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712)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12화(712/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12화
“유나, 오랜만이에요.”
“도경 씨, 잘 지내셨죠?”
그날 오후, 리우와의 만남 이후 숙소에 짐을 푼 후 도경은 초대받은 빌의 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와서 뭘 준비해야 할까…… 고민하다 고른 거예요.”
도경은 손에 든 선물을 빌의 부인인 유나 마셜에게 건넸다.
미국계 한국인인 그녀는 도경의 선물에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람.”
“좋아하실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이죠! 제가 웃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
“윤, 왔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방 안에서 편한 옷차림의 윌리엄 마셜이 나왔다.
“이제 퇴근했나 봐?”
“조금 전에 있었던 미팅이 꽤 늦게 끝났네.”
“내가 시간을 잘 맞춰서 왔네.”
“그나저나, 뭘 사 왔길래 유나가 이렇게 기뻐하는 거야?”
빌은 궁금하다는 듯 유나가 든 종이 가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도경 씨가 준비한 내 선물이니, 빌은 몰라도 돼.”
유나는 그리 말하며 종이 가방을 훽 오므리고는 주방으로 들어가며 입을 열었다.
“식사하게 두 분 모두 앉으세요.”
유나의 모습에 빌은 도경을 바라보았고, 도경은 어깨를 으쓱였다.
“말 안 해줄 거야?”
“하하하, 한국 화장품이야. 미국에서 최근에 유행한다고 들었거든. 구하기는 힘들고 말이야.”
“어떻게 구했어? 윤, 너도 미국에만 있었잖아.”
“얼마 전에 제시카가 잠시 들어왔는데, 부탁했어. 언젠가 만나면 줘야지 하고.”
도경의 말에 빌은 미소를 지었다.
“세심하네.”
“그게 우리 일이니까.”
“하하하, 맞아. 앉자고, 유나가 화내기 전에 말이야.”
빌의 안내에 도경은 자리에 앉았고, 잠시 후 유나 마셜이 준비한 음식으로 식탁이 가득해졌다.
“사실 저번에 유나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받았을 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오늘도 살짝 기대했는데, 역시 맛있어 보이네요.”
“도경 씨는 준비한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방법을 아는 것 같네요. 맛있게 드세요.”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식사하기 시작했다.
“오늘 꽤 바빠 보이던데.”
도경이 그리 말을 하자 빌은 말도 말라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최근 들어서 최종 결재를 내가 하다 보니까. 파미르가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파미르의 운용자산이 500억 달러인가?”
“503억 달러쯤.”
우리 돈으로 67조 2천억 원이 넘는 규모였다. 단일 헤지펀드로는 미국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부러운데.”
“무슨 소리야. 파미르는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쌓아온 규모고, 유성은 AUM이 60억 달러 넘지 않았어?”
“글쎄. 밝히고 싶지 않네.”
도경의 너스레에 빌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운용자산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건 윤, 네가 이 땅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야.”
“하하하, 곧 500억 달러가 넘는 회사를 경영할 사람에게 듣는 칭찬이라 그런지 기분이 좋네.”
“아직은 아니야.”
도경의 말에 빌의 얼굴은 진지함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여전히 마음을 못 정했나 보네.”
“윤, 네가 내 심정이 되어도 똑같을 거야. 리우의 은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어.”
빌의 말대로 도경은 그의 상황이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심정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리우의 은퇴가 그렇게 심각한 건가?”
“뭐?”
도경의 말에 빌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경은 누구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고, 믿고 있었는데 의외의 말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빌, 네 반응이 너무 신기해.”
“말했지만…… 리우는 파미르의 모든 것이야. 파미르를 만든 것도…….”
“파미르를 지금의 위치로 만든 것도 리우의 경영 덕분이지. 그런데, 차에서 이야기했듯 리우가 그리 선택했다면, 우리가 해야 할 건 그걸 반대하거나 슬퍼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거지.”
도경의 말에 빌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도경의 말이 맞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분! 식사하시고 이야기하세요.”
그때,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나가 끊어주자, 도경은 미소를 지었고, 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밥 먹고 이야기하자.”
이후로 세 사람은 식사를 마쳤고, 잠시 후 도경과 빌은 집 한편에 있는 테라스에 나와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이 시애틀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빌, 나는 네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해.”
한참의 정적을 깨는 도경의 말에 빌은 고개를 돌렸다.
“답이 없는 문제에 답을 내려고 한다는 말이야.”
“…….”
“리우는 선택했어. 자신의 은퇴를 말이야. 그건 나나 빌, 네가 막을 수는 없는 거야. 리우의 마음이 변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빌은 가만히 도경의 말에 집중했다.
“물론, 네 마음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나도 나를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준 리우의 은퇴가 안타까우니까.”
“…….”
“그래서, 나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
“내색하지 않는다고?”
“그래. 리우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정말 리우의 마지막이 화려해질 수 있는 길을 찾을 거야.”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다시 야경을 바라보았다. 시애틀의 밤은 에메랄드 시티라는 별명답게, 바다 위로 쏟아지는 별빛과 도시의 불빛이 어우러져 있었다.
“마지막이 화려해질 수 있는 길이라…… 그런 게 있을까?”
잠시 후, 빌은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된 듯 도경에게 물었다.
“나는 아직도 리우가 은퇴를 한다는 게 싫고, 이해할 수 없지만. 네 말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빌은 결심이 선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리우의 마지막을 빛내줄 수 있는 길이 있을까?”
빌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지금 그가 무언가 결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있을 거야. 내가 도울게.”
도경의 확신이 담긴 말에 빌은 고개를 끄덕였고, 도경 또한 미소로 화답했다.
* * *
“다들 오랜만이네.”
다음 날, 파미르 캐피털의 대회의실.
평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던 이곳은, 리우의 소집으로 인해 임시 이사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열린 이사회에 다들 심려하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는 이사회가 열릴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잭슨.”
“네, 보스.”
리우는 아프리카 투자를 담당하는 이사를 불렀다.
“나이지리아 쪽 투자는 어떻지?”
“좋습니다. 최근 확실히 나이지리아 문화산업이 올라왔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나이지리아 음악들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여러모로 투자들이 이어지고 있고요.”
20년대 초반부터 나이지리아의 음악인 아프로팝Afropop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기를 끌며, 파미르가 투자한 문화 사업이 궤도에 올라탔다.
“올해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꽤 지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 흐름이 이어질 거냐야.”
“문제없어 보입니다. 나이지리아 정부에서도 영화와 음악 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투자한 기업들이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이사의 보고에 리우는 원했던 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존.”
“네, 보스.”
“아시아 시장은 어때?”
아시아 시장은 파미르가 이 위치에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시장이었다.
중국에서 망명한 리우는 중국에 대한 정보에 빠삭했고, 이는 당시 중국 경제 부흥기와 맞닿아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다 주었다.
“최근엔 좀 힘듭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있어서, 투자를 홀드하고 인도와 동남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에 투자했다는 보고는 받았는데.”
“네, 싱가포르가 최근 인공지능 AI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는데, 우리에게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어왔고, 타이밍이 맞는 거 같아 투자했습니다.”
싱가포르는 최근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를 하며, 전 세계 AI 기업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파미르는 거기에 전주로 참여해 자금을 투자했다.
“앞으로 어떨 것 같아?”
“알파벳이 싱가포르에 네 번째 데이터센터를 완공했습니다. 아마존도 상당히 투자를 했고요. 2년 만에 투자금 50억 달러를 넣을 만큼 진심이라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인공지능의 중심지가 될 것 같습니다.”
“맹신은 하지 마.”
리우는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근 동남아에 데이터 센터 유치전쟁이 일어났어. 싱가포르가 앞서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치고 올라오고 있으니까.”
리우의 말에 이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최근 리우는 외부로 강연을 다니며 실질적으로 투자에는 손을 놓고 있었는데, 그는 여전히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빌.”
다음으로 리우는 빌을 불렀다.
“네, 리우.”
“미국과 유럽은 어때?”
“펀드 성적이 훌륭합니다. 다만, 현금을 최대한 쥐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금리를 내린다는 말도 있고, 시장이 당분간은 혼탁할 것 같습니다.”
빌의 말에 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리, 내릴 거 같아?”
리우의 질문은 언제나 빌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핵심을 찔러오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내릴 것 같습니다. 최근 고용 지표가 너무 얼어붙어 연준에서도 당황하는 눈치들이 보여서요.”
“얼마나 내릴 것 같아?”
“25bp(0.25%p) 정도…….”
“내기할까?”
“네?”
“나는 빅 컷을 할 것 같은데. 50bp.”
리우는 언제나 빌을 놀리는 것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리우의 농담에 회의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화기애애 해졌다.
“어쨌거나, 펀드가 잘 돌아가고 있어서 여러분 덕분에 내가 외부 일정을 치르기가 편해.”
“언제쯤 외부 일정이 모두 끝나십니까? 회사에는 여전히 리우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한 이사가 그리 말하자 리우는 진지한 얼굴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이전에도 지나가듯 이야기했지만, 나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입니다.”
리우의 입에서 나온 폭탄과도 같은 말에 모두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물들어갔다.
지나가듯 은퇴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 리우는 확실하게 마음을 굳히고 기한까지 이야기해 왔다.
“그래서 올해는 열심히 일할 예정입니다.”
“리우, 아직…….”
“파미르에는 내가 없어도 훌륭한 이사들이 있고, 또 회사를 이끌어갈 인재가 있습니다.”
리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빌에게로 향했다. 빌도 마음이 어지러운 듯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은퇴를 하기 전, 마지막으로 내가 남기고 싶은 게 있습니다. 새로운 펀드를 만들 예정이고 그건 내 마지막 유산이 될 예정입니다.”
이어지는 리우의 말에 모두가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투자자를 따로 받겠지만, 나도 투자를 할 예정이고요. 은퇴 이후 노후 자금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리우는 웃으며 농담했지만, 모두 웃지 못했다.
“그리고, 그 투자는 외부 헤지펀드와 함께할 예정이고요. 우리 측에서는 빌이 함께했으면 하는데.”
“제가…… 그것보다 누구와 함께…….”
빌은 그리 말하며 순간 머릿속으로 한 인물이 스쳐 지나갔다.
“밖에 오래 기다리셨는데 들어오시라고 해.”
리우가 그리 말하자 문 앞에 대기하던 직원이 문을 열었고, 밖에 서 있던 한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유성인베스트먼츠의 윤도경입니다.”
도경의 등장에 모두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도경과 리우를 번갈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