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756)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56화(756/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56화
“오늘은 깊게 들어가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테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며칠 후, 유성인베스트먼츠 회의실.
유성타워로 옮기며 직원들이 좋아하는 것이 하나 더 생겼는데, 바로 넓디넓은 회의실이었다.
이전 사무실에는 워낙 회의실의 규모가 작아 원탁에 둘러앉으면 자리가 부족했다.
새로운 회의실은 대학교의 작은 강의실과 같았는데 도경이 연단에 서면 줄지어 앉아 팀원들이 서로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제이크의 팀이든, 스테판의 팀이든 과감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해 봐.”
쉰 명이 넘는 펀드 운용팀의 팀원 모두가 회의에 참석했는데, 도경은 연단에 앉아 직원들의 말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브릭스가 요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스테판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BRICS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포함하는 주요 신흥국들의 경제협력체다.
용어 자체는 GS의 직원이었던 짐 오닐이 만들었는데, 후에 공식적으로 이들이 모여 하나의 협력체를 만들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브릭스가?”
“네. 최근에는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 아랍에미레이트를 새로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면서 기존 질서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스테판은 아시아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펀드를 운용 중이었기 때문에, 브릭스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G7에 대응하려는 거겠지.”
“네. 브릭스 구성원들 대부분이 미국을 싫어하는 국가들이니까요. G7이 이끄는 기존 질서에 편입되기보다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스테판의 말에 메모하던 도경은 고개를 들어 스테판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펀드를 구성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두 국가는 세계의 공장이나 다름없고, 최근 중국도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경제가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스테판의 말에 몇몇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최근 중국의 대규모 경제부양책은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장, 세계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스테판 의견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다음은?”
도경은 그리 말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칠레 사무소를 오픈했으니 칠레를 기반으로 남미 시장에 대한 펀드를 구성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폭넓게 중남미까지 포함해서요. 최근 멕시코 경제가 1%대 저성장을 할 거라는 모두의 평가를 깨고 3% 이상 성장한 것을 보면 거버넌스 구조가 바뀐 게 주효한 것 같습니다.”
도경은 스테판의 의견도 메모를 하며 집중했다.
“다만, 멕시코는 펀더멘탈이 튼튼하지 못해서 외적으로 하방 압력을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남미의 국가들과 묶어서 한 테마로 간다면, 서로가 보완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리고…….”
도경은 고개를 들어 팀원들을 바라보았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음, 여기 매니저들만 이야기하라고 자리 마련한 거 아니야. 어떻게 팀장들만 이야기를 하지? 지금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그저 아이디어 공유인 거야.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으니 자유롭게 이야기하자고.”
도경이 오늘 회의에서 얻고 싶은 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팀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아이디어를 얻고 싶었을 뿐이다.
“앞으로 이런 자리가 마련되면 좀 더 나서야 해. 여러분 개인에게도 그게 좋을 거야.”
도경이 그리 말을 하자 눈치를 보던 팀원들이 하나둘 손을 들기 시작했다.
도경도 혹하는 아이템을 던져오는 팀원들도 있었고, 좋지 않은 쪽으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아이디어를 던져오는 팀원들도 있었다.
“즐겁네.”
도경은 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게 혼잣말을 뱉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어느덧, 한 사람만이 손을 들고 있었다.
“쿠바.”
도경이 작게 이름을 부르자 야쿱 마주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모두가 유럽을 바라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시작부터 꽤 도발적인 말로 오프닝을 열었는데, 도경은 흥미롭다는 듯 손을 턱에 괴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조금 전, 스테판이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새로운 질서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기존 질서에 편입되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새로운 블록을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어디지?”
“비셰그라드Visegrád입니다.”
쿠바의 입에서 나온 말에 모두가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고, 도경은 환하게 웃으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 * *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를 말해온 게 세 명이야.”
회의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도경은 화이트보드에 팀원들의 아이디어들을 적어두고 하나씩 소거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남은 게 스테판과 제이크 그리고 쿠바의 아이디어였다.
“먼저 스테판의 아이디어는…….”
테이블에 걸터앉아 팔짱을 끼고는 화이트보드를 노려보던 도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중국과 인도. 둘 다 가능성은 있지만, 안 돼.”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보드마커를 들어 줄을 그었다.
“미국의 반대편에 선 순간 당장은 힘들 거야.”
현재 세계의 질서는 누가 뭐래도 미국이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지표나 다름없었다.
인도와 중국 모두 성장 가능성은 있었고, 패권국인 미국을 위협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쩌면 아예 오지 않을 미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돈이면 하겠는데, 고객의 돈으로 모험을 할 수는 없어. 다음은 제이크.”
도경은 다시 화이트보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림은 좋긴 한데. 그림만 좋아서 문제네.”
제이크가 의견을 낸 남미 거점 펀드 이야기였다.
“칠레 사무실이 인원 보강되는 대로 시작하면 그림은 예쁜데. 그 이외의 것이 좋지 않아.”
제이크도 지적했던 대로 중남미의 멕시코 경제는 훌륭하게 올라왔지만, 하방 압력이 심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면, 점점 더 좋지 않아질 거고.”
도경은 다시 보드마커를 들고 제이크의 아이디어에 줄을 그었다.
“마지막으로…….”
쿠바의 아이디어였다. 어찌 보면 그 자리에서 도경이 가장 마음에 든 아이디어기도 했다.
“비셰그라드라…… 전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해줘서 좋았어.”
700년 전, 중세 유럽의 중요한 외교적 사건이 하나 발생했었다.
보헤미아의 왕 요한과 헝가리의 카로이 왕, 폴란드의 카지미에시 3세가 비셰그라드라는 성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대응을 위해, 상호 간의 무역과 영토분쟁 해결을 위해 모였고.
오랜 기간 이들 사이에 이어지던 분쟁을 종식시키고, 하나의 협력체를 만들었다.
“지금은 4개국이 되었지.”
그때 만들어진 연합체들은 소련 해체 이후 1991년 다시 비셰그라드 연합을 만들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 헝가리와 폴란드.
4개국은 비셰그라드 4, V4라 불리며 하나의 경제블록이 되었다.
“서유럽이 주춤할 때 경제가 엄청 올라오고 있고.”
최근 국내에서도 폴란드와 체코의 이름이 계속해서 뉴스에 오르내리며, 친근해진 나라들이었다.
전통적인 유럽의 경제 강국인 독일과 프랑스, 영국과 스페인 같은 국가들이 주춤할 때 V4는 이들의 두 배가 넘는 경제성장을 해나가고 있었다.
“최근 들어 자본이 저들로 많이 흘러 들어가서 돈이 돌고 있어. 우리도 들어가서 투자를 하면 꽤 수익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참 화이트보드를 보며 고민하던 도경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열었다.
“제이크!”
조용하던 사무실에 도경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제이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내 방으로 와. 그리고…….”
도경은 사무실을 둘러보다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쿠바! 너도 내 방으로.”
도경이 그리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쿠바를 바라보았다.
“이야, 인턴이 벌써 보스의 호출을 받네. 뭐 해? 보스가 부르시잖아.”
스테판의 농담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쿠바는 정신을 차렸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쿠바는 스테판에게 그리 말하고는 제이크와 함께 도경의 방으로 들어섰다.
“앉아.”
방으로 들어가자 도경은 두 사람을 향해 자리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제이크.”
“네, 보스.”
“지금 1호 펀드와 다른 펀드들 현황은?”
“리밸런싱을 끝내고, 예일에서 곧 들어올 자금이 향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거기에 4억 달러 정도가 더 들어올 거야.”
“네?”
“유성투자증권에서 우리에게 펀드를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내가 봤을 땐 1호 펀드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 이건 내가 설득할 문제고.”
도경은 제이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이번 투자의 실무를 맡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쿠바.”
“네, 네! 보스.”
야쿱 마주르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회의 때 네가 발표한 아이디어가 참 좋았어. 그래서 그 방향으로 투자를 하려고 하는데.”
“감사합니다!”
“감사할 건 아니고. 내 입장에서는 큰 모험이야.”
도경은 쿠바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 밖에서 팀원 중 네가 이곳에 올 때까지 축하를 해준 친구들도 있었겠지만, 싫어하는 친구도 분명히 있을 거야.”
“…….”
“뭐, 네 배경 때문에 내가 너의 아이디어를 픽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사무실 분위기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인턴 중 한 명이 치고 나간다면 누군가는 불편해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네가 증명해야 해.”
도경은 굳은 얼굴로 쿠바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너를 선택한 게 네 배경 때문이 아니라고, 나는 확신하지만, 증명은 너의 몫이야.”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보스.”
조금 전, 자신의 앞에서 당황하던 쿠바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이었다.
쿠바는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많은 기회를 받았다. 그것은 자신의 집안 배경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늠도 하지 못할 부를 가진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타인은 평생 한 번 해보지 못할 것들을 많이 했다.
-억만장자의 아들이니 돈으로 스탠퍼드를 입학했을 거야.
-너는 아버지가 억만장자인데 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야?
-너는 좋겠다. 졸업하고 나서 폴란드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잖아.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늘 쿠바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배경을 숨겨야겠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배경에 모든 것을 기대지 않았다.
오히려 쿠바는 자신에게 그리 말해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저는 늘 그걸 증명하면서 살아왔거든요. 내 배경은 내가 보여주는 능력에 아무것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요.”
쿠바의 입에서 나온 말에 도경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크.”
“네, 보스.”
“쿠바를 포함해서 네 팀원과 피트를 호출해 줘. 바로 회의 들어갈 거야.”
“네, 알겠습니다.”
도경의 말에 제이크와 쿠바는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도경 또한 자료를 챙겨 들고는 사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