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23)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23화(23/404)
23화. 변화(1)
“새끼, 오늘은 충격 좀 먹었나보다?”
동기인 이진우의 장난기 어린 질문에 아마 평소였다면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반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안병영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저 묵묵하게 악력볼을 쥐락펴락할 뿐이다.
평소와 사뭇 다른 동기의 모습에 이진우의 시선이 책상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누릿하게 변색하여 가는 종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몇 개는 프린트로 반듯하게, 몇 개는 손으로 조악하게 쓰여진 글귀들은 다 다른 내용이었으나 그럼에도 그 의미만은 동일했다.
-하는 일이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水滴穿石
-승리는 가장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간다.
노력.
오직 노력.
안병영의 눈이 이글거렸다.
“시발······. 그래. 충격 좀 먹었다. 존나 세상이 뭐 이따위인지. 너도 알지? 그 새끼 요즘 투수 훈련 개판으로 하는 거. 홈런 좀 몇 번 치더니 아주, 지가 야수인 줄 알고 조규혁이랑 붙어 다니고. 그 새끼 오늘도 폴앤폴 꼴랑 3세트 뛰고 빠졌어. 그리고 코치님도 그래. 아니 왜 그 새끼만 특별대우야? 집 잘 살아서? 감독님이랑 친해서?”
“야구 잘해서?”
“야!!!”
“아, 새끼. 진짜 성격 하고는. 최수원 야구 잘하는 건 팩트잖아.”
안병영이 악력볼을 침대 위로 내다 던졌다.
“그래, 최수원 야구 존나 잘하지. 그렇게 타격 훈련만 졸라 했는데 오늘 공 봤냐? 하, 그러니까 그 새끼한테는 야구가 아주 장난이지.”
“아니, 뭐 꼭 장난 같지는 않던데. 네 지랄 버텨가면서 야구 하는 거 보면.”
“내 지랄? 야, 솔직히 내가 하는 게 지랄이냐? 정훈이형이 나한테 했던 건 생각도 안나냐?”
“생각나지. 근데 죽빵 처맞고 송곳니 나간 사람한테 ‘어이쿠,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 죽빵 맞고 어금니가 나갔거든요.’ 같은 소리 해봐야 그게 뭐 위안이 되겠냐? 어쨌거나 처맞은 건 똑같은 건데.”
“야 이진우!! 넌 시발 뭐 최수원 그 새끼 편이냐? 존나 편드네.”
이진우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병신이, 나이 처먹고 내 편 네 편 따지기는. 그리고 솔직히 굳이 편을 따지자면 동기 사랑은 나라 사랑이라서 너 새끼 편이지.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너 추하게 푸념이나 하는 거 들어주는 거지.”
“좀 추했냐?”
“어, 좀 많이. 인마 내가 그래서 작작 하라고 그랬잖아. 새끼가 애가 반항 없이 받아 준다고 아주 지랄을 지랄을······. 어휴.”
“존나 불공평하잖아. 누군 좆빠지게 하는데 이 모양인데, 누군 가서 방망이질만 했는데 공이 더 좋아지고. 어?”
안병영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진우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미친놈이 아주 지랄을 하네. 야, 재능 어쩌고 이야기가 지금 내 앞에서 할 소리냐? 지도 1학년 때는 재능충 소리 존나 들어 놓고서. 야, 이제 슬슬 짜증 나니까 내 방에서 꺼져.”
“우리 방 애들은 나 있으면 불편해한다고!!”
“아, 우리 방 애들도 너 있으면 불편하다고!! 지금 애들 다 나간 거 안보이냐?”
***
하반기 리그가 시작할 때까지 남은 기간은 이제 열흘.
황금사자기 전반기 왕중왕전도 슬슬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야, 백하민 완전 미쳤네.”
“폼이 더 올라온 것 같은데?”
본래 역사대로라면 천남고는 지구 2위로 전반기 왕중왕전에 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하반기 왕중왕전에서는 2라운드에 우승 후보 경하고등학교를 만나서 박빙의 승부를 한 탓에 백하민이 105구를 다 소모했다. 결국 경하와의 사투에 모든 힘을 쏟아낸 천남은 이어지는 3라운드에서 거짓말처럼 콜드게임 참패를 당하는 슬램덩크 엔딩을 맞이한다.
하지만 본래 나가지 못했을 전반기 왕중왕전에 지구 1위로 출전한 천남은 조금 달랐다. 특히 에이스인 백하민의 폼이 완전히 미쳤다. 1차전부터 3차전까지 내리 콜드게임. 그리고 4차전까지 4:1로 승리하며 지금까지 19이닝 1실점이라는 미친 성적을 기록 중이었다.
그리고 결승전.
올해 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히는 경하고의 좌완 조규찬과 천남의 백하민의 맞대결이라는 고교야구 사상 최고의 빅매치가 펼쳐지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우리 중앙고의 운동장에는 여전히 열 명이 넘는 스카우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따악!!
최근에 힘이 더 붙어서 그런가? 타이밍이 미묘하게 어긋났는데도 공이 제법 멀리 나간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상당히 부족하다.
사실 요즘 나는 회귀 직전의 타격폼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 중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192cm에 120kg을 오가는 괴물일 때 사용하던 폼이다. 그리고 그 몸은 굳이 배트에 힘을 모조리 싣지 않더라도 담장을 넘길 수 있는 몸이었다.
물론 고교야구 레벨에서는 사실 별로 할 필요 없는 고민이기는 했다. 타고난 포텐셜이 있으니 금방 성장이야 하겠다만 당장 지금 고교 최대어라는 경하고의 조규찬과 천남고의 백하민도 현재 실력만으로 보면 프로 1군 추격조 수준도 되지 못했으니까.
이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현재 고교야구와 나의 수준 차이는 리틀야구와 고교야구의 차이만큼 심대하다. 그런 상황에서는 폼이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를 따진다면 글쎄다······.
사실 내가 KBO를 갈지 MLB로 직행을 할지 그것도 아니면 NPB를 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물론 세 번째는 확률이 아주 희박하다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은 열어둬야 하는 거니까.
아무튼 프로에 가게 되면 고려해야 할 것이 매우 많다. 일단 나는 투타겸업을 할 생각이다. 그것만으로도 내 몸이 이전과 같으면 안 되는 것은 명확하다. 사람의 몸이라는 건 운동하고 먹는다고 무한히 성장하는 게 아니다. 게임 캐릭터도 만랩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다. 한계점이라는 게 존재한다.
마운드에 진우 선배가 와인드업 했다.
딱 좋았다.
한 달 전에 있었던 풍천고와의 경기.
확 빠지는 공을 담장 너머로 날렸던 그 타격폼으로 그 공을 두들겼다.
-딱!!!!
말 그대로 공을 쪼개는 것 같은 시원한 타구음과 함께 야구공이 운동장에 높게 세워진 안전망을 뚫을 것처럼 두들겼다.
이거 역시 아무래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할 것 같다.
한 차례 타격 연습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데 규혁 선배가 나에게 다가왔다.
“수원아. 나 뭐 좀 물어봐도 되냐?”
“네? 뭔데요?”
“아니, 별 건 아니고. 넌 보면 타격 연습 할 때 밀어치기 연습을 도통 안 하잖아.”
“뭐, 그렇죠?”
우리 중앙고의 코치 가운데 사실상 수석의 역할을 하는 것은 타격 코치인 서민우 코치님이다. 뭐, 커리어만 따지자면 사실 프로에도 잠깐 몸을 담은 적이 있는 투수 코치 양세준 코치님이 더 좋긴 하다만 아무래도 서민우 코치님은 대학에서 교직 이수까지 끝내고 심지어 임용까지 통과한 엘리트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 국공립고교에서는 아무리 야구부라고 해도 감독을 하려면 임용을 통과해야하는 법이니까.
아무튼간 서민우 코치님의 지론은 그렇다.
플라이볼 혁명이니 뭐니 하면서 죄다 퍼올려서 잡아 당기는 스윙만 하는 건 한국 실정에는 맞지 않다. 더군다나 고교야구는 더더욱 그렇다. 결국 점수를 짜내는 건 안타고, 밀어칠 때는 밀어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실전에서는 힘든 거 안다. 그러니까 훈련이라도 최대한 밀어치려고 노력해봐라.
“우리 코치님이 밀어치기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뭐, 어떻게 생각하면 맞는 이야기다.
물론 최근에 빅리그에서 유행하는 것은 통칭 플라이볼 혁명이라고 하는 어퍼스윙으로 강하게 당겨치는 타격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빠르고 강한 타구를 띄우는 것이 확률적으로 안타 혹은 홈런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고, 그런 공을 만들기 쉬운 타격이 어퍼스윙으로 당겨치는 타격이기 때문이다. 빠르고 강한 타구를 만들 수 있다면 뭐 레벨스윙이건 다운스윙이건 당쳐기기건 밀어치기건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빅리그에서 대부분의 배럴 타구가 당겨치기인 것은 최근 빅리그는 밀어쳐서 배럴타구를 만들만한 환경이 아닌 점이 가장 컸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빅리그의 평균 구속은 140초반이었다. 지금 KBO랑 비교해서 별반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내가 메이저에 진출했던 2034년을 기준으로 메이저의 평균 구속은 152km/h. 당시에도 KBO에서 평속 152를 찍는 투수는 세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다.
결국 빅리그에서 퍼올려서 잡아 당기는 스윙이 대세가 된 것은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타구를 만들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에 더 가깝다. 그러니까 서민우 코치님 말씀처럼 KBO. 아니, 한국고교야구 수준이라면 확실히 다운스윙에 밀어치기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밀어치기가 나쁘지 않다는 이 모든 이야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붙는다.
‘그래서 밀어치기를 의도하면 밀어치기가 제대로 되는 거야?’라는 부분이다.
가끔 야구를 제대로 모르는 인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구속은 재능이지만 제구는 노력이다.’
순 개소리다.
아니, 공을 빨리 던지는 건 재능이고 정확하게 던지는 건 노력이라고? 그러면 영점 못 잡는 강속구 투수들은 죄다 노력을 안 한다는 이야기인가?
그리고 이 밀어치기에 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물론 일정 수준까지는 노력으로 된다. 하지만 그 이상의 부분에서는 결국 이것도 재능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래서 말인데 결국 밀어치기를 하려면 손목 근력을 늘려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관련된 운동들을 좀 찾아봤는데 말이야.”
“선배. 잠깐만요.”
“응?”
코치가 시키는 대로 밀어치기를 잘 하기 위해서 손목 근력 강화 루틴을 짜왔다는 규혁 선배를 바라보며 내가 고개를 저었다.
“전 안되는 건 안 하려고요.”
“하지만······.”
“제가 어디서 읽은 내용인데, 160 던지는 투수는 그냥 160을 던지면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괜히 어설프게 변화구 던지면 두들겨 맞는다고요. 물론 160도 던지고 변화구도 잘 던지면 당연히 더 좋겠죠. 하지만 연습해도 안 되는 거 끝까지 붙잡고 있어 봐야 160짜리 공이 아까운 거잖아요. 차라리 160짜리 공 더 열심히 갈고 닦으면 선발은 못 해도 최고의 마무리는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아니잖아.”
“선배, 고등학교 3학년 정도면 해볼 만큼 해본 거죠. 이제 당장 하반기 리그랑 하반기 왕중왕전 끝나면 드래프트인데요. 이제는 단점을 포기하고 장점을 살려야죠. 선배가 그 좋아하는 아놀드 슈워제너거? 그 사람도 가슴이 장점이고 하체가 약점이라 장점을 부각해서 세계 최고가 됐다면서요.”
선택과 집중.
솔직히 말해서 지금부터 그걸 한다고 해서 선배의 실력이 확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본래의 역사처럼 지방 대학에 체육 관련 학과를 가서 졸업하고 대형 피트니스 센터 사장이······.
아 잠깐만······.
이 선배는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게 더 좋은 인생일 것 같은데?
“그래!! 네 말이 맞아. 고맙다 수원아!!”
하반기 리그 시작까지 닷새.
왕중왕전 시작까지 두 달.
2025 드래프트 시작까지 두 달 하고 보름.
규혁 선배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방망이를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