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40)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40화(340/404)
340화. 투타겸업(4)
또 저 녀석 차례다.
오타니 쇼헤이가 잠시 모자를 벗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뉴욕.
그가 나고 자랐던 이와테현과 비교하면 너무 덥고 너무 춥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공을 한 60개 정도 던졌던가?
순풍이 불고 있다. 정말 누군가가 등을 떠밀어 주는 것 같은 순풍이다.
오타니가 최수원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했다.
스무 살이라.
참 좋은 나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스무 살 때는 어땠더라?
투수 3관왕 시즌이 스무 살이었나? 아니면 투타겸업으로 처음 성공했던 해인가? 헷갈린다. 하지만 우습게도 실제 무엇을 했었는지는 헷갈리는데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는 명확히 기억이 난다.
그래, 스무 살의 나는 메이저리그에 승격해서 1300만 달러의 연봉을 받겠노라 결심했었다. 참 허황하기 짝이 없는 계획들이었다. 하지만 큰 꿈을 꾸었기에 그 꿈 중 일부를 현실로 이룰 수 있었고 또 그 중 일부를 계획으로 끌어 내릴 수 있었다.
22살에 사이 영은커녕 메이저에도 진출하지 못했지만 NPB 퍼시픽 리그 MVP와 일본 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손에 넣었다. 24살에 하려던 노히트는 아직도 못 했지만 대신 27살에 하려던 리그 MVP는 정확하게 달성을 했다.
26살에 월드 시리즈 우승은 무리였다.
32살에 두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도 무리였다.
34살.
계획표대로라면 지금쯤 세 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에 도전해야 하는 나이.
큰 꿈을 꾸고 열심히 노력을 하다 보면 언젠가 꿈은 계획으로 다가온다.
세 번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두 번째 우승 정도는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마운드의 오타니가 와인드업했다.
***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정말 대단한 타자다.
.
(중략)
.
그래, 그러니까 긴장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이다.
물론 뭔가 이상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독백이긴 한데. 원래 중요한 말은 두 번 해도 괜찮다. 그리고 솔직히 앞선 타석은 좀 너무 허무하게 넘어간 감이 있었다.
-스읍······.
7회 말.
원아웃.
[아, 최수원 선수의 세 번째 타석!! 상당히 긴장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7회 말 원아웃인데 겨우 세 번째 타석입니다. 이번 시즌 최수원 선수의 경기당 평균 타석이 그러니까······. 4.45번. 그러니까 두 경기 중 한 경기 꼴로 다섯 타석을 소화했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그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그걸’ 진행 중이지 않습니까? 이게 정말 상당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렇죠.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이대로 정말 퍼펙트게임을 한다면 우리 최수원 선수. 이번 타석이 마지막 타석일 수도 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이게 보통 퍼펙트게임이 진행 중인 투수가 있을 때는 경기 중에는 퍼펙트게임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는데 제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해버렸네요.] [아, 네. 그렇죠. 실수죠 실수.] [아무튼, 우리 최수원 선수. 항상 보면 언제나 해야 할 때 뭔가를 해줬거든요. 전 지금 역시 바로 그런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초구.
몸쪽 깊숙한 코스.
앞서 싱커와 스위퍼만 생각하다 포심에 당했다. 그렇다고 무려 세 가지 공을 염두에 두고 그걸 모두 다 쳐내려고 한다? 어렵다. 매우 어렵다. 특히나 오타니처럼 이렇게 터널링이 좋은 투수라면 더욱 어렵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어렵지만 해내야 한다.
싱커, 스위퍼, 포심.
-딱!!!!
아, 살짝 밀렸다.
좌측, 3루 내야 관중석 그물망을 때리는 타구.
싱커였다.
‘그냥 보낼 걸 그랬나?’
애매한 공이었는데······.
잠시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다. 지나간 공을 머리에서 지운다.
두 번째.
집중했다.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집중했다.
호흡을 잊었고 그저 마운드에 선 투수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공이 그의 손을 떠난다.
0.01초.
그리고 거기서 또 0.01초.
그렇게 열다섯 번을 더하여 0.15초.
1초를 100으로 나눈 그야말로 짧디 짧은 시간들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멀리서 날아오는 공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인지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이 짧은 시간 동안 공이 96마일로 날아오는지 88마일로 날아오는지를 감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감이었다.
‘느리다.’
지난 대화에서 오타니 쇼헤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감이라는 녀석은 네가 가진 인지능력이 종합적으로 발현된 결과물이야. 그러니까 믿어봐.’
그리고 그 오타니 쇼헤이가 던진 공을 보며 나는 그런 나의 감을 믿기로 결심했다.
방망이를 움직이지 않았다.
-뻐엉!!!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스플리터.
심판의 손은 올라오지 않았다.
[최수원!! 최수원 선수가 스플리터를 골라냈습니다. 볼 카운트는 1-1.] [오늘 오타니 쇼헤이 선수 스플리터 구사 빈도가 상당히 높은데 최수원 선수 뭔가 이제 공략법을 좀 깨달은 게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듭니다. 물론 보통 선수라면 고작 한 경기. 공 몇 차례 봤다고 에이스 투수의 결정구를 공략하고 그런 건 불가능하겠습니다만 저희 최수원 선수가 어디 보통 선수가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5천만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선수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경기를 시청하고 계신 시청자 여러분의 마음이 태평양 너머 최수원 선수에게도 충분히 전달되고 있으리라. 저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타석에 그대로 섰다.
루틴을 수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집중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다. 마운드의 오타니가 조금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집중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에 동요가 생기지 않는다.
극한의 집중.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그가 인터벌을 최대한 길게 가져간다.
13초.
그의 몸이 움직였다.
바깥쪽 낮은 코스.
-뻐엉!!!
스트라이크인 척 하는 볼.
스위퍼였다.
볼카운트 2-1.
여전히 오타니 쇼헤이의 인터벌은 느렸다.
그가 조금 더 빨리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이런 생각까지도 그가 의도한 부분이겠지.
네 번째.
복판.
실투?
나의 몸이 전력으로 움직였다. 오늘 오타니 쇼헤이의 폼이나 운을 생각할 때 다시 나오기 힘든 기회다. 전력으로 두들겨 담장을 넘겨버린다.
그리고 0.05초의 시간이 더 지났다.
아니, 아니다.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이 공이 바깥으로 빠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뻐어엉!!!
심판의 손은 올라오지 않았다.
스위퍼였다.
다저스의 포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1루심을 향해 스윙 여부를 물었다. 타석에서 물러나 재정비를 하지 않았다. 지금 이 느낌을 조금 더 가져가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냥 다시 방망이를 쥐고 마운드를 바라봤다.
“스트라잌!!!”
분명히 멈춰 세웠다.
하지만 굳이 항의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서 항의해봐야 바뀌는 건 없다. 지금은 이 집중을 조금 더 끌고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운드의 오타니 쇼헤이가 보여주는 표정이 썩 난감해 보였다.
공을 던지고, 내 방망이가 돌아갔는지 안 돌아갔는지 볼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을뿐더러, 딱히 여유도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오타니가 지금 내 방망이가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느꼈다.
아니, 어쩌면 저 표정은 지금 나를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볼카운트 2-2
어렵지 않다.
해낼 수 있다.
기이한 고양감과 자신감이 전신을 가득 채웠다.
다섯 번째.
몸쪽 높은 코스.
스플리터다.
이제 어렴풋한 느낌을 넘어선 강렬한 확신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보더 라인에 걸치는 스플리터다. 매우 까다롭다. 볼카운트만 투 스트라이크가 아니었다면 그냥 거르는 게 맞는 아주 까다로운 공이다. 잡아당길 수 있을까? 글쎄, 바깥쪽이라면 몰라도 애매하다.
-딱!!!!!
파울 라인을 넘어 내야 그물망을 두들기는 타구.
일단 걷어냈다.
볼카운트는 여전히 2-2
마운드의 오타니가 와인드업했다.
공이 날아온다.
살짝 몸쪽. 하지만 복판에 더 가깝다.
스위퍼?
아, 이번 건 단순히 느낌이 아니었다. 왠지 오타니라면 여기서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스위퍼를 던져서 나의 방망이를 끌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스트라이크인 척하는 볼은 언제나 옳은 법이니까.
마음속에 스위퍼를 2할 정도 더 가중을 둔 채로 날아오는 공을 바라봤다.
어쨌거나 존 근처로 공이 오면 두들겨야 하는 것이 투 스트라이크다.
빠르게 방망이를 움직였다.
정말 그림처럼 공이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내 예상이 맞았다.
보더라인.
혹은 보더 라인에서 살짝 더 빠지는 공이다.
하지만 지금 나라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공이 더 멀리 달아나기 전에.
앞서 연속 안타를 의식하며 어떻게든 방망이를 가져다 대려는 마음 대신 공이 도착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저 앞선 포인트에서!!
-쾅!!!!!!!
도망가는 공을 억지로 잡아당겼다.
전진 에너지와 회전 에너지가 오롯하게 방망이 끝에 집중됐다. 그러니 아주 약간 어긋난 타점은 그 힘으로 극복한다.
타구가 좌측 담장을 향해 쭉쭉 뻗어 나갔다.
마운드의 오타니 쇼헤이가 등을 돌려 타구를 바라봤다.
나도 역시 아주 잠깐.
타석에 서서 타구를 지켜봤다.
[쳤습니다!!! 아주 제대로 잡아당긴 큼지막한 타구!!] [좌측!! 아!! 조금만 오른쪽으로!! 아!!!!]폴대에서 10cm?
정말 미세하게 벗어나는 대형 파울 홈런.
바람만 조금 불었어도 넘어갔을 타구였다.
진짜 이번 시즌 끝나면 앤서니 볼피랑 같이 손 잡고 어디 봉사활동이라도 좀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괜찮았다.
긴장의 끈은 여전히 팽팽했다.
오히려 긴장이 탁 하고 풀린 것 같은 건 마운드의 오타니 쇼헤이였다. 지금까지 퍼펙트게임을 진행하면서 팽팽하게 당겨졌던 뭔가가 일순간에 풀린 얼굴이다.
하지만 녀석이 이내 자세를 재정비했다.
볼카운트는 여전히 2-2
녀석의 일곱 번째 공이······.
-뻐엉!!!!
3-2 풀카운트.
그래, 지쳤겠지.
바깥으로 크게 벗어나는 공을 하나 걸렀다.
이제 남은 건 하나.
퍼펙트.
그리고 77경기 연속 안타.
둘 중 하나는 부러져야 하는 단 하나의 공만이 남았다.
물론 나는 여기서 부러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10번의 기회 중에서 3번을 쳐내는 타자는 좋은 타자다. 그리고 올해 나는 10번 가운데 무려 4번 쳐내는 타자다. 터무니 없이 좋은 타자라는 뜻이다. 앞서 두 번의 세금을 냈으니 확률적으로 지금 무조건 쳐낼 타이밍이다. 그건 수학이 증명한다. 내가 비록 이과는 아니지만, 아무튼 수학적으로 그렇다.
와인드업.
그리고 공이 날아온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한 가지 생각을 못 했던 게 있다.
퍼펙트
그리고 77경기 연속 안타.
지금 승부는 둘 중 하나만 부러져야 하는 승부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뻐어어엉!!!
[아!!!!!!]-우우우우!!!!!!!!
이 승부는 둘 다 부러질 수도 있는 승부였다.
마운드의 오타니 쇼헤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모자를 벗었다.
볼넷.
나의 연속 경기 안타가 76경기에서 끝이 나는 순간 이었······아니, 아니다. 퍼펙트가 깨졌으니 이제 9회 말에라도 얼마든지 타격 기회가 올 수 있다. 그래 분명 그렇다.
-딱!!!!
그리고 깔끔한 더블 아웃 체인지.
나에게 네 번째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나의 볼넷으로 끝나버린 두 개의 대기록!!] [최수원. 그 위대했던 76경기의 여정!!] [오타니 쇼헤이. 커리어 첫 번째 노히트 노런. 하지만 이 씁쓸한 뒷맛은 어찌할까.]