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30)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30화(330/404)
330화. 올스타 브레이크(3)
21세기.
야구는 참으로 빠르게 변화했다. 그래, 무려 170년짜리 케케묵은 스포츠가 빠르게 변화했다. 통상적으로 전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변화에 완강하게 저항하는지를 고려해보면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에는 바로 이 남자, 롭 맨프레드가 있었다.
이 뉴욕 출신의 법조인은 2010년대 이후 메이저리그에 정말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다. WBC등으로 대표되는 야구의 세계화와 피치클락과 수비 시프트 제한으로 대표되는 시간 단축이나 견제구 제한 같은 것들은 정말 많은 논란을 불러왔지만 그런 것들이 분명 야구의 ‘현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특히 스타 마케팅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런 그에게 이번 올스타전은 너무나도 완벽한 경기였다.
알렉산더 맥도웰과 최수원으로 대표되는 슈퍼 루키들.
하나는 지난 2022년 애런 저지의 기록을 위협하는 홈런왕이었고 하나는 조 디마지오의 87년짜리 기록을 깨트린 타격왕. 심지어 타율에서는 조 디마지오의 라이벌이라고 볼 수 있는 타격의 신 테드 윌리엄스의 마지막 4할을 깨트릴 기세다.
아, 물론 엄밀히 말해서 맥도웰은 작년에 신인왕을 이미 받았고 최수원은 KBO에서 1년을 뛰고 온 중고였지만 아무튼 이 정도는 루키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저 둘이 같은 팀이었다면 더 보기 좋았을 텐데 말이야. 안 그런가?”
“네, 아무래도 그랬겠죠.”
절대적인 강팀이 보고 싶으냐고?
그래, 물론 흥행을 위해서는 그것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 롭 만프레드가 하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어떤 스토리에 가장 환호하는가.
새로운 시대를 지배할 아이콘이 탄생하는 스토리? 그래 물론 그런 스토리는 언제나 좋다. 혹은 시대를 지배했던 아이콘이 아름답게 은퇴하는 스토리? 지난 2014년 데릭 지터의 마지막을 생각해본다면 그것 역시 참으로 훌륭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환호하는 순간은 그런 순간이 아니다.
시대의 지배자가 강력한 도전자를 맞닥뜨릴 때. 그리고 그 도전자가 구 시대의 지배자를 쓰러트리며 자신이 새로운 시대의 지배자가 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할 때.
새로운 시대의 지배자는 구시대의 모든 인기를 그대로 계승하여 더욱 크게 발전해 나간다. 스포츠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이란 바로 그런 순간이다.
마운드 위에 야구 그 자체.
21세기 야구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미스터 베이스볼이 올라왔다.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의 공격으로 시작되는 이번 올스타전!! 지금 내셔널리그 올스타팀 마운드에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올라오고 있습니다.]오타니 쇼헤이.
설명이 필요 없는 이 시대 최고의 야구 선수.
한참 인지도가 필요하던 당시에야 ‘투타 겸업’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하여 베이브 루스를 끌어다 썼지만, 이제는 오타니 쇼헤이가 보여줬던 그 터무니 없던 행위들이 루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많은 사람이 투타겸업은 하위리그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메이저리그에서는 곧 투수나 타자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야구를 잘 모르는 대중뿐 아니라 리그의 수많은 전문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오타니 쇼헤이는 그런 그들의 생각을 박살 냈다.
그가 MVP시즌을 보내고 FA를 맞이했을 때 사람들은 또 생각했다.
‘저런 터프한 일정을 유지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아마 길어야 3년? 어쩌면 4년. 바짝 투타 겸업을 뛰고 투수나 타자 중 하나에 전념을 해야 할 거야.’
그리고 지금.
오타니 쇼헤이는 NL 올스타팀에 선발 투수 겸 지명 타자로 이름을 올렸다.
얼마 전 생일이 지나 이제 34세.
시즌 나이로 따지자면 33세 시즌.
절정기는 지나갔으나 여전히 전성기의 한복판.
지금까지 리그를 지배했던 야구 그 자체가 아메리칸리그 올스타들을 상대로 크게 와인드업했다.
***
-뻐어엉!!!
97.1마일의 속구가 존을 꿰뚫었다.
“스트으라잌!!!”
제법 위력적인 속구였지만 이게 영 공략이 불가능한 공인가 생각해보면 또 그건 아니다. 차라리 우리 팀의 도밍고나 보스턴의 후안 몬테로. 혹은 탬파베이의 숀 카펜터가 던지는 속구 쪽이 더 위력적이다.
“지금 공부하는 거야?”
“네. 공을 좀 봐두고 싶어서요.”
“좋지. 비디오로 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더 좋거든. 아직까지 오타니랑 경기를 뛴 적은 없는거지?”
“네, 하반기에 홈에서 경기가 있긴 한데 아직은요.”
나에게 말을 건 그가 자신의 짧은 턱수염을 몇 차례 긁적였다.
“그래, 재밌을 거야. 저 녀석이랑 경기하는 거.”
“재밌으셨나봐요?”
“나? 나야 재밌었지. 아쉬웠던 점은 우리가 너무 운이 없었다는 점 정도뿐이야.”
오타니 쇼헤이가 이 시대에 야구라는 종목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나에게 동네 형처럼 말을 건네는 이 남자는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MLB를 대표했던 남자다.
마이크 트라웃.
전성기 시절 공, 수, 주. 어느 것 하나 빠질 것이 없었던 완벽한 5툴 플레이어.
그의 대단함은 지금까지 커리어 누적 WAR이 무려 110.3으로 역대 21위라는 것으로 쉽게 설명이 가능했다. WAR(Wins Above Replacement). 그러니까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라는 것이 결국 가장 직관적으로 포지션이 다른 선수들을 줄 세울 수 있는 스탯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마이크 트라웃이라는 남자는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야구 선수 가운데 21번째로 좋은 커리어를 가진 남자라는 뜻이 된다.
심지어 이것은 아직 진행형으로 37세의 꺾인 나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트라웃이 건강하게 시즌을 보낼 경우 연평균 2에서 3정도의 WAR을 여전히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최종성적은 높은 확률로 테드 윌리엄스와 루 게릭 사이의 어디쯤이 될 것이다.
뭐, 실제로도 내가 돌아왔던 그 미래의 마이크 트라웃은 테드 윌리엄스의 바로 아래에 자기 이름을 새겨넣었었다.
“그래, 우리는 운이 너무 없었지······.”
이전 시대의 아이콘과 현 시대의 지배자.
그 두 선수가 전성기를 함께 하며 같은 팀에서 나란히 뛰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아무튼 이미 잘 알고는 있겠지만 속구는 저 녀석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그나마 가지고 있는 ‘약점’에 더 가깝지.”
“네, 알고 있습니다. 스위퍼랑 싱커. 체인지업. 그리고······.”
“스플리터.”
-부우웅!!
“스트라잌!! 아웃!!!”
[5구째!! 절묘하게 방망이를 끌어내는 스위퍼!!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의 1번 타자 라파엘 데버스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납니다!!]슬라이더의 변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스위퍼.
현재 오타니 쇼헤이를 대표하는 구종이었다. 쉽게 말해서 횡무브먼트를 극대화한 슬라이더라고 볼 수 있었는데 심한 경우에는 몸쪽으로 들어올 것처럼 날아오던 공이 어느새 존 밖으로 빠지기도 할 정도다.
[자, 타석에 2번 타자 애런 저지!! 애런 저지 선수가 올라옵니다.]“저는 그러면 이만.”
“그래, 루키. 쉽진 않겠지만 어디 한번 잘 지켜보고 일 한번 내보라고. 이왕이면 나까지 차례가 좀 돌아오게 말이야.”
“네.”
대기 타석에 서서 오타니 쇼헤이를 바라봤다.
확실히 크고 길다.
오타니 쇼헤이 이후로도 정말 많은 투타겸업들이 있었다.
실제로 로스터의 여유라는 측면에서 투타겸업은 마치 슈퍼유틸리티처럼 팀에 꼭 필요한 자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가운데는 단기적인 임팩트로 봤을 때 거의 오타니 쇼헤이에 필적하는 녀석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남자만큼 오래 그것을 유지하지 못했다.
-딱!!!!
[애런 저지!! 쳤습니다!! 그대로 잡아당긴 타구!! 하지만 내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3루수 제레미아 와일드 가볍게 공을 낚아채며 내야 뜬공 아웃.] [순식간에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아내는 오타니 쇼헤이. 이제 타석에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의 3번 타자. 최수원. 최수원 선수가 올라옵니다.] [이번 시즌 정말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슈퍼 루키 최수원 선수. 과연 오늘 오타니 쇼헤이 선수를 상대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사실 이 장면 메이저리그의 정말 많은 팬들이 기대하던 장면 아닐까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 올스타전 멤버가 확정되기 전부터 가장 보고 싶던 장면을 세 가지 정도 있었는데요. 지금 이게 그 중 첫 번째 장면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나머지 두 가지 장면은 뭔가요?] [아쉽게도 그 두 가지는 이번 올스타전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투수로 뛰는 최수원 선수가 필요한 장면이라서요.] [투수 최수원과 타자 오타니 쇼헤이의 맞대결. 그리고 최수원과 알렉산더 맥도웰의 맞대결이 보고 싶으신 거였군요.] [네, 그렇습니다. 사실 아직 투수로써 최수원 선수의 기량은 그들에게 미치지 못합니다만 묘하게 기대가 되는 부분이라서요.]거대한 몸.
사실 두께 역시 길이와 마찬가지로 유전자를 타고 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둘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노력이 필요한지를 묻는다면 그건 역시 두께 쪽이다. 오타니의 저 길쭉한 몸은 부모님의 공로가 99%겠지만 저 두꺼운 몸은 본인의 노력이 적어도 7할은 된다.
그리고 저 두꺼운 몸이야 말로 오타니 쇼헤이가 다른 이들과 달리 이 오랜 시간 동안 투타겸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아, 물론 단순히 피지컬을 관리했다는 뜻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를 꿈꿨던 야구 소년은 나이를 먹어서도 그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꿈이란 가까워지면 목표가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오타니 쇼헤이는 어느새 목표로 바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성공한 이후에도 성공하기 전과 똑같은 삶을 유지했다. 그야말로 스토익하다는 표현이 딱 알맞다.
바로 저런 터무니 없는 수준의 자기 관리가 데뷔 이후 무려 16년째 투타겸업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마운드의 오타니 쇼헤이가 공을 움켜쥐었다.
나이보다는 확실히 어려 보이는 얼굴. 이제 슬슬 수염을 기를 나이도 된 것 같은데 정말 보송보송할 정도로 깔끔한 면도를 고집하는 것을 보면 LA 다저스가 아니라 양키스에서 뛰는 게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은 얼굴이다.
초구.
기습적인 빠른 공.
-뻐어엉!!
하지만 바깥쪽으로 조금 낮았다.
96.9마일.
156km/h. 빠른 편이기는 한데 우완을 기준으로 100마일을 던지는 선수가 넘쳐나는 지금 시점에서 강속구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공. 심지어 밋밋하기까지 했다. 이거 존으로 들어오면 무조건 두들길 수 있다.
두 번째.
같은 코스. 같은 공.
그리고 공을 판단할 수 있는 0.2초의 짧은 시간을 스쳐 0.22초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깨달았다.
-뻐어엉!!!
“스트으라잌!!!”
같은 코스였지만 같은 공이 아니다.
싱커였다.
잠시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바라봤다.
97.3마일.
그러니까 포심보다 빠른 싱커.
마운드의 오타니 쇼헤이가 나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보통이라면 ‘쪼개?’라는 혼잣말이 나올만한 시점.
하지만 상대가 상대라서일까?
“어디 한번 놀아보자는 거네.”
크게 불쾌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물론 크게 불쾌하않다는 말이 유쾌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마운드의 오타니가 세 번째 공을 던졌다.
-따악!!!
폴대를 살짝 스쳐 지나가는 파울 홈런.
나도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마운드의 오타니를 향해 상큼하게 웃어줬다.
볼카운트 1-2.
승부가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