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744)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44화(744/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44화
“보스, 부르셨습니까?”
한참 모니터를 보며 집중하고 있던 도경은 손에 한 아름 자료를 들고 들어오는 김우혁의 모습에 피식하고 웃었다.
“왜 웃으십니까?”
“아니, 요즘 제 방에 보고를 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이패드 하나만 들고 오거든요.”
“아휴, 저는 그런 그 태블릿 PC 같은 것들이랑은 친하지 않습니다. 종이로 보고 해야 좀 집중이 잘되는 느낌이라.”
김우혁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잠시 앉아 계세요. 이것만 마무리하고요.”
“네.”
그렇게 말하고는 하던 일을 마무리 한 도경은 음료수 두 개를 꺼내 들고는 자리로 향했다.
“저도 이렇게 종이 보고서 보는 게 더 좋습니다. 사락 하고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뭐라고 해야 할까요. 마음에 안정을 주거든요.”
“역시, 보스는 저와 같으실 줄 알았습니다. 앗, 감사합니다.”
김우혁에게 음료수를 하나 건네고 자리에 앉아 그가 가져온 보고서를 펼쳤다.
“갑자기 칠레의 CDS를 준비하라고 하셔서, 국가 CDS를 말씀하시는 건지 아니면 점심시간에 이야기하시던 광산 기업들을 이야기하시는 건지 몰라서 다 준비해 왔습니다.”
도경은 김우혁이 보고서를 한 아름 들고 온 이유를 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습니다. 결국엔 필요했을 거예요.”
“채권쟁이로 십수 년을 살았는데, 오랜만에 채권 자료들을 보니 마음이 들뜹니다.”
김우혁은 유성인베스트로 넘어오기 전, 보험사에서 채권을 트레이딩하는 업무를 했다.
채권 트레이더들은 본인들을 채권쟁이라 낮잡아 부르곤 했는데, 여전히 그때의 버릇이 남은 것 같았다.
“그래서, 채권 전문가이신 김우혁 이사님께서 보시기에 CDS 상황이 어때 보이십니까?”
“하하하. 그럼 한번 볼까요. 자료를 챙기면서 보긴 봤는데, 확실히 칠레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경은 가만히 김우혁을 바라보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칠레의 CDS 5년물의 프리미엄은 원래 50~65bp(0.5~0.65%) 선에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단 한 번 이 선을 뚫고 오른 적이 있었는데요.”
Credit Default Swap, CDS.
우리말로 신용부도스왑은 채권을 발행한 국가가 채권을 갚지 못하거나, 채무불이행을 선언했을 경우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파생상품이다.
가령,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발행한 채권을 산 도경이 대한민국의 부도 위험에 대비해 유성투자증권에서 CDS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부도가 나면, 유성투자증권은 도경에게 대신해서 채권 원금을 갚아주었다.
일종의 보험과 같은 파생상품이나 다름없었다.
“코비드 19.”
코로나 시절에는 거의 모든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이 상황이 좋지 않았으니까.
“맞습니다. 당시에 칠레의 CDS 프리미엄은 165bp까지 상승했습니다.”
CDS 계약을 맺을 때, 도경이 유성투자증권에 지급하는 수수료.
다시 말해 보험료를 CDS 프리미엄이라고 불렀다.
미국과 같이 파산할 가능성이 없는 나라의 경우는 CDS 프리미엄이 매우 낮았고, 부도가 날 확률이 높은 국가나 은행의 채권은 CDS 프리미엄이 높았다.
“그런데 요즘 칠레의 CDS 프리미엄도 심상치 않습니다. 80bp까지 치솟았거든요.”
평소 50~65bp를 유지하던 칠레의 CDS 프리미엄이 80bp까지 치솟았다는 건, 칠레의 채권이 위험성이 커졌기 때문에 보험사에서 더 높은 수수료를 요구한다는 뜻이었다.
“이유가 있을까요?”
“앞서 보스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코로나 이전부터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가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부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마이애미에서 내리는 평가라는 걸…….”
“아! 물론이죠. 답을 원한 건 아니었습니다. 혹시 다른 이유를 아실까 싶어서 물어봤을 뿐입니다.”
도경 또한 단순하게 그렇게만 보고 있었으니까.
다만…….
“보스께선 다른 이유를 알고 계신다는 눈치입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칠레의 새 정부가 조금 급하다고 해야 할까요?”
“급하다는 건…….”
“워낙 정치적 환경이 불안정하다 보니 뭐라도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고, 그렇게 되는 건 결국 급진적인 정책 변화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미국이 보여주었죠.”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김우혁의 말대로 미국과 여타 다른 국가들은 보호무역 정책을 늘리며 국내 경제를 살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로 인해 세계는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주의로 변해가는 중이었으니까.
“물론 이 또한 우혁 이사님이 말했듯, 정치적 불안정이 연속된 거니까요. 확실한 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도경의 말에 김우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바라보다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CDS를 준비하라고 하셨습니까?”
“아, 최근에 앨버말의 경영진이 계속해서 칠레로 향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정부의 관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는 정보인데. 구체적인 건 없습니다.”
“앨버말이요? 앨버말이야, 칠레에 리튬 염호를 여러 개 가지고 있으니 별다를 게 없는 행동 아닙니까?”
“그게 정답이겠죠. 그런데 제가 의심병이 좀 있어서…… 최근 앨버말의 행보를 조금 봤습니다. 앨버말은 최근 호주와 미국에서 리튬 광산 채굴권을 따내고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시기에 갑자기 CEO를 비롯한 경영진이 수시로 칠레로 가는 게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도경의 말에 김우혁은 테이블 위의 노트북으로 기사를 검색하는 듯했다.
“확실히 그렇네요. 호주에서 사업을 크게 벌여서 호주에 있어도 모자랄 시간일 텐데.”
“그리고 호주의 리튬 개발 건도 갑작스레 다량의 보도 자료와 컨퍼런스를 쏟아내듯 하고 있어요. 마치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
김우혁은 심각한 얼굴로 도경의 말을 듣고 있었다.
“업계에 있어보니, 이런 일들은 개별로는 일어날 수 있지만, 한 시기에 이런 움직임들이 집중되면 꼭 문제가 생기더군요.”
“피트의 자료가 급하네요. 리서치 자료가 있어야 빠르게 파악이 가능할 텐데요. 확실히 보스의 말처럼 냄새는 납니다.”
“아뇨. 피트의 자료만 기다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면…….”
“가시죠. 칠레로. 저랑 같이.”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했고, 김우혁은 놀란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 * *
“어휴 덥네요.”
며칠 후, 도경과 김우혁은 칠레 산티아고 국제공항에 내렸다.
급하게 잡힌 출장이었는데, 남반구인 칠레는 이제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입국장에서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숨이 턱 막히는 더위에 김우혁은 지친다는 듯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걸었다.
“저기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네요.”
그때, 도경은 누군가를 발견한 듯 김우혁에게 말했고, 두 사람은 그를 향해 다가갔다.
“미스터 윤도경?”
40대 초중반의 남자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며 물었다. 칠레인으로 보이는 외모와 마른 체격의 그는 깔끔하고 정돈된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하하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마누엘 루이스 리베라라고 합니다.”
“유성인베스트먼츠의 윤도경입니다.”
“김우혁입니다.”
“윤과 킴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그럼, 우리는 마누엘을 무어라 부르면 될까요?”
“루초라고 불러주십시오. 밖에 차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함께 나가시죠.”
괄괄한 목소리와 몸짓의 루초를 따라가며 도경과 김우혁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루초의 첫인상이 나쁘지 않다는 듯한 몸짓을 주고받았다.
“오늘은 일단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네, 저희가 칠레는 처음이라 일단은 휴식을 취하고 내일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최근 일이 없어서 힘들었는데, 윤의 안내를 맡으라는 연락이 와서 너무 기뻤습니다. 윤과 킴은 내게는 은인과 같은 분들이지요.”
묻지도 않은 말을 해오는 루초를 보며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제가 듣기로는 유능한 가이드라고 들었는데요. 일이 없나요?”
조슈아 카플란이 소개해 준 가이드가 루초였다. 업계 사람들이 칠레로 출장을 오면 찾는 가이드 중 가장 유능하다고 했는데, 일이 없다니 조금 의아했다.
“그 빌어먹을 전염병 이후로는 늘 똑같습니다. 전염병이 끝나고 나니, 정치적 불안정성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줄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를 찾는 클라이언트들도 줄어갔고요.”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투자자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는 루초의 일거리가 끊겼다는 건 외국인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칠레로 향하는 것이 줄었다는 말이었다.
길거리에는 드물게 수제로 만든 현수막들이 보였는데, 김우혁은 루초를 향해 물었다.
“저기 보면 현수막들이 드물게 보이는데 뭐라고 적힌 겁니까?”
“아, 저건 시위대가 시위하고 붙여놓고 간 겁니다. 불평등을 바로잡으라고 적혀있네요.”
“여전히 시위가 있습니까?”
도경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2019년처럼 본격적이진 않지만, 가두 행진을 하는 시위는 자주 있습니다. 아무래도 최근이 팬데믹 때보다 더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팬데믹 때보다 더 힘들다고요?”
“네, 칠레인으로서 부끄러운 말입니다만, 칠레는 상위 1%가 부의 30%를 독점하는 나라입니다. 빈부격차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고요.”
도경과 김우혁은 가만히 루초의 말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겨우 지하철 요금 4% 올리는 것에 모두가 터져 버린 거죠. 우리 같은 서민들은 출퇴근 지하철 비용으로 한 달 월급의 30%를 쓰거든요.”
칠레의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지하철 요금 인상은 우리 돈으로 1,320원이던 요금을 1,370원으로 올리며 촉발되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교통에 지출하는데, 오히려 가격을 올려 버리니 사람들은 미치는 거죠. 월급은 늘지 않는데 필수로 나가야 하는 비용은 늘어가니까요.”
어쩌면, 지하철 요금 인상은 그들에게는 하나의 시작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다음은 다른 것을 올릴 것이고, 그다음도 더 있을 거라고.
“그렇게 시위가 크게 일어나고, 팬데믹 이후로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많이 줄었나 보죠?”
“예. 솔직히 나는 칠레인이지만, 윤에게 이 나라에 투자하는 것을 멈추라고 하고 싶습니다.”
“…….”
“외국인 투자자들이 칠레에 투자하지 않는 건,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리튬이나 구리 같은 광업 때문에 경제가 돌아가는데 여기서 나온 부가 우리에겐 돌아오지 않습니다. 혜택들은 오직 광산을 보유한 기업에만 돌아갈 뿐이죠.”
루초의 말에 도경과 김우혁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들을 모시고 별 이야기를 다 했네요. 두 분이 예약하신 호텔에 곧 도착합니다.”
이들이 탄 차는 잠시 후 호텔 로비에 멈추어 섰고, 도경은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루초에게 건넸다.
“따로 비용을 받는 걸 알고 있지만, 이건 오늘 나에게 좋은 정보를 이야기해 준 대가입니다.”
“너무 큰 금액입니다.”
도경에 손에 잡힌 100달러짜리 지폐 여러 장을 본 루초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저는 필요한 정보에는 대가를 지불하라고 배웠거든요. 정말 필요한 정보였습니다. 받으십시오.”
도경의 말에 루초는 잠시 도경을 바라보다 진심이라는 표정에 지폐를 받아서 들고는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이 번호로 연락해 주십시오. 한밤중이어도 오겠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내일 오전 10시에 뵙죠.”
도경은 루초와 약속을 하고는 차에서 내려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경제가 꽤 심각한가 본데요? 원래 자국민일수록 자신의 나라에 꽤 엄격한 평가를 하기는 하지만, 다른 국적의 사람, 그것도 오늘 처음 본 사람 앞에서는 저런 이야기들을 잘 하지 않잖습니까?”
“네. 좀 평가가 험하게 들리긴 했습니다. 그런데 필요한 정보였기도 했고요. 바닥에서 느끼는 경제는 이곳에 와보지 않고는 못 느끼는 거니까요.”
혹시라도 루초가 도경과 김우혁을 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평가였다.
“저런 평가를 듣고 나니 투자가 조금 꺼려지지 않으십니까?”
김우혁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글쎄요. 저는 이런 상황에 돈을 벌려고 칠레로 온 거라. 일단 오늘은 좀 쉽시다. 내일 제대로 이야기해 드릴게요.”
도경이 그리 말하고 체크인을 하러 데스크를 향해 걷자, 김우혁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도경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