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786)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87화(787/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787화
“어서 오십시오. 처음 뵙겠습니다.”
그날 저녁, 도경은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걸려온 전화 초대를 받고 약속 장소로 나왔다.
상대는 먼저 와 있었던 것인지 도경을 반겨왔다.
“늦었습니다. 유성인베스트먼츠의 윤도경입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20분이나 일찍 오셨는걸요.”
상대는 손목시계를 확인한 뒤 도경에게 말했다.
“피어슨의 아서 퍼시Percy입니다.”
도경은 아서가 내민 손을 잡았다.
피어슨은 영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출판 기업으로, 출판뿐 아니라 교육 서비스도 제공했다.
예전엔 파이낸셜 타임즈(FT)를 비롯한 언론사도 소유했지만, 집중을 위해 매각한 상태였다.
“앉으실까요?”
아서의 말에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았다.
“식사라도 함께하며 대화를 하면 좋았을 텐데, 시간이 늦어 간단하게 칵테일이라도 한잔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네, 좋습니다.”
아서는 손을 들어 칵테일을 주문하고는 도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미 제가 전화를 했을 때 눈치채셨겠지만, 이번에 윤을 초청해 달라고 FT에 요청했습니다.”
“네, 처음 전화를 주셨을 때 그리 생각했습니다. 지금 피어슨은 FT의 주인이 아니지만, 여전히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지금 FT의 주인은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이었다.
“궁금했습니다. 근래에 계속해서 이름이 들려왔거든요. 윤도경이란 사람의 이름이 말입니다.”
도경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대화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떤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길래, 새로운 세력이 크기 힘들다는 미국 금융 시장에서 단기간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도경의 존재는 기존 레거시 금융인들 입장에서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 내에서 살아남은 금융 기관들은 고이고 고인 곳들뿐이었다.
설령 새롭게 뜨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가 있다고 하더라도 프로필을 자세히 뜯어보면 전부 GS나 JPM 더 나아가 이름 있는 헤지펀드 출신이었다.
“그것도 한국에서 계속 살았던 한국인이 말입니다.”
네트워크가 모든 것들 대변하는 세계에서 도경은 네트워크 없이 살아남았다.
“그런 점에서는 제가 이점이 있네요.”
도경이 그리 자신의 말을 받자 아서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집중했다.
“저도 사실 아무것도 없이 미국 땅에 들어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리우 샤오를 만난 이후부터는 일이 좀 쉬워졌고요.”
“…….”
“제가 네트워크가 없다는 말씀들을 모두 하시지만, 사실 저는 파미르 캐피털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도경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허허벌판에 놓인 처지에서 리우 샤오라는 아주 훌륭한 길잡이를 만난 것이니까.
“단순 리우의 도움으로 그 자리까지 갔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리우 샤오는 대단한 투자가임과 동시에 시장참여자들의 스승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이를 신뢰하지 않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끌어올릴 수도 없었다.
“예, 그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아무런 네트워크 없이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건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찌 보면 이점이었지만, 도경은 리우 샤오의 존재가 지워지는 게 불편했다. 모두가 도경을 언급할 때 리우를 빼놓는데, 도경은 리우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칵테일이 나왔고, 한 모금 목을 적시자 아서 퍼시는 도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근래 영국 경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별안간 훅 치고 들어오는 물음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너무 직접적이었나요? 윤이 매크로를 기반으로 하는 투자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쭤보고 싶었고요.”
“영국 경제라…… 좀 큰 틀에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저 영국인으로서 듣고 싶을 뿐이니까요.”
도경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브렉시트Brexit 이후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브렉시트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것을 뜻했다.
“긍정적인 부분으로 보자면 금융, 부동산 등에 강하게 의존하던 구조가 변화하고 있죠.”
“가령…….”
“유럽연합 탈퇴 이후 유로존 단일 시장 접근성이 없어졌습니다. 수출도 힘들어졌죠. 이 구조에서 영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역 산업이었습니다.”
실제로 유로존에 속해 있을 때는 무역이라는 요소가 그리 필요가 없었다.
유럽연합이라는 큰 시장 내에서 활동했으니까.
가령, 영국은 산업혁명의 나라였지만, 전통적인 제조업이 많이 쇠퇴했었다.
왜? 유럽연합 내에 있을 때는 독일과 같은 제조업 강국에서 가져오는 게 더 쌌으니까.
“최근 팔로우한 결과로는 유럽연합 이외에 새로운 무역 파트너들을 확보하고 있고, 제조업 기반에 투자를 많이 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잘될까요?”
“어려울 겁니다. 제조업을 다시 시작한다는 건요.”
“…….”
“다만, 아예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죠. 그 부분은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경의 말에 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도 도경은 자신이 생각하는 각 분야에 대해 말했고, 아서 퍼시는 경청했다.
“종합하자면,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경제 체제는 완전 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제 환경 변화에는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부의 재정 압박, 부동산 시장과 원자재 가격 상승 부분에서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하고요.”
“흥미롭네요. 다른 나라 사람에게서 우리의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듣는다는 게 말입니다.”
아서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저 개인의 의견일 뿐입니다.”
“아닙니다. 굉장히 공감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서는 진심이라는 얼굴로 도경을 향해 말을 이어나갔다.
“새로운 경쟁력을 찾을 수 있을까요?”
“새로운 경쟁력이라…….”
“네, 우리 영국이 어느 방향으로 간다면 경쟁력이 있을까요?”
“말씀드리기가 굉장히 애매합니다. 저는 그저 펀드를 운용하는 사람일 뿐이라, 그런 건 행정과 경제 전문가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윤, 그저 우리끼리 이야기해 보자는 겁니다.”
아서는 웃으며 말했다.
“체스판에 앉아서 나라 걱정하듯 말입니다.”
신변잡기식 이야기를 해보자는 뜻 같았다.
“그렇다면 편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제일 시급한 건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겠죠.”
도경은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들에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합니다. 영국의 대학은 누구보다 많은 인재들을 배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졸업 혹은 재학 과정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밀어줘야겠죠.”
“그리고요?”
“STEM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STEM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을 이야기했다.
“이미 영국은 이 분야에서 강자긴 합니다만, 학술적으로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분야로 전환이 필요합니다.”
“요컨대 우리는 그 분야에서 학술적 성과만 도드라진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아서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닥에서부터의 투자라고 생각되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도경이 말한 스타트업 발굴이나 산업적으로의 교육 전환은 결국 한 묶음이었다.
뛰어난 인재들이 회사를 차릴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주자는 말.
“놀랍습니다. 정말로.”
아서 퍼시는 도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최근 내가 만난 영국 내 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그것도 오늘 영국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한다는 게 말입니다.”
“…….”
“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곧 피어슨 CEO 임기가 끝납니다. 회사에서는 더 맡아달라고 했지만, 거절했고요. 왜 거절했느냐? 남은 인생을 사회에 투자하고 싶었거든요.”
도경은 가만히 아서의 말에 집중했다.
“아! 물론 정치를 한다는 건 아닙니다. 그건 대의적인 것이니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걸 알거든요.”
“하하하, 혹시 했습니다.”
“정치가 아닌 재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젊은 사업가들이 도전 정신을 가지고 사업에 뛰어들어도 망하면 누군가 한 번은 살려준다는 그 안전망이 되고 싶은 겁니다.”
“그렇다면…….”
“네, 재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 자금 운용을 유성에서 해줄 수 있겠습니까?”
이어지는 아서의 제안에 도경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 * *
“네?”
그날 밤, 도경은 숙소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던 피트랑 대화를 하고 있었다.
“재단이요?”
“규모가 꽤 큰 것 같더라고. 아무래도 아서 퍼시는…….”
“올드머니 가문이죠? 퍼시라는 성 씨가 굉장히 낯설거든요.”
올드 머니Old Money란 여러 세대를 걸쳐 부와 지위를 계승해 온 가문을 말했다.
반대로 우리 식으로 표현해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는 뉴 머니New Money라고 지칭했고.
아무래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성씨들은 대부분 올드 머니 가문이었다.
“맞아. 알아보니 영국의 공작 가문 사람이더라고.”
도경의 말에 피트는 입을 쩍 벌렸다.
“공작 가문이라니. 멋있네요.”
“하하하, 어쨌든 초기 재단 자금은 1억 4천만 달러 정도야.”
우리 돈으로 2천억 원가량이었다.
“와우, 개인이 1억 4천만 달러를 투자한다는 게…….”
“놀랍지. 다만, 그 개인 자산을 다 내놓는 것도 놀랍고.”
“그것도 맞아요.”
“어쨌거나 그 재단의 자금 운용을 우리에게 맡겼어.”
“답하셨어요?”
피트의 물음에 도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왜요?”
“우리가 영국에 기반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
“아, 그렇죠.”
도경이 고민하는 이유였다.
보통 재단은 가진 자산을 운용해 나오는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준다거나 혹은 아서가 원하는 지원산업을 했다.
그래서 운용 주체가 상당히 중요했는데, 아서는 여기저기서 운용 주체를 찾아다닌 것 같았다.
“우리를 좋게 봐준 건 고마운데 말이야.”
그리고 도경과의 만남에서 아서는 유성에게 재단 자금 운용을 맡기겠다고 결심한 것 같았고.
“그럼 고민할 필요 있을까요?”
“답이 있어?”
“네. 아주 쉬우면서도 간단한 답이 있어요.”
“뭔데?”
도경의 물음에 피트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영국에 지사 만들고, 뛰어드는 거요. 마침 우리에게 운용을 맡길 투자자도 있고요.”
“…….”
“사실 다른 나라에서 진출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게 투자자가 없을까 봐서인데 마침 기회가 왔잖아요.”
“그렇지.”
“그럼 하죠.”
피트는 장난 섞인 말투로 말해왔지만, 그의 얼굴에는 진심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가끔 보면 우리를 과소평가하는 건 보스인 것 같아요. 충분히 할 수 있다니까요? 마침 저기 보세요.”
피트는 TV를 손으로 가리켰다.
화면에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는데 새끼 펭귄들이 보였다.
[오늘은 새끼 펭귄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처음 사냥을 배우는…….]새끼 펭귄들이 높디높은 절벽 앞에 서 있었다.
“뭐든 절벽에서 냅다 뛰어내리는 게 시작이잖아요. 우리도 한번 해보죠.”
피트의 비유에 도경은 웃었다. 하지만 이 비유가 지금 필요한 용기임을 알았다.
“그래. 해보자.”
도경이 그리 결심하자 피트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