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32)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32화(332/404)
332화. 올스타 브레이크(5)
“수원. 같은 거로 한 잔 줄까?”
“아, 제가 아직 미국 법으로는 술을 못 마셔서.”
“알아, 이거 술 아니고 탄산수야.”
오타니 쇼헤이가 스토익한 사람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뭐 술자리에는 절대 참가하지 않는다거나 나가더라도 거의 술을 마시지 않고 대화 주제도 운동에 집중된다는 등의 이야기는 무슨 미담처럼 알려져 있다.
그래, 인정한다.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데 잘 생각을 해보자.
주변에 동료가 하나 있는데 워커 홀릭이다. 회식이고 뭐고 어지간하면 참가하지 않고 일만 한다. 어쩌다 자리를 갖게 되면 또 일 이야기만 한다. 당연히 업무 성과는 좋다. 팀원으로는 만족도가 높다. 그런데 이런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은가?
“아, 역시 회전축을 컨트롤 하는 거였구나. 그거 나도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고. 뭐 특별한 요령이라도 있었던 거야?”
“느낌이 팍!! 하고 왔다고? 역시 슬라이더는 보고······. 아, 사람들은 스위퍼라고 부르는데 내 기준에서는 사실 슬라이더를 던지는 거라서. 아무튼, 역시 슬라이더는 보이는 거구나.”
“아냐. 아냐, 그러니까 그 예감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보기에는 일종의 종합적인 인지능력이야. 그 발현이 단순히 감각이라는 느낌으로 전달되는 것 뿐인 거지. 0.2초의 시간 동안 내리는 판단에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는 없는 거잖아.”
“마지막에 피치클락 바이얼레이션? 하하, 맞아. 뭐 절반 정도는 좀 고민을 하다가 시간이 간 거였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너를 조금 방심시킬 의도가 있었지. 볼 하나를 그렇게 쓰는 게 아깝지 않냐고? 그럴 리가. 어차피 공을 던지느라 체력을 소모하는 것도 아니잖아.”
야구에 관한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아까 마이크 피아자가 아버지의 팬이라는 이야기에 반색을 하며 나에게 오타니 쇼헤이를 인계하고 빠져나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 맞다. 그런데 혹시 피지컬 트레이닝은 어떤 식으로 하고 있어? 체중은 더 늘릴 계획이 있는 거야?”
“네, 체중은 최종적으로는 110kg정도까지는 증량할 계획입니다.”
“110kg이면 지금보다 한 20kg정도?”
“네, 얼추 그쯤?”
그리고 자연스럽게 피지컬 트레이닝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약간 불편한 주제였다. 조금 찝찝한 루트로 오타니 쇼헤이의 트레이닝 데이터를 가져다가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됐다. 나 예전에 증량할 때 데이터랑 모아둔 팁들 좀 있는데 괜찮으면 보내줄까?”
“네?”
“아, 물론 너랑 나랑은 체질도 좀 다르고 시대도 벌써 많이 지나서 더 좋은 것도 많이 나왔겠지만 그래도 꽤 도움이 될 거야. 나도 사실 체중도 쉽게 잘 안 붙기도 했었고. 게다가 이 투타겸업이라는 거 밸런스 잡힌 몸을 만드는 데도 꽤 힘들었거든. 이거 혹시 별로 필요도 없는데 내가 너무 생색을 낸 건가?”
“아뇨. 저야 보내주시면 너무 감사한데. 그냥 뭔가 좀 얼떨떨해서요. 그거 되게 귀한 자료일텐데 그렇게 막 보내주셔도 되는 거예요?”
“아니, 왜 그 너클볼 투수들 보면 자기들끼리 서로서로 훈련하면서 얻은 노하우 같은 거 아낌없이 공유해주고 그러잖아. 그냥 그런 거라고 생각해. 물론 어디 인터넷 같은데는 당연히 함부로 올리지 말고. 괜히 애들이 이런 거 보고 막 따라 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잖아.”
와, 뭐지? 그 귀한 자료들을 이렇게 쉽게 내준다고? 설마 데이터 사이에 거짓 자료를 심어서 나를 교란할 생각인가?
너무 쉽게 자신의 트레이닝 데이터를 내주겠다는 이야기에 잠깐 쓸데없는 생각도 해봤지만 오타니의 수염 한 톨 없이 밝게 빛나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런 더러운 마음 따위는 깨끗하게 씻겨 내려갔다.
이 사람은 진짜다.
이후로도 제법 길게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34세. 그러니까 회귀 전 나와 동갑이라서 그런가? 대화가 상당히 잘 통하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야구에 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 나야 MVP 1위도 못 따냈으니 죽어라 열심히 했다지만 이미 MVP 1위도 해본 양반이 이렇게까지 야구에 진심일 수 있다니.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더 높은 곳을 추구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아, 미안 미안. 내가 너무 오래 잡아두고 있었네. 저기 아버님이랑 여자친구까지 다 같이 온 거 맞지?”
“아, 네.”
“가족 행사에 함께 낀 걸 보면 약혼녀?”
“아뇨. 아직 거기까진 아니고······.”
***
“어머, 그러니까 아버님이 아직 학창 시절 때에 팬이 되셨던 거네요?”
“그렇지. 정말 대단한 양반이었어. 저 양반이. 프로의 세계라는 게 결국 재능의 장벽이고 특히 메이저리그는 더더욱 그렇거든. 근데 저 양반이 글쎄 62라운드 전체 1390번. 그러니까 사실상 빅리그가 될 가능성이 아예 없던 선수로 판정을 받았던 선수거든. 그런데 그런 걸 다 이겨내고 빅리그 최고의 포수로 우뚝 선 거지.”
미리 준비해둔 다저스 유니폼에 마이크 피아자의 사인을 받아낸 경식의 얼굴에 싱글벙글한 웃음이 가득했다. 비록 이제 현역 때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가장 좋아하던 야구 선수를 직접 만났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경식의 눈에는 나이를 먹어 뚱뚱해진 마이크 피아자의 모습이 여전히 현역 시절에 주름 하나 없던 그 모습 그대로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경식 역시도 지금 잠시나마 20대의 철없던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저 녀석은 널 놔두고 저기서 대체 무슨 이야기가 저렇게 많은 건지 모르겠구나. 이렇게 가족을 다 데려와서 직장 동료와 일 이야기라니. 쯧. 만약 나중에도 저러면 나한테 꼭 이야기하거라. 바깥일을 가족 행사까지 들고 오는 거 그거 몹시 나쁜 버릇이야.”
은진이 배시시 웃었다.
‘나중에도 저러면’이라니. 너무 노골적이라 못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 아버님이 인정을 하고 어쩌고 하면 대체 뭘 하겠는가.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고백을 했다가 차인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고.
설마, 이제는 정말 아무런 감정이 없는 친구로서 대하는 걸까? 자기 경기 보러 놀러 온다니까 표를 구해주는 그런 친구? 그래, 어쩌면 이렇게 가족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하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수원이는 야구를 좋아해서 멋있는 거잖아요. 좀 보세요. 오타니 쇼헤이 선수랑 둘이서 눈 반짝거리면서 대화 나누는 거.”
하지만 그럼에도 은진은 수원이 멋졌다. 아니, 그래서 더 멋졌다. 꿈을 향해 저렇게 전력으로 질주하는 사람이 어떻게 멋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자리에서까지 저렇게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목표를 위한 대화에 열을 올릴 수 있는 남자가 과연 세상에 얼마나 될까?
“끄응······.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허. 참. 난 모르겠구나. 저거 저러다가 진짜 이ㅎ······. 아니, 아니다.”
경식이 자신의 경험에서 나오는 불길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10분만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안 오면 내가 데려 올테니까 일단은 여기 파티장이나 잠시 즐기자꾸나.”
“아녜요 아버님. 전 이렇게 아버님이랑 있어도 충분히 재밌는 걸요.”
“늙은이랑 놀아주는데 재미는 무슨. 아니, 그나저나 강두 이 녀석은 대체 어딜 간 거야?”
***
정신을 차려보니 1시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확실히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인 건 확실했다. 물론 배울 점이 많다고 해서 내가 저런 사람이 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니, 어? 여자도 안 만나고. 술도 안 마시고. 오직 야구만 한다? 으, 그게 어디 사람 사는 삶일까?
“역시 수원이 너라면 이해할 줄 알았어. 솔직히 선수 생활하면서 결혼하는 거? 그거 쉬운 일이 아니지. 어차피 요즘은 많이들 천천히 결혼하잖아. 나는 데릭 지터처럼 은퇴하고 결혼해도 안 늦다고 생각해.”
물론 결혼에 관한 이 부분은 어느 정도 공감한다.
내가 해봤기 때문이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일 년 중에 절반 이상을 집에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데 현지 사람이라면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주변에 아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잘 지내면 되지만, 배우자 하나 믿고 일본이나 한국에서 건너 온 여자들은 성격이나 언어에 따라서 반쯤 정신병에 걸릴만한 환경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만약 뉴욕이나 LA와 같은 곳이었다면 조금 덜했을 것 같긴 한데 아무튼 회귀 전의 내 전처의 경우가 딱 그랬었다.
“그래도 난 연애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데릭 지터도 선수 생활 때 연애는 엄청 자주 했잖아.”
“글쎄. 그럴 수도 있긴 하네. 근데 그건 사람의 타입마다 좀 다른 것 같아.”
아, 이런.
대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게 나도 모르게 다시 대화를 이어나갈 뻔했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의 번호와 메일을 오타니에게 전했다.
“그게 내 번호야. 그리고 이건 메일 주소.”
“오케이. 데이터는 여기로 보내도록 할게. 오늘 대화 즐거웠어.”
서둘러 고개를 돌려가며 은진이와 아버지를 찾았다.
어디를 간 거지?
“하하하!! 진짜 그랬다니까? 아니, 수원이 저 녀석이 아주 쪼그마할 때. 어? 우리 아들놈이 하는 그 야구 같이 하겠다고 따라갔는데. 글쎄 석 달도 안 되서 우리 아들 놈이 야구를 관두겠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왜 그러니? 그랬더니 자기보다 2살이나 어린 수원이가 자기보다 공을 더 잘 던진다는 거 있지. 근데 더 대단한 건. 그냥 아는 형 따라 갔던 거였으면 그 형이 그만둔다고 하면 같이 그만둘 법도 한데. 쟤가 야구에 완전히 빠진 거야. 그 어린 녀석이 말이지.”
강두 삼촌이 저 멀리서 앤서니랑 몇몇 사람들을 붙잡고 진실과 허풍이 적당히 섞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너머.
어떤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은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아버지는 은진이만 놔두고 대체 어딜 간 거야.’
내가 빠른 걸음으로 은진이에게 걸어갔다.
“아, 은진아. 내가 조금 늦었지? 그런데 이쪽은 누구?”
“와우!! 최!! 저 팬입니다. 아, 물론 양키스 말고 최 개인의 팬이요. 아무리 그래도 양키스에는 영 정이 안 가서 말이죠.”
“아, 수원아. 이쪽은 패트릭 씨. 배우라고 하시더라.”
“네, 배우입니다. 그래도 요즘 제법 얼굴을 알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시아까지 알려지려면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 같군요.”
아, 앤서니가 선수들 뿐만 아니라 나름 셀럽이라는 사람들도 몇 초대했다고 들었는데 그 중 하나인 듯싶었다.
“그렇군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패트릭 씨. 제가 은진이랑 따로 이야기 할 게 있어서요.”
“아, 네. 얼마든지요.”
슬쩍 은진이를 라운지 구석의 테이블 쪽으로 데려갔다.
“따로 할 이야기라니? 갑자기 무슨 이야기?”
무슨 이유인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박은진이 나에게 물었다.
아, 잠깐만.
무슨 이유인지 알 것 같다. 이 녀석 지금 내가 질투한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그냥. 네가 모르는 놈이랑 둘이 있으니까 좀 질투나서.”
“어······, 어. 어?”
갑자기 고장난 것처럼 동작을 멈추는 박은진.
그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야, 야.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나한테 이성적으로 뭐 과, 관심이라도 있었던 거야?”
“갑자기는 무슨. 상식적으로 특별한 날에 이렇게 미국까지 놀러 오라고 불렀는데 그게 아무런 관심 없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아니, 그런데 그게 그러니까······.”
그런데 나도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거 어쩌면 질투가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은진아.”
“어······, 어?”
“우리 사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