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80)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80화(80/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80화
“어쩔 거야?”
그날 저녁.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고은하는 운전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뭘?”
“네가 원한 대로 태산, 선진, 유성, 우리나라 BIG 3 증권사를 네 앞에 앉혀다 줬잖아. 그럼 네가 선택해야지.”
운전을 하던 소속사 대표는 룸미러를 통해 고은하를 힐끔 바라보았는데, 여전히 고민에 잠겨 있는 표정이었다.
“고민이라곤 안 할 것 같더니 좀 흔들리나 봐?”
대표는 고은하가 신인 시절부터 매니저를 하던 사람이었다. 고은하가 따로 1인 소속사를 차리며 그곳의 대표를 맡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담당하는 매니저이기도 했다.
가장 오래 그녀를 지켜봐 왔고, 고은하의 심리적 변화까지 이제는 캐치할 수 있을 정도였다.
“태산은 부동산, 선진도 부동산, 유성은 뭐…….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쪽도 네가 원한다면 부동산 전문가와 연계해서 그쪽으로 자산관리를 해주겠다고 했고.”
오래전 고은하의 부동산 투자에 대해 투기라며 꼬집는 기사가 올라왔었다. 그 기사를 받아 정치권에서도 떠들며 한동안 떠들썩한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기사의 영향 때문인지 여전히 고은하를 부동산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고, 태산과 선진도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전문적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브리핑해 왔다.
“그럴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부동산에 투자했어.”
고은하의 말에 대표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너도 태산 얘기를 들어보고 그냥 부동산에 투자하자고 했잖아.”
“그런데 다른 얘기를 해오는 사람이 생겼잖아.”
고은하는 퉁명스레 얘기하고는 창밖을 바라보았고, 대표는 피식하고 웃었다.
앞서 말했던 기사 때문에 이번 투자는 부동산으로 하지 말고 증권사를 만나보자고 권유한 것이 대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은하가 부동산에 광적으로 집착을 하는 것은 맞았지만, 그것은 기사가 말한 대로 투기는 아니었다.
이쪽의 사정을 어떻게 말하더라도 모두가 투기라고 얘기할 것이기 때문에, 반박하는 기사를 내지는 않았다.
“어디? 유성?”
“…….”
“좀 재미있긴 하더라. 다른 증권사들은 다 센터장인지 지점장인지 하는 양반들이 나왔는데, 유성은 젊은 애를 보냈더라고. 그래서 조금 오해도 했어.”
고은하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대표는 익숙하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유성이 앞에 두 증권사한테 질까 봐 포기하는구나 했는데 브리핑이 재미있더라고. 와인이라니…….”
대표는 아까 사무실에서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는 듯 말끝을 흐렸다.
“나는 와인을 마시기만 했지, 프로들은 다른 생각을 하는구나 싶더라니까. 투자를 생각해 내는 거 말이야. 은하 너는 어때?”
“……재미있었어.”
“재미만 있었어? 뭐 다른 생각은 안 들던?”
“다른 생각?”
“그래,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잖아. 와인 같은 존재가 세상에도 있다고, 와인이 숙성하면 좀 더 좋은 와인이 되듯 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유성증권에서 나온 직원은 고은하에 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고은하가 부동산이나 그림의 변하지 않는 모습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변화를 너무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언제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고은하는 어느 순간부터 변화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신경질적으로 매해 새로 데뷔하는 아이돌들을 보며 불안증에 시달리기도 했고, 정신과 상담도 주기적으로 받고 있었다.
“……그 사람이 뭘 안다고.”
“아주 잘 알던데?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을 즐기는 것이 투자고 인생이라고 믿는다잖아.”
“…….”
“나는 거기서 감동했어. 나는 늘 말하지만, 10년 후의 은하 너는 너만의 모습을 더욱 발전시킬 거라고 믿고 있고 말이야.”
물론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무언가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숙성할수록 가치가 오르는 와인에 투자하며 지금 고은하가 두려워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나한테 선택권은 없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유성이 좋았어. 그냥 좋았어. 너를 잘 아는 사람인 것 같아서.”
대표의 말에 고은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참 창밖을 바라보던 고은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리스크가 크댔어.”
“건물은 어디 리스크가 없나? 그리고 네가 공부를 하면 리스크가 줄어들 수 있다고 그분이 말씀하셨잖아.”
“어렵지 않을까?”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자산관리인 아니겠어? 도움받으면서 공부하는 거지. 너도 이제 좀 불안을 떨치고 집중할 거리를 찾아야 좋은 거 아니겠냐 이 말이야.”
대표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고은하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접속했다.
지이잉-
운전하던 대표는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리자 거치대를 바라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너, 인스타 스토리 올렸어?”
“어, 왜?”
“나랑 얘기하다가 갑자기 뭐 하는 거야? 뭐라고 올렸어? 나 운전 중이라 못 본다고.”
“그냥. 팬들한테 좋아하는 와인 물어본 건데?”
“결정한 거야?”
대표의 물음에도 고은하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는 휴대전화에 집중했고, 룸미러를 통해 그 모습을 보던 대표는 못 말린다는 듯 피식하고 웃었다.
* * *
“고은하 측에서 연락 없었죠?”
다음 날, 도경은 출근하자마자 팀장인 서정환에게 불려갔다.
“네,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다른 증권사 쪽은 움직임이 있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도경의 답에 서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그들의 움직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도경이나 자신이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초조한 마음에 질문이 헛나갔다.
“어제 같이 갈 걸 그랬습니다.”
자신의 말에 도경이 가만히 있자 서정환은 오해하지 말라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도경 씨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는 센터장급들이 움직였다는 소리를 들어서요. 혹시 고객 측에서 섭섭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내색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 브리핑도 잘 들어주셨고요.”
“부동산 쪽도 얘기했죠?”
“네, 와인뿐만 아니라 고객께서 원하신다면 부동산 투자도 전문가를 통해 진행하도록 도와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만족스러워하셨고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우리 쪽 조건은 잘 얘기했습니까?”
“브리핑이 길어져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고객도 조금 더 생각하고 싶어 하셨고요. 나중에 본 계약에 들어갈 때 말씀드려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선택되어야겠지만요.”
서정환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워낙 괜찮은 고객이라…….”
도경은 목구멍 끝까지 할 말이 올라왔지만, 꾹 참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기다려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나든 연락을 주신다고 하셨으니까요.”
“그래요. 그렇게 합시…….”
지이잉-
그때, 도경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고,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도경에게로 향했다.
“혹시?”
“네, 고객 측 연락입니다.”
“얼른 받아보세요.”
서정환의 말에 도경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유성투자증권 윤도경입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찾아뵙겠습니다. 네.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서정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서정환은 주먹을 꽉 쥐었다.
“고생 많았습니다.”
“칭찬은 계약을 마치고 와서 듣겠습니다. 고객 측에서 오전 중에 계약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아, 얼른 다녀오세요. 우리가 준비한 계약 조건 잘 말씀드리고요.”
“네, 알겠습니다.”
도경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가방과 재킷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 * *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그냥 계약할 걸 그랬습니다.”
고은하 소속사 대표실에는 도경과 고은하, 그리고 소속사 대표가 자리하고 있었다.
대표는 흡족한 듯 미소가 떠나지 않는 얼굴로 도경을 향해 너스레를 떨었다.
“아닙니다. 결정하실 시간이 필요하셨으니까요.”
도경은 고은하를 바라보았는데, 잔뜩 굳어 있던 어제의 얼굴과는 달리 오늘 그녀는 호의가 담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매니저님 혹시 와인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 아시나요?”
“와인이요?”
고은하의 물음에 도경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어제 말씀하셨잖아요. 와인에 관해 공부하면 투자의 리스크가 줄어든다고.”
“아, 네. 그렇습니다.”
“어제 소셜미디어에서 팬들에게 와인을 몇 개 추천받았거든요. 오늘부터 한번 즐겨보려고요.”
고은하의 말에 도경은 잠시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두꺼운 책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제가 이번에 공부하며 읽은 책입니다. 초심자가 보고 배우기 좋게 와인의 역사와 종류, 그리고 즐기는 방법이 적혀 있습니다.”
“앗, 제가 받아도 될까요?”
“그럼요. 앞으로 저와 와인에 관한 얘기를 나누셔야 하니까요.”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고은하가 고개를 숙이며 책을 품으로 끌어안자 도경은 메모지를 꺼내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여기는 국내 3대 와인 성지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두 곳은 서울에 있고요, 한 곳은 춘천에 있습니다. 웬만한 와인이 다 있으니까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여기에서 구하지 못하는 와인은 제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구할 수 있나요?”
“네, 말씀드렸듯 와인 전문 무역업체에서 이번 선물 투자를 중개할 예정이라서요. 그곳을 통해 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해요.”
도경이 건넨 메모지를 바라보던 고은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많이 불안해요.”
고은하가 그렇게 입을 열자, 대표는 말리려다 고은하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도경은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매년 실력 있는 가수들이 데뷔하고,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기가 힘들어요. 나보다 더 잘하는 친구들이 저렇게 사라지는데, 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거든요.”
“…….”
“그래서 변하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 집착하기 시작했죠. 금, 건물, 그림…….”
고은하를 바라보며 도경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녀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해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말에 공감할 수는 있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불안한 것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매니저님께서 하신 말씀이 어제 밤새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어쩌면 저도 20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고요.”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고객님의 상황이 되어보지 않아 모든 걸 말씀드릴 순 없겠지만, 고객님의 오랜 팬인 누군가가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고객님은 훗날 더 멋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요.”
“그 누군가가 누구예요? 어제도 궁금했어요. 혹시 매니저님이…….”
“아, 제 동생입니다. 고은하학 석사라고 말하던걸요?”
“왜 석사예요? 이왕이면 박사를…….”
“저도 그렇게 말했는데 아직 한참 멀었다고 하던데요.”
도경이 웃으며 말하자 고은하는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그럼 석사님을 위해 제가 사인한 이번 앨범을 드려도 될까요?”
고은하의 말에 도경은 놀란 듯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꼭…….”
“제가 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덕분에 좋은 분께 좋은 얘기를 들은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해주실 수 있다면……. 저도 오랜만에 형 노릇 좀 하겠네요. 어떻게 보답할까 고민했거든요.”
그 말에 대표는 사무실 한편에서 앨범을 들고 와 고은하에게 건넸고, 고은하는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성함이…….”
“윤도진입니다.”
“여기요. 석사님께 저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오후에 일정 있으니까 빨리 계약서 사인하고 일어나자.”
대표가 그렇게 말하자 고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서를 읽기 시작했다.
“조건은 다른 데보다 좋지 않네요.”
“다른 곳의 조건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투자 금액에 따라서 수수료를 인하해 드리고 있습니다.”
“다른 곳은 그게 좀 셌거든요. 홍보에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라는 말을 하길래 별로긴 했지만요.”
고은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도경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고객님을 위해 특약을 걸어드릴 수 있습니다.”
“특약이요?”
도경의 입에서 나온 말에 고은하와 소속사 대표는 의아하다는 듯 도경을 바라보았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2-10-28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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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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