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675)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75화(675/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675화
“상황이 꽤 심각하네요.”
그날 저녁.
도경은 퓨어드롭의 대표 장영우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이동 중이었다.
휴대전화로 기사를 보던 한다현이 걱정이라는 얼굴로 도경을 향해 말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몇몇 판매자들에게 정산금을 지급하지 못했다고 해요.”
퓨어드롭과의 협상 타이밍을 생각하며 기다리던 찰나, 말도 안 되는 사건이 하나 터졌다.
국내 이커머스 중 하나인 몬스터딜이라는 곳이 셀러들에게 정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한 달 전부터요?”
“네. 그런데 문제는 셀러들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까지 그 피해가 전가되고 있어요.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본인들 몰에서 사용 가능한 상품권을 10% 할인해서 팔았다고 해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의 미간은 찌푸려졌다.
“지금 나오는 의혹으로는 고객의 돈을 끌어다 셀러들에게 지급해야 할 정산금을 돌려막기를 한 게 아니냐……는 말이고요.”
“몬스터딜이란 곳은 꽤 큰 곳 아닙니까?”
도경의 물음에 한다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딜만 놓고 보자면 점유율이 그렇게 크다고 할 수는 없어요. 다만, 몬스터딜의 모회사가 큐몰이라는 곳인데, 이곳이 몬스터딜을 포함해서 국내 이커머스 업체 네 곳 정도를 보유하고 있어요.”
“최근에 인수한 거죠?”
“네, 몬스터딜을 포함해서 단기간에 여러 이커머스를 사들였어요. 문제는 그땐 그게 맞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멈췄어야 했어요.”
도경도 큐몰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한국인 창업자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그곳을 중심으로 아시아 이커머스 시장을 점령하겠다는 포부를 밝혀서 꽤 흥미롭게 지켜본 적이 있었다.
“미국의 이커머스 기업에 손을 댔다가 자금줄이 마른 거예요.”
“위시풀 말하는 거죠?”
“맞아요.”
위시풀은 미국의 온라인 쇼핑몰 업체였는데, 한때는 아마존의 대항마라 불릴 만큼 고객을 늘렸던 플랫폼이었다.
“위시풀을 1억 7천만 달러가량에 사기로 했는데, 문제는 전액 현금으로 사기로 했다는 거예요.”
우리 돈으로 2,300억 원 정도인 금액이었다.
“전액 현금이요? 단기간에 여러 업체를 인수했다면, 현금이 없었을 텐데요. 그리고 제가 알기론 국내 이커머스 중에 지금 흑자인 곳이…….”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큐몰은 단기간에 여러 업체를 인수하면서 현금이 없었어요. 그리고 도경 씨의 말대로 큐몰이 인수한 업체들은 창사 이래 흑자였던 적이 없었고요.”
도경은 골이 아파져 오는 듯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그럼 위시풀을 인수하기 위해서 계약서도 작성했고, 계약금도 갔으니 현금이 있어야 했는데…… 문제는 대출길이 싹 다 막혔거든요.”
보통 M&A를 할 때는 다른 조건 없이 현금으로 모든 지분을 사들이거나 혹은 사들이는 기업이 자신들의 지분을 현금 대신 일정 부분 건네는 것도 있었다.
현금도 할부처럼 나누어 내는 것도 있었고.
“말씀드렸듯 큐몰은 단기간에 여러 이커머스를 인수하느라 여러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었어요. 그래서 은행들은 만약 여기서 더 빌려줬을 경우에는…….”
“익스포저가 늘어난다고 봤겠죠.”
“맞아요. 위험에 노출된 금액이 늘어나는 걸 반길 은행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셀러들에게 지급해야 할 정산금에 손을 댄 것 같아요.”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몬스터딜의 정산 방식이 익익월 지급이었거든요.”
도경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국내 거대 이커머스 업체들은 대부분 익월 혹은 당월에 셀러들에게 판매 대금을 지급해요. 그런데 몬스터딜과 큐몰의 회사들은 익익월이었던 거죠.”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해왔던 거네요.”
몬스터딜은 창사 이래 흑자였던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셀러들에게 지급해야 할 정산금의 지급 시기를 늦추며 속된 말로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엔 그 돌려막기에서 더 나아가 셀러들의 정산금으로 기업을 사들인 것이고.
“몬스터딜은 양반이에요. 로켓마트 아시죠? 거기는 70%는 15영업일 이후 지급하고, 30%는 익익월이에요.”
“30%를 왜 잡아놓는 거예요?”
“아시잖아요. 상장사니까요.”
한다현이 말하는 시스템이라면 셀러들에게 지급될 정산금 중 일부분이 분기별로 지급되었다.
그렇다는 건 한 분기에 현금 흐름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을 수도 있었다.
“시중은행에는 3%짜리 대출이 있어요. 로켓마트와 몬스터딜의 셀러들에게 정산금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거죠.”
“결국 은행과 이커머스만 신이 나고, 중간에서 개인사업자인 셀러들만 죽어나는 상황인 거네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국에서 빠르게 나서야 할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셀러들이 정산금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면, 채권의 성격이 바뀌거든요.”
도경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셀러들은 매달 물건을 팔기 위해 물건을 들여올 현금이 필요했다.
“2개월 후에 받는 정산금은 상거래 채권이죠. 일명 ‘외상매출채권’이라고 불리고요. 그런데 당장 오늘 팔 물건을 들이기 위해서 이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이게 성격이 바뀌어요.”
“금융채권으로요?”
“맞습니다. 채권자가 판매자가 아닌 은행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런데 이게 문제가 무엇이냐. 만약 지금 몬스터딜이 부도를 피하기 위해 워크아웃에 들어간다면, 금융채권은 권리행사가 유예됩니다.”
다시 말해, 성격이 바뀐 금융채권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만기가 돌아와도 갚지 않아도 되는 채권이 된다.
“그럼 ‘은행들이 손해를 보겠네?’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데 은행은 대출을 해줄 때 늘 소급 청구권을 넣어둬요.”
소급 청구권은 몬스터딜이 망할 시 해당 어음을 담보로 돈을 빌려간 판매자가 갚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럼 판매자들은 결국 몬스터딜에게 돈을 정산받지 못하고도 은행에겐 돈을 갚아야 하죠. 처음에 말했듯 피해자는 결국 셀러가 되는 거고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어디선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TY건설 사태 때 본 거네요.”
“맞아요. 그래서 빠르게 당국에서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내려야 할 것 같아요. 피해자들의 회복이 우선이 되게요.”
도경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한다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우리가 만날 상대도 피해자인데, 제가 아는 도경 씨는 이 상황을 이용할 사람은 아닌데…….”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변하기는 했지만, 이 상황을 이용할 생각은 없어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아는 도경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다만, 처음부터 우리가 견지했던 노선은 지킬 생각이고요.”
“5분 후에 도착합니다.”
한다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도경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 * *
“상황이 많이 좋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잠시 후, 약속 장소로 도착한 도경은 뒤이어 도착한 장영우와 마주 앉아 있었다.
오늘은 다른 배석자들 없이 도경과 장영우 둘의 독대였다.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일어난다더니, 여러 소식이 저를 괴롭힙니다. 윤 대표님이 저를 찾아오신 그날 이후로요.”
자신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음에도 장영우는 특유의 여유 넘침을 보여주고 싶다는 듯 농담을 던져왔고,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어쩌면, 이 웃음이 장영우와의 대화 분위기를 풀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희 퓨어드롭의 상황이 녹록지 않아졌습니다. 당장 다다음 달에 지급하기로 한 ODM 비용을 맞출 현금이 제로가 되었고요.”
“본사에서 따로 지원하는 건 어떻습니까?”
도경의 물음에 장영우는 시선을 앞에 놓인 테이블에 두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끄럽지만, 본사의 현금 상황도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의 상황이 퓨어드롭과 같을 것이다.
당장 사업을 위해 들어갈 돈은 많고, 그 돈 대부분은 발생한 매출을 끌어다 쓸 수밖에 없었다.
아주 소수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만이 돈을 남기고 흑자를 달성했다.
도경은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었으니, 이제 유성의 제안을 들어봤으면 합니다.”
장영우가 그리 말하자 도경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대표님께서는 여전히 퓨어드롭의 가치가 2천억 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경은 장영우에게도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장영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상황에서 제 욕심을 챙기는 건 경영인으로서 최악인 거겠죠. 저는 우리 퓨어드롭의 가치가 2천 억원은 아니지만, 1,500억 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경은 흥미로운 듯 양 눈썹을 치켜떴다.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전향적인 태도를 장영우가 보이고 있었다.
“좋네요. 드디어 이야기가 되겠군요. 기실, 저희 유성인베스트먼츠는 클라이언트를 대리해 퓨어드롭 인수전에 뛰어들었습니다.”
장영우는 놀랐지만, 이제 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듯 체념하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퓨어드롭의 가치를 매긴 것은 온전히 저희 유성인베스트먼츠가 했고 우리는 퓨어드롭의 사업 구조와 브랜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엘리시안이라는 다른 브랜드를 뒤로하고, 퓨어드롭을 고집한 이유가 있었다.
“국내에서 안정적인 브랜드 인지도를 쌓은 기업이야말로 해외에서 더 빛이 날 테니까요.”
“저희의 가치를 알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영우가 인사를 하자 도경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유성인베스트먼츠는 퓨어드롭의 가치를 1,100억 원으로 생각합니다. 이것 또한 제가 생각한 퓨어드롭의 가치에서 가장 상단에 위치한 금액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릴 수 있는 제안임을 알려 드립니다.”
도경의 입에서 나온 금액에 장영우는 속으로 놀랐다.
도경이 자신 있게 말해올 만큼, 유성은 퓨어드롭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주었다.
자신이 제안한 금액에 못 미칠 거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랑엘이 제안한 금액보다 더 크군요.”
“랑엘은 보지 못한 것을 우리 유성은 보았으니까요.”
장영우는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았다.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자신이 줄곧 여유 넘치게 과장된 행동을 해온 것과는 다른.
일종의 자연스러운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안을 할까 합니다.”
“한 가지 더요?”
“네, 당장 현금이 퓨어드롭과 모회사에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매각 작업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두 달에서 석 달이 걸릴 테니, 자금경색에 시달리시겠죠.”
장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퓨어드롭이 받은 대출의 만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당장 현금 3백억 원 이상을 동원해야 했다.
“우리 유성인베스트먼츠가 5백억 원을 대출해 드리겠습니다. 이자는 3%. 대신, 매각 자금이 들어오는 대로 갚는 조건으로요.”
시중은행에서도 빌릴 수 없는 저리의 대출이었다.
당장 급한 불을 끄는 데 훌륭한 소화기가 될 것이다.
“우리의 제안은 여기까지입니다.”
도경은 그리 말하고 이제 선택은 너의 몫이라는 듯 장영우를 바라보았다.
장영우는 여러 가지 감정에 침잠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
방 안에 적막이 흐른 지 한참, 장영우는 결심한 듯 도경을 바라보았다.
“유성인베스트먼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장영우가 그리 말하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고, 장영우는 도경의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