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758)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58화(758/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58화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성인베스트먼츠의 윤도경입니다.”
“한참 미국에서 이름을 알려가는 투자가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폴스카 화학의 알렉산더 마주르입니다.”
그날 저녁, 도경은 쿠바의 안내를 받아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의 빌라노프에 있는 한 저택에 와 있었다.
빌라노프는 폴란드 왕국의 여름 궁전이 있는 지역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곳 저택에 올 때 왕궁에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히려 저를 알아주시니 더욱더 영광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미스터 윤과 같은 사람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시는 게 어떨까요?”
도경과 알렉산더의 인사가 길어지다 못해 그 자리에서 새로운 대화로 가지가 뻗어나갈 것 같자 옆에 서 있던 쿠바는 두 사람을 만류했다.
“하하하, 내가 큰 실수를 범할 뻔했구나. 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윤을 위한 식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도경은 알렉산더와 쿠바의 안내를 받아 저택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복도도 엄청나게 길었는데, 식당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크 양식의 식당 내부는 정말로 왕이 식사를 하는 곳 같았다.
아주 긴 식탁과 더불어,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식기까지.
“재킷은 제게 주시면 됩니다.”
도경이 자리에 서자 옆으로 이 집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재킷을 받아서 들고는 도경을 자리로 안내했다.
“윤에게 어떤 음식을 대접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바르샤바의 유명한 한식당의 셰프를 초대해야 할까, 호텔의 파인다이닝 셰프를 초청해서 음식을 준비시켜야 할까 말입니다.”
알렉산더의 말에 도경은 그를 바라보며 집중했다.
“하지만, 윤이 폴란드는 처음 방문하는 것이라 들었기 때문에 우리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음식은 제 어머니와 우리 집사람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 말에 도경의 시선은 식탁으로 향했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들이 준비 과정이 고되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초대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 저를 위해 음식을 직접 준비해 주셨다니 영광입니다.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하하하, 두 사람은 잠시 자리를 비워주었답니다. 후에 기회가 되면 인사를 하시지요. 자, 그럼 식사를 시작할까요?”
알렉스의 말에 조금 전 재킷을 받아 갔던 직원이 다가와 음식을 도경에게 덜어주었다.
“보스, 이 비고스는 양배추와 고기를 넣고 오랜 시간 끓여낸 수프입니다. 옆에 튀긴 것은 피에로기라고 불리는 건데 반죽 속에 감자와 치즈 그리고 우리 집에선 버섯을 넣습니다.”
생소할 수도 있는 음식들에 도경을 배려하듯, 쿠바는 음식을 하나씩 소개해 주었다.
만두와 같은 피에로기부터 고기 스튜인 비고스까지.
폴란드에는 처음이었지만, 무언가 정서적인 친근감이 느껴졌다.
도경이 피에로기를 집어 들자 알렉산더와 쿠바의 시선이 동시에 도경에게로 집중되었는데, 잠시 후 도경이 맛있다는 듯 미소를 짓자 두 사람도 환하게 웃었다.
“음식이 입에 맞으시나 보군요.”
“네, 무언가 정서적으로 와닿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런, 음식을 준비한 사람 입장에서는 최고의 칭찬입니다. 정서를 공유한다니요.”
족발과 비슷한 음식도 입에 넣었는데 꽤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그렇게 신변잡기식 이야기들을 하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식사를 마치고 모든 음식이 식탁 위에서 치워졌고, 잠시 후 케이크와 차가 도경의 앞에 놓였다.
“디저트는 세르니크라 불리는 우리의 치즈케이크입니다. 즐기시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물론입니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렉산더를 바라보았다.
그저 자신이 쿠바의 상사로서 이 자리에 초대받지 않았으리라는 건, 쿠바에게 처음 초대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윤은 우리 폴스카 화학에 관해 어디까지 아십니까?”
“폴란드 최대의 에너지 화학기업이자, 최고 매출을 내는 기업이지요.”
“너무 단순합니다.”
알렉산더는 기대하는 눈초리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주력은 역시 원유와 가스 탐사 및 개발이겠죠. 그렇게 개발된 원유를 정유해 연료를 생산하고, 정유 생산의 부산물로는 여러 화학제품을 만들죠. 최근에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에도 힘을 쏟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경의 짧게 폴스카 화학을 설명해 오자, 알렉산더는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매출 대부분은 여전히 화석연료. 그러니까, 원유와 가스 채굴에서 발생합니다.”
동유럽의 여느 최대 기업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단, 폴스카 화학은 국영기업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러한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만, 여력이 충분하지 않네요.”
확실한 건 경쟁 상대들이 쟁쟁하다는 것이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대형 에너지 기업인 유로페트로와 원유, 가스 분야에서 경쟁 중이었고, 새롭게 진출한 재생에너지인 풍력과 태양광은 유럽 내에 이미 자리를 잡고, 시장 파이를 크게 먹고 있는 기업들이 있었다.
“나는 우리 폴스카 화학이 그저 내수 기업으로 남기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해외에서도 매출이 꽤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러시아에서 가스와 원유를 공급받아 오던 유럽의 국가들은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기 위해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폴스카 화학이 그 대안이 되고 있었다.
도경의 말에 알렉산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현재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큰 수혜를 본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식의 수혜가 아닙니다. 현재 상황이 나아진다면, 언제든 우리가 보고 있던 매출을 러시아에 다시 빼앗길 테니까요.”
다시 말해, 알렉산더는 유럽 내에서 폴스카 화학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것 같았다.
“물론 윤의 일은 이것이 아닌 걸 알고 있습니다. 윤은 투자가지요. 그것도 그 무섭다는 헤지펀드 투자가요.”
무섭다는 말이 알렉산더의 입에서 나오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무섭다는 말은 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헤지펀드에 대한 공포는 기업인들이 가질 수밖에는 없지만, 어떻게 써먹냐에 따라서는 기업인들의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써먹냐라…… 좋은 표현이군요. 늘 당하는 것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써먹을 수도 있겠군요.”
알렉산더는 무언가 도경의 말에서 얻은 듯 결연한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그럼 윤은 내가 써먹을 수 있는 무기가 되어줄 수 있겠습니까?”
* * *
“네?”
“나에게 그렇게 요구해 오던걸.”
그날 밤.
알렉산더 마주르와의 만남 이후, 숙소로 돌아온 도경은 제이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할지 컨설팅도 해주고 투자도 해달라는 말이잖아요.”
그 자리에서 알렉산더가 요구해 온 것은 간단했다.
‘큰 투자를 하려고 한다. 단,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갈 것. 이것을 유성에서 컨설팅해 달라.’
“뭐, 오간 이야기 다 떼고, 그저 핵심만 말하면 그거지.”
“우리가 마치 베인 앤 컴퍼니가 된 것 같네요.”
“믿지 못하더라고. 컨설팅 업체를.”
“네?”
“일전에 컨설팅을 받아서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려고 했는데, 여러 번 실패를 했었나 봐.”
“그런…… 경우가 있긴 하죠. 한국의 신화전자가 떠오르긴 하네요.”
신화전자는 한참 스마트폰이 전 세계에 공개되었을 때,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에 자문을 구했었다.
스마트폰으로 갈아타야 하는가?
당시 피처폰으로 불리는 레거시 휴대전화 시장은 노키아와 신화전자가 잡고 있었다.
당시 천억 원을 들인 컨설팅의 결과는 스마트폰을 ‘찻잔 속의 태풍’이라 평가했고, 신화전자는 스마트폰으로의 체제 전환을 늦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신화전자는 매년 쌓여가는 휴대전화 사업부의 적자 폭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
수십 년 명품 휴대전화를 만들어오던 기업의 실패였다.
“하필 신화전자 이야기야? 어쨌거나, 그래서 우리에게 해달라고 하더라고.”
“우리는 믿을 수 있나 보네요.”
“쿠바가 있으니까.”
“어떤 의미죠?”
제이크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어왔다.
“글쎄, 나도 추측일 뿐이지만…… 자신의 아들인 쿠바가 속한 곳이기도 하고, 쿠바가 내 얘기를 또 많이 했나 보더라고.”
“그리고요?”
“그리고, 뭔가 쿠바를 통해서 잘못되어 가면 의견을 뒤집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겠지.”
“쿠바가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나도 물론 그래. 하지만, 알 수는 없는 거니까.”
도경의 말에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의미든, 유성에게는 어려운 일이 될 것이 뻔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고민 중이야. 단순 투자라면 했을 거야.”
“그런데…….”
“한 기업의 명운을 결정할 투자를 내 손으로 해야 한다고 하니까, 리스크가 이전의 리스크와는 다르네.”
도의적인 리스크였다.
투자 실패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앞서 제이크가 말한 신화전자의 결과처럼,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실패가 될 수도 있었다.
윤도경과 유성인베스트먼츠라는 이름 앞에 오명이 붙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컨설팅을 해본 적이 없잖아.”
“보스는 있지 않나요?”
“내가?”
“네. 인도의 부자가 한국 중소 화장품 기업을 인수하도록 도와주셨잖아요.”
제이크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조언일 뿐이지.”
“그게 컨설팅과 다른 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왔어요.”
“…….”
“늘 새로운 테마를 찾았고요. 이번 일도 그 연장선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너는 조금 전에는 반대하는 것 같더니, 또 생각이 달라진 것 같네.”
도경의 말에 제이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칠레 건으로 배웠거든요. 높은 리스크는 정말 큰 이득으로 돌아온다는 걸요.”
“이번에도 그럴 거 같아?”
“네. 성공만 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길을 여는 거예요. 단순 헤지펀드로서의 투자가가 아닌, 새로운 분야인 거죠.”
투자자의 의뢰를 받아 그들의 새로운 사업을 찾아주고, 그곳에 함께 투자함으로써 얻는 것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들은 하지 못하는 걸 유성은 할 수 있단 걸 보여주는 길이기도 했다.
“저는, 쿠바가 우리에게 큰 기회를 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성투자증권에서 우리에게 맡긴 투자금과 우리의 펀드 그리고 폴스카 화학이 투자하는 돈이라면, 정말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 기회를요.”
새로운 길을 개척할 기회를.
“그리고 보스는 남들보다 먼저 그곳에 가게 될 거고요. 당연히 저희도 그 곁에 서 있을 거고요.”
제이크의 말이 끝나자 도경은 잠시 고민을 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답은 해주셔야죠.”
“뭐 해? 자료 준비 안 하고. 유럽 전역에 있는 모든 테마의 산업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해. 가릴 것 없어. 팀원들에게도 그렇게 전하고.”
도경이 그리 말하고 자신의 노트북을 가져와 펼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크는 미소를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비시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