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06)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06화(306/404)
306화. 저길 봐라(15)
“여어, 아버지들. 왔어?”
후덕한 인상의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그 인사에 도밍고가 난처한 얼굴로 나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미리 말했잖아. 조금 짓궂다고.”
페드로 마르티네즈.
메이저리그 역사에 가장 위대했던 투수 중 하나다. 물론 내 기준에서 오늘 만남이 첫 만남은 아니다. 회귀하기 전에도 두세 번 정도 방송에서 함께 한 적이 있었으니까.
“페드로. 첫 만남부터 너무 짓궂은 거 아닙니까?”
“하하, 미안, 미안. 오늘 경기를 봤더니 피가 좀 끓어올라서. 아, 힛 포 더 사이클. 축하해. 아주 멋지던데? 마지막에는 좀 일부러 천천히 달렸던 거지?”
“약간은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솔직히 네 발이면 충분히 3루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거든.”
하지만 이렇게 마운드 위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게 그라운드의 제대로 된 마운드가 아닌 동네 피칭랩의 작은 간이 마운드라고 해도 말이다.
“오늘 보자고 했던 건 별 건 아니고. 그냥 관심이 좀 생겨서. 아, 혹시 내 말이 너무 빠르면 이야기해 줘. 인터뷰하는 거 보니까 영어 잘 하는 것 같긴 한데. 나도 영어에 상당히 자신 있었는데 막 건너와서는 알아듣기 힘들더라고. 근데 좀 웃기긴 하네. 스페인어 쓰는 사람이랑 한국어 쓰는 사람이 미국에서 만나 영어로 대화한다니 말이야.”
“원하시면 한국어로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어려우면 제가 스페인어로 말해도 되고요.”
“응? 뭐야? 스페인어도 할 줄 알아?”
“그럭저럭 이요. 일상적인 대화 정도는 가능합니다. 야구에 관련된 대화는 조금 전문적인 것도 가능하고요.”
“와우······. 이거 미국 생활 10년 차에 영어로는 말싸움도 제대로 못 하는 어디 사는 누군가는 좀 보고 배워야겠는데?”
페드로의 은근한 놀림에 도밍고가 발끈했다.
“저 이제 잘 하거든요!!”
“그래, 그래. 우리 도밍고. 이제 아주 잘 하지. 아무튼, 그러면 이제 스페인어로 이야기할게. 아무래도 내가 지금 갑자기 한국어를 익히기는 좀 어려우니까. 내가 아는 한국어라고는 ‘오이케인’이라는 단어뿐이거든. 한국에서 내 별명이 에일리언이라니. 처음에는 내 얼굴 보고 놀리는 말인 줄 알고 발끈할 뻔했다니까?”
조금 정신없는 대화가 제법 길게 이어졌다.
“그런데 어쩌다가 투타겸업을 결심한 거야?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아, 물론 난이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렇잖아. 워낙에 타격이 압도적인데 굳이 피칭까지 할 이유가 없으니까.”
“아, 고등학교까지 투수였어요. 근데 타격을 버리기 아깝더라고요. 빅리그에서는 마침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압도적인 투타겸업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래서 그러면 나도 둘 다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한 거죠.”
“환상적이네. 그러니까 그냥 투수가 될 뻔했는데 오타니가 투타 겸업하는 걸 보고 타격도 같이해야지 했더니 이런 미친 타자가 탄생한 거라는 거잖아?”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아니었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근데 왜 내 눈에는 타격은 엄청 오래 공들여 완성한 타자 같고, 피칭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애송이 같은 느낌일까?”
유쾌하고 농담하기 좋아하는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던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인상이 순간 너무나도 날카로워 베일 것 같은 느낌으로 돌변했다. 어쩌면 저 모습이 현역 시절 마운드에 섰던 진짜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모습이 아닐까?
“고등학생까지는 어지간한 투수라면 누구나 투타 겸업이거든요. 게다가 전 프로에서도 계속 투타 겸업이었으니까 딱히 시간적인 차이는 없죠. 굳이 차이가 있다면 타격은 몸에 맞는 폼을 좀 일찍 찾아서 빠르게 쌓아 올린 거고. 피칭은 그게 늦었다는 정도? 그래도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애송이라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제 커브 그래도 제법 쓸만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잠깐 날카로웠던 그가 다시 푸근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아, 그건 내가 사과하지. 과장이 조금 심했어. 워낙에 타격이 훌륭해서 그거에 비하면 피칭은 어설프다. 뭐 그런 거였거든. 냉정하게 평가해서 지난 메츠 경기에서 던진 커브는 그 수준은 살짝 벗어났지. 회전축에 변화를 줘서 횡무브먼트를 주는 것 같던데. 그 정도면 커브 완성자까지는 아니어도 커브 숙련자 정도 칭호는 줄 만하지.”
“알아보셨네요?”
“당연하지. 내가 워낙에 이것저것 잘 던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커브가 좀 묻힌 감이 없잖아 있지만 내가 현역으로 뛰던 당시에 나랑 비슷한 수준까지 커브를 던지는 녀석들은 있었어도 나보다 더 잘 던진다고 말할 수 있는 녀석은 없었어.”
한바탕 라떼로 시작하는 자기 자랑이 시작되려는 찰나.
도밍고가 페드로의 말을 끊었다.
“어휴, 그런 말은 남들이 해줘야지. 본인 입으로 하면 멋이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리고 수원이 내일도 경기 뛰어야 하니까 적당히 본론만 하고 보내 주시죠. 수원이 커브에 뭔가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서요.”
“아, 맞다. 그랬었지.”
“제 커브요?”
“그래, 이전까지는 뭐 딱히 해줄 말이 없었는데. 지난 메츠 전에 던지는 걸 보니까 약간만 도움을 주면 전체적으로 상당히 괜찮아지겠다 싶더라고.”
어쩌면 역사상 가장 강력했을지도 모르는 투수가 자청해서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겠다는데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솔직히 돈을 내고 받으라면 정말 1회에 수천만 원을 내고라도 받겠다는 사람이 널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군요. 근데 저 커브 말고 딴 거는 안됩니까?”
“딴 거?”
“네, 개인적으로 체인지업을 좀 추가하고 싶은데. 이게 좀 어려워서요.”
근데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아무리 이런 공 저런 공 전부 다 잘 던진다고 해도. 그래, 정말 본인 말처럼 당대에 그가 가장 커브를 잘 던졌던 투수 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솔직히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만나서 단 한 가지 구종을 전수받을 수 있다면 그 누구라도 백이면 백 서클체인지업을 고르지 않을까?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커브가 당대 최고 수준의 공이었다면 그의 서클체인지업은 그야말로 올타임넘버원 그 자체다.
나의 이야기에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웃었다.
“하하하하하.”
그래서 나도 따라 웃었다.
“하하하하하.”
부드러운 분위기.
그가 매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커브 레슨 시작하시죠.”
“!?”
이번에는 그가 좀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유는 안 물어보는 거야?”
“그게 뭐 중요하겠습니까. 안되니까 안된다고 하셨겠죠. 아, 근데 설마 원포인트 레슨이라고 진짜 오늘만 딱 가르쳐주시고 다음부터는 얄짤 없다. 뭐 그런 건 아니죠?”
“어······. 그렇기는 한데······. 와, 너 진짜 뻔뻔하구나?”
“레전드 투수의 놀라운 경험과 기술이 사장되는 건 너무 아까운 일 아니겠습니까. 후배들에게 전수되고. 네? 또 제가 인터뷰 같은 거 딱 하면서. ‘갑자기 피칭이 좋아진 이유가 궁금합니다.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런 질문에 ‘그 모든 일의 시작은 페드로 마르티네즈와의 만남에서 시작됐습니다.’ 같은 답 해주면 좋은 일이잖아요.”
“아니, 그건 그런데······.”
마운드에서 몇 차례 커브 그립을 잡고 공을 던졌다.
사실 이 원포인트 레슨이라는 것이 받았다고 막 실력이 극적으로 상승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물론 프로와 아마추어라면 잘못된 습관이나 확실하게 고쳐야 할 부분들을 지적하고 이런 식으로 연습을 해라.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되긴 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프로라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완성된 선수라는 의미기도 하다. 잘못된 조각을 수정함으로써 전체적인 밸런스가 깨진다면 오히려 기량이 하락할 수도 있다.
“지난 메츠전에서 팔꿈치 각도를 조절하는 건 꽤 괜찮았는데. 사실 이게 통했던 건 네가 그걸 메츠전에서 처음 사용해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해. 물론 그걸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을 거야. 하지만 결국 폼이 미세하게 달라지면 누군가는 그걸 캐치하고, 그게 분석이 되고 공략의 단초가 되는 거거든. 게다가 장기적으로 보면 네 투구 밸런스에도 좋은 일은 아니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는 게 제일 좋지. 결국, 회전축이라는 건 팔꿈치, 손목, 그리고 그립으로 결정이 나는 거잖아. 뒤로 갈수록 눈에 덜 띄는 요소인 거고. 뭐, 그것보다 좋은 건 그립까지 완전히 같게 만들고 손가락에 미세한 힘 조절로 그걸 만드는 거라지만 커브 회전축에 그걸 써먹기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엄지와 검지의 위치로 회전축을 조절해봐. 이렇게.”
56세.
배 나오고 후덕한 아저씨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졌다. 가끔 인터넷에 보면 전설적인 투수가 50대가 넘어서 공을 던졌는데 클래스는 여전해서 90마일이 나왔다거나 뭐 그런 일화들이 떠돈다.
-뻐엉!!!
아쉽게도 그런 건 전혀 없었다. 56세 치고는 상당히 대단했지만 그래도 나이를 속일 수 없는 구위의 공들이 존을 통과했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제구력이었다.
횡 무브먼트가 강조된 커브.
종 무브먼트가 강조된 커브.
그리고 행잉에 가깝게 밋밋하게 들어오는 커브. 응?
“아, 이건 손에서 좀 빠졌다. 역시 오래간만에 던지니까 좀 힘드네.”
두툼한 몸으로 던지는 커브들은 각각 다른 궤적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피칭 폼만봤을 때 정말 완벽하게 동일했다.
“어때? 타석에서 봐도 팔꿈치나 그런 건 알아보기 힘들지?”
“네, 대단한데요?”
“몇 개 던져 봐봐. 내일도 경기가 있으니까 무리하지는 말고.”
“괜찮습니다. 조금은 무리해도. 어차피 내일 뭐 투수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지명타자인데요. 게다가 전력 투구도 아니고 가볍게 감각만 익히는 거잖아요.”
30개 가량 연속해서 커브를 던졌다.
몇 개는 정말 원했던 것처럼 들어갔고 몇 개는 형편없이 복판에 몰렸다. 또 몇 개는 어처구니 없을 만큼 빠졌고.
“30개 중에서 7개인가? 뭐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네. 확실히 감각이 있어. 연습 좀 하면 금방 괜찮아지겠는데?”
“그러면 다음번에는 체인지업을 가르쳐 주시는 걸로?”
“안 된다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번에 뵙죠.”
나의 칼 같은 답변에 그가 약간 섭섭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유는 정말 안 궁금한 거야?”
“다 생각하신 부분이 있으시겠죠. 설마 쪼잔하게 이건 비기라서 알려줄 수 없다. 이런 건 아니시잖아요.”
“그건 그런데······.”
“그러면 됐습니다. 어떻게 몇 개만 더 던져볼까요?”
“아니,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 시간도 늦었고. 저기 도밍고 녀석도 조금 봐줘야하니까.”
“도밍고는 서클 체인지업 알려 주시는 겁니까?”
“아니. 그냥 전체적인 피칭 밸런스를······. 와, 너 진짜 서클 체인지업에 진심이구나. 근데도 왜 안되는지 이유는 안 궁금하다고?”
“네.”
보스턴에서의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이튿날.
“어······.”
어제 너무 신나게 공을 던진 건가?
오른팔이 조금 뻐근했다. 아, 물론 부상을 당했다. 뭐 그런 느낌은 아니었고 원래 루틴 대로라면 10세트 해야 하는 운동을 컨디션 좋다고 13세트 정도 한 다음 날의 뻐근함 정도?
보스턴과의 2차전.
[아!!! 외야 뜬공 아웃!! 아깝습니다.] [자, 첫 번째 타석에서는 아쉬운 외야 뜬공 아웃으로 물러났던 최수원 선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래시라인이 0.541/0.595/1.378입니다.] [제가 오늘 출근하면서 누가 계산한 걸 봤는데 이 선수 이번 달 남은 경기에서 모두 삼진을 기록해도 OPS가 1.298이라고 하더군요.] [와, 진짜 현실감이 없는 숫자네요. 바깥쪽 살짝 빠지는 체인지업!! 잡아 당긴 타구!! 내야를 뚫지 못합니다.] [오늘 전체적으로 운이 좀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최소 두 번의 기회가 남았거든요. 그리고 타율이 5할이라는 말은 두 번이나 남았으면 한 번은 꼭 쳐내는 타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따아악!!!
***
“헤이, 제시. 좋은 아침.”
“좋은 아침요.”
“오늘 날 좀 더웠는데 여전히 자전거 타고 출근한 거야?”
“네, 아직은 그래도 자전거 타고 출근할만 하더라고요. 아 그보다 어제 경기 보셨어요?”
“당연히 봤지. 어제도 스완은 안타를 쳤고.”
“오늘도 치겠죠?”
“당연한 일 아니겠어?”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5월의 말.
최수원은 지금까지 그가 타석에 섰던 모든 경기에서처럼 여전히 안타를 기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