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730)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30화(730/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30화
직장인 오세정의 출근길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시장의 모든 수급이 다 광윤금속으로 향하고 있네.”
출근길 휴대전화를 들고 전날 있었던 뉴스들을 보며 오늘 하루 주식시장에서 일어날 일을 대충 예상했다.
근 2주째 시장은 광윤금속의 경영권 분쟁 덕분에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들어가고 싶지만, 괜히 들어갔다가 물릴 것 같아.”
몇 년 전, 코로나 시절에 한창 주식 붐이 불 때 그녀는 남들이 좋다는 주식은 다 사곤 했다.
남들이 가진 주식이 오를 때 나만 소외되는 것 같은 FOMO 현상의 극을 달렸다.
하지만, 그녀는 한 사람을 만난 이후 투자 스타일이 완전히 변했다.
“그냥 매달 모으던 거나 착실하게 모으자.”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증권사 어플을 켰다.
그러고는 국내에 상장된 미국 시장 지수 ETF를 20주 구매했다.
“요즘은 이 정도면 되니까.”
그녀는 한때 미래전자에 크게 물려서 사회초년생부터 열심히 벌어 모아두었던 돈을 모두 잃을 뻔했다.
하지만, 백마 탄 초인처럼 나타난 한 PB 덕분에 자산을 불릴 수 있었고, 그 이후에는 그저 미래를 위한 습관적인 투자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시장을 떠나지 않고, 매일 뉴스를 체크하는 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경제라는 것도 알면 알수록 재미있…….”
띠링-
뿌듯하게 자신의 주식 잔고를 보던 오세정은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울리는 알림음에 시선을 옮겼다.
팝업으로 뜬 알림을 보고는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볐다.
“아니, 진짜잖아.”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크게 외쳤고, 지하철 안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오세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알림의 정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유성투자증권 리더스센터 매니저 윤도경]선명하게 찍힌 이름의 단체 채팅방 옆에 숫자 1이 찍혀 있었다.
“2년 만에…….”
2년 전,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더 이상 글이 올라오지 않는 채팅방이었지만, 오세정은 나갈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가지 않았다.
그 채팅방에는 윤도경이라는, 자신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사람이 매일 아침 보내준 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 수백 번을 다시 보며 다양한 시선에서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한참 화면을 바라보면 오세정은 누가 훔쳐라도 볼까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채팅창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윤도경입니다.
2년 만에 인사드립니다. 혹시 제가 해킹당했다고 생각하시거나, 혹은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글을 올리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시는 분은 의심을 거두셔도 됩니다.
여러분의 매니저였던 윤도경이 맞으니까요.
오랜만에 채팅방을 확인하고는 놀랐습니다. 많은 분이 나가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지막 채팅이 올라왔을 때 그 인원이 그대로 계셔서요.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셨을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저도 매우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오세정은 화면을 보며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너무도 반가운 사람의 인사였다.
2년 만에 제가 여러분들 다시 찾아온 이유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몇 가지 해드릴까 해서입니다.
2021년.
여러분 모두가 아시는 성신백화점 계열사이자, 백화점의 광주법인인 광주성신은 그해 지분을 매각합니다.
그룹의 대주주이자 회장인 심민수 회장이 보유한 광주성신 지분 822,220주.
지분율로 따지면 52.03%를 3,277억 원에 성신백화점에 매각합니다.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백화점들은 요즘 지방 광역도시의 기차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을 지어주고는 그 부지에 백화점도 같이 올리는 방식으로 지방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방의 자본이 서울로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방에 세운 법인으로 진행하죠.
그렇게 되면 법인세를 해당 지자체에 내게 되니 지방에서는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네, 바로 그 광주성신입니다.
성신백화점은 공시를 통해 인수를 발표하면서 재미있는 단서를 하나 붙입니다.
[광주성신의 지분을 인수하며‘경영권 프리미엄’
30%를 책정했다]
저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었습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니?
매각 대상인 광주성신의 지분을 보유한 사람이 성신백화점 회장 심민수인데,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회사에 매각을 하며 경영권 프리미엄을 30%나 붙였다고 뻔뻔하게 공시했습니다.
“…….”
오세정은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장문의 채팅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광주성신은 비상장사이지만, 법인 설립 당시 지역민과 개인투자자 비율을 10%로 맞추고 투자받았습니다.
광주성신의 주주 입장에서는 성신백화점이 광주성신의 지분을 인수하며 보유한 광주성신의 지분율이 60.15%로 높아지면서, 광주성신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양사가 합병될 수 있는 우려가 커졌죠.
재미있는 건, 이를 유도하기 위한 방식이 조금 잔인합니다.
바로 광주성신의 실적 둔화를 유도하는 겁니다.
실적이 너무 잘 나오고 매출이 높다 보면 아무래도 합병 때 광주성신에게 성신백화점의 지분을 많이 주어야 하니 부담스러울 테지요.
지분을 많이 준다면 회장이 가진 성신백화점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희석되게 될 테니까요.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꽤 건조한 문체로 담담하게 글은 진행되었지만, 글을 쓰는 도경이 화가 나 있다는 건 오세정도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 폐단을 지적하며,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를 푹푹 찌르는 글이었다.
바로 정상 거래 가격에 비해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신성백화점은 자신들의 회장 심민수가 보유한 광주신성의 지분에 30%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었노라고 본인들이 밝혔습니다.
프리미엄을 주었으니, 그만큼의 돈을 회수해야겠죠.
보이지 않는 프리미엄을, 그것도 스스로 매긴 프리미엄을 회수하기 위해 해야 하는 선택은 매우 쉽습니다.
주주환원 정책을 줄이고,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배당금을 컷하고(사실 이게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회장의 지분이 빠졌으니 광주성신은 더 이상 배당금을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지 않아도 되겠죠.) 회사의 주요 자산을 매각하면 되겠네요.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바로 우리나라에선 그래도 되니까입니다.
대주주 중심, 그러니까 기업의 총수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으로 군림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에만 충성하는 경영진.
대주주의 거수기 역할만 하는 이사회.
그리고 이를 막을 방법도 의지도 없는 법적 수단.
기업은 회장의 것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무엇 하나 소액주주들에게는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해드릴까 합니다.
겨우 30% 조금 넘는 지분을 가진 한 가문은 매년 10조 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분 30%를 보유한 다른 가문이 자신들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때, 기존에 기업을 좌지우지하던 가문이 선택한 것은 무엇일까요?
네, 앞서 보았던 일을 그대로 답습하면 됩니다.
회사의 자본을 이용해 자신들의 경영권을 사들이면 될 일이죠.
그게 가능하냐고요?
가능합니다.
“하…….”
오세정은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글을 읽는 내내 피곤함이 몰려왔다.
물론, 도경이 써 내려간 글은 매우 재미있었고, 흡입력이 있었다.
하지만, 내용이 주는 피곤함은 어쩔 수 없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는 다시 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돈을 이용하면 되겠죠.
앞서 회사가 매년 10조 원 이상의 돈을 번다고 했으니, 현금이 많겠죠.
먼저, 배당을 줄이겠다고 발표합니다.
매년 주당 2만 원은 꼬박꼬박 지급하던 회사가, 5천 원을 줄여 1만 5천 원을 배당하겠다고 말입니다.
당연히 주주들은 반발하겠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배당을 줄인 돈은 기업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겠다는 한마디를 해둡니다.
그리고, 그 줄인 배당금으로 무엇을 하냐.
시장에서 자사주를 삽니다.
왜?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고 했으면서, 왜 자사주를 사지?
이들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회장이 바뀌지 않는 게 기업의 미래를 위하는 일이니 당연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요?
아이러니하게도 없습니다.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어떠한 문제도 없으니까요.
자, 그렇다면 이를 좋지 않게 보던 다른 가문에서는 경영권을 빼앗기 위해 움직입니다.
그런데 당장 내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돈 많은 친구를 데려와야겠죠.
돈 많은 친구에게 경영권을 너에게 주겠다고 말하고 돈을 빌립니다.
그게 말이 되냐고요?
됩니다. 경영권을 빼앗는다고 했지, 가진다고는 안 했으니까요.
물론 이 빌린 돈은 경영진이 바뀐 이후 회사의 돈으로 갚으면 됩니다.
“이거…….”
여기까지 읽은 오세정은 무슨 말인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
도경은 최근 시장에 일어나고 있는 광윤금속의 경영권 분쟁을 말하고 있었다.
그럼 방어하는 현 경영진도 돈을 빌려와야 합니다.
상대보다 돈이 달리면 ‘내 회사’를 빼앗긴다는 불안함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이자를 많이 주고 고리의 돈을 빌려오면 되는 것이죠.
왜?
내가 갚는 게 아니니까.
이 돈 또한 회사가 번 돈으로 갚으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위한 전쟁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안타깝게도 소액주주입니다.
매년 지급해야 하는 이자가 늘었으니, 배당금을 더 줄일 테고, 회사는 매년 투자하는 연구비용을 줄여야겠죠.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나는 광윤금속의 주식이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역사를 좋아합니다. 역사는 현실의 거울이거든요.
우리나라 제일의 그룹인 미래그룹의 승계를 위해 미래패션과 미래건설을 합병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미래건설이 누가 봐도 돈도 많이 벌고, 가진 것도 많았지만, 합병 당시에 오너가의 지분이 많은 미래패션에 유리한 합병 비율로 합병이 되었죠.
이때,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었던 건 국민연금이었습니다. 국민연금은 미래건설의 지분을 10% 넘게 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반대한다면 이루어지지 않을 합병이었죠.
하지만, 국민연금은 누가 봐도 손해를 보는 게 뻔한 합병을 찬성합니다.
그리고 외국계 사모펀드들에 소송을 당하죠. 국민연금의 선택으로 자신들이 손해를 봤으니, 한국 정부가 그것을 갚으라는 손해배상 소송이었습니다.
결과는?
지연이자를 포함해서 2,500억 원이 넘는 돈을 외국계 헤지펀드에 지급하게 됐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십시일반 돈을 모아 미래그룹 오너가에 경영권을 선물하게 된 겁니다.
정확히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2,300만 명쯤 되니 1인당 약 1만 원씩 내셨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긴 글을 쓰며,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습니다.
저는 이 삐뚤어진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나서려고 합니다.
대의를 위해?
아닙니다.
제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작금의 시장에서는 제가 모르는 사이에 잃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서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길을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돈을 투자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감시의 눈이 되어주십시오.
시장을 바로잡는 자경단이 되어주십시오.
그럼, 이만 글을 마칩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리면서 염치없이 피곤한 말씀만 드려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을 이따금 찾아뵙겠습니다.
글이 끝나고 오세정은 가만히 지하철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한참 여러 가지 생각을 고민하던 오세정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다른 채팅방을 들어갔다.
도경의 단톡방에 있던 회원들을 우연한 계기로 만나 만든 대화방이었다.
물론 오세정은 가끔 대화에 참여할 뿐 대부분은 눈팅만 하던 대화방이었다.
이곳에는 이미 자신과 같이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윤도경 대표도 우리가 자경단이 되어달라고 했으니, 나서야 하나요?] [일단, 윤도경 대표의 글부터 다른 커뮤니티에 공유하죠. 그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올라오는 채팅을 보며 한참을 고민하던 오세정은 오랜만에 채팅을 적기 시작했다.
[광윤금속의 주식을 1주씩 사서, 소액주주 운동을 하는 게 어떨까요?]└와!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을 모아서 진행하는 게 좋겠네요.
└└그런데 총대를 누가 메죠? 이런 일은 총대가 중요한데…….
가장 중요한 물음이 던져지자 뜨겁게 달아오르던 대화방이 조용해졌다.
그런 대화방을 바라보며 고민을 하던 오세정은 결심을 한 듯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제가 해볼게요. 여러분들이 도와주세요.]└물론 도와야죠!
└└법적인 도움은 제가 드리겠습니다. 변호사니까요.
└└└저도 도울게요!
└└└└저도요!
이어지는 대화방 회원들의 말에 오세정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날 오후, 도경은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별안간 걱정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귀 떨어지겠어요.”
-아니, 왜 그렇게 사람이 모험심이 강해?
“모험이 아니에요.”
수화기 너머 목소리의 주인공은 최우진이었다. 잔뜩 걱정된다는 목소리로 도경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이었고, 그게 저였어요.”
-그러니까. 왜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쌓다 못해 날아가고 있는 도경 씨가 총대를 지냐고.
“제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하니까요.”
짧은 도경의 말에 수화기 너머에서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선배, 저는 그 꼴이 보기가 싫어요. 그런데 나 대신 그걸 말해줄 사람도 없고요. 그럼 제가 해야죠.”
-어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 없이 막 지른 건 아니니까요.”
-그래, 그건 그렇겠지. 윤도경이 그냥 냅다 지르고 볼 사람은 아니지. 그런데 판이 좀 생각한 거보다 더 커지는 것 같은데.
“네?”
-글 반응을 보다 보니까, 소액주주 운동이 일어날 것 같아.
“소액주주 운동이요?”
-그래, 몇몇 사람들이 광윤금속의 지분 1주씩 사서 뭉치자고 말해오고 있어. 실제로 인증들도 올라오고 있고
도경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변화를 바라던 사람이 많았던 것 같네.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바뀌길 원하는 사람이, 이 더러운 꼴 보기 싫다는 사람이 자신뿐만일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 이외에도 나서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멀쩡한 사람들 마음 들쑤셔 놓았으니 열심히 해. 도경 씨가 이 사람들 희망이야. 지금부턴.
퉁명스레 말해왔지만, 도경은 최우진이 자신을 걱정하며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겨보겠습니다.”
-방법은 있지?
“물론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생각한 걸 좀 더 키워볼 생각입니다.”
도경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