자 건은 총원 12명 중, 찬성 10표, 반대 1표, 기권 1표로 투자하기로 결정되었음을 알립니다.”
위원장은 그리 말하며 앞에 놓인 의사봉을 두드렸고, 이동혁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현명한 선택을 해준 위원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