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182)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182화(182/404)
182화. 선두(5)
등 뒤에 주자를 두는 순간 부담이 커졌다.
최민혁이 가볍게 호흡했다.
브레이브스에 온 이후 그에게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선진적인 시스템이나 합리적인 코치진이 아니었다.
조창혁.
메이저를 노리는 에이스 투수의 존재야말로 그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야, 신경 쓰지 마. 넌 인마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 나만큼은 아니지만, 너도 공 제법 좋아. 그냥 팍팍 집어 넣으면 그만이라니까?”
“근데 기자들한테는 평소에 좀 잘해라. 내가 어? 고등학교 다닐 때 후배 빠따 친 건 사실이야. 사실인데. 근데 솔직히 존나 억울하다. 야, 어디 나만 쳤냐? 그땐 다들 치고 맞고 그랬어. 나도 존나 맞았다고. 그리고 나한테 맞은 애, 지난겨울에도 만나서 내가 걔네 가게 매상 올려주고 사인하고 사진 찍고 다 했거든? 근데 그런 건 기사로 올리지도 않아요.”
물론 그 양아치 같은 변명이 도움이 됐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저 뻔뻔하기까지 한 멘탈이 자신과 같은 유형의 투수에게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파이어볼러와 피네스피처
누구의 마음이 더 단단할까.
많은 사람들은 파이어볼러가 배짱이 있고 피해가는 피칭을 하는 피네스피처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비슷한 성적이라면 언제 두들겨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삼켜내고 느린 공을 꾸역꾸역 던지는 피네스피처의 마음이 훨씬 단단하다. 그것은 강속구라는 소총을 들고 싸우는 병사와 그 앞에 냉병기를 쥔 병사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그리고 조창혁은 리그 최고 수준의 강속구를 던지는 주제에 그 누구보다 단단한 마음을 가진 선수였다.
데뷔 시즌부터 시작된 학폭 논란. 그리고 누구보다 뛰어난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고 상무로 병역을 이행해야 했던 현실. 그 모든 것이 조창혁이라는 인간을 담금질했다.
최수원이 2루로 간 것은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그저 한 번 크게 호흡했을 뿐, 최민혁은 흔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
바깥쪽 빠른 공.
-뻐엉!!!
“스트라잌!!!”
흔들리지 않는 156.1km/h 속구가 아슬아슬하게 존을 스쳤다.
노형욱이 잠시 타석에서 물러나 미간을 찌푸렸다.
아리까리했다.
이규만과 최수원의 말처럼 조금 더 높은 코스로 들어오는 건가?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포수의 미트에 박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0.35초. 그 짧은 시간 동안 끝까지 공을 보고 휘두르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렇기에 시작점, 그리고 중간의 위치를 보고 마지막을 예측한다. 그것은 경험, 그리고 경험보다 중요한 선천적인 재능이 필요한 일이다.
노형욱은 재능이 넘치는 타자였다.
3할을 치는 장타자라는 것은 분명 그러한 재능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가 세 번째 공을 기다렸다.
복판?
본능적으로 방망이가 움직였다. 하지만 절반쯤 움직인 방망이가 거기서 더 움직이지 않는다.
슬라이더다.
-뻐엉!!
구심의 손은 올라오지 않았다. 포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1루심에게 체크 스윙 여부를 물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볼카운트 2-1.
그 상황에서 네 번째.
세트 포지션.
잠깐의 정지. 그리고 빠른 타이밍의 코킹.
그리고 최수원이 달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이었다.
사실 현시점에서 KBO에서 도루는 멍청한 짓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현실적으로 도루가 가치를 갖는 마지노선을 성공률 72%로 본다.
즉, 성공률 72% 미만의 도루는 설사 그가 100개가 넘는 도루를 했다고 해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부상 확률은 또 어떤가.
그런 상황에서 2루 도루만 하더라도 매우 뜻밖이었건만 3루 도루라니.
무엇보다 2루는 깊숙한 안타 한 방이면 어차피 홈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무리해서 3루로 올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몸쪽 깊숙한 코스.
-부웅!!!
“스트라잌!!!”
빠르게 공을 받은 포수가 3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예상하지 못 했던 급박한 상황.
공이 아주 조금 높게 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세이프!!!”
최수원의 발이 3루를 밟았다.
2루 도루를 커다란 심호흡 한 번으로 이겨냈던 최민혁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
[맙소사!! 최수원!! 최수원 선수가 2루에 이어서 3루까지 훔쳐냈습니다!!] [와, 이 선수 오늘 아주 작정을 했는데요? 1:1 상황에서 노아웃에 주자 3루. 최수원이 자신의 두 발로 투수를 강하게 압박합니다.] [최근에 최수원 선수 볼넷으로 출루하는 일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이런 적극적인 주루가 더해진다면 상대 팀으로서는 상당히 골머리를 썩일 수밖에 없습니다.]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다 몸 상하면 어쩌려고.”
“중요한 날이라서요. 오늘 이기면 1위 아닙니까.”
“뭐야?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직장에 충실한 타입?”
“에이, 개인사업자가 직장이 어딨습니까. 그냥 내 사업 열심히 하는 거죠.”
삼루의 이름이 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아무개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확실히 이 즈음에 도루에 대한 인식은 이게 정상이긴 했다. MLB야 피치 클락이나, 베이스 크기 확장, 견제구 제한등으로 룰을 개선해서 도루의 숫자를 강제로 늘렸다지만 KBO나 NPB는 아직이었으니까.
야구가 워낙에 오래된 스포츠라서 변화를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규칙은 변화할지언정 그게 더 야구다운 형태일 테니까.
최민혁이 나를 한 번 바라봤다.
2루 도루 때는 제법 늠른하게 대처하는 것 같았는데 역시 도루 두 번 연속은 좀 멘탈이 흔들리는 낌새다. 이게 또 도루의 장점 아니겠는가. 투수가 타석에만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것.
물론 이미 3루까지 훔쳤으니 주자에는 아무런 신경을 안 써도 된다.
하지만 홈런으로 주자가 일소됐다고 투수 멘탈이 회복되는 게 아닌 것처럼, 사실 홈런 맞은 직후의 투수 멘탈이 제일 타격이 큰 것처럼. 이렇게 연속으로 도루를 허용하고 나면 투수의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외부로 그 원인을 미루려는 경향이 있다.
아마 지금쯤 최민혁은 그게 사실이 아닌 걸 알면서도 도루를 제대로 저지 하지 못한 포수에 대한 원망이 좀 생기지 않았을까? 실제로 방금 전에는 송구만 조금 더 정확했으면 내가 아웃 당했을 가능성도 있었고.
타석의 노형욱이 다섯 번째 공을 기다렸다.
볼카운트 2-2.
최민혁의 공이 날았다.
-딱!!!
높게 솟은 타구가 쭉쭉 뻗어나갔다.
하지만 정작 공을 후려갈긴 노형욱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타구의 각이 너무 높았다.
3루에서 잠깐의 대기.
고점을 찍은 타구가 점점 하강하기 시작했다.
외야의 깊숙한 곳.
중견수인 강호창이 팔을 뻗었다.
[높게 뜬 타구를 워닝 트랙 바로 앞에서 중견수 강호창이 잡아냅니다.] [3루의 최수원이 홈까지 여유롭게 들어옵니다. 희생 플라이!! 4회 말, 마린스가 1점을 추가하면서 점수는 이제 1:2. 마린스가 또 다시 1점을 앞서 나갑니다.] [앞선 두 번의 도루가 결국 이렇게 점수로 이어지네요. 마린스 매우 끈끈합니다.]“반의 반개 높게 들어오는 공 친다는 생각으로 의식적으로 높게 휘둘렀는데 그것보다 더 높았던 것 같아요. 거의 공 반 개 정도?”
“그렇게 높았다고?”
“항상 그런 건 아닐 수도 있어요. 무사 3루라서 좀 힘 빡줘서 던진다고 더 좋은 공을 던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튼 마지막 공은 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대기 타석에서 노형욱과 이규만은 이미 활발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이규만이 보여준 성적만 생각하면 노형욱의 저런 자세는 좀 과한 면이 있었다. 나이에 비하면 물론 훌륭하긴 했지만 글쎄······. 차라리 지금은 강라온이나 이정훈 쪽이 훨씬 괜찮은 타자다.
“고생했다. 조금만 더 힘내자. 오늘 이기면 내가 저녁은 양곱창으로 아주 제대로 살 테니까.”
“선배, 수원이는 내일 등판······.”
“아, 그러네. 내가 진짜 오래간만에 1위 탈환이라 너무 기분 좋아서 생각을 못했네. 그러면 수원이 넌 내가 내일 따로 살테니까. 오늘 내일 조금만 더 힘내자.”
이규만이 자신의 방망이를 들고 타석으로 걸어나갔다.
“이제 다른 선수들한테도 말씀해주셔야죠?”
“아니, 규만 선배 타석까지 소화하고. 괜히 내 착각이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런 건 아무래도 내가 말하는 것보다는 규만 선배가 말하는 게 더 좋지.”
전성기를 아득하게 지나 은퇴를 코앞에 둔 타자가 타석에 섰다.
그리고 그런 타자에게 155를 넘어가는 빠른 공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딱!!!
초구 타격.
이규만이 최선을 다하여, 그리 빠르지는 않은 속도로 달렸다.
하지만 의미가 없었다. 그의 사전에 내야 안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유격수의 글러브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타구는 어떤 상황이건 이규만을 아웃시키기에 충분했으니까.
경기가 이어졌다.
***
“그러니까 공이 조금 높게 들어오고 있다. 뭐, 그런 말이네요?”
“그래, 좀 들쭉날쭉 한 것 같긴 한데. 반의 반개에서 반개 정도 높다고 보면 될 것 같아.”
이규만의 이야기에 이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최수원이 워낙에 압도적인 타자인지라 많이 묻히는 감이 있었지만 이규만은 KBO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을만큼 대단한 기록을 쌓아 올린 타자였다. 특히 타석으로 한정짓는다면 그의 전성기의 포스는 KBO의 어떤 타자도 따라오기 힘들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기록이 그의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해준다.
“알겠습니다. 한 번 노려볼게요. 마침 쟤도 이제 슬슬 힘 빠질 때도 돼가니까요.”
5회를 지나 6회 초.
최민혁은 마린스의 하위 타순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쪼유의 경우는 오히려 그 반의 반 개에서 반 개 정도 더 높게 휘두르라는 이야기가 독이 된 것 같을 만큼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 놈은 하드 웨어에 비해 소프트 웨어가 너무 안 좋다.
그리고 디에고 로드리게스는 1점을 더 내줬다.
좀 아쉬운 실점이었지만 디에고 로드리게스의 문제라기보다는 브레이브스의 타선이 보여준 끈끈함이 대단했다고 칭찬할 만했다. 뭐랄까? 마린스의 15년 만에 1위 등극을 자신들을 상대로 하는 꼴을 보여줄 수 없다는 강력한 집념이 서려 있었달까?
2:2
경기를 보는 입장에서도, 경기를 뛰는 선수 입장에서도 상당히 쫄깃해지는 숫자 속에서 6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자, 6회 말. 다시 마린스의 공격. 점수는 2:2. 타순은 1번 이정훈부터 시작됩니다.] [앞선 타석에서 파울 플라이 하나와 병살타 하나를 기록했던 이정훈 선수. 과연 이번 타석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마운드의 최민혁, 초구 준비합니다.]초구 빠른 공.
-딱!!!
타구가 파울 라인을 벗어났다.
잠시 타석에서 물러난 그가 살짝 웃었다.
‘정말로 높게 들어온다 이거네.’
살짝 높은 코스로 방망이를 휘두르겠다 의식했기 때문일까?
타이밍은 조금 어긋났다.
하지만 이게 맞다. 저 녀석 저거,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공이 좀 더 높게 들어온다. 이게 뭐 회전수인가 뭔가로 수직 테일링이 강하게 걸리는 경우겠지.
그리고 알아냈다면 이제 공략할 차례다.
두 번째.
이정훈이 강하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딱!!!
[아, 높게 뜬 타구. 내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투수, 최민혁이 직접 타구를 처리하며 원 아웃. 타석에 2번 타자 강라온 선수가 올라옵니다.]물론 그것 좀 알아냈다고 바로바로 공략되면 그게 어디 야구겠는가.
이정훈이 자신의 뺨을 긁적이며 물러났다.
“라온아, 규만 선배 말이 맞더라. 좀 높게 들어온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