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11)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11화(311/404)
311화. 신기록 제조기(5)
6회 말.
경기가 매우 스무스하게 흘러갔다.
아, 물론 탬파베이 레이스 입장에서의 이야기다.
왜냐하면, 내가 삼진아웃을 당해버렸거든······.
특히 나를 상대로 던졌던 마지막 그 속구가 인상적이었다.
구속이 무려 95.9마일이 나왔다. 요즘 내가 계속 100마일짜리 속구를 뻥뻥 던지니까 이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사실 좌완 사이드암이 95.9마일이 나왔다는 건 우완 오버핸드나 스리쿼터가 100마일짜리 공 던지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대단한 일이다. 게다가 무슨 포심이 무브먼트가 어휴······.
심지어 저 녀석 작년에 최고 구속이 95.3마일인가 나왔고 올해도 아직 그 이상 나온 적이 없었으니 오늘 나에게 던진 그 공이 아마 녀석이 실전에서 던진 가장 빠른 공일 것이다.
-부우웅!!!
“스트라잌!! 아웃!!!!”
체인지업에 방망이가 헛돌아간 타일러 비트가 화난 표정으로 덕아웃에 돌아와 헬멧을 집어 던졌다. 덕분에 뒤에 있던 스키틀즈 통 하나가 뒤집어지면서 바닥에 우르르 쏟아졌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아주 난리가 날 만한 장면이었지만 다들 별다른 반응 없이 그냥 애가 화가 좀 많이 났구나 하고 덤덤하게 넘어갔다.
물론 미국이라고 아무나 이런 짓을 해도 덤덤하게 넘어가는 건 아니다. 야구는 본래 꼰꼰한 종목이고 그건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타일러 비트가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녀석이 그만한 실력과 입지를 갖췄기 때문이다.
-딱!!!!
이어지는 우타자인 애런 저지가 그래도 공을 두들겼다.
물론 딱 거기까지다.
숀 카펜터의 공에 힘이 더 붙었다.
오늘 그야말로 제대로 일을 한 번 치르겠다는 듯한 신들린 피칭이다. 전성기에 올라간 사이영 위너급 투수의 힘이었다.
오스틴 배틀의 방망이가 숀 카펜터의 네 번째 몸쪽 공을 두들겼다.
땅볼을 유도하는 투심이었다.
애런 저지가 최선을 다해서 달려봤지만 소용 없었다.
완더 프랑코가 유격수 가운데 하급의 수비를 보여준다지만 이 정도 수비에서 실수할만큼 엉망은 아니었다.
그렇게 이닝이 종료됐다.
***
[와, 숀 카펜터 선수. 오늘 정말 매섭습니다. 1회 초에 최수원 선수에게 홈런 한 방을 내준 걸 제외하면 뭐 흠 잡을 구석이 없는 거의 완벽한 피칭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에 맞서는 우리 최수원 선수 역시 오늘 만만치가 않습니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로 지금까지 가장 좋은 모습이거든요. 6이닝 동안 삼진 일곱 개에 무실점. 지금 7회에도 마운드에 다시 올라옵니다.] [네, 최수원 선수. 7회까지 마운드에 오르는 건 데뷔 이후 두 번째입니다. 지난번에는 아웃 카운트 하나 잡고 연속 안타를 허용하면서 마운드를 넘겼었거든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데뷔 이후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기대를 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가지 염려되는 부분은 역시 체력적인 부분이겠죠.] [네, 사실 체력적인 부분에서 투타 겸업이 좀 불리한 게 맞습니다. 오늘 최수원 선수만 봐도 4회까지 삼진을 여섯 개나 잡았는데 이후 5회와 6회를 통틀어서 고작 하나밖에 못 잡았거든요.] [그런데 조금 궁금한 것이 최수원 선수 한국에서는 그렇게 투타 겸업을 하면서도 경기당 평균 6이닝 이상을 꾸준하게 소화했거든요. 타자로 출장한 경기 숫자 역시 훨씬 많았고요.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투수 등판 바로 다음 날 정도만 휴식일을 갖고 거의 모든 경기에 다 타자로 출장을 했었단 말이죠.] [아,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지금은 등판 전날, 그리고 등판 이후에 휴식일을 부여받고 있는데 어째서 체력적으로 더 힘드냐. 뭐 그런 질문이시죠?] [네, 맞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역시 타자들의 수준 차이가 가장 크겠죠. 한국에서 뛸 때는 조금 쉬어가는 타석도 있었겠습니다만 빅리그에서는 그게 없으니까요. 아시다시피 한국에 오는 용병 타자들을 보면 망해도 리그 평균 이상의 타자들 아닙니까? 근데 이 친구들이 메이저에서는 26인 로스터에도 못 들어가는 선수들이란 말이죠. 과장 조금 보태면 지금 저 탬파베이의 1번부터 9번 타자까지 모두가 다 KBO를 기준으로는 정상급 타자라는 의미입니다.] [맞습니다. 거기다가 원정까지의 먼 거리. 그리고 휴식일은 오직 이동일뿐인 터프한 일정등을 생각해보면 체력적으로 더 지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 타석에 지금 완더 프랑코 선수가 올라오네요.] [대단한 선수죠. 우리 최수원 선수가 워낙에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주는 터라 좀 가린 감이 있지만 사실 지난 4월과 5월.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타격을 보여준 타자라고 볼 수 있어요. 최수원 선수. 조심해야 합니다.]완더 프랑코.
사실상 오늘 등판의 마지막 고비라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6회가 지나가면서 더 쌩쌩하게 공을 뿌리는 어느 괴물과 다르게 솔직히 나는 조금 지쳤다. KBO에서 뛰던 시절에야 7이닝을 밥 먹듯이 소화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완급조절을 해가면서 포심 위주의 피칭을 가져가서 가능했던 거다. 특히나 오늘의 경우 커브의 구사 비율이 거의 4할에 육박한다.
초구.
바깥쪽 낮은 코스.
-뻐엉!!!
의도했던 것보다 좀 많이 빠졌다.
오늘 심판이 존을 좀 후하게 주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바라는 건 무리다.
볼카운트 1-0.
두 번째.
바깥쪽 높은 코스.
뚝 떨어지는 커브.
-뻐엉!!!!!
아, 이건 솔직히 방망이가 나올 법도 했는데 완더 프랑코 저 녀석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렵다. 내 커브가 정확하게 보인다는 뜻이겠지. 나도 가끔 컨디션 좋은 날에는 정말 회전수까지 읽어낼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아니, 사실 그 느낌이라는 것이 종종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어쩌면 느낌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존을 벗어나는 커브에 쉽게 속지 않는다. 더 많이 회전하는 공은 더 많이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벌써 두 개의 공이 지나갔음에도 완더 프랑코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매우 강렬한 압박이었다.
나도 현역 시절 이름값 좀 높을 때 가끔 써먹던 방법이다.
뻔한 수작인 걸 머리로 알고 있는데도 마음이 좀 급해진다.
자자, 심호흡. 심호흡.
로진백을 몇 차례 두들기는 것으로 일단 타이밍을 좀 가져갔다.
그래, 애초에 타자가 아무리 압박을 해봤자 투수와 타자의 승부에서 시작을 정하는 건 투수다.
세 번째.
몸쪽 가슴 높이.
잡아주면 땡큐. 안 잡아줘도 어쩔 수 없는 코스로 힘껏 공을 뿌렸다.
-뻐어엉!!!
102.1마일.
살짝 높긴했지만 그래도 이거라면?
[아, 심판의 손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볼, 볼입니다. 노스트라이크 쓰리볼.] [아무래도 우투수가 우타자 몸쪽으로 깊숙하게 붙인 공이라서 히트맵 상으로는 살짝 걸친 느낌이 들더라도 존에서는 스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좀 높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래도 앞서 잡아줬던 공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데. 여러모로 아쉽네요.]3-0.
이렇게까지 되면 어쩔 수 없다.
어차피 1루부터 3루까지 광활하게 비어있다. 괜히 저렇게 컨디션 바짝 선 놈한테 좋은 공 줘서 좋을 거 없다.
바깥쪽으로 제법 크게 빠지는 공을 하나······.
-딱!!!
‘어라?’
녀석이 바깥으로 빠지는 공을 건드렸다.
1루 파울라인을 크게 벗어나는 타구.
볼카운트 3-1.
기시감이 강하게 든다.
엄청 익숙한 장면이다. 근데 그 장면에서 보통은 내가 여기 말고 저기 서 있었는데 여기에 서서 이런 장면을 보니까 뭐랄까?
‘좀······. 아니, 많이 빡치는데?’
와, 이런 게 역지사지인가?
내가 다른 투수들한테 종종 시전 하던 걸 시전 당하니까 기분이 상당히 별로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에게 도발당했던 다른 투수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마음속으로 전달했다. 얘들아 미안했다.
아무튼, 내가 제법 많이 시전 했던 걸 시전 당한 덕분일까?
공략법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래, 어디 자신 있으면 따라와 봐.
조금 전이랑 거의 동일한 코스.
조금 더 빠지면 빠졌지 절대 더 붙이지는 않을 그런 곳.
살짝 힘 빼고 던지는 97.4마일짜리 속구.
-딱!!!
역시나 녀석의 방망이가 따라 나왔다. 이번에는 제법 강하게 쳐서인지 타구가 내야 그물망을 넘어 3루 관중석 상단까지 날아갔다.
볼카운트 3-2.
그래, 풀카운트다.
내가 녀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래, 남자 대 남자로 정정당당하게.’
나의 의지를 읽은 것일까?
녀석이 묵직하게 자세를 바로잡는다.
그 이글거리는 눈동자에서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간다.
여섯 번째.
한복판.
높은 코스.
-부우웅!!!
뚝 떨어지는 원 바운드 커브볼에 녀석의 방망이가 크게 헛돌았다.
“스트라잌!! 아웃!!!”
[헛스윙 삼진!!! 최수원!! 볼카운트 0-3에서 끝끝내 완더 프랑코 선수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냅니다!!]방망이를 헛돌린 녀석이 화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한차례 노려보고는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쾅!!!!
아무래도 헬멧이라도 집어 던진 듯 싶다.
그런데 이제 와 화를 내서 뭐 어쩌겠나. 이것도 다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앞으로 열심히 해야지. 내가 야비하다고? 아니, 그럴 리가. 애초에 내가 뭐 자기 동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디 일본의 열혈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저렇게 치겠다고 광고를 하는데 무력시위 좀 했다고 존에 공을 집어넣을 멍청이가 대체 어딨을까?
마음이 편해진 덕분일까?
안타.
그리고 또 안타.
원아웃 주자 1, 3루에서 감독의 마운드 방문.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깔끔한 병살.
일곱 번째 이닝이 무실점으로 끝났다.
[훌륭합니다!! 최수원!! 아주 훌륭합니다!! 삼진 하나 포함 깔끔하게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 짓습니다. 지금까지 7이닝 무실점!!] [오늘 피칭 정말 훌륭합니다. 이거 어쩌면 8회에도 볼 수 있겠는데요?] [글쎄요. 양키스에서 최수원 선수의 이닝 관리를 워낙에 철저하게 해놔서. 일단 좀 지켜봐야 알 것 같습니다.]0:1.
우리가 1점을 앞서는 상황.
선발로 나와서 7이닝 무실점에 솔로 홈런포로 점수까지 냈으면 난 진짜 오늘 할 일을 다했다. 솔직히 오늘만 WAR이 1 올라가도 이상할 게 없는 활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체 왜 나는 또 여기에 다시 서 있는 걸까?
[아, 역시!! 8회 초!! 마운드에 최수원 선수가 다시 올라옵니다!! 빅리그 데뷔 이후 첫 8회 등판입니다. 이거 어쩌면 오늘 경기 조심스럽게 완봉승을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요?] [글쎄요. 이번 이닝에는 6번 타자부터 시작되는 하위 타순이라서 그냥 또 올라오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워낙에 점수가 빡빡한지라 여차하면 교체 될 것 같군요. 그리고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9회에는 마무리를 올리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만······. 아무튼 그래도 8이닝 무실점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해주고 싶습니다.]탬파베이의 6번 타자부터 시작되는 8회 초.
진짜 몸에 남아 있는 마지막 힘을 다해 공을 뿌렸다.
커브?
아니 손가락이 후들거리는데 그런 거 던지다가는 실투나 나오지.
쿨하게 속구로 간다. 나머지는 빠따를 제대로 못 휘두른 야수 놈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딱!!!
어?
-따악!!!
어라?
-부우웅!!!
“스트라잌!! 아웃!!!”
[최수원 삼자범퇴!!! 우리 최수원 선수가 고작 공 여덟 개로 8회 탬파베이 레이스의 타선을 틀어 막았습니다!!!] [와, 이거 뭐죠? 오늘 양키스 내야진. 수비가 거의 신이 들렸는데요?]그러니까 8이닝 무실점.
그리고 8회 말.
연장이 없다는 전제하에 나의 마지막 타격 찬스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