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291)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291화(291/404)
291화. 아이콘(4)
경기가 끝나고 스마트폰을 펼쳤다.
항상 그렇듯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보려던 그가 잠시 멈칫했다. 반쯤 쓴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대신 써넣은 것은 최수원.
가장 먼저 8경기 연속 안타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오늘 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 그리고 4타수 1안타.
8경기 28타석 26타수 13안타. 홈런 다섯 개. 0.500/0.536/1.192.
터무니없는 성적이었다.
물론 시즌은 이제 고작 열흘 남짓이 지났을 뿐이고 이런 짧은 기간으로 한정해보면 5할을 치는 타자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었다. 실제로 알렉산더 맥도웰 본인도 작년 가장 좋았던 시기를 2주 정도로 잘라보면 그런 기간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 이 미친 성적이 열흘 남짓으로 끝났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래, 물론 5할의 타율이 유지될 리는 없다. 투수들은 더 까다로운 승부를 할 테고 비싼 돈을 받는 빅리그의 분석팀들은 최수원을 원자단위로 낱낱이 분해할 것이다.
‘젠장······.’
알렉산더 맥도웰이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짜증이 치밀어서였다. 물론 그 짜증의 원인은 최수원이 그만큼 대단한 활약을 보인다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 짜증의 원인은 다름 아닌 알렉산더 맥도웰.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지금 그는 최수원의 활약을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라이벌이 무사히 리그에 안착한 것을 기뻐하지 못하다니. 그 얼마나 비겁한가. 게다가 경기를 끝내고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을 먼저 검색해보다니. 그 역시 참으로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참으로 특이한 사고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사고방식이야말로 알렉산더 맥도웰이라는 남자가 특별한 이유이기도 했다.
뉴욕 양키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2차전.
바로 어제 등판을 했던 수원에게는 휴식일이 주어졌다. 오늘 경기에 출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양키 스타디움을 찾은 많은 이들이 최수원의 0번 저지를 구매했다. 심지어 양키스 측도 그것을 알았는지 경기장 내 가게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99번과 함께 0번 저지를 배치해놨다.
그리고 같은 날 불과 11km 남짓 떨어진 시티 필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뉴욕 메츠의 2차전.
알렉산더 맥도웰이야 작년부터 꾸준하게 최수원을 자신의 라이벌이라 떠들고 있었지만, 사실 작년 맥도웰이 크게 활약할 때부터 미국 언론에서 밀어주던 관계는 그쪽이 아니었다.
브라이스 하퍼.
그리고 알렉산더 맥도웰.
두 사람에게는 정말 많은 공통점들이 존재했다.
유소년 때부터 알아주던 유망주였다는 점. 고등학교를 건너뛰고 전문대를 졸업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드래프트에 나왔다는 점 등등.
은퇴를 앞둔 천재와 데뷔 직후의 천재.
이처럼 언론에서 띄워주기 좋은 소재가 또 있을까? 심지어 두 사람이 소속된 뉴욕 메츠와 필라델피아 필리스 양 팀 모두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소속이다.
오늘 역시도 그러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 두 사람에게 쏠렸다. 실제로 이번 시즌 하퍼는 정말 자신의 커리어 네 번째 MVP를 따내겠다는 기세로 달렸다. 물론 알렉산더 맥도웰 역시 마찬가지다. 벌써 10경기 만에 홈런을 네 개나 쳐냈다. 이는 신인왕을 받았던 작년보다도 한층 더 빠른 페이스였다.
“하퍼 씨. 여기요 여기!!”
“알렉스. 대체 뭔데? 그냥 전화로 이야기하라니까.”
오늘 경기에서 맞상대하기로 되어 있는 두 선수가 이렇게 경기 직전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그림 자체가 보통이라면 힘든 그림이었다.
“어제 안타 못 친 것 때문에 그래?”
“아뇨, 그게 아니라······.”
한참 어린 동생을 바라보는 눈과 자신을 위협하는 경쟁자를 바라보는 눈. 알렉산더 맥도웰을 바라보는 브라이스 하퍼의 눈빛은 조금 복잡했다.
“하퍼 씨는 트라웃 선수보다 성적이 안 나올 때 기분이 어땠어요?”
“최수원이 날아다니는 것 때문에 그러는 거구나.”
“······. 네.”
“에휴, 이봐. 알렉스. 미리 말해주지만 지금 네 질문 굉장히 무례한 질문이었어.”
“아!! 죄송해요.”
알렉산더 맥도웰이 허겁지겁 사과를 했다. 평생 운동만 했고, 심지어 고등학교까지 제대로 다니지 않았던 녀석이다. 그래도 1학년 정도는 다녔던 브라이스 하퍼 자신과도 또 다르다. 그가 기꺼이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뭐, 마이크는 정말 대단한 선수지. 초반에는 정말 힘들었어. 알다시피 난 야구계의 르브론 제임스라느니. ‘선택받은 자’라느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데뷔를 했었으니까. 근데 진짜 죽어라 열심히 하는데도 차이는 점점 벌어지지. 그렇다고 딱히 내가 못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러면 지금은 이제 괜찮으신건가요?”
“그럴 리가 있겠냐? 초반에는 정말 힘들었고. 지금은 뒤질 만큼 힘들지. 젠장. 마이크가 2030년까지 장기계약이니까 앞으로 2년은 더 뛴다는 거잖아. 심지어 그 이후로 은퇴할지 좀 더 뛸지 알 수 없는 일이고. 대체 내가 얼마나 더 잘해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아무튼 라이벌한테 뒤지는 건 정말 힘든 일이야. 그게 언론에서 만든 라이벌이건. 내가 진짜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녀석이건 간에 말이지. 앞서 나가는 시즌이 생기면 언제 따라잡힐지 모른다는 초조함이 닥쳐올 거고. 뒤지는 시즌에는 따라잡고 싶어서 안달이 날 거야.”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열심히 야구 해야지. 치고 달리고 받고. 별 수 있겠어? 그냥 속으로 ‘쟤도 나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의식하고 있을 거야. 어차피 똑같아. 누가 더 오래 참느냐 승부다,’ 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
알렉산더 맥도웰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뭔가 대단한 답변을 원했지만 돌아온 건 그냥 참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다.
브라이스 하퍼가 쓰게 웃었다.
“알렉스. 남들은 이미 다 그렇게 야구 해왔어. 너나 내가 그런 감정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뿐이야. 그러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충고는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거. 첫해에 신인왕을 타고 2년 차. 3년 차를 뛸 때 언론부터 해서 여기저기서 나를 거품이라고 비웃었어. 마이크 트라웃이 역대급 성적을 내던 그때였지. 4년 차에 MVP를 따내니까 잠잠해졌던 그 말들이 5년 차, 6년 차를 지나면서는 그때는 플루크였을 뿐이라고 바뀌더라. 내가 그걸 닥치게 하는 데 또 7년이 걸렸어. 그렇다고 그 모든 말들이 다 사라진 것도 아니야. 심지어 MVP를 세 개나 따낸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마이크랑 비교하잖아. 마이크에 비하면 이게 부족하네, 저게 부족하네 하면서 말이야.”
“기분 정말 별로겠어요.”
“글쎄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마이크 트라웃과 동시대를 뛴 선수들 가운데 마이크 트라웃과 비교될 수 있는 선수는 오직 나뿐이었다는 점이야. 그리고 또 그 비교대상은 여전히 그를 따라잡는 걸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지.”
“아······.”
“자, 상담은 여기서 끝!! 젠장. 알렉스. 그리고 이런 건 시즌. 아니 최소한 시리즈라도 다 끝나고 어? 따로 만나서 하는 거야. 손에 30년짜리 위스키 한 병 정도는 챙겨 들고. 알겠어?”
브라이스 하퍼가 알렉산더 맥도웰의 머리를 한껏 헝클어트렸다.
지금 그가 맥도웰에게 건넨 이야기들은 어쩌면 2012년의 브라이스 하퍼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뉴욕 메츠의 시리즈 2차전.
-딱!!!
‘어?’
-따아악!!!
‘음······.’
-따아아아아악!!!
‘F!@#$!#’
알렉산더 맥도웰이 5타수 4안타 3홈런.
커리어 최초 3홈런 경기를 기록했다.
[알렉산더 맥도웰 시즌 5, 6, 7호포!! 멀티 홈런!!] [커리어 여덟 번째 멀티 홈런을 기록한 알렉산더 맥도웰!! 역대 가장 빠른 페이스!!] [알렉산더 맥도웰 리그 홈런 선두 탈환!!] [양 팀 합쳐서 홈런만 무려 여덟 개!! 뉴욕 메츠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미친 타격전!!] [뉴욕 양키스!! 시리즈 2차전 9:7 신승!!] [도밍고 로드리게스 3.1이닝 5실점 강판!! 타일러 비트는 시즌 첫 멀티 홈런 기록!!] [브라이스 하퍼 시즌 3호 홈런포!!]***
“······. 그래. 수고했어. 오늘 힘들었을 텐데 얼른 쉬고. 이만 끊는다.”
“아니!! 조금만 더 들어봐. 그러니까 내가 어? 딱 하고 방망이를 쥐었는데······.”
“나 전화 약속 있어. 진짜 끊는다.”
화면 너머의 알렉산더 맥도웰이 상기된 얼굴로 뭐라뭐라 더 떠들었지만 무시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녀석. 내가 어제 6이닝 무실점 했을 때는 축하한다고 메시지 하나 보내는 걸로 끝이더니 오늘 지가 3홈런 친 건 전화해서 아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그나저나 이제 시리즈 11경기째인데 벌써 7홈런이라······.
8경기만에 홈런 5개에 5할을 치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진짜 미친 페이스다. 나야 시즌 초반에 애들이 좀 방심했을 때 몰아친 게 있다지만, 알렉스는 그것도 아니다. 심지어 작년에 신인왕을 타고 올해 정말 철저하게 분석이 된 상태임을 감안하면 소포모어만 아니어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건 작년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낼 기세다.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봤다.
회귀해서 이미 4년 차.
그리고 그 이전으로도 넘어가도 아득히 먼 과거였다. 알렉산더 맥도웰이 언제 MVP를 땄고 언제 포텐셜을 제대로 터트렸는지 일일이 기억이 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본래 이 시점에 나는 MLB가 아니라 KBO에서 뛰고 있었다.
“얘 진짜 나한테 자극받아서 성적이 쭉쭉 올라가는 건가?”
나비효과.
그래, 뭐 그럴 수 있다.
이미 KBO에서도 2군이나 전전하다 막창 구워야 할 조유진이 마린스의 주전 포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프로는 밟아보지도 못했을 안병영은 2군에서 1승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엘리츠, 마린스, 피닉스가 나란히 리그 1, 2, 3위를 하는 시점에서 이제는 세상 그 어떤 일도 나를 놀라게 할 수는 없다.
-우우웅
책상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크게 진동했다.
박은진이다.
최근에 은진이도 컴백 일정이 잡히면서 또 바빠지는 바람에 메시지로만 연락을 주고받았었던지라 매우 간만의 통화였다.
서로의 일상을 주고받고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에 박장대소했다.
처음 박은진을 만났을 때가 기억이 났다. 34살에서 하루아침에 17살이 됐던 나에게 박은진은 마치 조카와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난 형제가 없었지만, 팀 동료 가운데 일찍 결혼한 몇몇은 이미 십 대를 넘어 이십 대에 들어선 아이를 가진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햇수로 4년.
만으로도 3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34살의 최수원은 거기에 그대로 머물러있었고 17살의 나는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갔다.
그래서 지금 나는 과연 34살의 최수원일까? 아니면 20살의 최수원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몇 년이나 이렇게 연락을 이어온 박은진이 이제는 더 이상 조카로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결혼을 할 것도 아니고 그냥 한 걸음 더 나가는 것뿐인데?
“은진아. 나 할 말이······.”
“어? 아!! 잠깐만!!! 수원아. 나 동생이 불러서. 잠깐만.”
@#%^#$^&!@!@#$!
스마트폰 너머로 다른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던 박은진이 다시 스마트폰 앞으로 돌아왔다.
“아니, 내가 전에 한 번 말했잖아. 우리 멤버 새로 충원하기로 했다고.”
“들었던 기억난다. 우리보다 두 살 어리다고 그랬나?”
“응, 이번에 고3 올라가는 데 원래 연기 준비하던 애라서 되게 예쁘거든. 근데 얘가 네 팬이라고 그래서. 잠깐 인사하고 싶다는데 괜찮지?”
“굳이?”
“아이, 까칠하게 굴지 말고. 잠깐 인사만 하는 건데 뭐.”
스마트폰의 펼쳐진 화면 너머로 상당히 예쁜 얼굴이 불쑥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강세정입니다!!”
“미친?”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이혼한 전처가 썸녀의 옆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