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781)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82화(782/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82화
“상황이 알아서 도와주는구만.”
성수캐피털 대표 박대웅은 오늘 주가를 확인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나설 필요도 없었어.”
“오늘은 신용잔고가 털려 나가는 것 같습니다. 오후쯤이면 어느 정도 안정되어서 목표했던 가격엔 못 미칠 수도 있습니다.”
며칠 전 계엄 이후 한국 주식시장은 거센 폭락을 겪고 있었다.
코스닥은 전염병 사태(코로나) 때보다 더 크게 무너져 지수 600선 아래로 떨어졌고, 코스피 또한 2400선이 붕괴되었다.
“신용잔고가 오늘 털렸으면 내일은 더 털리는 거 아니겠냐고.”
갑작스러운 매도세에 빚으로 투자한 물량들이 추가증거금 요구(마진콜)에 몰렸고, 반대매매로 이어지며 하락을 키우고 있었다.
“지금 시장에는 반대매매 경고가 들어와도 추가증거금을 넣을 여력도 없다는 거니까.”
“그렇게 봐도 되긴 하겠습니다만…… 개인만 매도세라는 게 걸리긴 합니다.”
“이런 아사리판에서 시장을 보는 건 내가 더 정확해.”
부하 직원은 오래 금융권에서 일한 전문가였지만, 박대웅은 자기 판단이 더 맞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지금 기관이 5천억 원을 사들이고 있는데, 이게 어디 돈이겠냐고.”
“…….”
“국민연금일 거야. 여기서 더 무너지면 안 되니까 받쳐주고 있는 거지. 근데 이게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박대웅은 이 시장에 미래가 없다고 봤다.
“이제 주가를 떠받칠 세력이 없어. 오늘 신용 물량 털리고, 계속해서 추가증거금 요구는 반복될 거라고.”
부하 직원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완강한 박대웅 앞에서 말을 삼켰다. 확신을 가진 이 상황에선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쨌거나 밖에 나가서 대기해. 곧 하나 더 터질 거니까. 천하화학 물량 다 받을 준비 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부하 직원이 힘없이 대답하며 고개 숙이자 박대웅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차며 그를 내보냈다.
* * *
“엄청난 폭락이네요. 주가가 10년 전보다 더 내려갔어요.”
그날 오전, 어딘가로 이동 중인 차 안.
도경은 레이첼 헤이스와 대화 중이었다.
“어제 하루는 그나마 잘 버텼던 것 같은데요.”
레이첼의 말대로 주말 사태를 겪고 월요일 장이 열렸을 때 시장은 하락하긴 했지만, 충격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 지난 오늘은 코스피, 코스닥이 무섭게 추락하고 있었다.
“월요일에 마진콜이 엄청 발생한 것 같네.”
도경은 태블릿으로 한국 시장 현황을 보며 그리 말했다.
“어제 마진콜이 발생했고, 추가증거금을 못 내니 오늘 시초에 전부 시장가에 풀린 거지.”
다시 말해, 빚으로 주식에 투자했던 물량들이 월요일 시장에서 추가증거금을 내라는 요청이 왔을 것이고, 납부하지 못한 물량들이 시초에 시장가로 모두 던져졌을 것이다.
“전형적인 패닉셀 시장 모습이야.”
마진콜 물량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지수가 하락하고, 프로그램매매들도 생각보다 더 큰 폭락에 물량을 팔았고 그것에 또 놀란 투자자들은 가지고 있던 주식을 던지고…….
전형적인 악순환의 고리였다.
“어제 스테판과 나누시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증권안정 펀드가 있다고 하셨으니 투입되지 않을까요?”
“5천억 원으로는 이 시장, 받기 힘들어. 정말 중요한 자금을 지금 날릴 순 없어.”
증권시장 안정 기금은 이 폭락을 막기에 턱없이 작았다.
“다만 여러 관에서 지금 구두 개입을 하고 있으니 조금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경제와 관련된 부처의 수장들은 자신에게 마이크가 올 때마다 굉장히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상 이건 환율 방어도 방어겠지만, 급격하게 하락한 주식시장을 부양할 전략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
“신기하네요.”
레이첼은 아무래도 벤처캐피털 쪽에 있다가 왔다보니 지금 시장 흐름이 너무 신기했다.
“구두 개입이 주는 효과는 매우 커.”
도경은 레이첼에게 차근히 설명했다.
“그들이 나서겠다는 표현 자체가 필요한 만큼 유동성을 시장에 풀겠다는 말이니,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고.”
“…….”
“둘째로 실제로 여러 수단으로 자금을 공급하게 되면 모든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유동성이 퍼지고, 증권사나 기관들도 자금 사정이 나아지는 거야.”
“그럼 큰 폭 하락장에서 매수세를 늘리겠네요?”
레이첼이 완벽하게 이해하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신기해요. 오늘 아침 스테판도 그렇고 보스도 그렇고 지금 모습에 너무 평온하세요.”
“내가?”
“네. 큰 폭락이다 보니 직접 트레이드하는 스테판의 경우도 패닉에 빠질 줄 알았거든요.”
도경은 피식 웃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다른 사람 말을 빌려 대답해 줄게.”
레이첼이 궁금한 표정을 짓자 도경은 이어갔다.
“운용역들은 평소에 공포를 다스리는 방법을 배운다고, 그래서 일반인들보다 공포에 더 초연할 수 있다고.”
펀드나 채권을 직접 거래하는 입장에선 이런 폭락이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매번 폭락 때마다 겁을 먹으면 시장 본질을 놓치고, 결국 고객 자산을 잃게 된다.
평소에도 공포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훈련이 되고 있었다.
“앞으로 레이첼 너도 좀 많이 초연해지는 법을 배워야 할 거야.”
“어떻게 배워야 할까요?”
“글쎄. 앞으로 이런 폭락이 더 많이 오면 초연해지겠지?”
“와우, 오히려 겁이 더 나는데요.”
레이첼의 말에 농담으로 응수한 도경은 웃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오늘 협상이 잘되어야 할 텐데 말이야.”
* * *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유성인베스트먼츠의 윤도경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천하그룹 전략기획단의 양태수입니다.”
서울의 한 호텔 비즈니스룸.
도경이 들어서자 이미 도착한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많이 나오셨네요. 저희는 저와 한 명뿐입니다. 이쪽은 우리 유성인베스트먼츠의 레이첼 헤이스입니다.”
상대 쪽은 예닐곱 명이나 되었고, 두 명으로 온 도경과 레이첼을 보고 의아해하는 듯했다.
“자, 그럼 앉아서 이야기 나누실까요?”
도경은 먼저 상대에게 자리에 앉길 권하며, 순식간에 방 안의 분위기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자리에 앉자 입을 열었다.
“먼저, 저희가 직접적으로 의사를 타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천하그룹 측에서는 저희의 제안이 무례하다 생각할 수 있었기에 태산을 통해 의견을 타진했습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협상 현장에서 이런 사전 의견 타진은 흔했다. 천하 측도 별다른 불쾌감 없이 넘어갔다. 오히려 유성 측이 양해를 구하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상황이 엄중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저희 유성인베스트먼츠는 천하렌탈 인수를 희망합니다.”
도경의 말에 상대는 이미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가벼운 접촉이라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저희는 천하그룹이 처한 상황에서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도경은 천하그룹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음을 넌지시 알렸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기실, 저희는 오늘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오라는 그룹의 지시를 받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양태수가 도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태산증권을 통해 인수 의사를 접했으니, 이미 우리 사정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입니다. 태산에게 따로 들은 건 없습니다.”
물론 탁인우와 친분 그리고 컨설팅 문제 때문에 알았지만, 공식적으로는 모르는 것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천하그룹은 현재 천하렌탈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길 바랍니다.”
에둘러 말했지만 결국 돈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투자나 매각 등 모든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매대에 물건을 올려놓았으니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라는 의미였다.
“인수를 전제로 한 대화였으면 합니다.”
도경이 이어받았다.
“우리 유성인베스트먼츠는 천하그룹이 천하렌탈에 붙여놓은 가격표를 듣고 싶습니다.”
“말씀드렸듯 아직 확정된 바가 없어서 가격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거짓이라는 걸 도경은 알았다.
이 자리에 오는 순간 대략적 가치 산정은 끝났을 터. 다만 협상 기본 전술이라 굳이 불편한 티를 내지 않았다.
“우리 유성은 천하렌탈이 보유한 지분 56.2%의 가격을 1조 8,600억 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당 7만 7천 원 수준으로요. 오늘 자 렌탈의 주가가 3만 원이니 약 2.57배의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입니다.”
오늘 아침 팀원들이 제출한 대략적 수치였다. 더 조사하더라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상대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양태수…….”
“전무입니다.”
“네, 양태수 전무님. 저와 우리 팀은 많은 인수 협상을 진행해 왔습니다. 방금 ‘가격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의미가 뭔지는 잘 압니다만, 패를 숨기기만 하면 협상을 진행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손에 쥔 패를 보여달라는 압박이었다.
“우리는 1조 8,600억 원이라는 카드를 보여 드렸습니다.”
“우리 천하그룹은 천하렌탈 가치를 약 2조 3천억 원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유성의 평가보다 약 5천억 원 차이.
“생각 차이가 크군요.”
“하지만 아직 정해진 게 없으니 서로 조율해 나갈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도경이 말을 꺼내자 천하 측은 입을 닫았다.
“2주 후까지 결론 안 나면 청구서가 날아올 텐데 괜찮으십니까?”
천하건설과 화학은 채권자들이 상환을 요구할 참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걸 도경은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천하 측 시간이 촉박한 걸 알기에 저희는 솔직하게 속내를 밝혔습니다. 인수 제안과 가격까지요. 그런데 천하의 태도를 보면 마치 시간이 넉넉한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
“우리가 주가의 2.57배를 제안한 이유를 모르시겠습니까? 우리는 진심으로 지금 상황에서 천하그룹에 사태를 해결할 유동성을 제공하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도.”
도경의 말에 상대는 변명을 삼킨 듯했다.
“오늘은 첫인사라 생각해 이쯤 일어나겠습니다. 다만, 다음에는 협상 테이블 위에 블러핑이 아니라 진짜 원하는 가격을 들고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유성이 먼저 제안한 건이지만, 이 상황에서 급한 것은 천하였다.
굳이 그들의 페이스에 휘말릴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상대에게 압박이 될 거라는 걸 안 도경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지이잉-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다.
“보스, 이거 보셔야겠어요.”
휴대전화를 확인한 레이첼이 도경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받은글/ 천하건설, 금융권에서 기한이익상실 통보받은 듯]천하그룹에게는 좋지 않은 찌라시가 다시 한번 터져 나왔고, 도경은 굳은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24시간 테이블을 열어두고 기다리겠습니다. 연락해 주십시오.”
그리 말을 건넨 도경은 레이첼과 함께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