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120)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120화(120/404)
120화. 여섯 번째 툴을 가진 투수(1)
종종 야구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야구팬들이라면 야구가 없는 월요일을 싫어하고 화요일만을 기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드코어 야구팬. 출근하면 가장 먼저 화장실 변기에 앉는 오규환 씨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월요일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에게 월요일이란 그래도 오늘은 패배하지 않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간혹 일요일 경기에서 승리를 한 날이다? 승리의 즐거움을 온전하게 이틀 내내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월요일 이상으로 좋은 날도 없다. 물론 그가 응원하는 팀이 ‘마린스’라는 점을 미뤄볼 때 그는 그런 즐거움을 누리는 대신 패배의 열통 터짐을 이틀 내내 경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어쨌든 오늘도 패배하지 않는다는 게 어디인가.
“그래도 올해는 다르지.”
지난 금, 토, 일 사직 3연전.
오규환 씨는 당연히 그 모든 경기를 직관했다.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일요일 경기 직관을 함께 했던 그의 아버지는 마치 데뷔 시즌의 염슬라를 보는 것 같다며 당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극찬을 해주셨다.
물론 영상으로만 염슬라를 접했던 오규환씨 입장에서는 공감하기 힘든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그의 아버지만이 아니었던 것일까? 오규환 씨는 어느 언론에서 직접 그를 찾아가 인터뷰를 한 내용이 기사로 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이번 개막전 시리즈요? 당연히 봤죠. 개인적으로 아주 재밌었습니다. 어······. 저랑 비교해서 어떠냐고요? 글쎄요······.”
프로야구 데뷔 첫해에 가장 대단한 활약을 보였던 선수는 누구인가. 야구 팬들 사이에서도 이건 야구를 언제부터 봤냐에 따라 답이 갈라진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2006년에 있었던 신인왕 MVP 동시 석권의 위대한 투수. 심지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프론트라이너급 투수 소리까지 들어봤던 ‘그’를 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데뷔전만 따지면 최수원 선수 쪽이 더 대단했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2.2이닝에 2자책. 4실점이나 했었는데 그 친구는 5.2이닝이나 무실점으로 던졌으니까요. 게다가 타자 데뷔전에서는 2연타석 홈런이라니······. 재능만 봤을 때는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대단한 선수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적어도 80년대부터 야구를 봐왔던 팬이라면 92년 마린스의 염슬라를 잊을 수 없다. 85년부터 93년까지 리그를 지배했던 KBO의 가장 위대한 전설인 광주 호크스, 무등산 폭격기가 평자책에서 밀렸던 유일한 해는 92년뿐이다. 실제로 WAR로 따져봐도 데뷔 첫해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것은 지금 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염슬라였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야구라는 것이 정말 어려운 건 1년 내내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죠.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두 번째 경기. 엘리츠와의 경기에서 제가 1실점으로 완투승을 따냈을 때 그 기쁨을요. 부디 최수원 선수도 얼른 프로 첫 승의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그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것은 그가 바로 저 마린스를 강제로 우승시킨 역대 두 번째 투수라는 점이었다.
“아, 그런가요? 최수원 선수도 키 191cm에 몸무게가 91kg인가요? 하하하, 이것 참 공교롭네요. 저도 데뷔 해에 딱 그 정도 됐었던 것 같거든요. 이거 얼른 증량을 좀 해야겠네요. 그 정도 키면 그래도 몸무게가 세 자리는 나와야죠.”
댓글 창들은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물론 마린스에 괜찮은 신인 투수가 나오면 기자들이 염슬라를 찾아가는 것은 이제 일상이라고 봐야 했다. 다만 보통 그럴 때 댓글 창은 기대된다. 올해는 다를 거다. 같은 류의 댓글들이 주를 이뤘다면 오늘 댓글은 조금 달랐다.
─어인공주: 저 아저씨는 대체 뉘신 데 최수원이 어쩌니저쩌니 평가질?
─마린스해체해: 1이닝 4삼진 실화?
─거포이주혁: 이주혁 오늘 4타석 4타수 4홈런 장전 중
─최동수원: 염슬라를 모른다고? 별명부터가 슬라이더 그 자체인 마린스의 전설을?
─달린다적토마: 최수원 걔 진짜 싸가지 없더라. 신인이 초구로 사구를 던지고 뻔뻔하게 서 있는 거 봤음? 당연히 사과부터 해야하는 거 아닌가?
─사직아재: 너 강소구냐? 투수한테 사구 던졌으면 보복구 쳐맞을 거 각오해야지. 뭘 잘했다고 보복구에 벤치클라이밍을 걸었냐?
─달린다적토마: 클리어링이겠지. 이 빡대가리야.
─어인공주: 전설이고 뭐고 우리 수원이한테 일해라절해라 하는 거 좀 별로네요. 그래봐야 KBO가 일본 2군 수준이던 시절 선수 아닌가? 내가 수원이면 비교 자체가 기분 별루일 듯.
─84층살려줘: 지난 시리즈가 뜨겁긴 뜨거웠나 보네. 아주 온갖 분탕들이 죄다 몰려왔어.
─지옥의슬라이더: 마린스 패배의 원인은 최수원. 염슬라처럼 완투를 했어야지. 5.2이닝이라니. 너무 말랑했음.
─MVP신인왕: 미친소리한다.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수원이 허벅지 피멍든 거 못 봄? 그런 몸으로 안타 2개 치고 5.2이닝 무실점했는데 그 경기는 인간적으로 이겨줘야 하는 거 아님?
─마린스해체해: 워워, 마린스 경기 원데이 투데이 보는 것도 아니고 뭐 이런 걸로 흥분하고 그래. 진정하고 지금을 즐기자고. 그래도 세 경기 중에 한 경기는 이겼잖아.
댓글창은 단순히 마린스 팬뿐만이 아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어 그야말로 시끌벅적했다. 최수원의 데뷔전이 그만큼 센세이셔널 했다는 뜻일 것이다.
“하······. 얼른 내일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야구가 없는 월요일을 그리 싫어하지 않던 야구팬 오규환 씨는 정말 오래간만에 내일이 얼른 찾아오기를 바랬다.
***
“그냥 넘어가면 절대 안 됩니다. 저건 누가 봐도 보복구 잖습니까.”
“분명 그렇게는 한데 이걸 마냥 투수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는······. 게다가 뭐 위험한 곳에 던진 것도 아니고.”
“아니, 160짜리 공입니다. 몸 어디를 맞아도 위험한 공이에요.”
“근데 엄연히 먼저 맞은 쪽은 최수원 선수 아닙니까.”
“그게 문제가 있으면 위원회를 통해야지. 그렇게 보복구 던져서 될 일입니까?”
“보십쇼. 여기 자료 보면 미국 메이저리그의 경우 보복구를 규칙으로 제지했더니 오히려 몸에 맞는 공이 늘었어요. 우리가 벤치 클리어링 왜 규정으로 금지 안 하는 건지 잘 아시잖습니까. 이런 게 있어야 투수들도 타자들한테 몸에 맞는 공을 막 못 던지는 겁니다.”
“그거야 메이저리그 이야기 아닙니까. 한국은 사정이 다르죠.”
회의실.
일곱 명의 중년 남자들이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자자, 위원님들 다들 진정들 하세요.”
“저는 최소한 딜튼에게는 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벤치클리어링 상황이라도 이건 너무 과도한 폭력이었어요.”
“어허, 과도한 폭력이라뇨. 딜튼 선수 보시면 주먹질 한 번 안했습니다. 오히려 전 벤치클리어링을 일으킨 강소구 선수야 말로 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 화면 보시면 주먹 쥐고 달려가서 실제로 거의 휘두르기 직전까지 같습니다. 딜튼 선수가 이걸 막지 않았으면 난투극이 일어났을 거예요.”
“아니, 어떻게 이게 막은 겁니까. 이걸 보시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세요? 이거야말로 난투극이에요. 난투극.”
도저히 말로는 끊기지 않는 소란.
KBO의 고문 변호사이자 상벌위원회의 위원장인 최철수가 자신의 손바닥으로 책상을 크게 내리쳤다.
-쾅!! 쾅!!! 쾅!!!!
“자자, 위원님들. 무슨 말씀이신지는 잘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하시고 하나씩 정리를 좀 해봅시다. 우선 최초의 원인 제공인 제이크 보어 선수는 어떻게 할까요.”
“그 친구는 경기가 벌써 사흘 전 일이니. 이제 와서 뭐라고 하기엔 좀 그렇죠.”
“맞습니다. 이제 와서 뒷북을 쳐봤자 괜히 긁어 부스럼이나 될 일이죠.”
“그렇다면 최수원 선수는 어떻게 생각들 하십니까? 징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
여섯 명의 위원 가운데 셋.
위원장인 최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삼 대 삼이로군요. 그러면 최수원 선수는 경고로 가볍게 넘어가는 걸로 하죠.”
“벌금이라면 너무 약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고의적으로 타자를 맞춘 정황히 확실한데. 그래도 유소년 봉사 정도는 포함을 시키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면 제이크 보어 선수에 관한 이야기도 나올겁니다. 그냥 이번 일은 경고 선에서 끝내는 걸로 하시죠. 자, 그러면 강소구 선수는 어떻게 할까요?”
[KBO 상벌위원회 징계 발표!! 최수원 엄중 경고, 강소구 벌금 200만원과 3경기 출장정지, 딜튼 도일리 유소년 야구 봉사활동 40시간.]***
“젠장, 주먹질 한 번 하지 않았는데 봉사활동이라니. 이거 외국인 차별 아니야?”
“워워, 딜튼. 진정해. 엘리츠에 강소구는 벌금 200만원에 3경기 출장 정지라고.”
“흥, 차라리 그편이 낫지. 벌금이야 어차피 구단이 내줄테고, 3경기 출장정지면 등판이 하루 미뤄지는 건데. 그 정도야 뭐.”
“유소년 야구 봉사니까 애들한테 야구 알려주는 일이야. 생각보다 재밌을 거라고. 혼자 가기 심심하면 같이 가줄게.”
“오, 그래? 그러면 나야 고맙지.”
“고맙기는. 나한테 달려드는 거 막아주다가 생긴 일인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
의외였다. 물론 짬밥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저쪽에서 빌미를 먼저 제공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애당초 이 바닥에서 뛰는 양반들은 선수가 아니더라도 짬밥을 고려 안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오래 보면 정든다고 아무래도 외국인 용병보다 내국인 선수들을 조금 더 배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자면 강소구의 징계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나와 딜튼의 징계는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다. 어째서일까? 구단에서 힘을 써줬다고 하기에는 엘리츠 역시 마린스보다 딱히 부족한 구단이 아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생각보다 금방 풀렸다.
저 멀리 나의 한국 에이전트라고 할 수 있는 김태근 변호사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어? 김 변호사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구단에 볼 일이 좀 있어서요. 어제 경기 활약은 아주 잘 봤습니다. 딸도 데리고 직관했는데 제가 담당하는 선수라고 하니까 딸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아, 그렇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혹시 사인 볼 좀 몇 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게 딸이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자랑을 했는데 애들이 도통 믿지를 않았다네요.”
“아, 그야 당연히 해드려야죠. 저기 라커룸 가면 공 몇 개 있으니까 거기 해드릴게요.”
“어휴, 아닙니다. 공은 당연히 제가 준비했죠. 사인볼 받으려는데 그 정도 준비도 안 했으려고요. 여기 있습니다.”
“어,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어차피 가끔 사인해달라는 애들 있으면 해주려고 벌크로 몇 박스 사뒀으니까 다음부터는 그냥 말씀만 하세요. 아시잖습니까. 어차피 야구공이나 이런 용품들 저한테는 다 비용인 거.”
“하하, 이번에 활약하신 거 보면 그 몇 박스 조만간 거덜이 날 것 같은데요? 제가 용품쪽 스폰서도 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맞다. 그리고 이번 징계건. 원래 아무것도 없이 넘기고 싶었는데 시즌 첫 벤치 클리어링이고, 육체 접촉도 나와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안 그래도 생각보다 징계가 약해서 다행이다 생각했었는데 변호사님이 손을 쓰신 거군요. 상벌위원회에도 아는 사람이 있는 건가요?”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최 변호사님이 동문 선배님이시고, 예전에 저희 로펌에 EP로 계실 적에 제가 밑에서 일을 좀 배웠었습니다. 덕분에 친분이 좀 있는 편이죠.”
최 변호사? 익숙한 호칭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KBO 상벌위원회는 여러 교수들과 기자로 구성 되어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변호사라면 단 하나. KBO의 고문 변호사이자 상벌위원회의 위원장뿐이다.
김태근 변호사는 이런 이야기를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실하게 넘겼다.
내가 만약 사회 경험이 없는 열아홉살 애송이였다면 마찬가지로 ‘운이 좋군’하면서 별거 아닌 일처럼 넘겨버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나의 귀에는 나의 에이전트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넘긴 이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들렸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뭘요. 그러면 전 서울 올라가 봐야 해서 이만. 모레 경기 파이팅입니다!!”
그러니까 ‘야, 상벌위원회 위원장이 네 편이야. 그러니까 이쪽은 걱정하지 말고 경기나 열심히 뛰도록 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