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33)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33화(333/404)
333화. 올스타 브레이크(6)
“어, 어? 뭐라고?”
“우리 사귀자고. 왜, 싫어?”
“아니, 좋아!! 당연히 좋지!! 그런데······.”
“그런데?”
“아니, 그게 그러니까. 조금 너무 갑작스럽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런데 근데 이게 절대 싫다는 말은 아니고.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그러니까, 그러니까. 네가 예전에 나 한 번 깠잖아. 그리고 이후로는 뭐 특별한 것도 없었고. 그러니까 이게 진짜 사귀는 게 싫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냥 궁금해서.”
그냥 들어서는 횡설수설 문맥을 파악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그래도 그 의미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이 대체 왜 변했느냐는 질문이다.
글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어디 수학 공식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땐 박은진이 미성년자였고 지금은 성인이라서? 나도 같은 나이인데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또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아니, 어쩌면 나도 이렇게 4년째 살아가면서 지금에 적응을 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정은 당장 박은진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들이었다.
“그냥. 원래 내가 좀 느린 편이라서. 그리고 박은진. 상식적으로 남자가 여자를 이렇게 먼 미국까지 초대하는데 아무런 마음도 없이 그게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너도 아무런 마음 없이 이렇게 미국까지 오는 게 가능하고?”
오타니의 말도 사실 어느 정도는 맞다.
내 커리어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던 해는 와이프와의 이혼 문제로 한창 복잡했을 때였다. 인간관계란 그처럼 힘들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여 1루수 불가 판정을 받고 지명타자로 전향했을 때, 옆에 와이프가 없었더라면 그처럼 쉽게 딛고 일어날 수 없었을 거다.
미래는 모르는 일이고 결국 지금은 지금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는 게 옳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은 박은진이 다른 남자랑 시시덕 거리는 게 굉장히 싫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오늘부터 1일인건가?”
“그렇지?”
“우리 사귀는 건 역시 당분간은 비밀로 해야겠지?”
“음, 나야 상관없는데 은진이 너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 아이돌은 아무래도 이미지로 먹고 사는 거잖아.”
“그렇긴 그런데······. 상대가 수원이 너라서. 일단 사무실에는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너도 혹시 모르니까 에이전시랑 이야기는 해보고. 나랑 사귀는 거 이야기 나는 게 수원이 너한테도 괜히 안 좋을 수도 있잖아.”
“나? 나야 안 좋을 게 없지. 오히려 우리 업계는 일찍 결혼하는 게 더 환영 받는 걸.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랑 일찍 결혼해서 그러는 경우도 제법 흔하거든. 아무래도 가정을 일찍 갖는 게 조금 더 안정적이고 그러니까.”
“겨······, 결혼이라고?”
“아, 이건 너무 일렀네. 아무튼, 내 쪽은 언론에 알려져도 별 상관 없으니까 괜히 걱정하지 말고.”
박은진의 표정이 조금 묘해졌다.
하긴 뭐, 이제 스무 살인데 결혼이라니. 조금 부담스러운 이야기겠지. 아무튼 다행스럽게도 그 조금 이상한 표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쓸데없지만 즐거운 이야기들을 매우 오랜 시간 주고받았다. 여느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
“어라? 이거 앤지 아닙니까?”
“엔지? 그게 누군데?”
“아니, 그 왜 있잖습니까. 작년에 데뷔한 걸 그룹. 메타묭.”
“메타묭? 무슨 이름이 그따위야? 게다가 난 처음 듣는데?”
“아니, 선배님은 군대 있을 적에 본 트와이스 이후로 걸그룹 자체를 모르시잖아요. 얘들 제법 핫해요. 이번 곡도 꽤 잘뽑혔고. 게다가 최근에 멤버 중 하나가 학폭까지 터지는 바람에 인지도도 꽤 올라갔고요.”
“그래? 근데 아이돌은 정산받으려면 되게 오래 걸리지 않나? 저 자리면 표 되게 비쌀 텐데?”
“집이 좀 사는 거 아닐까요? 옆에는 뭐 아빠나 그런 사람이랑 온 거고요.”
“야, 잠깐만. 이거 옆 자리 이 남자 최수원 선수 아버님인데?”
“네? 최수원 선수 아버님요?”
“야, 넌 스포츠 야구 전문 기자라는 놈이 무슨 아이돌 얼굴은 귀신처럼 알아보면서 최수원 선수 아버님 얼굴을 못 알아보냐?”
“그런데 이거 두 사람 좀 묘하게 친해 보이지 않습니까? 설마 불륜?”
-딱!!!
“아, 선배님. 농담입니다. 농담.”
“새끼가. 농담 같은 농담을 해야지. 어디 가서 그딴 소리 진짜 하지 마라. 근데 진짜 좀 친해 보이기는 하는데. 최수원 선수 아버님이야 당연히 최수원 선수가 초대한 걸 테고. 이거 설마 이 아이돌도 최수원 선수가 초대한 건가?”
“한 번 알아볼까요?”
“알아볼 곳은 있고?”
“어차피 초대권이면 구단 통해서 나간 걸 거고. 양키스 쪽 좀 파보면 나오지 않을까요?”
“아는 사람은 있고?”
“그거야 충분한 시간과 돈만 좀 주시면······.”
“충분한 시간과 돈만 있으면 난 UFO의 존재도 밝혀낼 수 있거든?”
“그러면 일단 그냥 단신으로 띄우겠습니다.”
[연예계 숨은 야구광?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을 직관하는 앤지의 눈부신 미모.]─뭐야? 설마 연예인이라고 막 엉덩이 들이 민 거야?
─그러게? 옆에는 우리 갤주 아버님 아님?
─ㅇㅇ 갤주 아버님 맞네. 근데 쟤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애인데 돈이 어딨어서 올스타전에 프라임석을 구한 거지?
─앤지 쟤 최수원 친구잖아.
─엥? 그게 무슨 소리야? 갤주 연애함?
─아, 갤주 설마 아이돌이랑 연애하나? 연예인들이랑 얽히지 말고 그냥 다른 빅리그 스타들처럼 동창이랑 소박하게 결혼해서 빨리 아이 14명쯤 낳아서 애국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니, 쟤 갤주 고등학교 동창임. 갤주가 고등학교 다닐 때 갤주는 운동하고 쟨 연예인 지망이라서 둘 다 낙제 재시험으로 친해졌다고 알고 있음.
─갤주 학교 다닐 때 낙제함?
─ㅇㅇ 수학 졸라 못함.
─야구를 저렇게 잘 하는데 수학 공부할 시간이 어딨었겠냐. 근데 넌 뭔데 그런 걸 그렇게 자세히 암?
─나도 동창임. 나도 같이 낙제했었음.
─아······.
─ㅋㅋㅋ 허언증 오지고요. 내가 갤주 학교 다닐 때 좀 아는데 공부 개 잘했음. 지금 영어랑 스페인어 거의 네이티브 수준으로 하는 거 보면 모름? 두뇌 자체가 다른 종자임.
─허언증은 무슨. 쟤 영어는 잘했는데 수학은 졸라 못 했다니까?
최수원은 누가 뭐라고 해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였다.
사소하게 그의 경기를 관전가는 것만으로도 일단 기사가 뜰 지경인데 무려 올스타전에 가장 좋은 좌석에서 최수원의 가족과 함께 경기를 직관한 여자 아이돌의 사진은 너무 당연히 화젯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올스타전이 끝나고 딱 3시간.
LA 현지 시간으로 저녁 11시 그러니까 한국 시간으로 오후 3시 무렵의 일이었다.
***
은진이의 귀국이 계획보다 매우 빠르게 이뤄졌다.
아니, 무슨 경기 중에 잠깐 영상에 한 번 잡힌 걸로 나와 은진이의 학창시절 이야기까지 줄줄이 흘러나왔는데 사실과 거짓 정보들이 절묘하게 섞이면서 그야말로 언론이 대폭발을 해버렸다.
뭐, 단둘이 있는 사진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 아버지랑 경기 함께 관람하는 정도로 부모님이 공인한 연인이라는 기사까지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요즘 내 인지도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 잘 들어갔어?”
“말도 마. 공항에 기자들이 엄청 몰려와서. 진짜 무슨 탑스타 귀국하는 줄······.”
“소속사에서는 뭐래?”
“그냥 스캔들 부인하지 말고 그대로 쭉 갈 수 있냐고 그러시더라.”
“사귀는 거 공개하자고?”
“아니, 사장님한테는 아직 사귀기로 했다고 말 안 했거든.”
“근데 부인을 하지 말자고 그랬다고?”
“어, 당연히 사귈리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신 것 같아. 그냥 노코멘트로 있으면 인지도라도 쭉쭉 올라가니까.”
“아······.”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은진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너 이용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면 그냥 부인하라고 그럴게. 사장님도 그럴 수 있냐고 물어보신 것 자체가 수원이 너한테 허락을 받으면 그러자는 의미 셨던 것 같으니까.”
“아니, 나야 그냥 사귄다고 발표해도 상관없다니까?”
“진짜 그럴까?”
“뭐, 은진이 너 편한 대로 해. 기획사 사장님한테는 솔직하게 말씀 드리고.”
“응, 알겠어.”
고백도 했겠다 남은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동안 좀 꽁냥거리려던 나의 계획은 그렇게 완벽히 물 건너 갔다. 뭐, 그래도 덕분에 효도는 아주 톡톡히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뭐 굳이 이렇게까지 하냐고 말씀하긴 하셨지만, 옆에 함께 하던 강두 삼촌 말이 ‘이게 네 애비가 할 수 있는 최상급의 감탄사다.’라고 번역을 해주셨다.
“벌써 돌아가시게요?”
“그러니까. 내가 어? 온 김에 관광도 좀 하고. 수원이 네 경기도 좀 보고 그러고 가자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아주 복지부동이다. 복지부동이야.”
강두 삼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회사 일을 언제까지 팽개쳐 둘 수는 없으니까.”
“아니, 너 며칠 없어도 회사 잘 돌아간다니까? 오히려 더 잘 돌아갈 수도 있어요.”
“우리 회사는 너희랑 같냐? 그리고 강두 너는 평소에도 어차피 별로 일 안했잖아. 제수씨가 다 했지.”
아버지가 완강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이제 수원이 너도 다시 시즌 시작되니까 경기에 딱 집중하고. 나중에 시간 나면 또 놀러 오도록 하마.”
“알겠어요. 혹시 시간 되면 미리만 말씀 주세요. 표랑 다 보내드릴 테니까요.”
“수원아. 이 삼촌 몫도 또 챙겨주는 거냐?”
“어휴, 말씀만 하세요. 어차피 구단이랑 계약 내용에 다 있으니까. 다음번에는 숙모님도 데리고 오시고요.”
“오케이!!”
아버지가 잠시 짐을 챙기러 자리를 비운 사이.
강두 삼촌이 슬쩍 나에게 다가왔다.
“수원아. 이건 혹시라도 네 아버지가 네 경기도 제대로 안 보고 그냥 돌아간다고 서운할까봐 하는 말인데.”
“알아요.”
“응?”
“여기 남아 계시면 제가 아버지 신경 쓴다고 경기 집중 못 하고 루틴 깨질까 봐 저러시는 거잖아요.”
회귀 전의 나도 아이를 가져본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여전히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게 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랑 지낸 시간이 있다. 아버지가 표현이 서툰 사람이라는 것. 하지만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 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짜식. 역시 남자는 타지에서 고생을 좀 해봐야 한다더니. 우리 수원이가 아주 다 컸네. 다 컸어.”
“다음번에도 꼭 아버지랑 같이 와주세요. 정말로 숙모님도 함께 모시고요. 뭐, 근처에 괜찮은 아주머니 계시면 아빠한테 소개 시켜주셔도 좋고요.”
“어이고, 우리 수원이. 자기가 연애한다고 이제 아버지 연애까지 신경을 쓰는 거야?”
“아버지도 언제까지 저렇게 혼자 사실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 그건 그렇지. 뭐 네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이 삼촌이 또 한 번 힘을 써보마. 저 무뚝뚝한 똥고집 녀석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올지는 모르겠다만 말이다.”
짧았지만 여러모로 강렬했던 올스타 브레이크는 그렇게 아버지와 강두 삼촌의 귀국으로 끝이 났다.
7월 중순.
본격적인 불볕더위와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함께 찾아오는 하반기.
첫 번째 상대는 뉴욕 메츠.
시즌 두 번째 서브웨이 시리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