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9)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9화(9/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9화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 범죄 수사협력단은 코스닥에 상장된 주식 대량 매도를 알선해 주고 뒷돈을 받아 챙기려던 혐의로 브로커 김 모 씨를 구속했다고 금일 밝혔습니다.]늦은 밤, 24시간 영업하는 국밥집에 있는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검찰은 김 모 씨와 함께 유성투자증권 황 모 부사장과 허 모 지점장도 구속기소 하였습니다. 검찰은 이들 3인이 짜고, 코스닥 상장사 임원들의 주식을 불법으로 대량매매…….]“크으…… 쓰다 써.”
유성투자증권 성남지점에 본사 감사팀이 휩쓸고 간 지 보름이 지났다.
도경은 밤늦게 일을 마친 최우진의 호출을 받고 이곳 식당으로 나와 있었는데 최우진은 먼저 국밥과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내일 주말이라고 너무 달리시는 거 아닙니까?”
맞은편에 앉은 도경의 물음에 최우진은 피식 웃고는 소주잔을 들어 올려 바라보았다.
“이게 말이야. 나 같은 PB한테는 정말 증오의 대상이야.”
여느 영업직 종사자나 다 똑같겠지만, 증권사의 PB 또한 술과 멀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큰 거래는 술자리에서 오간다.’
세일즈맨들의 영원한 철칙이었고, 증권사 PB들도 그 철칙에서 벗어나긴 힘들었다.
바쁜 장중에 점심시간을 쪼개어 고객들을 만나러 다녀도 고객들은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다.
남에게 돈을 맡긴다는 결정이 쉽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술자리에서는 그런 경계심이 누그러졌고 쉽지 않은 결정도 쉽게 내리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싫은데 오늘 같은 날은 그냥 마시고 싶어지네.”
“그럼 애증 아닌가요?”
도경의 물음에 최우진은 피식하고 웃었다.
“애증? 그래, 그게 맞는 것 같네. 도경 씨는 술 안 하지?”
“네. 노력해 봤는데 안 맞더라고요. 그래도 더 해봐야겠죠.”
“안 해도 돼. 나같이 주식 보는 눈 없고, 있는 거라곤 그저 입 터는 것뿐인 인간들이나 고객 응대할 때 마시는 거지. 도경 씨는 실력이 있으니까.”
최우진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는데 주제를 빙빙 돌려오고 있었다.
최우진의 실없는 말에 도경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눈 할 때가 제일 무섭더라.”
“네?”
“도경 씨가 그런 표정 하고 있을 때 무섭다고. 주식 분석하듯 나를 분석하고 있는 것 같아서.”
도경은 지금 자신의 눈이 어떤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날 내가 나간 날 궁금했지? 사실 본사 찾아갔었어.”
최우진의 입에서 지난 며칠간 도경이 궁금해했던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혹시 다른 부사장님을…….”
도경의 물음에 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투자증권은 본부끼리 무한 경쟁을 한다.
그리고 본부를 이끄는 부사장 중 가장 실적을 좋게 내거나 혹은 이사회에 줄이 많은 인물이 사장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주원 부사장을 만났어. 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니까.”
도경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우진이 한 결심은 그런 것이었다. 일개 지점의 대리가 부사장을 찾아가더라도 만나줄 확률도 낮았고, 최우진이 내민 서류를 곧이곧대로 믿어줄 것도 아니었다.
“처음엔 도경 씨가 쓴 서류에 놀라다가 내가 황 부사장이랑 지점장의 연관성을 얘기하니까 안 믿더라고.”
“믿기 힘들죠. 아무리 심주원 부사장님이라고 하더라도요.”
“심주원 부사장을 알아?”
“예……. 조금.”
“그래? 신기하네. 어쨌든 부사장끼리 경쟁하고 있는데 새까만 대리 하나가 와서 ‘이거 당신 경쟁자의 비위행위입니다’라고 하면 의심부터 하겠지.”
부사장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사내 정치를 겪을 대로 겪은 만큼 사람을 잘 믿지 않았다.
“일단 돌아가라고 하더라. 자기가 알아보겠다고.”
“그 이후로 연락은…….”
“안 왔어. 그러다가 열흘 전에 지점에 그 난리가 난 거지.”
본사에서 내려온 감사팀은 성남지점을 초토화시켰다. 지점장과 부지점장의 방은 물론이고, 마치 지금이 기회라는 듯 지점 내의 문제점들을 파악하려고 들었는데.
최우진도 본사로 소환되어 이 상황과 관련해 진술을 했다.
“어쨌든 충격이 꽤 큰가 보더라고.”
웬만하면 쉬쉬하고 내부 징계로 끝낼 수 있었다. 아직 거래가 진행된 건 아니니까.
하지만 회사는 특별감사 이후 황 부사장과 지점장을 검찰에 고소했고, 그들은 구속되었다.
“지점도 한번 휩쓸고 갔으니, 심주원 부사장이 강력하게 말했겠지.”
도경은 워낙 관심이 없어 몰랐지만, 최우진은 사내 정치에도 밝은 것 같았다.
한 번에 이 사건과 관련해 가장 버튼을 세게 누를 인물을 찾아간 것이 신기했다.
“심주원 부사장이 가장 공정하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아무래도 내 동기들이 본사에도 있다 보니까.”
최우진은 마치 도경의 속마음을 읽은 듯 얘기해 왔다.
“어쨌든 모든 게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갔는데……. 왜 이렇게 뭔가 찝찝하고 공허한지 모르겠다.”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간 게 아니라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가…….”
최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털어 넣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지. 가장 중요한 제이온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지.”
유성투자증권 성남지점이 특별감사에 들어가자, 증권가에서는 제이온시스템이 불법 블록딜에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 나갔다.
정보를 빠르게 취득할 수 있는 기관들은 재빠르게 제이온에 투자했던 주식을 모두 팔았고, 정보가 없는 개미들이 그 물량을 모두 받았다.
“그사이에 제이온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공시만 해줬어도.”
물론 대표와 임원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건 의무 공시 대상이 아니었다.
오늘 장 중에 제이온시스템의 사장이 구속되었고, 상세한 보도가 나오자 제이온시스템의 주가는 쉴 새 없이 곤두박질쳐 장 마감 전에 하한가에 도달했다.
공포가 극에 달한 것이다.
“여기서 횡령이라도 튀어나와 봐. 바로 거래정지야.”
상장사에서 횡령, 배임 사건이 공시되면 그 즉시 주식 거래가 정지된다.
주주들이 손해를 감수하고서 주식을 팔겠다고 해도 팔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참 슬프지 않아?”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리스크를 안아야만 경제적으로 풍족해질 수 있었다.
사업이 망할 수 있는 위험을 안거나, 위험이 있는 금융상품에 투자하거나.
부자가 되고 싶어 리스크를 안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고 집 한 채라도 내 명의로 두고 싶어서 주식시장으로 향하는 소액 투자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투자는 개인의 판단에 의해 하는 것이죠. 리스크를 안은 만큼 공부도 해야 하고요.”
도경은 최우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가 터질 때마다 개인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나 싶습니다. 안타깝기도 하고요.”
메시지가 요주의 종목으로 제이온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도경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지 않았다면.
결국 블록딜 거래는 아무런 문제 없이 성사되었을 것이고, 후에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손해는 개인투자자들이 더 크게 보았을 것이다.
더불어 유성투자증권을 믿고 블록딜 거래로 주식을 산 고객도 손해를 볼 것이고.
“투자자들이 회사를 믿고 투자한 돈인데, 제이온의 사장과 임원들은 그걸 판돈 삼아 도박을 한 거죠. 저는 이런 사람들이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주식시장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점차 바닥을 치게 될 것이다.
“나는…… 도경 씨 같은 사람이 업계에 많아졌으면 좋겠어.”
최우진은 반쯤 풀린 눈으로 도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처음에 도경 씨가 도움을 줬을 때, 솔직히 무시했다. 아주 요만큼 무시한 거니까 용서해.”
그 말에 도경은 피식 웃음이 터졌다.
“이해합니다. 업무팀 직원이 뭘 안다고…….”
“아니! 도경 씨는 나를 살리고, 회사도 살렸어.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제이온을 믿고 투자할 뻔한 수많은 개미를 살렸어.”
최우진은 확신한다는 듯한 말투로 얘기해 왔다.
“고마워. 정말 여러 가지로.”
최우진은 웅얼거리듯 얘기하다 테이블 위에 얼굴을 박았다.
최우진은 이 증권가에서 자신의 능력을 믿고 처음으로 인정해 준 사람이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요.”
도경은 그렇게 말하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는 메시지를 눌렀다.
제이온시스템 이후로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도경은 이제 이 메시지가 자신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메시지는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도경의 꿈인 세계 최고의 펀드매니저가 될 수 있게 돕고 있었다.
도경은 기회를 잡았고, 이제는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겠다고 마음먹으며 무언가 입력하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답장이 오지 않으리란 건 알았지만, 그렇게 메시지를 보낸 도경의 얼굴에는 홀가분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 * *
“도경 씨, 어서 와.”
사흘 후, 오랜만에 늘어지게 휴식을 보낸 도경은 회사로 출근했는데 업무팀 선배들이 도경을 반겨주었다.
도경은 오늘부터 다시 업무팀으로 복귀해 창구 업무를 해나갈 예정이었다.
“도경 씨가 최우진 대리님 일 도우러 간 사이에 다들 힘들었어.”
도경의 옆자리에 앉은 선배가 그리 얘기하자, 다른 선배가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느꼈어. 우리가 그동안 도경 씨한테 너무 많은 부탁을 해왔구나. 도경 씨 일이 이렇게 많구나.”
“하하하, 무섭게들 왜 그러세요.”
“아냐! 진심이야. 그동안 미안했어. 앞으로 내 일은 내가 다 하고, 정말 어려울 때 도와달라고 할게.”
도경은 이상하리만치 자신을 인정해 오는 선배들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도 눈치 있어. 도경 씨가 지점장 보낸 거라며?”
“누가 그런…….”
“우진 대리님이 슬쩍 말씀해 주셨어.”
도경은 인제야 선배들이 이리 자신을 반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점장은 모든 직원들의 공공의 적이었다.
“범죄와 연루된 거라 기쁜 일은 아니지만, 솔직히 속은 시원해.”
선배들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만큼이나 선배들도 점장에게 시달렸을 테니까.
“그나저나 오늘 새로운 점장이 온다는데.”
“벌써요?”
어느새 도경은 이야기 주제에서 빠지고 선배들 둘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응응. 근데 뭐라더라? 본사에서 일하다 밀려나는 사람이라나? 본사에서 우리 지점 버린 거 아니냐고 부지점장이 걱정하더라.”
도경은 선배들의 대화를 들으며 업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자자, 다들 주목.”
그때 부지점장과 한 남자가 창구 앞으로 다가왔다. 부지점장도 며칠 동안 본사의 특별감사를 받으며 얼굴이 매우 수척해져 있었다.
업무 준비를 하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부지점장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고, 남자는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지점장으로 발령받은 류태화입니다.”
새로 온 지점장은 꽤 젊어 보였다. 본사에서 밀려났다더니, 그럴 나이로는 안 보이는 외모였다.
“많이 힘든 시기에 지점장직을 맡게 되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분간 지점을 정상화하기 위해 좀 더 엄한 규율을 채택할까 합니다.”
지점장의 말에 도경의 뒤편에 서 있던 선배의 입에서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어렵겠지만, 정상화될 때까지 강화된 규율에 따라주길 바랍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새로운 지점장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직원들은 손뼉을 쳐 그를 환영했다.
“반갑습니다.”
지점장은 업무팀 직원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하다가 어느새 도경의 앞에 섰다.
“윤도경 씨?”
류태화는 미소를 지으며 도경에게 손을 내밀었다.
“활약은 많이 들었습니다.”
류태화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며 류태화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저는…….”
“나는 업무팀은 업무팀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도경 씨도 업무 지침을 잘 따라줬으면 좋겠습니다.”
류태화가 도경의 말을 끊으며 경고하자, 주변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2-10-28
정가 : 비매품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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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