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29)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29화(329/404)
329화. 올스타 브레이크(2)
내가 홈런 더비에 불참을 선언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다름아닌 타격폼이었다.
-딱!!!
“굿!! 이제 좀 괜찮아졌네.”
“그래? 벌써? 그러면 이거 홈런 더비 참가할 걸 그랬나?”
“아니, 그건 아니지.”
크리스티안 산체스라고 최근에 고용한 나의 타격 인스트럭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어마무시하게 대단한 건 잘 알겠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요 몇 주 경험해봤잖아. 한 번 틀어지면 개고생하는 거.”
개인적으로 난 타격만큼은 정말로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너무 당연히 가져야 하는 자신감이었다. 앞서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난 시간을 거슬러 오기 전 이미 역사에 기록될만한 명예의 전당 첫 턴 직행급 홈런 타자였다. 회귀 이전을 기준으로 했을 때 타격 이론 등에 관해 나는 전 세계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는 꼽힐만한 전문가였다고 자부한다.
심지어 현시점을 기준으로 봤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은 미래의 정보들로 리그의 유행을 두 바퀴는 돌린 정보들이다. 아마도 지금 시점에서 나는 타격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의 전문가가 아닐까?
게다가 회귀 직전 2년 정도는 시즌 중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오프 시즌에만 어느 정도 조율을 하는 식으로 타격을 조정했었다. 그래서 타격에 관해서는 굳이 공들여 전문가를 찾거나 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냥 잭 워싱턴에게 피지컬 조정을 받고 타격폼에 관해서는 스스로 오류를 수정해가며 몸을 조율했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이 현재 주류 이론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그걸 굳이 설명해가면서 훈련을 받는 게 좀 귀찮을 것 같다는 마음도 있었다.
멍청한 생각이었다.
세계 최고의 성악가도 매달 한두 번은 레슨을 받는다. 당연한 일이다. 외부인의 시선은 언제나 당사자보다 훨씬 객관적이니까. 지난 보스턴 전 이후부터 해서 타구가 좀 묘하게 뜨지 않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다.
쿠어스 필드에서의 9홈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게 나에게 영향을 끼쳤다. 물론 나는 그걸 의식하고 있었고 이후로도 보스턴에서 홈런을 두 개나 더 추가를 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게 오히려 더 문제였다. 0에서 –1이 된 걸 다시 0으로 맞추려고 했는데 그게 미세하게 어긋나면서 +0.2 정도가 돼버린 것이다.
매일매일 시즌 경기를 치르면서 그걸 조정하는 건 제법 하드한 스케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투수 등판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만약 투수 등판이 끼어있었더라면 연속 안타 기록이 중단됐을지도 모르겠다.
“올스타전 잘 치르고. 앞으로도 타격폼 점검은 못 해도 보름에 한 번씩은 꼭 받고. 스완 넌 아직 성장기라는 거 잊지 말라고.”
“오케이.”
193.2cm.
이 숫자는 단순히 키가 자랐다는 의미만이 아니었다.
그래, 회귀 전보다 ‘더’ 자랐다.
회귀하기 전 나의 키는 193.1cm.
물론 0.1cm 정도는 오차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 내 나이가 고작 20살. 아직 적어도 3, 4년은 더 키가 자랄 여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무튼간 내 키가 회귀 전보다 훨씬 커질 거라는 건 기정 사실이다.
남은 건 이제 잘 먹고 체중을 불리는 일뿐.
아, 그리고 요즘 내 타격.
그러니까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
1.462
1.200
1.534
내 월간 OPS 기록이다.
마지막 6월 같은 경우 리그 역사를 통틀어 나보다 높은 기록은 오직 베이브 루스뿐이고 4월 달의 기록도 로저스 혼스비, 루 게릭, 베이브 루스, 배리 본즈밖에 없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난 명예의 전당에 첫 턴에 들어갈 만한 홈런 타자였다. 겸손을 빼고 말해보면 순수하게 타격 능력만 따졌을 때 열 손가락은 힘들어도 발가락까지 동원하면 그 안에 내 이름이 들어갈 수준 정도는 됐다. 하지만 비교 대상이 무려 루스, 로저스 혼스비, 루 게릭, 배리 본즈면 이건 높아도 너무 높다.
그래서 난 이게 살짝 플루크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타격 스킬이야 회귀 이전과 동일하다고 해도 몸의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육체적인 완성도는 물론 34세 시절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 반사신경이나 동체시력등의 뇌기능이 그걸 커버할 만큼 빠릿했다. 덕분에 피지컬적인 측면만 봤을 때 나는 전성기와 조금 형태가 다를뿐. 총량적인 면에서 성능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회귀 이전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타격 성적은 그것만으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결국, 육체의 성능이 비슷하다면 성적 역시 비슷하게 나오는 게 정상이니까.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현시점에서의 내 타격 기술이 회귀 전 34세 시절보다 더 정교하기 때문이다.
34세 당시 나는 내가 기술적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그 몸에는 그게 한계치였던 거다.
아, 물론 이 모든 생각 역시 나 혼자만의 ‘추측’이다. 어디 가서 내가 사실 시간을 거슬러왔는데요. 같은 말로 상담을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쩌면 사실은 정말로 플루크라서 당장 다음 달부터 성적이 떨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성적이 플루크라서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보다 이런 개똥 같은 이론이라도 펼치는 게 나의 정신 건강에 더 유리할 거다.
올스타전까지 이틀.
나의 몸과 마음에 한차례 정비가 끝났다.
***
“그러면 좀 부탁할게.”
“부탁은 무슨. 이게 에이전시가 원래 하는 일이지.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해도 괜찮겠어? 같이 도착한다고 해도 따로 데려올 수도 있는데.”
“아냐, 어차피 마주칠 수밖에 없는데 뭐. 마침 같이 도착한다니까 미리미리 얼굴 보고 좋지.”
이번 올스타전 관람을 위해서 한국에서 건너오는 지인은 총 셋.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인 대박 갈비의 강두 삼촌. 그리고 은진이였다.
처음에는 은진이한테도 비행기 표를 줄까?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뭔가 아직 우리 사이가 정확하게 정립이 된 것도 아닌데 비행기 티켓을 내가 선물하는 건 또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이던 찰나에 이미 본인이 예약을 했다고 하길래 그래, 잘됐다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설마 티켓 예약을 하는데 이름을 잘못 써서 다음 비행기를 타는 불상사가 벌어질 줄이야. 아버지랑 강두 삼촌을 일부러 은진이 다음 비행기 티켓으로 예매해준 보람이 없어져 버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테드한테 아버지만 픽업을 부탁할까? 아니면 아버지랑만 시간을 보내고 은진이는 그냥 경기만 보라고 하고 돌려 보낼까? 심각하게 고민을 좀 해봤는데 어느 순간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흐름에 맡기자.
그래, 물론 조금 어색하긴 할거다.
회귀 전에 아버지는 내가 장가를 간다고 했을 때 극구 반대를 했었고, 은진이 역시 아무리 나에게 마음이 있다고 해도 가부장적인 우리 아버지랑 대화가 통할 리는 만무했으니까.
그래, 분명 그래야 했다.
“어머, 아버님. 정말요? 수원이가 어릴 때 그랬다고요?”
“그럼. 아주 얼굴이랑 눈가가 벌게져서는. 오늘 홈런 세 방이나 맞았다고.”
“뭔가 수원이는 그런 일이 있어도 시크할 것 같은데. 어릴 때는 또 달랐네요?”
“아냐, 지금도 분해하는 건 속으로는 똑같아. 그냥 표정 관리 하는 법만 좀 배운 거지.”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들어오는 박은진과 아버지의 대화에 이상할 정도로 온기가 넘쳤다. 게다가 아버지 얼굴은 또 왜 저리 다정하지? 우리 아버지가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분이었나?
“어이고, 우리 최 선수. 내가 최 선수 덕분에 아주 말년에 크게 호강을 하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그것도 아주 젤로 좋은 자리라면서?”
“아닙니다. 저야말로 삼촌한테 신세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어서 기쁜걸요.”
“스읍!! 신세라니!! 이 삼.촌.은 그런 말 들으면 아주 섭섭해. 아, 맞다. 그리고 이거. 갈비찜이야. 미국에는 훨씬 좋은거 많다고 내가 그렇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안사람이 우리 최 선수 보러 간다니까 바득바득 이걸 꼭 먹여야 한다고 해서 좀 싸왔어.”
“아닙니다. 안 그래도 등판할 때 갈비찜 생각 많이 났는데 감사해요.”
아버지와 함께 온 강두 삼촌이 약간 호들갑을 떠는 동안에도 은진이랑 아버지는 둘이서 상당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 드셔야죠? 안 그래도 제가 레스토랑 예약을······.”
“아니야. 아니야. 나랑 네 아빠는 LA에 좋아하는 식당이 따로 있어서 거기서 먹기로 오는 길에 이야기를 끝냈어요.”
“아, 그러면 거기로 같이 가시죠.”
“스읍!! 공인이 어딜!! 내일 모레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 그런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막 다니고 그러면 보는 눈이 좋지가 않아요. 그냥 여기서 룸서비스. 룸서비스 시켜 먹어. 듣자하니 여기 은진이도 아이돌이라면서. 어디 돌아다니기 힘든 건 마찬가지일테니까 둘이 같이 여기서 먹으면 되겠네.”
“네? 아니, 굳이 그러실 필요가······.”
“아니다. 나도 오래간만에 업무 아닌 일로 친구랑 외국에 나왔는데 둘이 시간을 좀 보내고 싶구나. 저녁은 강두 이 녀석이랑 나가서 먹고 올 테니까. 여기 친구랑 둘이 밥 먹도록 해라.”
대체 이 상황은 뭐지?
***
“경식이 너 아주 좋겠다?”
“뭐가?”
“아니, 그렇잖아. 아들은 미국에서 저렇게 잘 나가지. 며느리 될 아이는 또 요즘 보기 힘들 만큼 싹싹하지.”
“며느리는 무슨. 저 나이 때 연애하고 헤어지고 다 그러는 거지.”
“어이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지를 말어. 게다가 수원이가 어? 굳이 이렇게 만남을 주선한 걸 보면 모르겠어?”
박강두는 자신의 오랜 친구를 잘 알고 있었다.
무뚝뚝하게 보이지만 기분이 좋을 때면 콧구멍이 미세하게 커지고 괜히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툭툭 내뱉는다.
그래, 딱 지금처럼.
“그래도 뭐, 성격은 좋아 보여서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들더구만.”
“어디 성격뿐이야? 생긴 것도 아주 시원시원하니 미인이라 수원이랑 딱 어울리더만.”
“뭐, 그것도 그렇지. 근데 직업이 좀······.”
“왜? 아이돌이 뭐 어때서.”
“아니, 그거 어렵게 한 건데 그거 그만두고 수원이랑 결혼해서 미국 오려고 하겠어?”
“그거야 쟤들이 어련히 알아서 다 생각해놓았으려고. 그리고 요즘은 그런 스타들 어? 막 활동할 때만 한국에 잠깐 있고. 그리고 또 육아 예능이다 뭐다로 오히려 더 방송에 나갈 수도 있고. 그리고 그 인터넷방송 같은 게 워낙 잘돼 있어서 우리 때랑은 또 달라요.”
어릴 적에 이혼을 하여 어미의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서 독립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남들과 달리 반쪽짜리 사랑이니 최대한 오래, 그리고 많이 주고 싶었다. 그렇게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그야말로 품 안의 자식이었다.
그러던 아들이 이미 자신이 평생동안 이룬것보다 더 대단한 것을 이뤄냈다. 대체 어느새 저만큼이나 자란 것일까. 이제 고작 스물한 살. 아니, 요즘 식으로 하자면 고작 스무 살에 불과하거늘.
비행기로만 무려 12시간이 넘게 걸리는 미국 땅.
이런 곳까지 찾아오는 여자라면. 그리고 이런 곳까지 불러내서 아비에게 소개를 해주는 여자라면 그 서로의 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리라.
“그런가? 뭐. 그래도 확실히 애가 미인은 미인이라 나중에 손주 녀석도 예쁘긴 하겠네.”
“뭐야? 별생각 없는 척 굴더니만 벌써 손주까지 보고 온 거야?”
“크흠······. 아, 쉰 소리 그만하고 얼른 식당이나 안내해봐.”
“식당? 무슨 식당?”
“아니, 뭐 거 잘 아는 식당이 있다며.”
“내가 그런 게 어딨어. 내가 미국 와본 게 벌써 10년도 전에 하와이 와본 게 전부인데. 당연히 자리 비켜준다고 한 소리지. 얼른 스마트폰이나 펴 봐.”
***
올스타전.
마운드 위에 미스터 베이스 볼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