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726)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26화(726/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26화
“어우, 배고프다. 일단 좀 먹자.”
그날 저녁, 도경은 여의도 모처에 있는 한 국밥집에 나와 있었다.
약속 상대는 들어오자마자 도경이 미리 주문해 둔 국밥을 크게 한술 뜨고는 가방을 열어 서류를 건넸다.
“선배, 그래도 우리가 오랜만에 보는데 인사는 좀 하고…….”
도경이 그리 말하자 앞에 앉은 상대는 우물우물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가 뭐, 인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할 사이도 아니고, 서로 얼굴만 봐도 알잖아. 윤 대표도 밥 먹고 이야기하자고. 배고파 죽겠어.”
상대는 유성투자증권의 이사 최우진이었다. 그의 말에 도경은 피식 웃으며 자료를 한쪽에 내려놓고 식사를 했다.
“그나저나 웬일로 국밥집을 골랐어?”
“미국에 다른 건 정말 다 있거든요. 한식 말이에요. 그런데 국밥은 없어요.”
“그래?”
“네. 먹으려면 뉴욕까지 가야 해서…… 요즘 하루에 한 번 이 뼈다귀해장국 먹습니다.”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쁘지 않네. 나는 한국에 있는데도 오랜만에 먹어. 맛있네.”
두 사람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식사를 이어나갔고, 잠시 후 식사를 마치고 주변의 카페로 이동했다.
“퇴근 이후라 그런지 조용하네요.”
“그게 아니라, 이쪽이 좀 조용해. 일부러 이 근처로 잡은 거야.”
어쩐지 최우진이 여의도 증권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만나자고 해 의아했는데, 그는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자료 검토하고 있어, 커피 사올 테니까. 아아 맞지?”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피를 사러 갔고, 도경은 조금 전 최우진에게 받은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한창 검토하고 있을 때, 최우진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오늘 오전에 윤 대표가 이거 좀 알아봐 달라 했을 때, 이걸 왜 알아보려 하나 했더니, 웬걸 오후가 되니 터지더라.”
도경이 최우진에게 요청해서 받은 이 자료는 광윤금속에서 투자한 사모펀드의 투자처였다.
“로인파트너스 회장이랑 광윤금속 최성진 회장이랑 고등학교 동창이라더라고.”
“그렇습니까?”
“응, 근데 그래도 말도 안 되는 투자긴 해. 한 펀드의 설정액이 900억인데 이 중 890억 원을 광윤금속이 다 댔어.”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바라보았다.
“10개 펀드 AUM(자산운용)의 87%를 광윤금속의 돈이라고 보면 이게 일반적이지는 않지.”
“네, 아예 없는 일도 아니지만…… 보통 펀드의 구성이 이렇지 않죠.”
평균이라는 게 있었다.
10개의 펀드 중 하나의 펀드는 설정액의 100%를 광윤금속이 하더라도 다른 펀드는 일반적인 펀드 구성과 비슷하게 기관투자자들이 더 많은 것이 대부분의 펀드였다.
“그런데 로인은 아예 기관투자자를 처음부터 받지 않을 것처럼, 아니, 투자자가 이미 정해진 것처럼 상품을 만들었고. 하루 만에 광윤금속이 LP(펀드 투자자)로 참여했어.”
둘 사이에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거 때문에 고민이에요.”
“뭐가?”
“광윤금속을 위해서는 최 회장이 경영권을 쥐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지. 지금의 광윤금속을 만든 건 최 회장의 아버지와 최 회장이니까.”
“그런데, 회삿돈을 이렇게 함부로 투자했다는 게 솔직히…….”
“오너리스크지.”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영자의 자질은 기업이 돈을 벌면 그만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생각이 달라요. 현금 부자인 광윤금속이 자신들의 현금을 이렇게 이사회 의결도 없이, 하나의 사모펀드가 만든 상품에 출자한다?”
“그것도 회장의 고등학교 동창이 운용하는 사모펀드지.”
“네,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펀드 구성을 보니 이해가 가네요.”
“이걸 보고 이해가 간다고?”
“네, 펀드 대부분이 현금을 많이 들고 있어요. 아마도 최성진 회장은 로인을 이용해 경영권 방어를 하려고 했을 거예요.”
“아! 다른 기업에 투자하면서 우회적으로 광윤금속의 지분을 사게 하면 되겠네.”
“네. 그런데 바로 차단당했죠. 지금 애가 탈 거예요. 이걸 DK에서 때렸으니 주주들은 배임으로 물고 늘어질 테고,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어요.”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번 분쟁은 답이 없는 것 같지? 계열 분쟁에 사모펀드를 끌어들인 쪽과 회사의 돈을 제 마음대로 투자하는 쪽. 나도 양측 어느 손을 들어주기 싫은데.”
“……솔직히 마음은 여기서 중립선언 하고 돌아가고 싶습니다만, 그럴 수는 없죠.”
한국까지 온 이상. 더불어 자신들이 쥐고 있는 광윤금속의 2% 지분이 주는 힘을 아는 이상.
이득을 보고 돌아가야 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펀드가 어디 투자한지 선배 덕분에 알았으니, 만나야겠죠.”
“누굴?”
“김동규 회장이요.”
“김동규? 최성진이 아니라?”
도경의 입에서 광윤금속 회장의 이름이 아닌 광윤의 편으로 분쟁에 참여한 DK홀딩스 김동규 이름이 나오자 최우진은 놀란 듯 되물었다.
“네, 이건 일단 넣어두고…… 김동규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죠. 이건 최성진 회장에게 들어야 할 일이니까요.”
광윤금속과의 최종 만남 전, 그들의 상대를 받아 조건을 들어보려고 했다.
도경은 그리 말하며 자료를 가방에 넣고는 미소를 지었다.
“선배, 부탁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고맙기는 무슨, 나도 흥미로워서 도와준 거니까, 나중에 다 끝나고 미국 가기 전에 술이나 사.”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일어나자고, 바쁜 사람 붙잡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네.”
최우진의 말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카페에서 나와 밖에서 대기하던 차에 올라탄 도경은 차선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차선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들에서 손을 뗐고, 도경은 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불쑥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유성인베스트먼츠의 윤도경입니다.”
-하하하, 언제 연락이 오려나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군요.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지금 뵈어도 되겠습니까?”
도경의 물음에 수화기 너머에서는 바로 약속 장소를 말해왔고, 인사 후 전화를 끊은 도경은 차선태를 바라보았다.
“DK홀딩스 빌딩으로 가주세요. 어디 있냐면…….”
“이미, 위치 숙지해 놓았습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차선태는 그리 말하고는 차를 출발시켰고,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야, 처음 뵙겠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분을 만나 영광입니다. 김동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갑작스러운 만남 요청에도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윤도경입니다.”
“하하하, 윤 대표님도 DK, 저도 DK. 우리는 통하는 게 많습니다.”
김동규는 농담을 던지며 손을 내밀어왔고, 도경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자,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김동규는 자신의 사무실 한쪽에 있는 자리로 도경을 안내했다.
“차라도 드시겠습니까?”
“이미 마시고 와서요.”
“그렇겠지요. 한국에 들어오셔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니실 테니 말입니다. 여기 가도 커피, 여기 가면 주스. 우리 일이 참 음료 얻어먹으러 다니는 일입니다.”
김동규는 공감한다는 듯 방 한쪽에 있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도경에게 건넸다.
“생수라도 드시지요. 저는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다닐 때 이 생수를 주는 사람이 그렇게 고맙더라고요.”
김동규의 말에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지금 이해했습니다.”
“하하하. 그럼 내가 점수를 딴 거겠군요.”
김동규는 그리 말하고는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았다.
“광윤캐피털 지분 0.98%. 숫자가 정말 예술이더군요. 나는 놀랐습니다. 솔직히 경신저축은행이 매물로 나왔을 때, 누가 거들떠나 보기나 했습니까?”
“…….”
“그런데 거기에 그런 지분이 잠들어 있었군요. 이 일을 예상하셨습니까?”
“예상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언제고 요긴하게 쓰일 거란 것은 당시에 알았습니다. 광윤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거라고요.”
“그렇다면 예상한 거네요. 정확히 몇 달 후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까.”
김동규는 흥미롭다는 듯 도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단 0.98%로 광윤캐피털의 경영권을 엎어버릴 수 있죠. 지금은 물론 나와 함께하는 장경수 회장의 측근이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만…….”
만약 이 0.98%가 최씨 가문의 손을 들어준다면? 광윤캐피털의 경영진을 갈아엎고, 캐피털이 가진 2%의 광윤금속 지분을 최 회장을 위해 쓸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판단으로…….”
김동규는 정말이지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경신저축은행을 인수한다는 한 번의 판단으로 도경은 그들이 지불한 돈, 그 이상의 가치를 가져왔다.
“……놀랍습니다. 윤 대표님은 참으로 똑똑한 분입니다. 우리나라같이 금융인이 크기 힘든 척박한 땅에서 자생해, 미국까지 진출했으니까요.”
김동규는 굳은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똑똑한 분이니 이번 일에서 어느 쪽의 손을 들어야 광윤금속의 지분 2%가 최대의 가치를 낼 수 있는지 알겠죠.”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대표님을 뵈러 왔고요.”
“하하하, 훌륭한 선택입니다. 회사의 현금을 제 주머니의 돈처럼 자신의 친구가 운용하는 사모펀드에 마구 써대는 경영자의 손을 잡을 수는 없죠.”
“그래서 가장 먼저 터뜨리셨겠죠?”
도경은 그리 말하며 김동규를 바라보았다.
“10개의 펀드 중 4개는 투자를 찾아 투자했던데, 나머지 6개는 여전히 현금보유량이 많더군요. 그 현금들이 이번 경영권 분쟁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컨트롤하신 거 아닙니까?”
도경이 굳이 여의도에서 최우진을 만나 로인이 만든 펀드의 투자처를 알아본 것도 이유가 있었다.
“하하하, 역시 똑똑하군요. 그렇습니다. 혹자는 그저 내가 최 회장을 깎아내리기 위해 그걸 터뜨렸다고 보겠지만, 틀렸습니다. 그 돈의 무서움을 나는 아주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을 제한한 거지요.”
역시, 김동규는 예상대로 처음 공격 대상을 골랐다. 그것도 상대에게 아주 치명적인 대상으로.
로인 캐피털은 자신들이 쥐고 있는 현금을 다른 기업에 우회 투자 해, 광윤금속의 지분을 매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공격 한 방으로 그들의 움직임은 제한당했다.
“거기에 경영 능력을 인정받는 최성진 회장의 평판을 깎아내리기도 좋은 수였고요.”
도경은 김동규의 공격을 그리 평가했다.
“윤 대표가, 고심해서 고른 공격을 알아봐 주니 뿌듯하군요.”
“그럼,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저희 유성인베스트먼츠가 DK와 장 회장의 손을 들어준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도경의 물음에 김동규는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장 회장이 나를 끌어들이며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광윤금속의 경영권이죠.”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DK와 장 회장 측이 승리한다면, 광윤금속의 경영권은 김동규가 가지게 된다.
“승리한 이후, 유상증자를 할 예정입니다. 상대의 지분을 희석해야 앞으로 경영권이 안정적으로 될 테니까요.”
발행 지분 수를 늘려 상대가 가진 지분의 수를 깎아내리는 건 경영권 분쟁 이후, 승리한 측에서 내리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다시 상대가 공격해 올 기미조차 주지 않겠다는.
“유상증자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하겠습니다. 대상은 유성인베스트먼츠. 지분 양은 5%에 맞춰 드리지요.”
김동규는 그리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주주들도 유성인베스트먼츠가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면 좋아하겠죠. 윤도경이란 사람이 시장에서 가지는 상징성은 매우 크니까.”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것을 주시네요.”
김동규가 제안한 것은 도경이 생각한 것보다 더 후했다.
“그만큼 지금 윤 대표가 쥐고 있는 광윤금속 지분 2%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가서 고심하고 답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일어날까요?”
김동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경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똑똑한 사람을 만나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했으면 좋겠군요.”
김동규는 그리 말하며 손을 내밀었고,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DK홀딩스의 사옥을 나온 도경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다현 씨, 최성진 회장 측에 전화해 약속 잡아주세요. 네. 최 회장 측의 조건을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그리 지시하고 전화를 끊은 도경은 굳은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