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196)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196화(196/404)
196화. 고비(2)
이정훈은 엘리트였다.
물론 100억은 물론이거니와 70억 80억짜리 선수들도 잔뜩인 이 야구판에서 고작 4년 42억. 그것도 수도권 프리미엄 붙은 42억도 아니고 부산에 42억짜리 선수가 무슨 엘리트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정상은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바닥 역시 친 적이 없는 남자였다. 고작 만 스물여덟의 나이에 첫 번째 FA에 성공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런 엘리트 이정훈이 보기에도 최수원은 논외의 괴물이었다.
본래 선배의 경험은 후배에게 전달이 돼야 한다. 이정훈 역시 그에게 그러한 경험을 전달해주던 선배들이 있었다.
“수원아, 여름에는 어차피 몸이 열이 좀 많이 올라오니까 몸 푸는 시간을······. 그래, 알아서 잘 줄이고 있구나. 그래, 잘한다.”
사실 깊숙하게 생각해보면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재능이야 그렇다 칠 수 있다. 누군가는 죽어라 연습해도 던질 수 없는 160km/h를 누군가는 적당한 연습으로 던질 수 있는 것이 재능이라는 녀석이니까.
하지만 경험은 다르다. 그것은 직접 해보던지, 아니면 최소한 누군가가 알려줬을 때 익힐 수 있는 녀석이다.
하지만 최수원은 마치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여름을 지내고 있었다. 얼마나 더워지면 몸을 어느 정도 식혀야 하는지. 에어컨을 사용해도 되는 타이밍은 언제이며 좀 덥더라도 참고 서서히 열을 내리는 게 좋은 시점은 언제인지. 훈련량을 얼마나 어떻게 조절해야 감각은 유지하면서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지 등등.
그 모든 것을 과연 ‘재능’이라는 단어만으로 퉁칠 수 있는 것일까?
심지어 그 경험이라는 녀석은 주변에서 알려 준다고 해봤자 시행착오를 조금 줄여주는 정도에 불과할 뿐, 본인이 직접 깨져봐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당장 저기 이주혁만 보더라도 작년에 더위 때문에 고생을 하고 적절하게 컨디션 조절해보겠다며 훈련량을 조절했다가 오히려 조금씩 잡혀가던 타격감이 싹 날아가는 바람에 또 10타석 무안타 행진 중이다.
반면 조유진은 훈련과 무관하게 그냥 경기 출장 수가 늘어나면서 체력적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참고로 이 녀석은 14타석째 무안타다.
그에 반하여 최수원은 어떠한가.
지난 올스타전에서 올스타급 투수들을 상대로 4연타석 홈런이라는 터무니없는 성적을 기록한 이후 KBO의 모든 구단에서는 최수원과의 정면 승부라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를 똑똑하게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올스타전 통산 4홈런은 역대 최다 홈런 기록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최다홈런이 ‘한 경기’가 아니라 ‘통산’으로 따졌을 때 최다홈런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괴물은 다른 역대급 선수들이 커리어 내내 올스타전 출장해서 때려낸 홈런을 고작 한 경기 만에 달성했다는 뜻이다.
‘정면 승부를 해주면 무조건 담장을 넘길 수 있는 타자.’
이건 막는 사람만 없으면 하프라인에서 던지는 3점 슛을 무조건 집어넣는 농구선수라던지 파울만 없으면 수비수 세 명은 무조건 벗겨낼 수 있는 축구선수라던지, 혹은 전진 패스를 무조건 성공시키는 쿼터백같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설사 야구 게임이라고 해도 이런 캐릭터가 나오면 욕을 먹는다.
‘전성기 배리 본즈가 KBO에서 뛰는 꼴이라는데 뭐 할 말 없지.’
물론 솔직히 그 정도는 좀 과장이라고 본다. 전성기의 배리 본즈는 지금 수원이가 찍는 성적의 80% 정도를 MLB에서 찍었던 선수였으니까. 대충 전성기 푸홀스나 전성기 트라웃 정도? 그러니까 평범한 MLB MVP급 타자가······.
‘아니, MLB의 MVP급 타자라는 것 자체부터가 일단 평범이 아니기는 한데······.’
아무튼 그런 괴물 같은 녀석이기에 그 ‘경험’이라는 부분까지도 재능으로 모조리 커버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한여름의 무더위로 저하되는 스스로의 컨디션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딱 적절한 수준의 훈련을 해내고 그렇게 컨디션까지 관리할 수 있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막 KBO에 데뷔한 19살짜리 선수가 메이저 MVP급 타자라는 건 어디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심지어 그 푸홀스나 트라웃조차도 메이저에서 뛰기까지는 마이너에서 1년의 담금질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이정훈은 최수원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어차피 최수원이라는 인간은 그의 상식으로는 판단이 안 되는 녀석이었다. 이상하게 노련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가 보여주는 비상식적인 실력에 비하자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렇기에 그가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
이 무더운 여름.
저기 저 어설픈 애송이들이 부진하는 것을 메울만큼 훌륭한 베테랑의 솜씨였다.
간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그래, 비록 삼진아웃이지만 공을 8개나 봤으면 1번 타자로서는 할 만큼 한 것이다. 당장 고과점수만 따져도 2점이다. 안타 고과가 1점. 주자 있을 때 안타가 추가 점 1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주자 있을 때 안타 친 것만큼 팀에 공헌한 거다. 이건 변명이 아니라 진짜다.
엘리트 이정훈이 깔끔한 삼진으로 물러났다.
***
요즘 이상기온으로 여름에 장마도 안 오고 좀 덜 덥고 그런 게 추세였는데 이번 여름은 유감스럽게도 장마는 제대로 안 왔지만, 더위는 제대로 찾아왔다.
실로 지독한 더위였다. 덕분에 최근에 몸무게가 순조롭게 늘어나고 있었는데 선발 등판 두 번에 무려 1.5kg이 빠졌다.
물론 원래 한 경기 등판하고 나면 체중이 3kg정도 줄어들긴 하는데 그거 대부분이 근육이 저장해둔 글리코겐이 소진되면서 글리코겐이 잡아두던 수분이 빠지는 현상으로 잘 먹으면 하루이틀만에 한 7, 8할은 금방 복구되는 데 반해서 이번 체중 감소는 그냥 순수하게 체지방이 타버린 감소였다.
-부웅!!
“스트라잌!! 아웃!!”
이정훈이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제는 뭐 감흥도 없었다. 그냥 저 양반 또 저러는 구나 싶다. 평소에는 그래도 제법 잘 치는 양반이 뭔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털고 나가면 항상 저렇게 삼진 아니면 병살이나 뜬공 아웃이다. 딱 봐도 영화 같은 거에서 사망 플래그 잔뜩 세우고 지루하게 회상 씬까지 넣고 사망하는 타입이다.
강라온이 타석에 섰다.
얼굴이 좀 많이 초췌하다. 본래도 체구가 그리 큰 편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운동 좀 많이 한 일반인 수준으로 보일만큼 홀쭉하다. 안 그래도 요새 규만 선배가 선수들 보양식 챙겨 먹이고 있다고는 하는데 아무리봐도 몇몇 선수들은 그걸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쪼유야 그래도 백업 포수인 장재경이 중간중간 경기를 뛰어준다지만 강라온은 지금까지 96경기 가운데 무려 93경기를 선발로 출장했다. 최근에 백업 내야수들인 정지운에 김훈 조합으로 내야를 짰다가 한 번 폭망했다. 용병 타자인 사울 로페즈도 전천후 유틸 소리 듣고 있긴 했지만 유격수는 좀 어렵다. 덕분에 강라온은 경기가 거의 결정된 후반부에 가끔 교체로 좀 쉬게 해주는 정도였으니 피곤이 누적될 만도 하다.
-딱!!
[쳤습니다!! 강라온!! 채창식의 키를 살짝 넘기는 타구!!]“세이프!!!”
근데 그렇게 피곤이 누적된 상황에서도 이렇게 꾸역꾸역 안타를 쳐내니 감독 입장에서는 더더욱 뺄 수가 없는 거겠지.
[자, 원아웃, 주자 1루의 상황. 타석에 최수원!! 최수원 선수가 들어옵니다.] [이틀 전, 인천 드래곤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해서 7.1이닝 1실점. 이 무더위에 다른 신인들의 성적은 조금씩 주춤한데 이 선수는 그런 것도 없어요. 격이 다르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끈적끈적한 더위가 온몸을 감싼다.
물론 기온만 따지면 더 더운 곳에서도 뛰어는 봤다. 2034년인가? 에인절스 스타디움에서 화씨 104도. 그러니까 40도 무더위에서 뛰어본 적도 있다.
근데 거기 날씨는 이렇지는 않았다. 습도가 낮아서 그늘에 가면 제법 시원하고 덕분에 덕아웃 환경은 상당히 쾌적했다. 이렇게 몇 걸음 걸으면 몸에 땀이 가득 차는 환경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타석에 서는 것만으로도 슬슬 팬티에 습기가 올라온다.
루틴에 따라서 자세를 잡았다. 물론 방망이를 치켜들어 전광판을 가리키는 미친짓은 하지 않았다. 참고로 올스타전을 하기 전에 몸에 맞는 공은 딱 두 개였는데 고작 보름 만에 무려 두 개가 추가됐다. 경기 내용만 보면 고의인지 실수인지 애매했는데 분위기만 보면 누가 봐도 고의다. 근데 이건 예고 홈런의 원조 루스도 바로 다음 날에 빈볼을 맞은 터라 뭐라 할 말이 없긴 하다. 사실 예고 홈런 퍼포먼스는 아무리 올스타전이라도 선을 좀 넘은 건 맞았으니까.
아, 물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서 나도 보복구를 두 개 던지긴 했다. 덕분에 지금 피닉스, 블레이즈랑은 거의 원수 느낌인데 KBO 사무국이나 구단 프런트에서는 이 화끈해지는 분위기를 오히려 좀 좋아하는 느낌이다. 프로야구 1,000만 관중 시대라나?
마운드의 김새한이 와인드업했다.
그리핀즈와 우리는 클래식 시리즈도 있고, 여러모로 전통의 라이벌이기는 한데 그래도 이번 올스타전에 같은 팀이었던 덕분에 나랑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덕분에 빈볼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승부를 겨뤄준다는 말도 아니었다.
-뻐엉!!
존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 공.
볼카운트 0-1.
이전 올스타전 이후 나에 대한 분위기는 대충 두 가지로 나뉘었다.
현장 그리고 여론인데 현장의 경우는 ‘이거 절대 상대하면 안 된다. 그냥 만루라도 볼넷을 주는 게 이득이다.’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야수들이야 좀 인기투표의 성향이 강했다고 하지만 투수는 감독 추천이 더 많았고 그건 대부분 이번 시즌 퍼포먼스로 뽑히는 만큼 내가 4연타석 홈런을 쳤다는 건 리그에서 가장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투수들을 죄다 두들겼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여론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마린스의 대승적 선택을 기원한다.
-최수원의 역사적 시즌을 응원한다.
논조는 조금 달랐지만 결국 결론은 이번 시즌 내가 할 수 있는 거 다 하게 해주고 마린스의 1992년 이후로 이어진 34년의 암흑기도 한 번 끊어주고 미국으로 보내버리자. 뭐 그런 뉘앙스다.
-마린스의 전통 유지를 지지합니다.
-전통? 무슨 전통?
-신인 갈아서 1년 반짝 우승하고 꼬라박는 전통. 물론 최수원은 하는 거 보면 안 갈릴 것 같으니까 그냥 갈린 셈 치고 내년에 대승적으로 미국 보내자.
-마린스의 전통 유지를 지지합니다.(2)
-마린스의 전통 유지를 지지합니다.(3)
대충 이런 식이다.
근데 이게 좀 우습게도 나에게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을 하게 됐는데, 뭐랄까? 보통 특출나게 잘하는 선수의 경우 그 팀의 팬을 제외한 나머지 9개 팀의 팬이 좀 싫어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걸 넘어서 버렸달까?
마치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앞뒀던 과거의 어떤 선수처럼 특정 구단의 잘하는 선수를 넘어서 KBO 전체가 응원하는 선수의 개념이 돼버린 것이다.
덕분에 덕아웃에서 자동고의사구를 지시하면 우리 마린스 팬을 넘어서 홈팀 팬들까지 –우우우하는 야유를 보내는 상황이 되버렸다. 이는 구단의 코치진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결국 자동고의사구가 아닌 이런 식의 소극적인 볼넷을 선택하는 횟수가 늘고 있었는데 이게 왜 자동고의사구보다 나에게 매우 유리한가 하면······.
-딱!!!
투수는 기계가 아니고 포수를 일으켜서 멀찍이서 볼넷을 던지는 게 아닌 이상 이렇게 가끔 어처구니없을 만큼 복판에 들어오는 공도 나오기 때문이다.
[높게 뜬 타구!! 쭉쭉 뻗어 나갑니다!! 넘어가느냐! 넘어가느냐!!! 넘어!!! 갔습니다!!] [시즌 34호!! 최수원이 또다시 홈런을 추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