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12)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12화(312/404)
312화. 신기록 제조기(6)
8회 말.
점수는 여전히 0:1.
앤서니 볼피가 대기 타석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오늘 경기 3타수 1안타. 물론 그 안타가 행운 가득한 텍사스 안타이긴 했지만 아무튼 1안타다. 게다가 수비에서 보여준 모습을 고려한다면 오늘 그는 충분히 1인분을 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족했다.
‘데릭 지터’의 후계자.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다.
지난 2014년에 은퇴했던 데릭 지터는 대단한 선수였다. 하지만 데릭 지터라는 이름을 가린 채 그 숫자만으로 평가한다면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이름을 남겼던 기라성같은 선수들에게 한 수 뒤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데릭 지터라는 이름은 특별했다.
종종 사람들은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물론 세이버메트릭스라는 개념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된 지금에 와서는 그저 비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데릭 지터에게는 분명 그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우라 같이 철 지난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이버매트릭스란 결국 야구를 보는 ‘다른’ 시선이다. 이것은 일종의 방법론이며 그 범주는 실로 다양하다. 2028년 현재, 구단의 전문가들이 볼 때 세간에 공개된 스탯이란 지극히 기초적인 자료들만을 바탕으로 가공된 원시적인 수준의 숫자들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오히려 데릭 지터의 특별함을 인정했다.
No.2 데릭 지터.
현시대 야구계에는 오타니 쇼헤이라는 슈퍼스타가 존재했다. 그는 매우 높은 확률로 ‘최초의 5인’에 근접하는 혹은 그에 필적하는 선수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전국구 슈퍼스타’라는 단어만 놓고 본다면 그는 여전히 데릭 지터에 미치지 못했다.
‘데릭 지터’라는 이름은 그런 이름이었다.
9번 타자 호세 트레비뇨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걸로 그의 슬래시 라인은 0.203/0.247/0.283 아무리 그의 수비가 좋다고 해도 슬슬 그를 대체할 인원을 알아봐야 할만한 슬래시 라인이었다.
타석에 앤서니 볼피가 올라갔다.
벌써 8회다. 그리고 지금까지 투구 수는 총 98개. 하지만 오늘 탬파베이의 마운드를 지키는 숀 카펜터는 조금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초구.
반쯤 끌려나간 방망이를 멈춰 세웠다.
“스트라잌!!!”
앤서니 볼피가 자신의 방망이가 돌아가지 않았음을 어필했지만, 당연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젠장.’
데릭 지터의 후계자로써 슬슬 뭔가 보여줘야 한다.
그의 시선에 대기 타석에 선 최수원이 보였다.
좋은 녀석이었다. 훌륭한 투수이자 대단한 타자였으며 팀의 캐미스트리에도 굉장히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순수하고 완전하게 녀석을 좋아할 수 없는 것은 앤서니 볼피 자신의 옹졸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녀석보다 더 돋보이고 싶다.
양키스의 새로운 전성기를 끌어나갈 데릭 지터의 후계자는 바로 나 앤서니 볼피여야만 한다.
두 번째.
체인지업.
-부우웅!!!
“스트라잌!!!!!”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볼카운트 0-2.
세 번째.
끈질긴 마음으로 공을 물고 늘어졌다.
그리하여 두 개의 파울.
그리고 하나의 볼.
-쿵쿵쿵
가슴이 쉴새 없이 두방망이질친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쉴 새 없이 ‘앤서니 힛!!’ ‘앤서니 힛!!’하는 챈트를 소리쳤다.
그리고 또 하나.
포수 뒤편 내야 관중석으로 파울볼이 날아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거대한 파도타기가 시작됐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닌 양키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4만 6천여 관중의 집단의식이 만들어내는 그 거대한 응원이 앤서니 볼피를 독려했다.
타자에게는 압도적인 고양감을.
그리고 그라운드에 서있는 탬파베이 레이스의 선수들에게는 강력한 압박감을.
숀 카펜터가 투수판에 발을 디뎠다.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챈트와 파도타기는 여전했다. 하지만 일순간 앤서니 볼피는 마치 일체의 소음도 허락되지 않은 완벽한 무음실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주변의 환경에 조금의 영향조차 받지 않는 듯한 에이스가 일곱 번째. 그러니까 이번 경기 105개째의 공을 뿌렸다.
투심?
포심?
날아오는 공을 향해서 앤서니 볼피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스트라잌!! 아웃!!!”
환상적인 체인지업.
데릭 지터의 후계자가 그렇게 타석에서 물러났다.
***
투아웃에 주자 없는 상황.
투구수가 110개를 향해가는데 쌩쌩한 25살의 에이스.
이건 그렇게까지 생소한 상황은 아니었다.
사이 영급 에이스라고하면 대단한 투수인 건 맞지만 어쨌거나 1년에 양대 리그에 두 명. 뭐 강력한 경쟁자까지 따지면 너댓 명은 되는 수준이다. 내가 빅리그에서만 9년을 뛰었으니 그렇게 본 투수의 숫자들만 해도 제법 된다. 그중 누군가한테는 영혼까지 발렸고 또 누군가는 영혼까지 털어줬다.
조금 생소한 것은 8회 말이라고 해서 물 먹은 것처럼 축축 늘어지는 이 몸뚱이였다. 아,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시즌 막판쯤 되면. 특히 더블 헤더라도 뛰고 나면 몸이 좀 힘들긴 했다. 하지만 이제 고작 5월 말이다. 스무 살이라 몸이 아직 덜 완성된 걸 고려해도 확실히 투타 겸업은 체력적으로 더 힘들다.
하지만 힘들건 뭐건 몸에 인이 박일 정도로 새겨넣은 자세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타석에 들어와서 왼손으로 헬멧을 고쳐 쓰고 그대로 머리를 탁탁 두 번 두들겼다. 그리고 오른 손에 쥔 배트를 두 번 짧게 흔들고 그대로 홈플레이트를 한번 톡 두들긴 뒤 자세를 바로 잡았다.
거대한 응원이 경기장을 메웠다.
KBO에서와 같은 큼지막한 우퍼는 없었지만 4만6천 명이 내뿜어내는 에너지에는 그와는 조금 다른 결의 강렬함이 존재했다.
마운드의 투수가 침착하려 애썼다.
마치 그런 외부의 응원 따위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처럼 덤덤한 척 투수판을 밟았다.
당연히 진짜로 덤덤해서 저런 게 아니다.
장담할 수 있다.
8회 말.
점수는 여전히 0:1.
그래, 이런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덤덤할 수 있는 투수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투수 와인드업!!]일반적으로 좌완 사이드암은 우타자에게 약하다. 선천적 오른손잡이가 인구의 9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선발로 살아남기 참 힘든 조건이다. 덕분에 보통은 불펜, 공이 아무리 좋아도 마무리 정도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좌완 사이드암인 숀 카펜터가 사이 영급의 선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포심과 투심의 절묘한 조화 덕분이다. 중간 지점까지 완전히 같아 보이는 두 가지 속구는 진짜 홈플레이트 직전에서야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걸 대체 어떻게 공략하냐고?
못한다.
애초에 사람이 가능한 게 있고 불가능한 게 있다.
왜, 그렉 매덕스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공의 움직임을 가지고 노는 건 알아차릴 수 있어도 공의 속도를 가지고 노는 건 알아차릴 수 없다. 오직 토니 그윈을 제외한다면.’
참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말이다.
보통은 체인지업의 강력함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오늘은 이걸 살짝 바꿔서 해석해보자. 그러니까 대충 이런 식으로?
‘토니 그윈은 공의 속도를 가지고 노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대단한 타자였지만 기껏해야 MVP 3위 한 번 받아본 게 전부일 뿐. 단 한 번도 2위 이상에 올라본 적이 없는 타자다. 그러니까 그딴 거 못 알아차렸던 수많은 타자들이 당대에 훨씬 더 대단한 타자였다.’
그러니까 굳이 안되는 걸 끝까지 하려고 할 필요 없다.
원래 야구라는 건. 아니,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좀 못 하는 게 있어도 적당히 뭉개고 넘어갈 수도 있는 거니까. 야구에 괜히 스트라이크와 아웃 카운트가 3개나 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어라? 체인지업?’
본능적 깨달음.
이거 투심도 포심도 아닌 체인지업이다.
그래, 바로 이거다. 난 저 녀석의 투심과 포심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알아서 체인지업을 던져준다.
살짝 움직였던 배트를 다시 뒤로 잡아 당겼다.
배리 본즈가 보여줬던 시간 차 타격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살짝 한 번 움찔했던 정도? 호흡이 살짝 흐트러졌지만 괜찮았다.
물이 흐르듯이.
나의 방망이가 바깥으로 도망가려는 녀석의 체인지업을 완벽하게 잡아당겼다.
-따아악!!!
폭발하듯 솟구치는 타구.
각도가 살짝 높았다.
날아가는 공의 궤적을 따라서 무려 4만 6천 명의 시선이 움직였다.
하지만 공을 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건 무조건 넘어간다.
아, 근데 잠깐만.
손맛은 좋긴 했는데. 지금 내가 좀 힘이 빠진 상태인 것도 감안을 하긴 해야할 것 같은데?
[쳤습니다!! 최수원!! 좌측 방면!! 높게 떠오르는 타구!! 좌익수 조쉬 월콕스가 좌측 담장으로 빠르게 이동합니다!!]일단 최선을 다해서 달렸다.
1루 지나서 2루를 향해.
그리고 2루 베이스를 밟기 전 3루의 주루 코치를 힐끔 살폈다.
‘아······. 넘어갔구나.’
[넘어갔습니다!! 담장을 살짝 넘기는 솔로 홈런포!! 최수원!! 시즌 열일곱 번째 홈런입니다!!] [8회 말!! 1점을 더 달아나는 최수원의 솔로 홈런포!! 이제 이걸로 점수는 0:2. 양키스가 2점을 앞서 나갑니다.]8회 말.
추가점을 내줬음에도 불구하고 탬파베이 레이스의 덕아웃은 투수 교체 없이 숀 카펜터에게 마운드를 그대로 맡겼다. 그리고 숀 카펜터는 볼넷 하나를 내주기는 했지만 아무튼 무사히 추가실점 없이 8회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9회.
[이거 아무래도 양 팀 모두 이후에 있을 오늘 두 번째 경기를 의식한 것 같죠? 9회 초. 최수원 선수가 또 다시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네, 이렇게 되면 잠시 후에 있을 2차전에 최수원 선수의 선발 출장은 없다고 봐야겠네요.] [타석에 선두 타자는 오늘 경기 3타수 1안타를 기록한 완더 프랑코. 완더 프랑코 선수입니다.] [최수원 선수 같은 경우 이제 1이닝만 무사히 막아내면 데뷔 이후 첫 완봉승을 달성하겠군요.]8회 내가 홈런을 치고 돌아왔을 때 제프 클라크 감독이 직접 물었다.
“본래 우리가 세운 방침은 투구수 85개였지만 오늘 같은 날까지 그걸 지키는 건 좀 가혹하지. 커리어 첫 완봉기회다. 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건 네가 직접 만든 2점보다 더 적은 기회 뿐이다. 물론 이 기회를 잡는 것도, 잡지 않는 것도 네 선택이야.”
솔직히 좀 피곤하긴 했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해서 완봉의 기회를 아예 도전조차 해보지 않고 버리는 건 말이 안 된다.
9회 초.
완더 프랑코와의 벌써 네 번째 만남이었다.
‘어라?’
그런데 조금 달랐다.
지난 세 번째 타석까지 어떻게든 팀을 승리로 이끌어보겠다고 이글이글 타오르던 눈이 시커멓게 죽어있다.
내가 홈런을 한 방 더 쳐서 그런가? 그래도 2점 차이면 아직 완전히 포기하기에는 이른 점수인데. 아무래도 이 녀석 의지력이 조금 약한 것 같다.
만화나 영화 같은 거 보면 ‘마음이 이미 꺾인 녀석이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 같은 멋들어진 대사가 많이 나온다.
그래, 나도 그랬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딱!!!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벌써 네 번째 타석이다.
투수와 타자는 많이 만날수록 타자에게 유리하다. 게다가 최대한 까다롭게 공을 던진다고 던졌는데 좀 힘이 빠져서 그런가? 많이 몰려버렸다.
완더 프랑코가 쳐낸 타구가 내야를 넘어 외야 깊숙한 곳으로 날아갔다.
다행이라면 중견수인 제이크 도밍고가 매우 깔끔하게 타구를 처리했다는 점이었다. 2루까지는 나가지 못한 단타.
이대로 교체인가?
아니, 다행스럽게도 아직이었다.
보통 이렇게 홈런 한 방치면 해피엔딩으로 깔끔한 KKK 삼자범퇴 같은 게 나올 법도 한데. 게다가 남들은 더럽게 힘들면 러너스 하이로 마지막 젖먹던 힘이 나온다던데. 난 어째 그것도 안 나온다.
하지만 괜찮았다.
러너스 하이는 없었지만, 선발 투수가 2홈런으로 2득점 낸 게 경기의 유일한 득점이라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염치 있는 야수 놈들이 내 뒤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으니까.
내야 뜬공 아웃.
그리고 병살타.
피곤하다는 감상밖에 남지 않은 나의 메이저 커리어 첫 번째 완봉승이었다.
***
[최수원 홈런 치고, 삼진 잡고. 완벽 그 자체!! 4타수 2안타 2홈런. 그리고 9이닝 무실점 완봉승!!] [끝나지 않는 연속 안타 기록. 과연 그는 87년 묵은 전설을 넘어설 수 있을까?] [5월이 끝난 시점에서 타율 0.420!! 그에게는 테드 윌리엄스의 ‘마지막’을 가져올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