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96)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96화(96/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96화
“언제 출근했어요?”
도경은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는 한다현을 데리고 센터 한편에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커피 두 잔을 들고 도경은 한다현의 맞은편에 앉았다.
“한 여섯 시쯤이요? 커피 고마워요.”
호록거리며 커피를 마시는 한다현을 보며 도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섯 시요?”
“네…… 오늘 오전 중으로 고객께서 원하신 보고서를 드려야 해서요.”
“다현 씨 일에 제가 관여하려는 건 아니…….”
“에이,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렇게 뜸 들여요. 그냥 얘기해도 괜찮아요.”
도경은 혹시나 실례일까 봐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것인데 한다현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쳐왔다.
“무슨 보고서이길래 그렇게 일찍 출근해요?”
“어…… 최근 우리 팀에서 관리하는 스타트업 상황 알아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애그로브릿지 펀드랑 다현 씨의 고객님께서 투자를 하신 곳.”
최근 들어 유성투자증권 리더스센터와 같은 고액 자산가를 위한 자산관리계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전에는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에 거의 몰방 된 투자를 했다면 요즘은 고객의 선택지가 다양한 느낌이었다.
만약 고객이 새로운 투자 상품을 원한다면, PB들은 거기에 관해 공부하거나 지점 내에 아예 전문가를 배정하는 방식이었다.
“맞아요.”
도경이 소속된 3팀의 경우는 주식, 채권뿐만 아니라 도경의 고객인 고은하를 위한 와인 선물투자, 그리고 도경 덕분에 새롭게 신설된 스타트업 펀드가 있었다.
스타트업 관련된 일은 평소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았던 한다현이 도맡아 담당하고 있었다.
“애그로브릿지나 제가 고객께 추천한 스타트업이 최근에 유니콘을 달성했어요.”
유니콘은 스타트업의 성공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였다.
투자받은 투자금을 포함해 스타트업이 사업을 하며 벌어들인 돈, 그리고 사업의 장래성을 포함해 총회사가치가 우리 돈 1조 원이 넘는다면 ‘유니콘 기업’이라고 불렸다.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스타트업이 이 유니콘을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모두가 유니콘을 목표로 드는 것은 그곳이 도착 지점이 아닌 이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일종의 마일스톤(milestone, 중요한 단계)이었기 때문이다.
“네. 들었습니다. 고객들께서 좋아하신다고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잠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 다시 시무룩한 상태의 한다현이 되었다.
“도경 씨가 고른 애그로브릿지나 제가 고른 회사나…… 너무 잘나가서 문제인 거예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의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떴다.
“잘나가서 문제라니요?”
“회사에서는 홍보용 기사가 필요하니 보도자료를 뿌린 거죠. 유성투자증권 리더스 센터에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두 건 진행했는데 두 건 다 스타트업들이 유니콘을 달성했다.”
회사로서는 호재나 다름없었다.
딱 두 건 집행한 투자가 모두 유니콘이라는 일종의 마일스톤을 달성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우리 고객들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으신 분들이 있으니까요. 여기저기 소문을 내셨나 봐요.”
“새로운 고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나요?”
도경의 물음에 한다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할 일이네요.”
“축하할 일이죠……. 우리 같은 PB가 영업을 뛰지 않아도 새로운 고객들이 찾아온다는 건요. 그런데요.”
한다현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새로 계약하신 고객님께서도 이번 같은 경우를 원하세요.”
“이번과 같은 상황이라면…… 미리 진입하고 싶다는 얘기인가요?”
“네. 이미 유니콘 가치를 인정받은 이전 회사들 같은 경우에는 지금 들어가면 자신의 투자금으로는 지분을 얼마 인정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한다현의 설명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식 같은 경우에도 한 방을 노리고 일부러 주가가 낮은 회사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건 개인의 투자 가치관 문제라 따로 얘기할 게 아니었다.
“그래서 다현 씨는…….”
“지난 며칠간 이런저런 회사들을 찾아봤는데요. 답이 안 서는 거예요.”
도경은 심각한 표정으로 한다현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도경 씨는 PDR이라는 말을 들어봤어요?”
“PDR이요? 처음 들어봅니다.”
“스타트업 기업가치 평가를 위해 최근 등장한 개념이에요. Price to Dream Ratio.”
한다현의 입에서 Price to Dream Ratio라는 말이 나오자 도경의 미간은 다시 한번 찌푸려져 갔다.
“주가 꿈 비율?”
“네. 직역하자면 주가 꿈 비율인 거죠. 주식에는 PBR(주가순자산비율), PER(주가수익비율)같이 기업의 가치를 보는 지표가 있는데, 이쪽은 한눈에 보기 힘드니까요.”
도경은 비교적 생소한 개념이었지만, 스타트업 투자시장으로 돈이 흐르고 있는 이상 이런 수치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타트업들이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고 나서 기존에 받은 기업가치만큼 주가가 오르지 않았잖아요.”
“로켓 쇼핑 같은 곳이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 거대 온라인 쇼핑몰은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되었는데 상장 전 스타트업 시절에 받았던 기업가치는 실제 주식시장에 상장되자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주식시장은 철저하게 기업이 돈을 얼마나 벌어들이고 있는가도 보기 때문이었는데 시장 점유율이 아무리 늘더라도 로켓 쇼핑이 기록하고 있는 막대한 적자 폭이 줄지 않는 한 상장 이전과 같은 기업가치로 평가받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inflation, 물가의 지속적 상승)이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이런 지표의 중요성이 점점 대두되고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돈이 시중에 대규모로 풀리는 유동성의 시대에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좀 더 너그럽게 기업의 가치를 평가했다면, 이제는 그 좋은 시기가 다 갔다.
“최근 스타트업 투자업계 쪽에서는 파티가 끝났다는 말이 돌고 있거든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모든 자산시장을 관통하는 말이었다.
이제 파티는 끝이 났고, 진실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왜 도경 씨가 저번에 말했듯, 이제는 투자자들도 실제로 돈을 버는 기업에 투자를 하려고 해요. 꿈만 있는 놈들은 버린다는 얘기죠.”
“좋지 않은 흐름이네요.”
물론 도경은 주식에 투자할 때는 돈을 버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얘기가 달랐다.
그들은 태생부터 투자자를 찾아야 하는 성질의 기업이었고, 오직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의 사업성과 대표의 철학 등.
숫자로 보이지 않는 것들로 기업을 평가 내려야 했다.
“스타트업들은 꿈을 먹고 자라는 기업인데 이제는 그 꿈마저 숫자로 보여달라고 투자자들이 말해온다면…….”
“시장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어요.”
심각한 표정으로 도경의 말을 받은 한다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고민이에요. 고객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원하는데, 이젠 정말 알짜를 골라야 하는 느낌이거든요.”
한다현의 고민은 결국 모든 투자를 관통하는 얘기였다.
지금과 같이 시장이 꿈만 있는 놈들을 배제할 때 꿈을 좇아야 하는 임무를 가진 한다현은 그 중간 지점을 찾아야 했다.
“고객이 원하는 건요?”
“지금까지 한 얘기를 모두 충족시키는 기업이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웃겨서 웃은 건 아니고요. 너무 힘들겠다 싶으니까 웃음이 나오네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울상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하자면, 이미 기업가치를 유니콘급으로 인정받은 기업은 안 되고, 꿈만 있는 놈도 안 된다. 이거잖아요.”
도경은 다시 한번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마라톤을 뛰어야 하는데 양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과 같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오늘 일찍 출근하신 걸 보면 기업은 고르셨어요?”
“네. 기업은 골랐는데…….”
“그럼 혹시 제가 좀 봐도 될까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깜짝 놀란 듯 도경을 바라보았다.
“도경 씨는 바쁘지 않나요? 우리 지점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도경 씨…….”
“저는 괜찮아요. 제가 본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만…… 다현 씨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다현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사실 도경 씨에게 부탁해 볼까 했거든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했고, 도경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따라나섰다.
* * *
“올해는 국내 주식을 좀 줄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한편, 대한민국 사모펀드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 KFSG의 하루도 시작되고 있었다.
최근 KFSG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6월 분기 리밸런싱이었다.
즉, 운용 중인 주식 펀드들을 다시 포트폴리오 비율에 맞게 재조정하는 과정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LS생건 비율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
KFSG의 대표 강성호는 주식 펀드를 담당하는 간부를 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번에 우리도 얘기했지만, 미용 쪽 중국 의존도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 같은데.”
“네. 그 부분은 대표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아무리 봐도 매출 회복의 모멘텀이 좋지 않습니다. 중국 자국의 화장품 브랜드들의 기술력도 많이 올라왔고요.”
“그래. 지금으로선 국내 화장품 업체들을 리레이팅(re-rating, 재평가)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으니. 아예 배제하는 방식으로 가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따로 회의를 마치고 보고드리겠습니다.”
담당자의 말에 강성호는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신규 펀드는 어떻게 됐어?”
강성호는 최근 자신의 이름을 단 신규 펀드를 개발 중이었다.
물론 이 회사에서 나오는 모든 펀드가 강성호의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이번엔 특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다음 주에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리고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번엔 조금 더 신경을 씁시다. 아무래도 우리 쪽에서도 첫 도전이고…… 다들 알다시피.”
강성호의 말에 간부들은 긴장된다는 표정으로 그의 말에 집중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처음이니까.”
지금까지 KFSG에서 강성호의 이름을 달고 낸 펀드들의 수익률은 엄청났다.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펀드들보다 수익은 단연코 높았고, 사모펀드 중에서도 국내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에는 주식을 사들여 주주가치에 맞게 기업에 요구를 하는 포지션이었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스타트업의 엑시트 과정을 우리가 소화하는 거니 당연히 주식시장에 상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고.”
강성호의 신규 펀드는 스타트업에 대해 투자를 하는 펀드였지만, 방식이 조금 달랐다.
바로 회사를 키우고 엑시트(Exit, 투자금 회수)를 하는 회사에 대한 투자였다.
즉, 가치를 인정받은 스타트업의 기존 경영진들이 강성호의 펀드에 회사를 파는 것을 얘기했다.
“인수 대상은 얘기가 잘되고 있지?”
“네, 그렇습니다. 그쪽에서도 우리의 접근을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아무래도 최근엔 스타트업이 직접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게 어려운 분위기니까.”
기업가치가 1조 원 이상인 유니콘들의 10배가 되는 데카콘(기업가치 10조 원)들도 주식시장에 상장을 못 하고 있었다.
기업가치가 부풀려진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들 때문에 심사가 빡빡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경영진들을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
“직접 말씀이십니까?”
“내 이름을 단 펀드고, 고객들은 내 이름을 보고 펀드를 구매하는데 내가 직접 챙겨야지.”
강성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시일 내로 약속 잡도록 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내가 스타트업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기존 펀드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을 믿겠습니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모두와 공유하도록 합시다.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여기까지 합시다.”
강성호가 회의를 끝내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실을 나갔다.
모두가 나가자 강성호는 목에 건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나도 많이 늙었나.”
예전엔 새로운 시도가 즐거웠지만, 이제는 새로운 시도를 앞두고도 긴장이 몰려오는 것을 두고 푸념했다.
“쓸데없는 고민이지.”
강성호는 피식 웃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2-10-28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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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