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77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78화(778/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78화
“현재 천하화학 주가 5만 9천 원입니다.”
명동 사채시장.
1945년 해방 이후, 명동은 하나의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철수하며 두고 간 전당포와 은행들을 적산 처리 받았고, 국내에 들어온 미군 부대 PX에서 흘러나온 물품들의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하나의 생태계가 구축되었다.
초기에는 소규모 자금 대출과 물물 교환 형태였지만, 북한의 남침으로 촉발된 한국 전쟁 이후 금융기관을 대신해 급전을 조달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며 명동은 사채시장의 중심이 되었다.
‘제도권 금융을 위협하는 독자적 생태계.’
1960년대부터 암달러상들마저 명동에 자리 잡으며 외환시장도 형성되었다.
하루 1%의 고리를 받는 사채업자들은 명동 일대를 장악했고, 그들에게 돈을 대주는 ‘쩐주’들은 밤의 제왕이 되어갔다.
‘수조 원이 하루에 오가는 거대한 시장.’
70~80년대를 거치며 명동 사채시장은 황금기를 맞이했다.
은행 대출은 까다로웠고, 자금 조달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명동에서는 계약서 한 장이면 하루 만에 원하는 돈이 나왔다.
기업들은 은행 대신 명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금융실명제 도입, 이제부터 차명으로 은행에 돈 못 맡긴다」
「전자어음법 시행, 어음깡 전면 차단」
하지만, 1993년 금융실명제가 시행되면서, 익명을 기반으로 성장했던 명동 사채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2004년 전자어음법 실행은, 그나마 기업이 발행한 어음을 할인된 금액으로 사들이면서 명맥을 이어오던 명동 사채시장의 숨통을 끊었다.
“대충 연초에 대비해서 110% 정도 내린 건가?”
“그렇습니다. 그저께 찌라시 이후 30% 이상 하락하고 있고요.”
부하 직원의 보고에 남자는 입꼬리를 비틀며 미소를 지었다.
“5만 5천 원대부터 진입하자.”
일련의 사건 이후, 명동시장의 사채꾼들은 다른 자산으로 눈을 돌렸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진입했고, 사채꾼들이 이자만 꼬박꼬박 낸다면, ‘쩐주’들은 그들이 하는 일에 상관없이 돈을 내주었다.
“올까요?”
부하 직원은 5만 5천 원이라는 주가가 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듯 말했다.
“지켜봐. 내 말대로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부하 직원이 인사를 하고 물러가자 남자는 엄지로 입가를 닦았다.
남자의 이름은 박대웅.
그는 명동 사채 시장이 망한 이후 작은 회사를 차린 이였다.
하지만, 3년 만에 명동 사채 시장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움직이는 회사로 키워냈다.
[성수캐피털 회장 박대웅]그의 책상 위에 화려한 자수가 놓여진 명패가 빛나고 있었다.
“내가 누군데.”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박대웅은 명동 사채시장에 선진(?)적인 금융 시스템을 도입했다.
바로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무자본 인수합병.’
박대웅은 자신의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쩐주’들의 자금을 모아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했다.
훌륭한 바지사장도 구했다.
해외 유명 투자회사 출신이라는 명성을 가진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하면, 시장은 이를 호재로 받아들였다.
“그 이후는? 아주 쉬운 일이었지.”
인수 후에는 간단했다.
허위 보도 자료를 뿌리기만 하면 됐다.
예를 들어, 시장의 테마주가 2차전지라면, ‘해외에 리튬 수십만 톤이 매장된 광산 개발권을 따냈다’고 공시하면 끝이었다.
「XX텍, 2차전지 사업 진출하나? 일주일 만에 주가 60% 올라」
주가가 상승하면, 그들은 주식을 매도했다.
물론 불법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회사의 자금은 미리 만들어둔 페이퍼 컴퍼니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빼돌렸다.
이런 식으로 회사 자금을 빼돌리면, 결국 당국이 개입했고, 회사는 상장폐지 또는 파산 수순을 밟았다.
그 과정에서 개미 투자자들은 피해를 보고, 박대웅과 ‘쩐주’들은 수백억, 수천억의 이득을 챙겼다.
지이잉ㅡ
박대웅은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며 흐뭇해하고 있던 찰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전화를 받아 들었다.
“아이고, 회장님.”
-너, 이놈. 내 돈을 가져가 놓고 왜 연락이 없어!
수화기 너머에서 호통이 쏟아지자, 박대웅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잠시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어냈다. 상대는 이번 프로젝트에 돈을 댄 ‘쩐주’였다.
“회장님, 이미 작업 들어갔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내가 이번에 너한테 댄 돈이 100억이야.
“아이고,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돈 100억 허투루 안 씁니다.”
-지금도 이자가 올라가고 있는 거 알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프로젝트가 끝나면 바로 원금 포함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상대는 계속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법이 바뀌어서 상장사 인수하는 건 힘들다며? 그런데 어떻게 돈을 벌려고?
“좀 크게 놀려고 합니다. 회장님.”
박대웅은 웃음을 띤 얼굴로 대답했다.
“법이 바뀌어도 시장은 안 바뀝니다. 저 시장에서 전문가라는 직함 달고, 사모펀드들이 해 먹던 방식으로 해 먹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지켜보면 아십니다. 곧 거래를 진행해야 해서요. 회장님 돈 어디 안 가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 * *
“그러니까, 그런 방식이 맞았다는 거죠?”
최우진과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복귀한 도경은 스테판과 쿠바와 함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 그런데, 미국에서는 헤지펀드가 그 짓을 한다면 국내는 등록된 업체가 아닌 것 같아.”
“투자 전문 업체라고 하셨잖아요.”
“이야기하자면 꽤 긴데…….”
도경은 한숨을 내쉬며 한국 시장에서 ‘개미지옥’을 만들어 개미 투자자들을 먹잇감 삼는 사채꾼들에 대해 설명했다.
“놀랍지도 않네요. 사실 미국에서도 그런 일은 있거든요.”
쿠바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스테판은 전혀 놀라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미국이야말로 동전주 상장사가 많고, 보통 이런 회사들은 개도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에서 인수해 돈세탁에 활용되죠.”
미국 주식시장에는 하룻밤 사이에 300~500% 폭등하는 동전주들이 있었다.
이런 주식에 개인투자자들이 몰려들면,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모은 뒤 폭락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렇지. 어느 시장에서나 있을 법한 방식이지.”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우리 시장은 이 방식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이 너무 큰 피해를 봤다는 거야. 그래서 법도 개정했고, 거래소나 금융감독원이 눈에 불을 켜고 단속하려고 하지.”
“그러니 방식을 바꿨군요. 그것도 아주 세련되게.”
스테판의 말처럼 그들이 하던 방식이 ‘세련되게’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이전에는 좀 더 날것의 범죄였다면, 이제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투자 시장에서 사람들이 가장 원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철저히 노린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번 찌라시도 그쪽에서 뿌린 것 같은데, 문제는 이걸 이겨낼 방법이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거지.”
가장 지독한 부분이었다.
“왜냐면, 천하화학과 건설이 위기인 건 사실이니까. 찌라시처럼 당장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지는 않더라도.”
실제로 천하화학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던 국내 석유화학사들이, 중국의 공급 과잉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한국의 화학사들이 생산해 내는 물건들의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야.”
“그렇죠. 괜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가 한국의 정유 회사를 사들인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최근 상황을 보면, 중국의 미칠 듯한 공세 때문에 힘들어지고 있어.”
중국은 최근 5년간, 한국의 3배 규모로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그 결과, 세계 시장에서는 공급 과잉 현상이 발생했고, 가격은 자연히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문제도 있었는데, 이제는 중동의 공격도 시작됐어.”
국내 기업들은 그나마 내수시장으로 버텨왔다.
그러나 중동발 물량 공세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석유화학 제품의 원재료인 원유를 자체 조달했고, 운송비도 거의 없었다.
완성 제품의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다.
“활로가 보이면 반박이라도 할 수 있는데, 하나도 없어.”
즉,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손이 묶인 채 몰락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그럼 우리가 태산에 제안할 방안은 하나뿐이겠네요.”
“EOD를 날려라?”
“네. 태산은 하루빨리 천하화학에 투입된 자금을 회수하는 게 최선으로 보입니다.”
도경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태산에는 그렇게 조언하는 게 맞겠지.”
국내 경제의 상황이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지만, 유성인베스트먼츠의 고객은 태산이었다.
도경은 철저히 고객의 입장에서 판단을 내렸다.
“일단 내일 혼자 가서 태산을 만나고 올게.”
“그럼 저희는…….”
“말했듯이 마이애미에 있는 피트와 연락해서 천하그룹 유동성과 관련된 조사는 계속해.”
“설마 스텝을 더 나가시려고…….”
“그래, 태산과의 거래는 거래고, 다른 움직임도 가져가야지. 곤란한 상황을 그냥 두고 보자고 한국에 온 건 아니니까.”
도경은 입국 전 비행기에서 다짐했던 생각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 * *
“그러니까, 기한이익상실을 통보해라?”
“네. 그렇습니다.”
다음 날, 도경은 태산의 탁인우를 만나 유성에서 내린 결정을 전달했다.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태산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움직이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맞아. 우리도 여유가 있었다면 그냥 기다렸겠지. 윤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을 테고.”
“그렇다면 기한이익상실을 통보한 뒤, 천하건설과 협상 테이블을 여는 것이 최선입니다.”
“대화야 그냥도 시작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탁인우의 물음에 도경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대화를 시작하면 천하 측에서는 연장 조건만 이야기할 겁니다. 아무래도 협상 테이블에 아무것도 올라와 있지 않으니, 태산이 유화적이라는 인상을 줄 테고요.”
“그러니까 테이블 위에 뭔가를 올려놓으라는 거군.”
“네. EOD를 올리십시오.”
탁인우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EOD를 테이블에 올려야 상대도 다른 것을 가져오겠네. 맞는 말이야. 그 천하화학 찌라시는?”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제가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해결한다고?”
“네. 혼을 내줘야 할 것 같아서요. 이대로 두면 시장에 계속 나쁜 영향만 줄 것 같고요.”
도경은 한기가 도는 얼굴로 말했다.
“알겠어. 윤 대표의 말대로 EOD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천하건설을 만나볼게. 그 이후 이야기해서 다음 스텝도 이야기해 보자고.”
“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탁인우와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는 도경의 눈빛은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게임을 망치는 세력은 반드시 손봐야지.’
도경의 마음속으로 그리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